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격 - 옳은 방식으로 질문해야 답이 보인다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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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답을 찾지 못했다면 질문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 생각이 깊어지고, 이런 것들에 대해 한 번쯤 짚고 가야 하지 않을까. 했던 것들이 있다.

<질문의 격>이라는 책을 반갑게 맞이한 것도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게 해줄 거 같아서였다.

<어른의 어휘력>으로 알게 된 유선경 작가의 이야기는 <질문의 격>으로 이어진다.


무릇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만 알게 되는 것이다.

손바닥만 한 핸드폰으로 숏츠의 세계에서 얻은 얕은 지식으로 옳고 그름을 논하는 맥락 없는 말싸움과 글들에 지쳤다.

그 속에서 나 역시 내뱉은 말들이 쓸모없었고, 얼마나 얄팍했음을 느끼는 시간대에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을 때 이 책을 만났다.

흐트러진 생각들을 모아주는 책이자 앞으로 나아지기 위해 내가 확실하게 몸에 익혀야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에게는 등에처럼 쫓아다니면서 무지를 깨쳐줄 스승이 없다. 그러한 스승들은 무지한 대중에게 미움 받아 오래전에(사회적으로) 죽임당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요즘 국무회의를 보면 대통령이 모르는 걸 바로바로 뭐냐고 질문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주 국민 수준에 맞게 쉽고 간결하게 나온다.

복잡하거나 어렵게 대답하면 자꾸 물어서 쉽게 만드는 게 대통령의 질문법이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과 함께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대답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토론이나 회의는 바로 저렇게 하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된다.

매번 국회에서 서로 헐뜯고, 싸우고, 소리 지르는 것만 봤던 내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라 가끔 이게 현실인가 싶기도 하다.


<질문의 격>에서 질문은 단순히 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질문은 사고를 확장하고, 대화를 이끌어 내는 마법을 가졌다.

좋은 질문은 상대의 입을 열게 하고, 진심이 담긴 질문은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청과 공부는 필수다. 공부하지 않고 좋은 질문을 할 수 없고, 좋은 답을 알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했던 질문들과 받았던 질문들을 떠올려 본다.

모두 휴리스틱이 가미된 것들이다.

답을 원하지 않는 지점에서 답을 알려주는 이와 대화를 해야 했고, 나에게 답을 구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답을 알려주려 애썼다.


언제가 친구 A와 대화하다 B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나는 B가 걱정되어서 한 얘기인데 B는 그걸 날카롭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도 상처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A가 이렇게 대답했다.



"넌, 그 애 친구야. 언니가 아니라. 그냥 들어주면 돼. 뭘 알려주려 하지 마.

걔도 스스로 깨닫는 게 있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뇌가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책을 읽으며 그때가 생각나는 건 아마도 나의 잘못된 질문과 답에 있는 거 같다.

그때는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야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각성된다. 


결혼 전엔 "왜 시집 안 가냐"라는 질문은 많이 받았지만, "왜 결혼이 하고 싶지 않은지" 물어봐 주는 사람은 없었다.

결혼 후엔 "왜 아이를 안 낳느냐"라는 질문은 많이 받았지만, "아이 없이 살아도 괜찮겠어?"라고 물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도 이런 우매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겐 조금 생각해서 질문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질문은 본성을 거스르는 대표적인 행위다. 집중해서 생각하고 요약하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편하고 질문하지 않으면 편하다.


우리가 잠깐 우매한 시간대를 살았던 건 이렇게 편한 것만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고, 답을 구하지 않았기에 어두운 터널을 끊임없이 들어갔다 나왔다 한 게 아닐까?


나는 그동안 쉬운 답, 안전한 답, 편한 답만을 얻기 위한 질문만을 한 게 아닐까?

다른 관점의 답을 얻어 사고의 전환을 일깨워 뇌를 굴리기보다는 그저 다 알고 있다고 뇌를 속이고 편안함 속에 칩거해 있었던 게 아닐까?

지금 나의 친구들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정말 그 애의 현재 모습인 걸까?

나는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진 질문을 했던 걸까?


책을 읽으며 자꾸 물음표가 쌓인다.

그에 대한 답은 이미 들었던 것이 아닌 지금부터 해야 할 질문에 있을 거 같다.


옳은 방식으로 질문하는 여섯 가지 방법을 써먹어봐야겠다.

그러기엔 연습이 필요하다.

그 연습하는 동안 실수도 많이 할 거 같다. 그래도 괜찮다.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게 있을 테니...


책을 읽는 중간중간 나를 체크할 겸 써야 하는 답들이 있었다.

다 채워 넣지 못했다.

옳은 방식의 질문으로 바꾸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뇌를 리셋해야 할 때가 되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발장구를 치는 중이다.

책을 읽으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고,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책들이 있는 데 <질문의 격>도 그 범주에 속한다.


이렇게 배운 것들이 언젠간 나를 만들어 낼 거라 믿는다.

내가 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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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위한 독서 모임 - 읽고 생각하고 말하는 나의 첫 번째 연습실
김민영 지음 / 노르웨이숲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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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읽기가 내 방이라면, 함께 읽기는 광장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으로 나가는 첫 번째 문이 바로 독서 모임입니다.



<내 삶을 위한 독서 모임>은 20년 동안 500여 개가 넘는 독서 모임을 이끈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혼자 읽기 보다 함께 읽기가 좋다"의 의미를 이야기해 주는 책이다.

그저 혼자 책을 읽었던 것에서 더 나아가 독서 모임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말함으로써 얻는 삶의 풍요로움과 문해력 확장에 대한 길을 제시해 주고 있어서 유익했다.


나 역시 오래 혼자 읽기를 감행해왔다.

간혹 온라인 독서 모임이나, 독파챌린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읽기를 해왔지만 다양한 의견을 즉시 말로 전달하며 토론하는 독서 모임은 해본 적이 없던 터라 최근들이 오프라인 독서 모임에 대한 궁금증이 일던 참이었다.

게다가 책 읽기를 시작한 지 7~8년쯤 되니 독서 모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종종 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가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실천할 때 필요한 실전 노하우가 많이 담겨 있어서 생각할 게 많았다.







차라리 모두 조금은 어색한 채로 모임을 이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긴장과 예의는 독서 모임의 자양분이 되기도 하니까요.



내가 책 모임에 나가고 싶지 않은 이유가 바로 책으로 만나서 사적 모임이 되어버릴까 봐이다.

책은 뒷전이고 사적 모임이 되어 결국 독서 모임을 와해시킬 수도 있는 분위기를 싫어하기에 그럴 바엔 혼자 읽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늘 그렇지만 사람은 3명 이상이 모이면 꼭 편가르기를 한다. 책 모임이라고 다를까?

이런 나에게 이 책은 좋은 팁을 준다.


책 모임 뒤에 벌어지는 뒤풀이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다정하고도 단호한 거절의 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용기를 주는 글 앞에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릇 본질을 흐리게 되는 결속은 결국 모두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다.


책으로 만났다가 얼굴 붉히고 헤어지는 분들 많이 봤다.

무리에서 무리 짓는 습관을 버리지 않으면 그건 민폐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메모한 후에 잊더라도 괜찮습니다. 메모하면서 집중한 경험은 몸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쌓이면 삶이 되고, 태도가 됩니다. 덜 잊는 사람이 됩니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써놓은 리뷰를 보면 생소하게 느껴지는 책들이 많다. 특히 병렬 독서 중 완독해서 리뷰를 쓸 때는 책에 대한 '감'이 안 살아나서 감상 적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럴 때 내가 메모해둔 걸 보면 좋을 거 같다.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실천해 보지 못했다.

독서 모임에서도 자신이 느낀 점이나 말하고 싶은 점을 메모해가면 참여도도 높아질 거 같다. 메모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하나, 다정한 거절

둘, 다정한 제안

셋, 다정한 경청



독서 모임에서 필요한 세 가지.

이건 모든 모임에서 필요한 덕목 같고, 모든 인간관계에 필요한 필수 요소 같다. 이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모임에서 연습해 보면 좋을 거 같다.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한다. 그래야 방전되지 않고 꾸준히 독서 모임을 즐길 수 있다. 잘하는 것만큼, 오래 하는 것도 실력임을 잊지 말자.


단순히 독서 모임을 만드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니라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는 의미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서 그런지 책을 일고 나니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독서 모임 초심자의 마음으로 나에게 맞는 모임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어졌다.


독서 모임을 통해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경청하는 자세를 익히며

내 생각을 전달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소통을 배우고 싶다.


혼자만의 고독을 진탕 누렸으니 이제는 부대끼며 배워가는 것도 새롭게 느낄 때가 된 거 같다.


꼭 독서 모임이 아니더라도 어떤 모임에 발을 담그고 있다면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 모임에서 내가 느끼는 것들이 무엇이고, 내가 피하고 싶은 상황을 피해 갈 수 있는 방법들을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아직 독서 모임에 나가기가 두려운 분들에게는 길잡이용으로 활용할 수 있어 좋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표지에 굉장한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이든, 혼자 읽는 사람이든 이 책에 담긴 자료들이 어디에서건 잘 쓰일 수 있다는 거 하나만으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새로운 해 2026년에는

조금 달라진 독서 형태를 누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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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나태주의 인생 시집 1
나태주 지음, 김예원 엮음 / 니들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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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시인 나태주 님의 인생 시집 시리즈를 니들북에서 기획하고 첫 번째 시집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발표된 시들 중 시인님의 일급 독자이자 여러 차례 책을 같이 쓴 김예원 작가님이 골라낸 시들입니다.

인생 시집 시리즈 1권은 '청소년을 위한 시집', 2권은 '청춘을 위한 시집", 3권은 '마흔을 위한 시집'으로 기획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시집이자 '청소년을 위한 시집'을 읽으면서 어릴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나 어릴 때 이렇게 말해주는 어른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이들과 소통이 잘 안되고

날선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붙일까 고민인 분들에게 이 시집을 추천합니다.


책도 안 읽는데 시집은 읽을까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나태주 시인님은 아이들이 시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일선 학교로 문학강연을 하러 다니시면서 아이들이 시를 좋아하고, 시를 필요로 한다는 걸 많이 보고 느끼셨다고 합니다.


어쩜 어른들의 말법이 아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줄 수 있겠지만

나태주 시인님의 다정하고 부드러운 시는 어른들의 마음을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달해 줄지도 모릅니다.






노력하라고 소리치지 말고

<인생>이란 시를 통해 깨닫게 하면 어떨까요.


한 번의 부끄러운 일을 덮을 때 당장은 마음을 놓겠지만 그것이 되풀이될 거라는 걸 <한 번의 부끄러운 일>로 알려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들이 보는 거 자체로도 마음을 다독입니다.

평화롭고 따스하고 다정한 그림들은 가족을, 친구를, 따뜻한 이들을 떠올리게 하죠..

소로야의 그림들이 풍성한 색채의 느낌과 함께 마음을 몽글하게 해줍니다.

그래서인지 이 시집은 읽는 내내 조카들을 생각하며 읽었네요.


이 시는 그 녀석에게 보내주면 좋겠다.

이 시는 잘 담아놨다가 조카 녀석들 중에 고민하는 녀석이 있을 때 보내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네요.






어른이 어른 티를 내며 말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맘때는 어른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죠.

그냥 누구나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가끔 아이들하고 얘기할 기회가 생길 때면 내가 하는 말이 과연 저 아이한테 가닿을까?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말을 아끼려고 하는데 그게 참 어렵죠...


이 시집을 읽으며 나태주 님의 시로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즐거웠네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이상하게 말을 할수록 소통보다는 오해가 쌓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때 시로 전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부모 마음>

이 시를 읽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할 거 같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저렇게 말하면 잔소리처럼 들리는데

시로 읽으니 그 마음이 온전히 와닿는 기분이에요...


우리가 다 아는 말로 시를 만들어 주신 나태주 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이분 시를 읽으면 어렵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느낌을 줍니다.

누구나 아는 말로 시를 쓰셔서 더 존경스럽습니다.


무릇 시는 어렵고

어려운 말들의 잔치 같고

항상 다른 뜻을 유추해야 하는 그 복잡한 마음이 시를 어렵게 느끼게 하는데

나태주 시인의 시는 쉽습니다.

그래서 더 감동스럽죠..


온기 있는 어른의 말.

저는 이 시집에 담긴 시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다정하게 다독이는 어른의 말이라고...



사랑하는 이와 말이 통하지 않다고 생각되시면

이 시집을 만나 보세요.

그중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담긴 시를 손수 적어서 보여주시면 어떨까요?


시들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저처럼 고인 어른의 마음도 움직이는데

즐겁게 흘러가는 아이들의 마음에선 얼마나 요동을 칠까요..


아름다운 그림들과 다정한 말이 곁에 있으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거 같습니다.


<참 잘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 제목만으로 정말 충분합니다...



그리고 책을 좋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시를 드립니다.





<좋은 책>


좋은 책을 많이 읽은 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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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긴 잠이여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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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오겠지.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문장이  바로 저 문장이 아닐까.


1년간의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사와자키는 비어있는 사무실에 노숙자가 진을 치고 있는 걸 보게 된다.

그 노숙자는 사와자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의뢰를 하고 싶어 하는 어떤 의뢰인 대신.


십여 년 전에 고시엔 야구 결승에서 승부조작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우오즈미 아키라는 그 당시에 자살한 누나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사와자키에게 의뢰를 한다.

자살로 마무리된 사건을 그것도 십여 년이 지나서?

사와자키는 무슨 수로 이 사건을 풀어낼까?






"살인이라는 증거는 아직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자살이라고 주장한 세 가지 증언 모두 모호한 것이 되고 말았어."


책을 읽는 내내 뿌연 안갯속에서 흐릿한 빛을 내는 가로등 아래 홀로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이야기 내내 나는 뿌연 안개가 뿌려대는 밤거리를 걷는 기분이었다.

사와자키의 담배 연기 탓일까?


하라 료의 글엔 트릭이 없는 거 같다. 그저 묵묵히 진실을 향해 가는 발걸음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하라 료의 인물들에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써 내려가지 않아도 그 자체로 품고 있는 이야기를 독자들이 느끼기에 그 어떤 인물도 미워할 수 없다.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지지 않는 게 하라 료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매력이다.



천인공노할 소재이지만 화가 난다기보다는 그저 이해가 될 뿐.

그게 인간 아니겠나.. 하는 이 달관된 느낌은 오로지 사와자키 탐정 이야기에서만 통용된다.


죽을 고비마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건달들이 도와주고

그를 닦달하는 형사마저도 그를 어쩌지 못하는 것은 사와자키만이 가지고 있는 뚝심을 그들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억 엔을 가지고 도망친 그의 동료 와타나베마저도 그가 자신을 찾을 거라는 걸 알았겠지.

그렇기에 건달들도 형사도 사와자키를 닦달하면서도 지켜보는 것이다.


오래된 비밀

아무도 들춰지길 바라지 않았던 비밀

어쩔 수가 없었던 상황들

그것들에 발을 들인 사와자키의 모습은 우리가 바라는 탐정의 느낌을 오롯이 가지고 있다.

진지한 탐정, 잔재주를 부려도 밉지 않고, 듬직한 형사 같은 탐정 사와자키.



나는 <안녕, 긴 잠이여>의 모든 페이지를 다 읽었다.

그러길 잘했다.

하라 료는 마지막에 초단편 이야기를 심어 두었다.

폐암에 걸린 사와자키가 계속 담배를 피워대는 장면에서 나는 순간 아찔했다.

이렇게 깜찍한 초단편을 숨겨 놓은 하라 료의 글을 놓치면 안 된다.


이야기가 끝나고도 작가의 두 편의 후기, 번역가의 두 편의 후기가 있다.

그것마저 읽어야 이 이야기를 끝냈다고 할 수 있다.


번역가님 말씀처럼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권을 집필하다 가신 하라 료 작가님의 뜻을 이어 마지막 권이 출간되기를 바랄뿐이다..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는 다른 탐정이나 형사 시리즈에서 갖지 못한 분위기가 있다.

해리 보슈와, 해리 홀레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탐정 사와자키만의 묘한 매력.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안녕 긴 잠이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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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니체 필사책
아르투어 쇼펜하우어.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강용수 편역 / 유노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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