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선 희곡집 1 공연예술신서 29
윤영선 지음 / 평민사 / 2001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윤영선 선생님이 좋다. 선생님은 정말 정말 멋있다. 선생님이 얘기하는 걸 보거나 듣고 있으면, 그가 솔직하고 꾸밈 없고 지식인의 허위랄까 그런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에 열정적이라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정말 뭔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걸 바라거나 원하지도 않고 그냥 하는 사람,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시대의 예술에 획을 긋겠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좋아하면 그런 생각도 없이 그냥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다. 윤영선 선생님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아, 내가 이걸 하는 게 좋으니까 하는 거구나, 그런.

사실 희곡집은 많이 읽지도 않았고 희곡이란 내게는 좀 멀게 느껴지는 글의 종류다. 희곡은 대부분이 대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극화 시켜야만 빛을 발한다는 특성, 말도 잘 못하고 행동은 더욱 잘 못하는 내게는 희곡이란 정말 멀디 먼 장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희곡이 매력적인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말을 한다 해서 그게 진실이라거나 거짓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그 공허한 말의 울림들이 만들어내는 향연이랄까, 그런 게 있는 것도 같다. 가끔 들려오는 진실한 외침들이 커다랗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윤영선 선생님 작품도 꼭 윤영선 선생님 같다. 처음 두 작품은 약간은 어지럽기도 한데, 마음 속의 세계를 다루는 까닭이다.

이미 읽은 지가 오래되서 메모가 되어 있는 것만 써보자면, ‘G코드의 탈출’ 같은 경우는 남녀 한쌍이 모텔에서 만나는 이야기다. 그들은 오래전에 사랑한 사이이고 지금은 아주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화하고 과거를 나누고 현재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결국 영영 혼자인 삶이라, 서로 아무리 가까워져도 결코 만져지지 않는, 그저 짐작할 수만 있는 어떤 곳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연극 배우인듯한 남자는 결국 자살한다. 대화가 끊기고 이어지는 틈이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내 뱃속에 든 새앙쥐’는 치매가 든 노인(‘G코드의 탈출’의 주인공의 어머니라 짐작됨, 둘째 부인)의 독백이다. 그 노인은 자신의 치매 행동의 이유를 생쥐에게 돌린다. 그게 참 귀엽다. 뱃속에 생쥐가 들어서 그 생쥐가 자꾸만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걸 주라고 한다고, 가끔 그 생쥐가 똥, 오줌을 싼다고, 그 생쥐가 심심할까봐 자기가 혼자 중얼거리는 거라고, 하는 그런 노인의 말이 참 선하게 느껴진다.

‘파티’는 시골 동네의 기이한 형태의 집으로 이사온 부부가 겪는 하룻밤의 이야기다. 밤에 갑자기 찾아온다는 이장의 전화 뒤에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그들 부부에게 행하는 폭력 아닌 폭력을 다루고 있다. 물론 연극적인 효과 때문인지 결국 이들은 후반부에 진짜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종종, 그런 기분일 때가 있다. 싫다고 거부하거나 그를 나쁘다고 부정하면 내가 나쁘고 쪼잔한 사람이 되지만, 좋다고 하거나 아무 말 하지 않으면 상대편이 도를 지나쳐 점차 내 기분이 상하는 어떤 인생의 덫 같은 거랄까,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그려낸 작품인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이 이사 축하차 온다는 데 거부하자니 처음 이사온 동네에 미안하고 받아들이자니 그들의 행동이 어딘가 미심쩍은, 그리고 점차 그들은 도를 넘어서지만 거기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엔 이미 처음부터 받아들인 내가 바보가 되는 상황, 그런 상황은 인생에 종종 오는데, 그땐 정말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저 화가 나도 꾹꾹 참고 평정심만을 갖아야 한다. 그런 상황을 잘 다루고 있다.

그 외에 작품도 다 좋다.

윤영선 선생님 작품 ‘여행’이 곧 대학로에서 막이 오르는데, 안 봤지만 분명 좋으리라 생각하므로 보러 갔으면 한다.




난 나를 비우고 또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고 비우고 비우고 비우고 비워버리고 싶은 거야. 그리고 나서 널 사랑하고 싶어. 내가 절망하는 것은 비워버릴 수 없는 나를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야.

-‘G코드의 탈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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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0 2012-06-2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041000

em 2014-02-20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으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