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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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좋아서 글을 쓰고 싶었지 오랜만에 생각한다. 누군가의 생을 비추고 있는 빛 한 줄기, 그게 드러나는 순간들. 화려한 서사가 아니라도, 어떤 생이든 그런 빛 한 줄기가 비치고 있으며 그 빛이 선명해지는 순간 같은 것들. 그 빛이 언제나 화려한 것은 아니고, 덤덤히 그러나 생이기에 비치는 빛 한 줄기라고 해야 할 테지. 혹은 누구나 안고 있는 우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양도 다르고 깊이도 물맛도 다른 우물. 

'못'에는 누이를 기다리는 것뿐이 낛이며 작은 어머니랑 살고 있는 반벵신 건우씨의 이야기가, 봄빛에는 치매에 걸린 두 부모를 바라보는 나의 이야기가, 풍경에는 치매 걸린 어머니와 산골 깊숙한 데 사는 그의 이야기가, 소멸에는 소멸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받아들인 여자가, 순정에는 지리산에서 7년을 살다 내려와 그 회한에 박제된 남자가 나온다. 매일밤 읽고 자며 아득하다. 


2025 2 25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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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요시 다쓰지 시선집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34
미요시 다쓰지 지음, 오석윤 옮김 / 소화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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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 시인을 알게 됐을까? 어쩌다 이 책을 사놓고 아침에 한 편씩 읽었을까? 한국 시집보다는 외국 시집이 아침에 읽기에는 나아서였다. 그러다보니 한국 시집은 읽지 않게 돼서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계획이지만, 2월부터 읽기 시작한 시집을 이제야 다 읽었다. 

세 편의 좋았던 시들을 기록해두었다. 이제 더는 필사 같은 것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침이면 매화 한 가지나 몇몇 시들이 주던 울림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순간의 울림들.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는 일. 


2025 2 18일 화요일



매화 가지

 

일찍이 생각했을까    이렇게 잊어버린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날들을  이렇게 그리워한다고

지금 그전에  나는 여기에 머뭇거리는  하나의 환상

아아  개의 꽃봉오리  어슴푸레 붉은빛 띠는  매화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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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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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를 읽고 우리나라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한강 작가의 다른 책 '흰'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베트남에 출장 갔을 때 책을 들고 가서 호텔방에서 책을 읽었다. 소설은 쌍둥이였으나 태어나지 못한 핏줄을 다루고 있었다. 나 역시 비슷한 출생사가 있다. 마흔 넘어 엄마가 얘기해줬다. 낙태를 했음에도 배가 불러왔다고, 의사가 쌍태라고 했는데 낙태 중 한 아이만 사라진 것 같다고. 생이 40년 넘게 흐르자, 이런 얘기들에 대해서도 예전보다는 무뎌졌다. 모든 생이 가진 각자의 우물을 이해하게 되어서라고 해도 될까. 잘 모르겠다. 


'희랍어 시간', '회복하는 인간', '파란 돌' 3편의 소설과 시, 산문이 수록된 한강의 문집 같은 책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출간됐다. 모든 문학이 그렇지만,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결국 동류에 끌리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생이라는 의지가 그렇게 해내고 만다고. 

가끔 '파란 돌'에 나온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꿈에서 개울 속 돌들을 보았고 그 중 파란빛 도는 돌이 마음에 들어 주우려고 손을 뻗고 나서 '그때 갑자기 안 거야. 그걸 주우려면 살아야 한다는 걸.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걸.' 이라고 말하는 장면. 소설 속에 나온 꿈 이야기인데도 이리 선명할 수가 없다. 

육체를 가지고 이 생을 통과해나간다고 생각하는 나는 죽음이 끝이라기 보다는 가지고 있던 이 육체로 온갖 시간과 사건을 겪으며 통과해나간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 나는, 이 장면이 생이라는 것의 비밀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물질만을 볼 수 있는 우리는 결국 물질을 갖고 있는 것들만을 인식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생은 물질들의 사투일 테지만.

산문에서는 한승원 작가의 이야기 등이 나온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글을 썼다는 한승원 선생님의 이야기나 인생은 아름다운 거라고 얘기했다는 선배 작가 최인호 선생님의 말이 사무친다.  

책을 읽어서 뭐하나 싶다가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인간의 조건과 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2025 2 1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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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평범한 아픔 - 모두의 건강권을 찾아서
김명희 지음 / 이글루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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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프다. 그 아픔에 대처하는 방식이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된다. 아프면 아픔에 집중하다보니 그만 잊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어마어마한 시스템은 절대 아픔이라고 내버려두지 않는다. 

계급에 대해, 좌와 우에 대해 생각해봤다. 예전에는 좌와 우가 뭘 의미하는가 희미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좌와 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 몸 아픈 것을 넘어서 아픔과 치료가 시스템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더 많은 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짜나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건강에 대한 좌측의 견해라면 우측은? 그들은 개인의 건강은 개인이 알아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하나?

우리는 시스템 속에 놓여있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25 2 18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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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 - 개정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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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다 읽은 책에 대해서 메모를 적기 위해 몇몇 문장들을 다시 본다. 결국 모든 문학, 아니 모든 예술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수가 부르짖어 마지않은 사랑이나 부처가 부르짖은 자비나 다 아(我)와 타(他) 사이의 간극, 혹은 관계다. 예술은 이를 이론이나 설파가 아니라 잘 빚어낸 하나로 보여준다. 인생 자체가 아와 타 사이의 드라마일 테지만, 이 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혹은 이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불협화음과 간절한 소망 같은 것들을 불러내 이야기한다고, 모든 예술은 어쨌거나 그럴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글을 쓰던 한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기분을 이야기하자면 '자기의 영혼이 자기 육체 속으로 불러들여지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영혼과 육체가 하나된 기분이라니. 지금 내 앞에 있는 고양이처럼. 이 많고 많은 사변과 생각 속에서 이를 이루어내며 기분이 좋아지고 있는, 내 이성과 영혼과 마음과 육체가 하나 돼 세계를 그려내는, 번뇌와 질문을 버무려 살아감을 그려내는, 하나의 살아감이 품은 의문을 그려내보려는 그 시도가 좋았다. 살아있음을 그린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림을 그리는 남자, 직장생활을 하다 자기 그림을 그리는 남자, 글을 쓰고 싶은 여자, 둘이 폐교에 살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글을 쓰고 싶으나 글을 쓰지 못하는 여자는 남자의 그림 속에서 혼연일체된 감각을 느껴 그를 위해 몸을 팔고 개를 구해다준다. 그를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그 어떤 단어도 쉽지 않듯, '이해'라는 단어, 하나의 생명이 하나의 생명을 이해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할 수는 있을 테지만, 이해했다, 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살아감 속에서 그가 그려내는 무늬를 뒤쫓아가며 이해하려 노력하거나 그 노력을 멈추거나 일 뿐.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끝난 뒤의 울음으로 이야기는 끝맺는다. 

이외수라는 작가에 대 폄하하고 있던 내 의식이 얼마나 웃긴가, 나는 혹시 늘 세상을 그런 식으로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2025 2 18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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