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동물이 발밑에서 기어가고 꿈틀거리고 몸을 뒤튼다. 하지만 만다라 위쪽에서 움직이는 것은 나 혼자뿐이다. 따뜻하고 축축한 흙은 온갖 동물의 보금자리가 되지만, 아무리 여건이 좋다 해도 흙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흙의 주요 식량 공급원은, 죽음이다. - P331

결국, 크고 물에 사는 우리는 동물의 다양성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생물 생리의 참된 본성 또한 알지 못한다. - P332

단절의 충격은 어떤 점에서 내게 안도감을 선사했다. 세상은 나를, 또는 인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자연계의 인과적 중심이 만들어지는 데 인간은 전혀 기여하지 않았다. 생명은 우리를 초월한다. 인류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므로 우리는 바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 P342

하지만 내 경험에서 얻은 두 가지 깨달음은 새로 관찰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듯하다. 첫 번째 조언은 기대를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홍분, 아름다움, 폭력, 계몽, 신성함 등을 기대하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데 방해가 되며 마음이 조급해질 우려가 있다. 오로지 감각이 열정적으로 열리기만을 기대하기 바란다.
두 번째 조언은 명상 훈련법을 차용하여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집중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의가 분산된다. 가만히 제자리로 돌려놓으라. 소리의 특징, 장소의 느낌과 냄새, 복잡한 시각적환경 등 세세한 감각 요소를 찾고 또 찾으라. - P345

마음의 내면적 성질은 그 자체로 자연사의 훌륭한 스승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자연‘이 별개의 장소가 아님을 배운다. 우리도 동물이다. 생태적으로 진화적으로 풍성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영장류일 뿐이다. 주의를 기울이면 어느 때든 우리 안의 동물을 관찰할 수 있다.
과일과 고기와 설탕과 소금에 끌리는 입맛, 사회적 계층과 패거리와 동료에 대한 집착, 인간의 피부와 머리카락과 체형의 아름다움에 대한 매혹,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과 야심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들 각자는 오래된 숲 못지않게 복잡하고 깊숙한,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만다라에서 살아간다. 게다가 자신을 관찰하는 것과 세상을 관찰하는 것은 대립하는 활동이 아니다. 나는 숲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을 더 또렷이 보게 되었다.
자신을 관찰함으로써 발견하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주위 세상에 대한 친밀감이다. 생명 공동체를 명명하고 이해하고 향유하려는 욕망은 인간성의 일부다. 살아 있는 만다라를 고요히 관찰하는 것은이 유산을 재발견하고 계발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 P3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나무가 쓰러진 뒤에야 이것이 얼마나 거대한 생명체인지 알 수 있다. 바닷가에 떠내려와 죽은 고래처럼 말이다. - P305

나무가 쓰러지면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꼬마나무는 (도목에 짓이겨지거나 밑에 깔리지만 않았다면) 햇빛을 듬뿍 받아 쑥쑥 자란다. 오래 기다렸다. 작고 어려 보이지만 이 꼬마나무들 중에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묵은 것도 있다. 그늘에서 천천히 자라며 몇 년에 한번씩 뿌리만 남기고 죽었다가 다시 싹을 틔우면서 하늘이 열려 어둠에서 해방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다. - P306

그리하여 협력은 진화의 정점에서 또 다른 보석을 얻는다.
생명의 역사에서 일어난 주요 변화는 대부분 식물과 균류의 결합 같은 합작 사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큰 생물의 세포에는 어김없이 공생 세균이 들어가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숙주가 된 생물 또한 공생관계를 통해 형성되거나 변형된다. 육상식물, 지의류, 산호초 등은 모두 공생의 산물이다. 지구상에서 이 세 가지를 빼면 사실상 남는 것이 없다. - P322

흙의 생명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수록 ‘뿌리‘, ‘토대‘ 같은 언어적 상징의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이 단어들은 단순히 물리적 연결이 아니라 환경과의 호혜 관계, 다른 공동체 구성원과의 상호 의존, 뿌리가 주변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두루 일컫기 때문이다. 이 모든 관계가 생명의 역사에 아주 깊숙이 뿌리 내린 만큼, 개별성의 환상은 설 자리가 없으며 홀로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P323

땅속은 땅 위와 놀랄 만큼 다르다. 땅 위는 곁을 지나가는 박새 말고는 숲 속에 나 혼자뿐이다. 하지만 낙엽층 표면에서 1센티미터만 내려가면 온갖 동물이 북적댄다. - P3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경계는 내면의 감정을 얼굴에 쓴다. 지성이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다. 다윈은표정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는 것이 우리 존재의 핵심적 요소라고 주장했다. - P277

이 매혹을 설명하려고 나중에 언어를 동원하기는 하지만, 매혹의 과정은 이성의 차원 아래에서, 언어의 층위 밑에서 먼저 일어난다. - P2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재소소 아침달 시집 42
김동균 지음 / 아침달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읽은 뒤 시 몇 편을 다시 읽었다. 밤에 잠자기 전 읽다가 좋다고 접어놓은 시와 목차에 체크해둔 시. 역시 현대, 도시구나, 싶다. 직장인의 시, 도시의 시라고 시집에 써뒀다. 서울에 살고 서울에서 일하니, 이런 시를 쓰는구나 싶었다. 시에는 푸드트럭도 나오고 꾀꼬리도 나온다. 해설을 읽다 보니 금붕어도 여러 마리 나오는데, 다시 보니 금붕어는 시 이야기이구나 싶기도 했다. 뻐끔거리는 금붕어, 시, 

현대문명이 만들어놓은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허공 거기서 헤매고 일하는 

자만이 쓸 수 있는 시. 견과류나 케이크나 빵처럼 현대가 호명하는 것들, 

(그런 의미에서 시집 표지 디자인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시를 쓴다는 것

시는 아마 다른 높이의 음조 

평시와는 다른 회사와도 다른 

다른 음조로 세상에 대해 얘기해보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지 않는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니 금붕어와 비슷한 것도 같지만, 비어있는 거기에 대해… 



함께 시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하던 그런 풍경이 절로 떠오른다. 그들끼리만의 시, 몇몇들끼리만의 시, 세상과 하등 관계 없는 듯도 한, 그러나 세상과 깊이 관계 맺은, 그런 데를 짚어낸 느낌

그곳을 그리며 그리는… 

그런 데서 시를 같이 얘기하던 때가 있었지… 



내 얘기가 남에게 가닿으면

공명하면 그게 시, 예술

말벗


꾀꼬리가 나타난다. 꿈에 나타난다. 여름밤에 나타나고 꾀꼬리는 ‘호이호‘하고 운다. 가끔은 ‘히요‘하고 지붕 위에서 운다. 꾀꼬리가 나타나서 여름을 몰고 다녔고 꿈밖으로 날아갔고 꾀꼬리 때문에 말벗도 생겼다. 잔치가 열린다. 잔칫집에는 꾀꼬리가 안 보인다. 떡도 없고 노래도 없는 잔칫집에 남아서 퉁퉁 불은 국수를 먹는다. 국물만 찰방이는 그릇에 고개를 묻고 꾀꼬리 생각을 한다. 말벗이 내 옆으로 와서 중얼거린다. 나귀가 있었지. ‘히요‘하고 울던 그것이 여름을 죄다 싣고 갔었지. ‘호이호‘하면서 울기도 하냐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꿈같은 건 없는 것 같다 말하고선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게는 지켜보는 눈이 있다. 비스듬히 열린 문이 있다. - P1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의 인공물은 자연에 묻은 얼룩이 아니다. 이런 시각은 인간과 나머지 생명 공동체를 갈라놓는다. 골프공은 똑똑하고 놀기 좋아하는 아프리카 영장류의 마음이 물질로 구현된 것이다. - P224

하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인류를 증오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인류는 전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인류의 창의성과 놀이 본능 또한 사랑해야 한다. 인간의 인공물이 남아있다고 해서 자연이 아름답지 않거나 일관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는 덜 탐욕스럽고 덜 어지르고 덜 낭비하고 덜 근시안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책임감을 자기 혐오로 바꾸지는 말자. 우리의 가장 큰 실패는 세상에 대한 연민을 품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우리 자신도 포함된다. - P2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