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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1.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여기저기 돈을 다 쓰고 용돈이 떨어져서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한 때가 가끔 있었다. 예를 들어 버거킹에서 햄버거 세트를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제일 작은, 거의 어린이 세트 같은 메뉴를 사 먹었어야 했던 기억. 그 당시 나는 스스로에게 왜 이렇게 가난하냐 젠장… 이라고 자책하며 먹었다. 길 가다가 맛있어 보이는 게 보이면 바로 사먹지 못하고 참아야 했던 순간에 스스로가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배부른 생각들의 연속이었다. 그때 돈이 없었던 이유는 여자친구랑 맛있는 것을 많이 사먹었고 친구들과도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저 먹고 싶은 걸 못 먹으니 가난을 들먹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가난을 제대로 마주해본 적이 없다. tv에서 후원금을 요청하는 공익광고가 나올 때나 신문 기사로만 읽었다. 서울역을 가면 지하철 역을 빠져나오며 볼 수 있는 노숙자들이 직접 마주한 경우에 속할 뿐이다. (그분들도 과연 진짜로 가난한 것인지 스스로 그렇게 원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가난에 대해 거의 상상에 준하는 정의를 가질 뿐이다. 오늘 벌어 오늘 먹고 사는 생활을 해 본적이 없어 그런 사람들이 어떤 심리를 가지고 사는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가난에 대해 진짜 마주해야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줄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으로만, 이렇게 글로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어야지 라는 말을 하는 것은 부족할 뿐이라고 책을 통해 깨닫는다.
2.
가난은 고통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가난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는 그런 가난이 아니라, 그날그날의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는 극빈에 가까운 상태를 말한다. 저축을 통해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기는커녕 당장 주린 배를 채우는 걱정이 하루 종일 따라다닌다. 가난은 사람들을 불안의 그늘에서 살게 하며, 자신감을 잃게 만들어 자존감마저 상실케 한다. 가난은 남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내 옷이 싸구려인 것을 사람들이 알아채며 어쩌지, 내 신발이 좀 닳아 버린 걸 수군거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자책에 빠져 버린다. 이 책이 그런 심리를 가진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혹시 병이라도 걸린다면 일용할 양식을 구할 길이 없어 삶이 끝장 날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절벽 끝에서 아슬아슬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그려냈다. 주인공인 하급 공무원 제부시킨과 그가 사랑하는 바르바라 사이의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제부시킨의 유일한 희망인 그녀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더욱 안타깝게 그려진다. 그녀에게 꽃을 사서 보내기 위해 구멍이 숭숭 뚫린 옷이나 신발을 새로 사지도 못하고 오로지 그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처지 때문에 적극적으로 구애하지도 못하는데 바르바라 역시 가난한 상황이기에 어쩌지를 못한다. 둘 다 마음이 있지만 너무나 가난하여 뭘 할 수가 없는 상태. 다만 편지를 통해서 서로를 걱정하며 위안을 얻을 뿐이다. 이내 여주인공은 처녀의 명예를 더럽힌 지주에게로 떠나게 된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렇게 제부시킨은 모든 것을 잃었다.
3.
가난해서 가장 미칠 것 같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데 아무것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여주인공 바르바라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했는데, 어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지속하다가 결국은 드러눕게 된다.
P.84 – 어머니는 날마다 더 쇠약해져 갔다. 병마는 구더기처럼 어머니의 삶을 눈에 띄게 순식간에 갉아먹으며 무덤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걸 다 보고, 다 느끼고, 그저 이 모든 것에 안타까워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미칠 것 같은 상황이다. 돈을 빌릴 수도 빌릴 힘도 없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결국 그 사람을 보낸다면 내가 힘이 없어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져버릴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본인이 가난한 인생을 살았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날카롭게 그려낼 수 있었다. 이 책은 그의 처녀작인데 그의 전체 책 중에 유일하게 3번이나 고쳐 쓴 책이라고 한다. 그만큼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고, 제대로 표현해 내었다. 역자는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지구상에 러시아인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고 했는데, 과연 맞는 말인 것 같다.
<출처>
1.가난한 남성 사진
https://pixabay.com/ko/%EB%B6%88-%EC%8C%8D-%ED%95%9C-%EB%B8%94%EB%9E%99-%EB%B9%88%EA%B3%A4-%EB%85%B8%EC%88%99%EC%9E%90-%EC%8B%A4%EC%A7%81-%EB%8F%88-%EC%82%AC%EB%9E%8C-%EC%9C%84%EA%B8%B0-1775239/
2.손잡은사진
https://www.shutterstock.com/video/clip-9036973-stock-footage-pan-of-unrecognizable-elderly-person-holding-hands-with-anothe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