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야 미노루는 천재구나.
요즘 자주 하는 생각들 중 하나다.
카페에서 크레이지군단을 다시 보고 미친 듯이 좋아한 뒤로
만화방에서 빌려본 심해어. 
어딘가 박민규스러운 구석이 있다. 아니, 박민규가 후루야 미노루스러운 건가.
자꾸만 박민규의 핑퐁과 겹쳐졌다. 어떤 분위기 같은 거. 웃기면서 슬픈 거? 봉으로 깊숙한 곳을 찌르는 거? 주인공들이 바보 같이 착한 거?
단순히 왕따 이야기라서 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핑퐁>에 나오는 건전지 빠는 애 이야기가 심해어에 나와도 하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심해어에 나오는 남자가 핑퐁 속으로 들어가면? 그건 좀 어색할 수도 있겠군.
물론 후루야 미노루가 훨씬 극적이고 내밀한듯 하다가 치고 빠지고 그럼에도 만화스럽지만. 만화니까.
이전에 본 <두더지>, <시카테라> 등등이 겹쳐서 혼란스럽다. 게다가 요새 <그린힐>을 다시 봐서 더욱...

어쨌든 세상엔 이렇게 생긴 물고기들이 있다. 실은. 잘 보기 힘들지만.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나만 더. 후루야 미노루는 성 행위 자체를 그리지 않는다. 이건 꼭 심해어 이야기는 아니지만, 심해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성행위라는 인류 공통의 과제이자 관심사에 다가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린다. 물론 과장되어 있긴 하다. 모든 남성들은 여자의 가슴과 섹스에 미친다. 그런데 이 미쳐서 어떻게 행위하는가는 다 다르다. 그래서 자연스럽다. 나로서는.
<크레이지군단>에서 이토킹 엄마를 공원에서 만났을 때-자기를 버린 엄마를 찾았는데 공원에서 노숙자인(?) 남자와 섹스하고 있던- 그 장면은 정말 삶과 성의 비극 그 자체다.
(결국 캐릭터인가?) (심해어의 캐릭터 30대 남성, 혼자 살고 친구 하나 없으며 여친도 없는 경비원.)
20050501 다시
누구나 고독이란 괴물과 싸운다. 이 사실을 아직 모른다면 다행, 하지만 언젠가는 누구의 방문이든 두드릴 수 있는 놈이다. 그래서 무섭고 두렵고 어마어마한 존재. 실체가 없으므로 무엇으로든 가장이 가능하고, 없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생겨나는가 하면 있다고 생각한 순간 나의 착각이었던가 싶게 사라져버린다. 그러므로 늘 있는 셈이라 할 수도 있고 모두 마음의 평정심을 찾지 못한 자의 망상이나 헛되고 헛됨이라는 식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어쨌든 사람은 이 고독이란 괴물 대신 사람을 만나려 한다. 이 만화책의 주인공 32세 토미오카도 그렇다.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괴물 같은 녀석이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른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바램이 생긴다. 친구라니, 32세에 친구라니, 직장이나 애인도 아니고 친구를 바라다니, 라는 생각도 들지만 실은 지금 당신곁에 당신 친구라고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얼마나 편하게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가, 혹은 그들이 고독을 없애기 위해 당신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좋을 어떤 실물적 존재를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닌가, 당신과 그의 관계는 얼마나 정당하고 정직한가, 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그만, 나이가 들수록 친구라는 것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서로 일하는 분야, 관심 분야가 달라지고 매일매일을 영위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점점 대화거리라는 것이 사라지고 차라리 나의 보금자리가 더 편한 게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을 하고 마는 순간, 친구들은 다들 바이바이~(그래서 동호회 같은 게 많아지는 걸까? 뭔가 즐겁게 이야기하고 싶으니 서로 좋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보자구?)
토미오카가 친구를 바란 다음날, 바로 그는 구렁텅이에 빠지듯 여러 사건과 연루된다. 그의 직장과 집에 1년 뒤에 미쳐 죽게 된다는 편지가 오는가 하면 그 편지의 주인공을 찾으러 갔다가 복권광 노숙자를 만나 그를 집에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이 노숙자는 친구가 되기엔 어딘가 미스! 결국 그의 목숨을 담보로 한 빚 300만엔을 갚아주고 만다. 하지만 인과응보, 권선징악이란 오래된 결론을 이끌어내듯 이런 토미오카에게 반한 여자가 있었으니 바로 옆집에 사는 하라라는 젊은 여자. 그녀가 바로 그의 인생에 구원투수이자 영원한 여신이자 처음이자 마지막 주어진 행운이었던 셈. 토미오카는 점점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는가 하면 자신보다 좀 더 세련되고 의지가 확고한 또 다른 은둔형 인간(같은 직업에 종사하는)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하라와의 관계도 깊이를 더해간다.
인간이란 구덩이처럼 사람을 잡아끌고 만다. 그래서 관두자, 하면 어느새 나는 외톨이다. 이래저래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에 바쁘고 자신의 고민, 외로움을 나눠주길 바라지만 이젠 왠지 그런 일이 지친다. 그래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군요, 그래서 어쩌란 말이죠, 뭐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이전에 만났던 몇 분에게서 그런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어딘가 자신의 내부에 쌓인 것들을 내 앞에서 긁어내고 있다는 기분. 하지만 그건 진짜 그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어딘가 이상하게 소모된다는 기분이 들어서 피했다. 그 뒤로 더더욱 사람 만나는 게 무서워졌다. 그것을 피하는 나도 싫고 그렇다고 또 그런 식의 관계를 갖는 것도 싫어서 차라리 아예 다 제외시키기로 한 거다. 그런데 이건 나쁜 거다. 내가 왜 세상(사회적 관계)에 나가길 겁내 하는지 이 만화책을 보고 알았다. 자칫 잘못하면 나라는 미로에서 완전히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지켜서 나는 뭐가 될 수 있을까? 가끔 나 역시 내 인생에 드라마가 없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인간은 아름답고 동시에 인간은 더럽고 추악하다. 바퀴벌레만도 못한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 그렇다. 결국 다들 오타쿠가 될까봐 영원한 외톨이가 될까봐 두려워한다. 공부를 많이 해도 마찬가지. 파우스트를 읽진 않았지만, 만화책을 보니 파우스트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나 보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이런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걸까? 직장을 갖는 것은 공통 화제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일까? 이런저런 생각들, 결국 내게도 마지막 구원투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