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 (500) Days of Summ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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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 좋다.

우연인가 필연인가의 문제에서 결국 주체의 선택이 중요하다. 결국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언젠가는 그것이 우연인 듯 싶지만 실은 다 선택이 깃든 일이야. 그만큼 무의식이 필요로 했던 것이지. 연애를. 혹은 사랑을.

그런데 왜 썸머는 그렇지 못했을까?

글쎄. 그것이 바로 시간차. 스텝을 잘 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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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내는 숲 - The Forest Of Mogari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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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이 보고 싶어서  

무슨 내용인 줄도 모르고 봤다.  

그러니까 아는 것은 오직 포스터뿐인 상태 

 

결국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얼마나 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애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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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후... - 할인행사
대니 보일 감독, 나오미 해리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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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일의 28일 후는 재밌지만

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딜로의 28주 후는 재미가 없다.

왜일까?

물론 나는 대니 보일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니까.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니 보일의 무엇이 먹히는 걸까?

대니 보일은 적절하게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 줄 안다.

좀비라고 ‘우아’하면서 피를 쏟고 마구 뜯어먹으려 들고(물론 진짜로 내 앞에 나타나서 그럼 무진장 무섭겠지만) 그런다고 무서운 건 아니다.

인간 속에 내재한 공포란 무엇인가.

짐을 통해 나타나듯 진정한 공포는 혼자 남겨진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좀 더 유식하게 말하자면 모든 타자화된 이들 속에 갇혀 온전한 고립감(전혀 공통감이 없는 상태)을 느낄 때. (나는 종종 이런 꿈을 꾸는데 가장 최근에 내가 무서워서 새벽에 일어난 꿈도 이거였다. 어딘지 전혀 알 수 없는 곳에 혼자 남겨졌다. 왜 그곳에 있게 된지도 알지 못한 채.)

또 대니 보일의 이야기는 한 주인공을 끊임없이 쫓아간다. 그는 그닥 영웅심이 있는 인간도 아니고 용감하지도 않다. 단지 잘생겼을 따름(킬리언 머피, 보는 내내 집중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인가?) 그러나 차츰 그가 자신의 내면에서 소중하달까 하는 가치에 눈 뜨고 이 사이사이 좀비가 끼어든다. 그래서 와구와구 잡아먹으려 든다. 그러나 더 무서운 건 인간이나 좀비나 마찬가지란 사실인데, 결국 소령과 군인들이 여자들을 어떻게 해보려 하는 건 좀비랑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짓이다. 하지만 사실 짐이 여자들을 지키기 위해 눈알을 파는 장면(사실 이 장면이 영화 내내 가장 잔인하다)을 보면 모든 인간에 내재한 좀비성, 뭐 이런 것을 대니 보일은 슬쩍 슬쩍 비춰준다.

이에 비해 28주후는 영화에서 끌어달 쓸 만한 것은 다 끌어다 쓴다. 좀비, 폭파, 코드 레드(무조건 저격), 가족 간 살해, 영웅적인 남녀(도일, 스칼렛) 등등. 하지만 그래 돈 많이 썼구나 그런 기분이다. 그러니까 잔인하고 끔찍한 것들의 나열품이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기분으로 몇 번이나 끌까 하다가 그래도 끝까지 다 봤다.

다행이다. 28개월 후는 대니 보일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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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블루 - 37.2 Degrees in the Morni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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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한 증오와 한계에 대한 증오는 일치한다. 결국 무한은 가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자유에 대한 인식이며 한계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이다.


잘 된 이야기들은 죽음을 수반한다. 죽음은 인간의 한계다. 그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이 승화다.

베티블루의 주인공인 장은 베티를 만나며 인생의 변화를 겪는다. 어느 정도 안일하게 사는 게 목적이던 그는 자기 내면에 감추어진 자유에의 의지를 베티를 통해 발견한다. 그녀와 동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히틀러’를 가지고 역사 소설을 쓰는 인물이기 때문인가? 히틀러라는 독재자, 그의 내면의 광기에 대해 장은 알고 있었고 말하고 싶어 한 인물이기에?


그러나 당장은, 현실 앞에서 무너져 녹아내리는 중 베티는 그런 장을 다시금 그곳에서 구출한다. 장은 점점 베티로 인해 변해간다. 아니 자기 내면에 다가간다고 해도 좋다. 베티는 그런 장을 응원한다. 장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하도록 베티는 설득하고 이끌어낸다. 장 역시 이런 베티에 조응하며 여장을 하고 돈을 훔치는 등 사장이 페인트칠을 하라면 하던 순진함을 지워내고 자기 동물성을 마주한다. 그러나 베티의 내면은 광기로 가득 차 있으며 동물성이 그녀를 지배하는 순간, 그녀는 세계가 피의 바다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 가장 지독하다. 세계의 질서는 그녀라는 인물에게 가혹하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는 작품 내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지독한 자기 혐오, 운명에 대한 응시(곧 한계에 대한 응시, 죽음에 대한 응시, 혹은 전능할 수 없음에 대한 응시)는 그녀가 스스로 눈알을 파내도록 만든다. 모두 피의 바다이며 힘의 역학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데도 마치 그것이 아닌 듯 행동하고 가증스럽게도 그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걸까.


그 뒤 베티는 의식을 잃는다. 장은 생도 사도 아닌 경계 속에 머무는 베티를 자유와 한계가 없는 죽음의 영역으로 놓아준다. 

모든 죽음이 승화의 과정은 아니다. 죽음이 죽음이 아닌 것이 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생명이라는 게 가진 힘(피의 역동성)을 다 쏟아 붓는 것이다. 마치 세상이 이만큼이 되기 위해 엄청난 피를 쏟아 부었듯이.

모든 생명은 다 살아갈 힘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을 어디에 작용시키느냐는 본인이 선택할 문제다. 세계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자전축을 바꾸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당할 수도 있다.

장은 베티를 통해 자신이 가진 힘과 세계를 적극적으로 응시하게 되었다. 베티라는 한 인물의 죽음은 그의 내면에서 죽음이 아닌 자기 자신의 발견과 예술로 승화한다. 결국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진 힘)을 발견하는데 한 평생을 보내는데, 그래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에서 그는 베티를 만난 것이 행운인 셈이다. 
 

베티 블루는 사랑의 실천이 죽음을 수반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어떤 면에서 이해 불가의 형식이며, ....주인공 남성의 발언, 어디든 피의 바다야 라는 그의 대사는 와닿는다. 낭떠러지 앞에서.  
 

그래도 음악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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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 Talk to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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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하루다. 메데아와 베니그로와 마르코와 함께 했다.



메데아는 자기 자식을 죽인 여자고



베니그로는 자기가 사랑한 식물 인간인 환자를 강간한 뒤 감옥에 갇혀 자살한 남자다. 마르코는 우는 혹은 울 줄 아는 남자다.



연결이라고 한다면



투우를 하며 다른 투우사에게 차였느냐고 토크쇼에서 추궁당하는 여자



꿈속에서 본 뱀에 경악해 알몸으로 뛰쳐나온 여자



때로 우는 남자



식물인간인 무용수를 사랑하는 남자



식물인간이 된 무용수



이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점점 그들은 시간 속에서 섞이며



꾸꾸루꾸꾸가 흐른다. 


(꾸꾸루꾸꾸는 들을 때는 진지한데 부르면 웃긴다. 이 노래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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