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영상을 찍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새를 가슴에 품었다는 남자는 죽어가는 순간 

입에서 새가 튀어나오고 

다친 아이의 엑스레이를 검사하는 장면에선 

아이의 머리를 열고 해골들이 그 속에 가득 찬 문서를 빼보는 장면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그밖에 찰스 다윈의 옷차림이나 모든 영상들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아이를 남자가 자살하기 위해 이용했다는 장면은  

처음엔 울다가 너무 신파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 울었다.    

어쨌든 아이는 엄청 귀엽다.  

게다가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어떤 꼬마 남자애가 

"이렇게 무서운 영화 처음이야" 라고 엄마에게 말하는데 

너무 귀여워서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가 무서울 수 있을까 

정말 갈 수 없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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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 씨와 공드리 씨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변에는 가족객들이 뛰어다니며 시끄럽게 굴고  

종종 샤르트르 씨와 공드리 씨는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자그마한 아이들에게 두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샤르트르 씨 곁으로 비둘기 떼가 날아왔습니다. 

"결국 저 비둘기들이 존재합니다. 그 존재는 모두 우연이지요. 휴머니스트. 웃긴 말입니다. 당신은 저 비둘기에 대해 뭐라고 말할 겁니까? 어떤 존재 이유, 필연, 이런 것들로 적당히 관념화된 세계. 아~물론 박물관은 관념의 천국이지요. 다들, 인간의 역사나 의의를 생각하곤 감탄하지만, 실은 자기네들의 권리를 공고히하기 위한 얄팍한 짓거지료. 존재라는 엄청난 부조리를 모른 체 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미칠 듯한 부조리이죠. 박물관, 박물관, 더러운 짓거리죠." 

샤르트르 씨는 말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샤르트르 씨는 그저 혼자, 비둘기 떼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공드리 씨는 시종일관 상상합니다. 

'박물관에서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있던 불상이 갑자기 다리를 쫙 펴고 일어나서 소녀의 볼을 만지기 위해 쫓아온다거나, 처음엔 울던 소녀가 점점 호기심에 가득 차 불상이 볼을 만지니 웃는다거나 그러다 같이 노래를 부르면 어떤 노래가 좋을까? 그러자 다른 불상들도 어깨를 으쓱대고 자기나 토기에 무늬로 새겨져있던 꽃들이 갑자기 흩날리고 가족객들은 모두 행복해하며 그 노래에 따라 흥얼거리고 누군가는 휘파람을 불고.' 

공드리 씨는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공드리 씨는 신석기관, 구석기관, 통일신라 조각전을 재게 돌아다니며 혼잣말을 중얼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하루입니다. 

 

-이것은 잡채, 이것은 오늘 하루, 이것은 오늘 마신 커피가 식도를 타고돌던 시간 

이것은 구토, 이것은 나의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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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ekindrewind.co.kr/download/BKR_trailer_special_01.wmv 

 

영화를 보고 나와서 길거리를 걸으며 영화에 대해 계속 생각할 때는 

행복하다. 

그땐 내가 아니라 오직 영화만 생각한다. 

뭔가가 가득 찬 기분 비슷한 것을 느낀다. 

공드리의 시네마 천국이라 할 만한 영화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공드리 영화는 대부분 그렇다. 

그냥 재주만 피우거나 폼만 잡는 게 아니라 따뜻한 마음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면, 좀 시나리오나 구성이 엉성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다. 

영화라는 꿈꾸는 세계에 충실하므로. 

영화 보는 내내 시작부터 끝까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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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시티 - 죽은 자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는 시티!
케빈 브록마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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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은 좋다. 하지만 번역소설은 싫다. 어딘가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외국어를 좀 배워볼 생각을 해야할 텐데 게을러서 그렇지도 못하다. 늘 책을 읽고는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투덜이처럼 굴 뿐이다.

소설은 리듬이다. 단어 배치를 통한 리듬, 문장의 길이를 통한 리듬. 그 리듬이 좋아야 한다. 근데 번역 소설을 읽는 동안은 어떤 소설을 읽어도 딱딱함은 기본 조건으로 따라붙는다. 어딘가 딱딱하다. 번역자가 번역하는 동안의 딱딱한 마음 같은 게 글자들에 들러붙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글자들에 영혼이나 음악 같은 게 깃든다고 믿는 부류다. 그런 믿음을 아무리 버리려 해도 그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로라, 시티 괜찮은 소설이다. 바이러스가 지구를 뒤덮어 지구의 남극에 남겨진 단 한 여자, 로라와 그녀의 기억 속의 사람들이 사는 죽음 이후의 도시 이야기가 교차하며 펼쳐진다. 하지만 지구에 남은 단 한 명이란 생각이 잘 들지는 않는다. 고독 같은 것을 잘 느낄 수가 없다. 때때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구에 남은 단 한 명의 고독이라면 마음을 후벼팔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다. 살려는 힘겨운 투쟁 같은 것에 대해 잠깐씩 생각해볼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어떤 사람들이 시티를 이룰까 궁금하긴 하다.

시티 부분은 너무 영화스럽달까 하는 면들도 있다. 맹인 이야기나 루카 이야기 같은 경우 그렇다. 
 

-이 느낌은 어쩌면 소설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데다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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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즉,  

사람에게 상냥해질 수 있다는 게 아닐까?" 

 

누가 내게 어른이 된다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아름다운 영화다. 사람에게 상냥한 영화라고 할까.  

"카모메 식당" 감독의 첫영화, 그 희안한 동화의 세계를 훨씬 더 귀엽게 보여준다.

타문명과 갈등을 겪는 이발소 아줌마와 아이들 이야기를 통해 타자와 상냥하게 함께하는 풍경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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