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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 - 개정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4년 4월
평점 :
며칠 전에 다 읽은 책에 대해서 메모를 적기 위해 몇몇 문장들을 다시 본다. 결국 모든 문학, 아니 모든 예술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수가 부르짖어 마지않은 사랑이나 부처가 부르짖은 자비나 다 아(我)와 타(他) 사이의 간극, 혹은 관계다. 예술은 이를 이론이나 설파가 아니라 잘 빚어낸 하나로 보여준다. 인생 자체가 아와 타 사이의 드라마일 테지만, 이 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혹은 이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불협화음과 간절한 소망 같은 것들을 불러내 이야기한다고, 모든 예술은 어쨌거나 그럴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글을 쓰던 한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기분을 이야기하자면 '자기의 영혼이 자기 육체 속으로 불러들여지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영혼과 육체가 하나된 기분이라니. 지금 내 앞에 있는 고양이처럼. 이 많고 많은 사변과 생각 속에서 이를 이루어내며 기분이 좋아지고 있는, 내 이성과 영혼과 마음과 육체가 하나 돼 세계를 그려내는, 번뇌와 질문을 버무려 살아감을 그려내는, 하나의 살아감이 품은 의문을 그려내보려는 그 시도가 좋았다. 살아있음을 그린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림을 그리는 남자, 직장생활을 하다 자기 그림을 그리는 남자, 글을 쓰고 싶은 여자, 둘이 폐교에 살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글을 쓰고 싶으나 글을 쓰지 못하는 여자는 남자의 그림 속에서 혼연일체된 감각을 느껴 그를 위해 몸을 팔고 개를 구해다준다. 그를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그 어떤 단어도 쉽지 않듯, '이해'라는 단어, 하나의 생명이 하나의 생명을 이해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할 수는 있을 테지만, 이해했다, 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살아감 속에서 그가 그려내는 무늬를 뒤쫓아가며 이해하려 노력하거나 그 노력을 멈추거나 일 뿐.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끝난 뒤의 울음으로 이야기는 끝맺는다.
이외수라는 작가에 대 폄하하고 있던 내 의식이 얼마나 웃긴가, 나는 혹시 늘 세상을 그런 식으로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2025년 2월 18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