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동물원 소장의 아들이 물갈퀴 같은 발 모양을 하고 태어나는 일은 흔하다. 어쨌든 그것은 불행이 그런 것처럼 하나의 놀라움이다.

어린애는 북극지방으로 쫓겨났다. 사람들은 그 애가 거기서 훨씬 적합한 자연의 모습과 어울리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밀을 지니고 있었던 가정은 굉장히, 엄청나게 은밀하게 되었다. 누가 과연 동물원 소장의 가정을 속속들이 알았노라고 떠벌릴 수 있겠는가?

*

사람들이 모두 얼굴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면 정말 사람들을 덜 미워할 수 있을 텐데.

*

뿔 달린 가오리들은 나무를 쓰러뜨리지 못한다. 그것들은 나무에 기어오르지도 못한다. 자연에는 아직도 경건한 분리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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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때에도 나는 아직 식물처럼 단장되기를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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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소리지르는 자의 입을 막기 위해 소리를 지른다. 기린을 보여주는 사람은 난장이를 숨긴다. 곰을 보여주는 사람은 대머리를 감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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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적의 추억: 어느날 나는 입을 갖기로 결심했다. 망할! 금세 나는 꼼짝 없이 사람의 애기 모양에 가까워져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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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 안에서는 심장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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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돼 가네, 라고 사형집행인이 말했다. 불행의 형편이 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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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의 내장 안에서 그는 일 년 전에 사라진 불쌍한 어린애를 되찾았다.

그 감격! 아버지로서의 충격! 그 어리둥절함!

그후로 그는 그토록 열광했던 곤충학과 완보류(緩步類)에 대한 연구와, 흐릿한 안경 뒤로 감춰 버리게 될 이 세상의 정녕 끔찍한 장면을 내팽개쳐 버린다.

아니, 이제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미친사람 같다.

그러나 내 묻건데 아무리 금수만도 못한 자라도 그의 입장에서라면 누가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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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귀는 잘 보호되어 있지 않다. 마치 이웃 사람들이 염두에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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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은 얼굴을 칭찬하지 않는다. 그것은 해변을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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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하나를 집어내려 하는 잠수부는 울거나 치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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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밖에서 밤을 보내는 물고기들을 위한 부드러운 진창이라는 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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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부인, 속에는 찌푸린 얼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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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기를 면도할 줄 아는 사람은 지우개를 지울 줄도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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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은 늪지에서 벌어져야 하리라.

사자를 뒤따르는 생자들도 곤경에 처해야 올바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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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광기를 숨기는 자는 소리없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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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앞에서 목을 숙인 자는 사자 앞에서는 더 이상 몸을 숙일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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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컴컴한 벽난로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석탄을 대주고 나는 석탄 연기를 공급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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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를 지어 노래하는 자는 사람들이 그에게 원하기만 하면 자기 동생이라도 감옥에 처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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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에 붙어 사는 벼룩이 고양이를 무서워한다는 증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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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은 대장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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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지혜는 파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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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악마를 물리친 자는 그의 천사로 우리를 성가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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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머거리들까지도 대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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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믿을 때에도 손은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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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사람의 마음은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고통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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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베를 짤 줄 아는 사람들만이 결혼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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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보상된다.

*

사람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지상에 사람이 많을수록 더운 분노도 많다.

-앙리 미쇼(김현, 권오룡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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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

-권태에서 충격까지.




환상은 경계에 대해 말한다. 앤서니 브라운은 단순한 환상-인간과 동물의 자리 바꿈-을 이용해 인간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림책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앤서니 브라운이 말하는 경계는 아주 단순하게는 생각하는 습관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의 그림책의 주인공이 동물-침팬치-이라는 것을 통해 그의 경고는 우선적으로 뚜렷하게 부각된다. 인간 주인공이 아닌 것. 동물과 인간에 대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세워놓은 사고의 장벽이 한꺼풀 벗겨진다.

그러나 성인인 내게는 이제 뻔하게 받아들여지는 이러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앤서니 브라운의 과정에는 권태에 대한 치밀하고 감각적인 묘사가 있다. 또한 그 묘사가 충격의 순간을 진정한 충격으로 느끼도록 한다.

『동물원』은 인간 동물원에 대해서-물론 이 과정은 몹시 독특하며 이 결론은 겨우 마지막에 이르러 나타난다-  『돼지』에서는 가족 관계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한 불합리성,『윌리와 휴』에서는 몸체가 작은 것과 큰 것-눈에 보이는 것-과 두려움이 서로 연관 관계를 맺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대해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다루는 앤서니 브라운의 시선은 천천히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 듯 하며, 그러던 와중 그의 그림은 어떤 도약의 순간을 짚는다.

 

『돼지책』에서 엄마가 ‘너희는 돼지야’ 라는 쪽지를 주고 가기 전, 그들의 하품하는 표정, 집 주변의 많은 것들이 돼지인 그림은 그 가족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권태롭고 습관적인 사고가 어떻게 그들을 잠식하고 있는가를 한 컷으로 보여준다. 말하자면 그림으로 쓴 시에 가깝다. 이 사고가 도약으로 진전해 나아가가 까지 얼마나 차근차근 이루어지는지, 어느 순간 사고의 비약이 일어나는지 앤서니 브라운은 알고 있다.


 

 

 

『축구 선수 윌리』에서는 뛰어넘는 과정에 품게 되는 환상의 실체를 마법과 현실이 겹쳐지도록 표현한다. 윌리라는 주인공이 낯익은 어떤 사람이 준 운동화 때문에 축구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그가 그동안 꾸준히 그 축구화를 신고 마법에 빠진 듯 연습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을 그려내는 앤서니 브라운의 시선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망 보다는 그 순간에 머무는 차분함, 그러나 순간이 겹쳐지고 있는 시간성을 그려낸다. 말하자면, 이 시간이 겹쳐지는 순간의 권태에 대해, 그 겹쳐진 시간이 화산 폭발을 일으키듯 폭발하는 지점을 앤서니 브라운은 집어낸다.

『달라질 거야』에서는 우리 주변 사물이 얼마나 많이 동물을 시각적으로 변용하고 있는지 그려내는데 이 과정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주인공의 시선이 결국 새로운 생명에 대한 예감이었음이 밝혀지는 환한 순간!

그림책 장수를 하고 싶게 만드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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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찾아가는 중이야

무엇을?

먹이를.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지. 힘도 필요해. 우리는 함께 모여서

찾아가는 중이야

라고 동물들은 말한다.




 

1

인간은 바퀴벌레보다 못한 게 분명해

신이 있다면 왜 인간을 만들었을까

지구 절멸 프로젝트이거나 한번 실험을 해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들이 어떻게 한 별을 망치는지 보기 위해, 다른 모든 종을 절멸시키는지 보기 위해 실험을 하고 있는지도.

그러다가도 결국 생명은 생명을 섭취함으로써 삶을 이어나가고 인간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 과도하게.

반성하는 생물, 인간. 어디까지 반성해야 하고 어디부터 받아들여야 할까?







 

거대한 것의 아름다움, 코끼리떼, 들소떼, 물고기떼들. 어떻게 이들은 물을 찾아 먹이를 찾아 기나긴 이동을 하는 법을 익혔을까? 생명을 보존하고자 하는 본능은 얼마나 강할까?




각각의 종마다 표정을 가진 동물들,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종에 따라 어울리는 눈빛과 표정이 있는 것 같다. 표범은 표범대로, 코끼리는 코끼리대로, 곰은 곰대로.

 



 

기울기 23.5도의 힘

그 모든 것은 우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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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

 

그는 그의 목을 물칼로 벤다. 자기 죄를 승복하지 않는다. 죄는 흐르는 무기와 함께 사라진다.

 *

<우선 겨울을 나고 싶다>라고 말한 생존자가 나였다.

 *

집들 사이에는 구둣점이 없어서, 집 읽기가 그토록 힘들고, 거리들은 지나다니기가 그토록 피곤하다.

 *

말의 꿈-수레를 먹어 버리고, 말은 지평선을 바라다본다.

 *

개명한 곤충들은 인간이 자기 바지를 분비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곤충들은 그게 특이한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

어린애가 믿고 말한다. "아빠, 고래가 기침하게 해봐"

 *

비누는 때를 바라다보지 않는다

 *

악어의 모든 것이 딱딱한 것은 아니다. 그의 폐는 물렁물렁하며 그는 河岸을 꿈꾼다.

 *

아픈 肺는 갈대가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을 듣는다

 *

젊은 의식의 깃털은 뻣뻣하고, 비상은 요란하다.

 *

새가 미치건 말건 나무는 관심없다

 *

온갖 진보에도 불구하고, 멋진 가슴은, 지금까지는, 가장 이상적인 共鳴機의 모형이다

 *

악어에게는 "조심해, 악어야"라고 소리지르지 않는다.

 *

"선생님, 이게 뭔지 모르겠어요. 멀리 검은 탑이 굴러다니는 게 자주 보여요" 그런데 눈 안에서, 한 마리의 달팽이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불안해 하는 환자에게, 그때 안과의사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

그게 진실이라 해도, 그건 거짓이야.

 *

가난한 사람이 현명하게 말한다. 빚도 없이 가난하기만 하면 너무 쓸쓸할 거야

 *

앵무세의 窓은 앵무새에게로 열려 있다.

 

-앙리 미쇼(김현, 권오룡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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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은 경계에 대한 질문과 닿아있다.

환상문학이라 불리는 것들-혹은 영화도 마찬가지-은 경계에 대해 질문하다 다가선 곳이다.

인간의 경계-실은 이 경계는 한번도 밝혀진 적이 없다-는 어디까지 인가

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다보면 꿈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고-스리슬쩍 프로이트를 떠올릴 수도 있다-

기억이나 망각의 영역에 닿고

그러다보면 인간의 모든 경계는 모호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 순간 환상은 피어오른다.

요즘 환상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이유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경계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도 결국 인간의 경계에 대한 논의이긴 한 셈인데

-새벽 지하철에서 사람을 고기 취급하는 미친 놈은 누구인가, 그는 왜-

결국 이 서사의 끝은 엉성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계약을 맺었다는 것

그 계약은 태초의 계약, 인간을 잡아먹는 것들과의 계약

이 처리는 앞에서도 말했듯 약간 어이없게 느껴지고 만다.

-실제로 이런 계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실 서로 잡아먹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인간이란 결국 동물, 포유류이며 어떤 다른 종이 인간 고기를 맛있게 먹는다고 해도 그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결말은 급작스럽다. 앞부분과 이어지지 않는다. 일을 벌이다가 앗 너무 어렵군 그만 끝내자고 이런 기분이다. 이에 비해 여기까지 가는 과정은 숨막히고 악 아직도 하는 악몽 같으며 그러면서도 자꾸만 그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가게 만든다.

소설로도 있다니 보면 좋겠지만 소설로 보면 필시 꿈에도 나타날 것 같아 보고 싶지 않다. 소설은 상상을 불러일으켜 결국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하고 언제까지고 들러붙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뛰어난 면은

한 인간이-사진작가인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사건 속으로 어떻게 빠져드는가에 대해서 대단히 잘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사건은 소용돌이처럼 한 인간을 흡수하고 만다. 이성적으로는 그 사건으로부터 빠져나올 여지가 분명히 있지만 빠져드는 순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까지도 삼켜버린다.

그러니까 그 소용돌이는 어딘가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고 어느 순간 마치 늪에 빠져버린 것처럼 점점점 그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순간 보면 이미 그 사건의 중심부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빠져나오려 하지만 절대 안 된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자꾸만 들어가는 것만이 길처럼 보인다. -사진작가인 그가 좀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밤의 지하철을 찍다가 어떤 사건에 빠져들 때, 사진에 대한 욕심, 호기심, 정의감 같은 것이 작용하며 점점 그를 이끈다-

이 과정은 치밀하고 그래서 보는 사람도 빠져들고 만다.

 

다시, 환상과 경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결국 이 영화는 인간과 포유류 사이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포유류일지도 몰라, 어떤 놈들은 인간 고기를 몹시 좋아하지

이런 말들이 들리는 듯 하다.

불순하지만 공감이 가는 상상력-지하철 손잡이마다 고기처럼 걸린 인간의 육체-이 모티브가 된 것 같고 몹시 역겹지만 결국 가능하다.

인간은 포유류이다.

-요즘은 여러모로 육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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