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은 경계에 대한 질문과 닿아있다.

환상문학이라 불리는 것들-혹은 영화도 마찬가지-은 경계에 대해 질문하다 다가선 곳이다.

인간의 경계-실은 이 경계는 한번도 밝혀진 적이 없다-는 어디까지 인가

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다보면 꿈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고-스리슬쩍 프로이트를 떠올릴 수도 있다-

기억이나 망각의 영역에 닿고

그러다보면 인간의 모든 경계는 모호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 순간 환상은 피어오른다.

요즘 환상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이유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경계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도 결국 인간의 경계에 대한 논의이긴 한 셈인데

-새벽 지하철에서 사람을 고기 취급하는 미친 놈은 누구인가, 그는 왜-

결국 이 서사의 끝은 엉성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계약을 맺었다는 것

그 계약은 태초의 계약, 인간을 잡아먹는 것들과의 계약

이 처리는 앞에서도 말했듯 약간 어이없게 느껴지고 만다.

-실제로 이런 계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실 서로 잡아먹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인간이란 결국 동물, 포유류이며 어떤 다른 종이 인간 고기를 맛있게 먹는다고 해도 그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결말은 급작스럽다. 앞부분과 이어지지 않는다. 일을 벌이다가 앗 너무 어렵군 그만 끝내자고 이런 기분이다. 이에 비해 여기까지 가는 과정은 숨막히고 악 아직도 하는 악몽 같으며 그러면서도 자꾸만 그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가게 만든다.

소설로도 있다니 보면 좋겠지만 소설로 보면 필시 꿈에도 나타날 것 같아 보고 싶지 않다. 소설은 상상을 불러일으켜 결국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하고 언제까지고 들러붙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뛰어난 면은

한 인간이-사진작가인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사건 속으로 어떻게 빠져드는가에 대해서 대단히 잘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사건은 소용돌이처럼 한 인간을 흡수하고 만다. 이성적으로는 그 사건으로부터 빠져나올 여지가 분명히 있지만 빠져드는 순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까지도 삼켜버린다.

그러니까 그 소용돌이는 어딘가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고 어느 순간 마치 늪에 빠져버린 것처럼 점점점 그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어느 순간 보면 이미 그 사건의 중심부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빠져나오려 하지만 절대 안 된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자꾸만 들어가는 것만이 길처럼 보인다. -사진작가인 그가 좀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밤의 지하철을 찍다가 어떤 사건에 빠져들 때, 사진에 대한 욕심, 호기심, 정의감 같은 것이 작용하며 점점 그를 이끈다-

이 과정은 치밀하고 그래서 보는 사람도 빠져들고 만다.

 

다시, 환상과 경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결국 이 영화는 인간과 포유류 사이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포유류일지도 몰라, 어떤 놈들은 인간 고기를 몹시 좋아하지

이런 말들이 들리는 듯 하다.

불순하지만 공감이 가는 상상력-지하철 손잡이마다 고기처럼 걸린 인간의 육체-이 모티브가 된 것 같고 몹시 역겹지만 결국 가능하다.

인간은 포유류이다.

-요즘은 여러모로 육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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