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주야."
"어린 손자를 부탁한다. 내가 춘추만세한 후에라도 내 부탁을 잊지 말아라."
1954년 박문출판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으로 재 출간된 더스토리의 <단종애사>는 세종대왕이 신숙주, 성상문과 궐을 거닐던 중 궁녀가 뛰어와 왕자 아기씨 탄생을 알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손자의 탄생을 들은 세종대왕은 기쁨과 함께 슬픔을 느끼는 듯 두 집현전 학자들에게 손자를 부탁한다.
이후로도 세종은 두 학자들에게 계속 어린 손자를 부탁한다.
그런 대왕의 뜻을 이어받지 못한 인간이 있으니 밖에 잠깐만 두어도 쉬어버리는 숙주나물 같은 신숙주였다.
문종은 세종대왕의 장자이자, 단종의 아버지이다.
첫 빈궁과 사이가 좋으셨지만 중전께서 예쁜 얼굴로 세자를 홀리는 빈궁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빈궁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폐위 시킨다. 이때부터 문종은 부모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아내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으로 자신을 괴롭힌 게 아닌가 생각된다.
중전이 세자와 세자빈 사이를 갈라놓지 않았다면 문종은 건강하게 오래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빈궁은 박색에 미련한 여자여서 궁인의 꼬임에 빠져 일을 도모하다 들켰으니 이로써 두 번째 폐인이 된다.
이렇게 두 번이나 아내를 본의 아니게 쫓아내야 했던 문종의 마음이 어땠을까?
세 번째 얻은 빈에게서 단종을 얻은 기쁨도 잠시 아이를 낳고 일주일 사이 명을 달리한 아내로 인해 세자는 마음에 상처가 더 심해졌을 것이다.
자신의 박복함을 스스로 비하했을지도 모르겠다.
단종의 비극은 이렇게 아버지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허약해진 문종에게는 삶의 기쁨도 없었고, 삶의 의지도 없었던 거 같다.
다만 어린 아들을 두고 가야 하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 터.
그가 만약 수양에서 아들을 부탁하고 갔더라면 역사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경들에게 이 아이를 부탁하오."
이때에 수양, 안평 두 분 대군을 비롯하여 모든 신하들은 일제히 엎드리어 그 넓은 방안에는 먼지 하나 움직이지 아니하는 듯 고요하고 오직 촛불만 춤을 추어 분벽에 그림자를 흔들었다.
왕의 이 말씀에 여러 신하들은 취하였던 술이 일시에 깨는 듯하였다.
"내 병이 심상치 아니한 줄을 알매 오늘 경들에게 이 부탁을 하오." 하시었다.
문종은 자신의 동생 수양의 야심을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아들을 부탁한다는 언질을 일부러 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것이 결국은 화근이 되어 수양의 옹졸한 맘에 상처를 내었고, 그런 그에게 들러붙어 그를 부추기며 한자리 해 먹으려는 자들이 계유정란을 일으킨다.
한명회는 희대의 모사꾼이었다.
그 좋은 머리를 좋은 일에 썼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지 못한 일에만 써먹었으니 역사에 두고두고 악인으로 회자되는 것이다.
수양이 뒤집어쓴 그 많은 피들이 강물이 되어 역사를 굽이굽이 흘러간다.
동생들을 죽이고, 조카를 죽이고 충신을 죽이고 그는 뭘 얻고 싶었을까?
아무리 좋은 정치를 하고자 노력했다 해도 그는 용서받지 못할 일을 했다.
그가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그가 가진 힘을 단종을 위해 쓰며 어린 조카가 장성할 때까지 보필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조선의 역사가 조금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미 벌어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어딘가에서 이 판을 뒤집을 누군가가 나타날 것만 같은 마음으로 읽었다.
<단종애사>에서 단종의 죽음은 너무 짧게 다뤘다.
이야기의 주는 문종이 죽고 수양대군이 한명회와 짝짜꿍이 되어 왕위를 찬탈하고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만으로도 참 슬프다...
이 이야기에서조차도 이홍위는 중심이 되지 못했으니...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이 청령포로 유배 가서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그렸지만
소설 <단종애사>엔 그 부분을 크게 다루지 않았다.
이 책에서 단종은 그를 모시던 공생에게 목을 졸려 죽음에 이른다. 그 공생은 노산군을 죽이고 대문을 나서지도 못하고 피를 토하고 즉사했다 한다.
엄홍도는 마지막에 딱 한 번 나온다.
이렇게 끝을 맺은 이유도 있을 터.
열일곱 어린 왕의 가슴에 남은 한스러움이 굽이굽이 시간을 돌고 돌아
2026년에 와서야 자신의 슬픔을 풀어내었다.
그리고 내내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다고 생각했던 세조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공은 쌓은 대로 가고, 죄는 짓는 대로 가는 것이다.
아무리 승자들이 역사를 왜곡해도 진실된 역사는 언제든 자기 자리를 찾게 마련이다.
어린 왕의 마음이 이제라도 온전히 위로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