타인의 구두
조조 모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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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상황을 바꿀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생각을 바꿔야죠.


조조 모예스는 독자를 웃겼다 울렸다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작가다.

<타인의 구두>를 읽으며 웃다가, 찡하다, 열받다, 조마조마하는 과정을 매 페이지마다 겪었다.


샘은 직장에서 상사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집에는 우울증에 걸린 남편이 있다.

실질적인 가장인 샘은 바뀐 회의 시간에 쫓겨 급하게 나오고 차에 타서야 가방이 바뀐 걸 발견한다.

가방을 되돌려주러 가기엔 시간이 없고, 자신의 검정 플랫슈즈 대신 빨간 루부탱 15cm 하이힐을 신고 거래처에서 대박을 친다.


니샤는 남편과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스포츠센터에서 옷을 갈아입으러 가방을 보다 자기 것이 아닌 걸 알게 된다.

그날은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졸지에 남편에게 버림받고, 카드도 정지당하고 펜트하우스에서도 쫓겨난 니키는 운동복위에 샤워 가운을 걸치고 버텨보지만 냉랭한 남편은 그녀에게 땡전 한 푼 주지 않고 그녀를 내친다.


극과 극의 삶을 살던 두 여자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바로 구두다.

그 구두를 바꿔 신은 날 한 여자는 굵직한 계약을 따내고, 한 여자는 모든 걸 잃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강인함. 진정한 강인함은 반드시 남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만 뜻하지 않습니다. 강인함은 견딜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날마다 찾아가는 겁니다. 강인함은 온몸의 세포가 견디기 힘들다고 외쳐도 그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작품 속 인물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니샤를 엿 먹인 재수 없는 남편 놈 등짝 스매싱을 날려주고 싶었고

샘을 괴롭히는 사이먼의 면상에 사이다를 뿌려주고 싶은 충동을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 같이 굴면 하수다!

샘과 니샤와 그 주변인들은 더 멋진 걸 준비했다.

이 극악한 상황에 서로를 돕는 사람들을 보는데 가슴이 뜨거워진다.


니샤는 구두를 찾아오면 위자료를 주겠다는 칼의 말에 구두를 찾아 나서고

샘은 구두를 돌려주러 갔으나 문이 닫힌 스포츠 센터 때문에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주지 못한다.

그러다 니샤는 샘을 찾아내고 회사로 찾아가 이렇게 소리친다.





내 구두 어쨌어. 이 도둑년아!



잠들기 전 조금만 읽고 자야지 했다가 날을 새워 버렸다.

새벽이 밝아오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 다시 읽고 싶었다.

이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서로 어려운 상황에서 마주한 그들의 연대는 마음을 찡하게 했다.

나에게 니샤 같은 일이 생긴다면 나는 재스민처럼 니샤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내가 샘이라면 당장 은행 이자를 갚을 돈을 앤드리아에게 줄 수 있을까?


니샤를 위해 

니샤에게 위자료를 받아주기 위해 똘똘 뭉쳤던 그녀들은 자신만의 능력들을 발휘하게 된다.

나는 그 과정이 정말 좋았다.

평소에는 몰랐던, 위기 상황이나 특별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재치와 끼와 기발함과 용기를 발견할 때 시쳇말로 '소름 끼치게' 좋았다.



니샤처럼 안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백조처럼 발장구를 쳐야만 했던 삶도

샘처럼 가족의 기대에 맞추느라 자신을 잃어버린 삶도 결국은 나 자신만이 끊어낼 수 있다.


얽매이는 삶을 살았던 두 영혼이 바뀐 구두와 함께 연결되어 각자의 삶을 지탱하는 힘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응원하며 나도 즐거웠다.

소설을 읽는 순기능 중에 남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기가 있다.

<타인의 구두> 속 인물들에게서 다양한 감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항상 작은 친절을 베풀어야겠다.

그 친절이 나를 어떤 모험 속으로 이끌지 모르니까.


작가의 힘든 시간을 걸쳐 세상에 나온 이 작품 속엔 작가가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분위기가 있다.

인생은 완벽하지 않고, 언제나 예상치 못하게 흘러갈 수 있지만 그 변화가 꼭 나쁜 건 아니라는 것.


지금 변화의 한복판에서 마음고생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니샤와 샘을 소개해 주고 싶다.

적어도 그들을 통해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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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심리학 편 - 있어 보이는 척하기 좋은 인간 매뉴얼 세계척학전집 2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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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이론에 따르면, 이유 없이 강렬하게 싫은 것은 대게 내 그림자다. 반대로 이유 없이 강렬하게 끌리는 것도 그림자일 수 있다. 내가 억누른 야망, 자유로움, 반항심.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묘하게 끌린다. 팬심의 상당 부분은 투사다.


재밌는 책을 만났다.

종종 심리학 책들을 읽긴 했지만 이렇게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책은 없었다~

어려운 용어들도 이상하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고, 복잡한 심리학 이론도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공부 잘하는 친구의 정리 잘한 노트를 빌려 본 느낌이다.

이 노트 필기 잘 외우면 시험에 100점 맞을 거 같은 느낌이다!





나의 그림자

나의 열등감.

알고는 있었지만 들여다보지 못했던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직도 불쑥불쑥 떠올라 이불 킥을 하게 하는 그때의 감정들..


책을 통해 그때를 소환해서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심리학 책을 읽으며 심리학에 대해 배우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배우는 느낌이었다.




"5분의 호의", 5분 안에 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을 베풀어라. 소개해 주기, 피드백 주기, 정보 공유하기. 대가를 기대하지 마라.


나는 기버였다.

하위권에 있는.

나는 테이커는 재수 없게 생각했고

매쳐를 만나면 정 없다고 생각했다.


이 오랜 생각들을 바꾸는데 그 페이지를 읽는 시간만 걸렸다.

그동안은 왜 못 바꿨을까?

나는 앞으로 성공하는 기버가 되고 싶다. 




"참가자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들은 집단에서 튀는 것, 다르게 보이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행동을 솔로몬 애쉬의 동조 실험에서 깨닫는데

이 행동들이 사회적 규범이 되어 세뇌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튀는 인물, 다르게 보이는 사람에게 열광한다.

다수가 옳다고 하는 말만 믿고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니까 라고 나를 사회의 규범에 맞추며 살았던 시간이 아이들에게 헬조선을 선사했다.

이젠 현실에서도 동조하지 말고 다르게 말하는 걸 익혔으면 좋겠다.

이렇게 자신의 눈을 믿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울리면 사회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고 우리의 삶도 좋아질거라 믿는다.



결혼하지 않겠다! 고 결심했던 내가 결혼한 건 남자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나에게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 그가 하는 말이라면 믿게 만든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울비의 애착 이론으로 나는 내 연애성향을 분석했고, 내가 왜 결혼했는지를 이해(?) 할 수 있었다.


결혼 후 한동안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언성을 높였던 그 시기.

서로 주도권을 쥐려고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린 서로의 코끼리를 적으로 보고 덤볐던 탓이라는 걸 하이트가 알려줬다.



이 책은 심리학 거장들의 통찰을 일상 언어로 바꾸어 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훔쳤다'고 표현했나 보다~


책을 읽으며 나뿐 아니라 내 주변인들을 소환했던 시간이었다.

덕분에 그때 나의 행동과 그들의 행동을 떠올리며 불편했고, 마음 상하고, 힘들었던 상황들을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식 유튜버 이클립스. 

이분은 요점정리의 천재인 거 같다.

복잡하고 잘 이해되지 않았던 심리학을 쉽게 생각하게 만들다니~

덩달아 이분의 첫 번째 책 <훔친 철학 편>도 궁금해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나를 아는 시간임과 동시에 내 주변인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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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명카피 핸드북 - LONG LIVE THE LAZY 게으른 자여, 영원하라
김은수 지음, 김민경.라이언 박 감수 / 길벗이지톡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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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에서 활동 중인 카피라이터가 뽑은 영어 카피를 분석하고 

영어식 표현을 알려주며 영어권 문화와 소비자의 심리를 반영한 표현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광고 카피는 제품을 알리고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짧지만 임팩트 있는 문장이 인상적이죠.


영어 카피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과 짧은 문장을 잘 외워서 응용할 수 있을까? 란 생각으로 이 책을 읽고 싶었어요.

핸드북이란 말처럼 작은 사이즈로 들고 다니며 짬짬이 보기에 좋은 책입니다.


광고 문구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브랜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죠.

영어로 어떻게 '팔리는 문장'을 만들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책입니다.





ELECTRIC HAS GONE AUDI (전기차가 아우디했다)


로큰롤 하면 누가 생각나세요?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로큰롤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떠올립니다. 

이렇듯 아우디가 전기차를 발명하진 않았지만 이제 전기차하면 아우디를 떠올릴 거라는 의미의 카피입니다.

문법은 A has gone B로 A가 (탈바꿈해 ) B가 되었다는 표현이지만 이 카피에서는 아우디를 앞에 내세움으로써 아우디가 새로운 기준을 제시함을 나타냅니다.




JOIN THE FLIP SIDE (플립폰의 편에 서겠는가)


삼성의 갤럭시 Z 플립 광고 카피입니다.

삼성의 경쟁상대는 '애플'이죠.

이 카피의 뉘앙스는 스타워즈의 '악'에서부터 나왔습니다.

Join the Dark는 영화를 대표하는 상징적 문구로 '어둠의 편에 서라' 고 유혹합니다.

삼성이 이 카피를 응용하면서 '선'이 아닌 '악으로 자신들을 매혹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틀을 깨는 느낌을 주네요.







이 책은 10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고, 매 시작마다 QR코드가 담겨 있습니다.

카피에 해당되는 회사의 광고 영상이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어요.

그냥 문장만 보기 보다 영상과 함께 보면 카피의 느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카피 원문과 그 위에 작은 글씨로 해석을 적어놨습니다.

카피 아래쪽엔 광고 해설과 영어 문장을 분석해 놓은 짧은 글이 있어요.

카피라이터의 문장이라 그런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요점만 담겨 있습니다.


200개의 문장이 담겼는데 들어 본 문장도 있고,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영감도 받게 됩니다.

전 아직 영어 필사는 못해봤는데 이 책에 담긴 카피들은 모두  짧지만 강렬한 의미가 담긴 것들이라 필사하면서 외워도 좋을 거 같아요.




영어 공부의 목적을 가지고 읽었지만 저 같이 평범한 사람보다는 광고 쪽 일을 하시거나,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좋아하시는 분,

영어로 사람을 설득하고 매혹하는 힘을 배우고 싶은 분들에게 더 필요한 책 같습니다.

요즘같이 글로벌한 시대에 강렬한 문장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을 때 참고하면 좋을 거 같아요.


저도 리뷰 쓸 때 장황함을 덜어내고 좀 더 짧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문장들을 만들어 보려 노력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요즘 다들 긴 글은 거의 안 읽으니 짧지만 강렬하게 각인되는 문장들은 재치 있게 표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지루한 책 소개보다는 재치 있고 기억에 남는 문장으로 한 권이라도 더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곁에 두고 생각의 전환을 위해 공부하듯이 읽을 책입니다.

뭔가 새로운 읽을거리와 동시에 공부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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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윌북 클래식 브론테 세 자매 컬렉션
에밀리 브론테 지음, 박찬원 옮김 / 윌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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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새끼였어요, 나리. 제가 모두 알고 있지요. 모르는 거라고는 어디서 태어났고 부모가 누구고 처음에 어떻게 그 돈을 벌었는지, 뭐 그런 것뿐이지요. 헤어턴은 깃털도 나기 전에 둥지를 뺏긴 종다리 새기 신세고요! 그 불쌍한 아이는 자기가 어떻게 속았는지도 잘 모르지만 이 교구에서 알 사람은 다 안답니다."

몇 년 전 영국에 갔을 때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면서 변화 무쌍한 날씨를 보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 속에서 <폭풍의 언덕>을 떠올렸다.

이런 배경이니 그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겠네..라는 나의 생각은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열망을 가지게 했으나 이제야 이 작품을 읽게 되었다.


내 기억 속 <폭풍의 언덕>은 업데이트되지 못하고 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만 생각나고 나머지 인물들은 깡그리 잊은 채로 나는 그들의 사랑이 방해받고, 헤집어지고, 슬픔으로 점철된 이야기라고 느끼고 있었다.


윌북의 <폭풍의 언덕>은 두께로 나를 놀라게 했다.

이렇게 두꺼운 책이었나? 싶은 마음 뒤로 뭔가 고전이 주는 고질적인 장황함이 떠올랐다.


'워더링 하이츠'는 히스클리프와 언쇼 가문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고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는 린턴 가문이 거주하는 저택으로 워더링 하이츠와 비교되는 세련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가진 공간이다.

공간은 인물들의 성격과 신분 차이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상징하는 거 같다.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 세 들어온 록우드는 듣는 입장으로, 록우드의 집을 관리하는 딘 부인이 화자다.

딘 부인의 이야기로 독자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어린 시절부터 그들이 살아온 세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히스클리프는 내게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그의 맹목적인 사랑만이 남았고 그가 벌인 짓거리는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히스클리프라는 인물을 정말 처음 만나는 느낌이었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광적인 집착이 과연 사랑인 걸까?를 읽는 내내 의심했다.


안정성이 결여된 가정에서 잡초처럼 자란 아이들.

뻐꾸기 새끼는 보호받지 못하고 학대당하지만 그 속에서 캐서린이란 빛을 얻는다.

이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가 있었다면 이들은 다른 사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히스클리프를 데려온 아버지가 죽고, 힌들리는 그를 하인으로 내몰고 동등함이 사리진 곳에서 히스클리프는 증오심을 키운다.

한창나이의 캐서린에게 린턴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빛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오빠와 히스클리프와는 다른 '격' 있었던 린턴.

부드러움과 다정함을 느낀 캐서린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집스럽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캐서린에게 린턴의 다정함과 따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른 이와의 교류 없이 큰 저택에 갇혀 살아가는 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줄 사랑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을 이끌어 줄 어른도 없었던 세계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펼쳐야 했다.


부자가 되어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그 자체로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남은 건 배신과 증오라는 감정뿐이었으니까..


그들의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보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사랑'을 빼고는 그들을 생각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자네 조언은 필요 없어." 린턴 씨가 답했습니다. "안주인의 성품을 알면서도 내가 괴롭히도록 자극했지. 게다가 사흘 동안 어떤 상태였는지 전혀 알리지도 않았고! 인정이라곤 없군! 몇 달을 알아도 저 몰골이 되진 않겠어!"


그들을 지켜보고, 그들에게 조언을 하며 상황을 정리하려 했던 건 가정부였다.

적절한 배움도, 사랑도, 인생도 살아 보지 못한 가정부..


그래서 그들의 감정은 날것 그대로 표출되고, 모든 감정들이 성숙해지지 못하고 쏟아져 나왔다.


에밀리 브론테 자신도 캐서린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다.

그녀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건 자연이었다.

그녀가 자연에서 얻은 영감이 작품 속에서 폭발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녀의 인물들은 모두 날것의 감정들을 토로한다.


히스클리프가 파괴하려던 건 뭐였을까?

그렇게 다 뺏고 나서도 지키지 못했던 건 뭐였을까?

왜 나는 히스클리프에게서 공허함만 느낄까.



어떤 작품은 감정이 성숙하지 못한 시절에 읽어서 제대로 해석되지 못한 것들이 있다.

<폭풍의 언덕>은 격렬한 사랑이라는 느낌으로만 남은 작품이었다.

다시 읽어 보니 성숙되지 못한 '사랑'이 불러온 '참사'로 해석된다.


사람답게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의 광기가 오래도록 폭풍 속에서 살아가는 거 같다.

그들이 사는 세계가 너무 단절되고, 외롭고, 거칠어서 가여웠다..


그래도 어린 캐서린과 헤어턴이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거라 생각하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폭풍은 가라앉았고, 증오와 아집은 사라졌다.

그들에겐 새로운 감정을 배우는 일과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시간이 남겨졌다.

그래서 워더링 하이츠는 모든 문을 열어두었고, 그 안에서 따뜻한 불빛이 비친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곳에서 새로운 연을 이어갈 그들이 삭막한 독자들에게도 빛이 되어 준다..


히스클리프는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나는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

아마도 다음에 이 작품을 또 읽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다르게 읽어갈 테고 그제야 나는 알게 될 거 같다.

그들의 진정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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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네의 숲에서 월든을 읽고 필사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클로드 모네 그림, 전행선 옮김 / 더모던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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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었다.

    그랬음에도 이 책에서 만난 문장들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이런 문장들이 있었나? 싶었던 글들 앞에서 허겁지겁 읽어대기 바빴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그렇게 흘려보냈던 문장들이 이렇게 다시 내 앞에 머문다.


    모네의 <수련>을 미디어아트로 감상했었다.

    작품 속에 풍덩 몸담고 있던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다.

    아이들이 많이 왔던 때라서 그 경쾌한 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린다.

    그때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는데 이제 와 그때를 떠올리면 그 웃음소리와 왁자지껄했던 느낌만이 살아있다.



    필사는 작년부터 조금씩 해오고 있지만 자꾸 멈춘다.

    뭔가 미션(?)이 떨어져야만 움직이는 것처럼 필사는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으면서 좀체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모네의 그림은 햇빛 속에서 보면 찬란하고, 어스름 빛에 보면 은은하다.

    마음을 안온하게 하는 그림을 넘기면 현실을 돌아보는 글들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무언가를 얻는 대가로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삶을 지불해야 한다.


    대가가 따르는 건 마법만이 아니다.

    공으로 얻는 모든 것엔 언젠가 치러야 할 값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독서와 대화와 사고는 소인족의 키만큼이나 수준이 낮다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낫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수준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읽은 것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그건 내 것이 아닌 것이다.


    남의 생각을 자기 것인 양 지껄인다고 수준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옳고, 좋고, 맞다고 느낀 것들을 실생활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계속 낮은 수준에 마물뿐이다...







    책에 직접 글을 쓰는 건 두 번째다.

    모네의 그림을 보며 힐링하고

    소로의 글을 읽으며 생각을 깨우고

    잊지 않기 위해 필사를 한다.

    그러고 나면 계속 생각이 머문다.


    왜 이 문장이 끌리는지

    좋은 문장인 거 같은데 왜 이 문장은 끌리지 않는지

    그때는 좋다고만 느꼈던 문장이 왜 지금은 사무치게 다가오는지..


    그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글의 뜻

    몇 년 지났다고 이렇게 와닿는 느낌을 오롯이 느끼며 고급스러운 책 매무새와 듬직한 느낌의 무게감을 느끼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책은 읽을수록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려준다.

    두 번 세 번 만나게 되면 내 안에서 살짝 건드려진 채 솟구치지 못했던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보고, 읽고, 쓰고, 사유하기.

    그림, 글, 필사, 생각.



    한 권의 책에서 이 네 가지를 만족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모네의 그림에 대한 장황한 알은체 대신

    소로의 글들을 접목시켜 놓음으로써 읽는 이 스스로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만들어진 책이다.



    책을 선물해 주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주면 좋을 책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아서 기뻐할 것이고

    책을 모르는 사람도 받았을 때 모든 감각이 깨워지는 책이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기에 가장 기분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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