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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설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평점 :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중국, 한국, 일본과 관련 있는 거면 그 어떤 것이든 가까이해서는 안 돼. 그쪽 나라말로 대화하는 걸 보거나 관련한 이야기가 들리면 즉시 자리를 뜨는 거야. 알았어?"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소름이 돋았던 것은 모두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침묵하고, 외면했던 일들이.
내가 아니니까,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한테는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침묵이 그들이 그렇게 침묵하고 외면하는 사이에 그들의 일상을 앗아가버렸다.
그러다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그때야 울부짖지만 이미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니게 된다.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은 중국계 미국인 엄마를 둔 버드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시녀 이야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우리나라에 내려졌던 계엄령을 자꾸 상기시켰다.
그때 국회로 뛰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나는 이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 있을까?
그때 계엄이 통과되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80년대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시며 눈물 콧물 흘리며 매일이 데모의 연속이었던 그 시절에도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 덕에 나는 평온함을 지니며 살았다.
이 작품을 읽는데 자꾸 그때의 두려움이 떠올랐다.
어른들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조심히 다니라고, 말 함부로 하지 말고, 데모대 근처에는 얼씬도 말라고 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끼리 정보를 공유했다.
언니 오빠가 있는 아이들을 통해서 깨어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현실을 배웠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익숙해진다.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전과 같은 듯 다른 시간이 시작되고 움츠려 있던 세상이 조금씩 다시 돌아가기 시작할 때 그 원인을 '중국'에 돌려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퍼진 그 불신은 새로운 차별을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정부에 반하는 일을 했거나, 할 예정이거나, 했다고 의심받는 사람들의 아이들이 사라진다.
경찰이 와서 아이와 부모를 떼어 놓는다. 아이들은 위탁가정에서 위탁가정으로 소리 없이 움직이고 부모와 아이의 끈은 끊어진다.
이것은 국가가 저지르는 명백한 '납치'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알려 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왜?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니까...

버드가 10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갔다.
어린 버드는 엄마가 집을 나간 이유를 어렴풋이 느끼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다.
버드와 아빠는 엄마랑 살던 집을 나와 대학에 딸린 자그만 아파트에 살게 된다.
엄마에 대한 말은 절대 꺼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하지만 버드는 엄마의 흔적을 찾아내고 엄마를 찾아 떠난다.
위기의 시대를 지나 이선을 만나고 가정을 꾸리면서 마거릿은 정원을 가꾸고 버드를 낳아 기르면서 시를 쓴다.
언젠가 책으로 나올 거라 믿은 그녀의 바람대로 시는 출판되었다. 100권만 팔린 시집.
그래도 그녀는 행복했다. 그 시에는 정원일을 하면서 느낀 감정과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생기는 감정들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그녀의 시가 떠올랐다.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을 돌려달라.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은 어디에?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을 잊지 말라.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그것을 보고, 읽고, 듣는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는 게 바로 예술이다...
마거릿의 시는 이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버드를 빼앗기지 않으려 마거릿이 떠났다.
그리고 그녀는 수많은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이야기를 모은다.
버드는 엄마를 찾아 나서면서 비로소 세상을 보게 된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유 없이 발길질을 당하며 속수무책으로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면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관심을...
그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올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언론이 기능을 잃은 책 속의 세상과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이 너무나 닮아서.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결국 알게 모르게 내 일상을 쥐고 흔든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잘못된 정보를 진실로 믿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잃고 누군가가 들려주는 소리만 믿게 되는 세상.
그 세상에 마거릿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외면하고, 믿지 않았던 진실들, 아이를 빼앗긴 부모들이 절절함을..
묵직한 울림을 남긴 이야기였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정말 가치 있는 정보를 알아보는 눈을 길러야겠다.
누군가가 내지른 소리가 터무니없이 들리더라고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고, 그걸 깨달은 순간은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이 이야기가 진심을 다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난 네게 그 두 가지가 모드 있어 행복해. 미래를 돌보는 보호자면서 이미 여기 있는 것을 지키는 전사니까.버드가 이름처럼 자신의 세상을 보호하는 전사가 될까?
언제까지 엄마를 기다릴 소년으로만 남을까?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시절은 끝났다.
미국은 조금씩 이 이야기 속 세상을 닮아가는 중이니까..
우리는?
우리는 온전히 벗어났나?
책을 덮고도 이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확실한 건 없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