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1
후루야 미노루 지음, 김민경 옮김 / 코믹스투데이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설 연휴 동안 왜 이런 책이나 보고 있어야 하는 건지 당최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_-;;;  

아픈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다.    

아픈 사람에 대해 후루야 미노루는 어떻게 썼더라. 

(처음 본 것은 추석 연휴 때였다.)

후루야 미노루 만화의 주인공들은 절망 속을 허덕인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두더지의 스미다는 더욱 그렇다. 그는 아프다. 그런 그에게 구원투수는 바로 예쁜 여자 치야자와. 그러니까 알고보면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남성형이다. 어느 날 멋진 인간이 나타나 너를 구해주리라 라는 희망을 우리는 왜 버릴 수 없는 걸까? 너의 인간성의 장점을 그만은 알아주리라! 때로 그런 일도 일어나나?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열심히 잘 써서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만화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했던 부분이 꽂힌다.  

이제 나도 왠만해서는 소설보다 만화를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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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 - (500) Days of Summ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편집이 좋다.

우연인가 필연인가의 문제에서 결국 주체의 선택이 중요하다. 결국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언젠가는 그것이 우연인 듯 싶지만 실은 다 선택이 깃든 일이야. 그만큼 무의식이 필요로 했던 것이지. 연애를. 혹은 사랑을.

그런데 왜 썸머는 그렇지 못했을까?

글쎄. 그것이 바로 시간차. 스텝을 잘 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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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내는 숲 - The Forest Of Mogari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밭이 보고 싶어서  

무슨 내용인 줄도 모르고 봤다.  

그러니까 아는 것은 오직 포스터뿐인 상태 

 

결국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얼마나 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애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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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후... - 할인행사
대니 보일 감독, 나오미 해리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대니 보일의 28일 후는 재밌지만

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딜로의 28주 후는 재미가 없다.

왜일까?

물론 나는 대니 보일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니까.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니 보일의 무엇이 먹히는 걸까?

대니 보일은 적절하게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 줄 안다.

좀비라고 ‘우아’하면서 피를 쏟고 마구 뜯어먹으려 들고(물론 진짜로 내 앞에 나타나서 그럼 무진장 무섭겠지만) 그런다고 무서운 건 아니다.

인간 속에 내재한 공포란 무엇인가.

짐을 통해 나타나듯 진정한 공포는 혼자 남겨진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좀 더 유식하게 말하자면 모든 타자화된 이들 속에 갇혀 온전한 고립감(전혀 공통감이 없는 상태)을 느낄 때. (나는 종종 이런 꿈을 꾸는데 가장 최근에 내가 무서워서 새벽에 일어난 꿈도 이거였다. 어딘지 전혀 알 수 없는 곳에 혼자 남겨졌다. 왜 그곳에 있게 된지도 알지 못한 채.)

또 대니 보일의 이야기는 한 주인공을 끊임없이 쫓아간다. 그는 그닥 영웅심이 있는 인간도 아니고 용감하지도 않다. 단지 잘생겼을 따름(킬리언 머피, 보는 내내 집중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인가?) 그러나 차츰 그가 자신의 내면에서 소중하달까 하는 가치에 눈 뜨고 이 사이사이 좀비가 끼어든다. 그래서 와구와구 잡아먹으려 든다. 그러나 더 무서운 건 인간이나 좀비나 마찬가지란 사실인데, 결국 소령과 군인들이 여자들을 어떻게 해보려 하는 건 좀비랑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짓이다. 하지만 사실 짐이 여자들을 지키기 위해 눈알을 파는 장면(사실 이 장면이 영화 내내 가장 잔인하다)을 보면 모든 인간에 내재한 좀비성, 뭐 이런 것을 대니 보일은 슬쩍 슬쩍 비춰준다.

이에 비해 28주후는 영화에서 끌어달 쓸 만한 것은 다 끌어다 쓴다. 좀비, 폭파, 코드 레드(무조건 저격), 가족 간 살해, 영웅적인 남녀(도일, 스칼렛) 등등. 하지만 그래 돈 많이 썼구나 그런 기분이다. 그러니까 잔인하고 끔찍한 것들의 나열품이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기분으로 몇 번이나 끌까 하다가 그래도 끝까지 다 봤다.

다행이다. 28개월 후는 대니 보일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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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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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멸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읽었다. 절멸 속에 살아남은 자들은 무엇을 할까.

의미가 말소된 세계, 세상의 모든 나무가 쓰러지고, 신탁이 모든 말을 끝마치고, 죽음과 삶의 구분이 사라진 세계 속에서 남자는 의미를 견지하려 한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로써. 힘겹게. 의미라는 것을 제 안에 남기려 한다. 남자는 거의 속삭이듯 말하고, 조심스럽고, 상냥해지려 한다. 미쳐가는 세계 속에서. 아니 제 본질에 충실한 세계인지도. (추위, 강간, 식인의 세계)

다 읽고 난 뒤에는 1mm의 빛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의미가 빛인가?

실은 자식을 낳는다는 행위가, 제가 무언지도 모르는 이 절망과 아귀다툼 속에 생명체를 던져놓고, 어쩌면 니가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한 곳, 아니 낙원, 아니 행복에 대해 질문하지 않아도 되는 곳인지도 몰라, 라는 그런 숱한, 잡초처럼 밟혀도 다시 솟아나는, 그런 희망 같은 것을 품고자 하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인간에 대해, 거짓은 아닌지도 모른다.(맥카시는 자신의 아들에게 이 책을 바쳤다.)

그렇다면 의미란 선(善)일까? 빛이 있어 사물의 구분이 생겨난다는 점에서는 맞는 말이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여기는 존재, 자와 타의 구분이 없는 상태라면, 선이라는 말은 거창하지만, 순결함이 깃든 것일 테지. 공포를 이겨내고 있는 것이니까. 강한 존재일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선인지도 모르겠다. 좋음과 나쁨이 아이 속에는 존재하고, 남자는 그 아이와 이야기를 통해 의미를 이어나가려 한다. 

적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적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다 스테이지 막판에 이르면 대왕은 안 보이다 보이며 자꾸 한 대씩 때린다. 그런 것처럼.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드러눕고 싸워 보겠다고 일어서고 있는 중. 이 이야기 속에서 적은 자멸이다. 이야기 속의 아내가 자멸 속으로 굴러 떨어지듯 세계가 자멸 속으로 굴러 떨어지듯.

태양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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