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6
김상혁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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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는 일은 삶에 산술적 보탬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집에 있다가 보니 

오래 내버려둔 루꼴라가 꽃을 피워서 그 그림자가 진 것을 보며 기분이 아주 좋았는데 

시집을 읽는 일은 이와 비슷하다. 

삶에 스쳐가는 것들에 대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혹은 아주 중요할 수도 있는 그 순간을 시만은 붙들어맨다. 그 감각이 좋아서 나는 시집을 읽지만 누구나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정이가 보내준 시집이다. 고맙다. 


2019 6 2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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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김창규 옮김 / 아작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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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나오는 소설

후회되는 일들을, 막 해버린 일들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혹은 해결할 수 없을 때 그 일을 조금 미뤄둘 수 있다면

그런 소설이다. 

시간 여행을 하고 냉동인간이 되어 30년을 왔다갔다 하는 한 천재 과학자가 

바보 같은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되돌아가 조금 더 나은 결정을 하기도 한다는 것

한 공간 안에 두 존재가 가능한가 그런 질문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럴 수 있다면

사람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여름으로 가는 문

가장 풍성한 계절 덥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계절로 계속 들어가는 문을 여는

이야기다. 물론 너무 더워서 거의 죽을 것 같은 지경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뭇잎은 싱싱하니까.

그런 싱싱함 속으로 가는 문.

약간 습작과 어떤 소망으로 가득한 이야기이나

결국 사람이란 연습과 습관과 소망으로 가득 찬 존재다. 

모든 소설이 완벽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다해 그런 후회와 정지의 순간을 누리고 싶은 마음으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말할 테니까

아무 후회 없는 듯한 고양이 

무사태평 잠이 들어버린 고양이


자기만의 여름으로 가는 문


나는

걷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2018 8 12일 일요일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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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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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 시리즈를 다 보고 

이제 뭘 하지 싶기도 하다. 


정말 내 얘기 같은 만화책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에서 나온 친구가 결혼해 아이를 두고 

그 아이와 함께 만나는 장면이나 

더 나이가 들어 섹스도 못 하고 늙어가는 내 몸 이런 생각들은

정말 어쩔 줄 모를 정도로 내 생각과 닮아있다. 


게다가 수짱이 아무래도 싫은 사람으로부터 도망쳐나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부분

그리고 그렇게 얘기한다. 

자기는 도망쳐왔다고 그러자 어린이집 급식소의 다른 분이 

아니라고, 그냥 그만둔 거라고 말해준다. 

눈물 나게 좋았다. 

과연 수짱은 그 싫은 사람을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 같은 것을 알고 있을까 했는데 

그런 건 잘 없는 거다. 때로 그 사람과 멀어지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인 경우도 있는 거다. 


요즘은 자주 아삭바삭이나 여름이 가고 싶고

친구들과 수다 떨던 옛날이 그리워

와 나는 왜 여기 혼자 온 거지 생각할 때가 많은데

엄청난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처음으로 마스다 미리를 추천해준 은경이는 

내가 '정말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며 안주할까봐 이 만화책은 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은경이처럼 좋은 사람이 친구라 정말 다행이다. 

정말 고맙다. 


수짱의 연애도 정말 흥미진진해

오늘은 심지어 한파주의보에도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 

다음 편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를 빌리기 위해.

수짱은 겨우 괜찮은 남자를 만나지만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여친이 있는 남자

수짱은 역시 나보다 훨씬 더 의연하게 대처하고

그래서 그 둘은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

마스다 미리 남자편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를 빌려 봤으나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에 나오는 주인공 역시 정말

현실 속 고민들을 하고 있어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를 추천해주고 싶었지만 겨우겨우 꾹 참았다. 


아 어쩌면 이렇게 현실적일 수가!!!


어서 다음 마스다 미리 만화책을 빌려봐야지 ㅎㅎㅎ



2018 2 3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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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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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책은 다 읽을 거야 라며 빌려왔다. 

'주말엔 숲으로' 시리즈에 반해서다. 

역시, 이것도 좋다. "아! 이 보통사람." 외치고 마는 웃픈 일상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보람 없는 직장 생활과 

(그러니까 미생 같은 그런 사명감 같은 것은 잘 없으니까)

막장드라마처럼 배다른 자식까지는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하달 수 없는

현대인의 관계들을 단면 자르듯 그려낸다. 

그 와중에도 살아보겠다고 꿈틀대는 생각들까지도

그림 속에 담겨있다.

나쁘지도 착하지도 않은 보통의 삶

위대하달 것도 대단하달 것도 없는 성공도 신화도 없는 보통의 삶

너무 많아 어디 지나가면 누구인지도 모를 우리 보통의 삶


드라마나 서사나 소설이 위대한 이들의 이야기만 쫓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현대적인 만화책, 게다가 약간 긍정적이기까지 해 더 좋다. 

그래도 우리 각자의 보람을 잘 찾아보아요 

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우리들 속에도 실은 씨앗 같은 게 웅크리고 있지요 하는. 


2018 1 2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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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이영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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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니기 좋아해 

유목민으로 태어났다면 더 좋았을 텐데 

생각을 종종 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더 안정된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 그렇다. 

하지만 사실 나는 유목민이 뭔지 잘 몰랐던 게 아닐까

이 책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또 그래도 유목민이 내게는 참 잘 맞구나

이런 생각도 든다.

인용한 대목에서 보이듯

유목민의 사고방식, 자유롭고 자연에 가까운 생각이 더 내게 와닿아서다. 


몽골에 가보고 싶어졌다. 

예전에 몽골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잠시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책을 보고 갔더라면 좀 더 오래 거기 머무를 수 있지 않았을까

그저 고기 냄새가 어려웠고

그때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바다라고 했는데 

이 책을 보자 고기 냄새도 바다에 대한 그들의 시선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좀 더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다면

너무 어려서였거나 시야가 좁아서였겠지

                                        


2018 1 24일 수요일


새끼가 적당히 자라면 어미는 훈련을 시작한다. 가을이 되면 다시 지구의 반 바퀴를 날아 한국으로 대만으로 더 멀리 호주까지 가야하기 때문이다. 길고도 힘겨운 여행을 무작정 떠날 수는 없을 터, 매일 어미 새를 따라 혹독한 훈련을 반복한다. 호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훈련, 지치지 않고 날갯짓을 하는 훈련, 대열을 만들고, 선두를 바꾸고, 다시 대열을 만드는 훈련을 한다. 처음에 가족 단위로 진행되던 훈련은 날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비행 고도도 높아진다.
그렇게 훈련을 거듭하던 어느 안개 가득한 날, 훈련처럼 출발한 새 무리는 곧장 하늘 꼭대기까지 날아오른다. 새끼들이 두려워하지 않게, 훈련인지 실전인지도 모르게 길을 떠난다. 그런 날이면 비지아는 뿌연 안개 속에서 새끼가 어미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 P169

하늘 안개에서 길을 잃은
앙기르 새끼가 가엾어라
세상 안개에서 길을 잃은
사람의 자식이 가엾어라
저절로 오리앙카이 어른들이 부르던 노래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친구들과 놀다가 잘못을 저지를 때면, 어른들이 그렇게 측은한 눈으로 노래를 해주곤 했었다. - P169

유목민들은 씨를 퍼뜨릴 한두 마리를 제외하곤 두 살이 넘는 모든 가축의 수컷을 거세한다. 거세하지 않으면 전쟁이다. 그것이 우주 생물의 질서다. 오직 인간만이 거세를 하지 않고, 전쟁도 없이 공존하며 사는 색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 사실 문화와 사상, 철학의 힘을 바탕으로 진행중인 인간의 실험은 아슬아슬한 모험이다. - P213

불가의 수행자들에게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이 있다. 여러 번 되풀이되지 않는, 평생 단 한 번뿐인 만남을 뜻한다. 일생 단 한 번 만나는 인연, 두 번 만나기 힘든 세상에서 서로 만났으니 만났을 때 최선과 진심을 다한다. 광활한 우주 속의 점 한 톨 같은 인간, 몽골 초원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런 인연을 맺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 옆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 P227

"밤마다 나담 축제 꿈만 꾸었겠다. 어디서 아이 목소리만 들려도 너를 타고 앉았던 기수가 부르던 노래인 듯 돌아보았겠구나."
비지아는 잠깐의 재회가 반갑고 아쉬워 헤르를 꼭 안아주었다. 어른들은 헤르에게도 어린아이 하나를 태워 나담 축제에 참가시켰다.
그해 여름, 헤르는 달리는 길 위에서 쓰러져 죽었다. 숨은 가빠오는데 발이 먼저 간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늙은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헤르는 쉬지 않았다고 했다. 결승선에 다 오지 못하고 앞다리가 꺾이면서 쓰러졌다고 했다. 사인은 폐파열이었다. 유목민이 말 위에서 죽는 게 영광인 것처럼, 말은 달리다 죽는 게 영광이다. - P255

몽골 사람들이 만나서 처음 하는 인사말은 ‘사인 바인 오(잘 있어요?)이고, 헤어질 때의 인사말은 ‘바이테르‘이다. 몽골 여행에 꼭 필요한 두 마디 말인데,…
‘바이르‘는 ‘반가움‘이란 뜻. 그러므로 바이테르는 ‘반가움이 남아있다‘는 뜻이 된다. ‘잘 있어요, 잘 지내요‘라고 말하는 대신 ‘당신에게 반가움을 남겨두고 갑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 P289

우리말의 ‘비가 온다‘라는 문장에서 주인공은 누구일까? 비와 나, 즉 나한테 오는 비이다. 반면에 몽골어의 ‘비가 들어간다‘라는 문장은 주인공이 다르다. 하늘과 대지이다. 하늘에서 내린 비가 땅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하늘과 대지와 그 사이의 비, 천지인天地人이 아니고 천지우天地雨이다.
우리는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사는 존재들, 푸른 하늘과 어머니 대지가 유목민들의 삶, 사상, 언어 속에 늘 함께한다. 인간이 모든 장면의 주인공이란 생각을 버렸기 때문에, 스스로가 우주의 주인이라는 짐을 덜어낸 덕택에, 유목민들은 그만큼 가볍고 그만큼 자유롭다. - P291

"야호!"
누구나 쓰지만 누구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는 말이다. 몽골어로 ‘가다‘는 ‘야(와)흐‘이다. 그럼 ‘갈까요?‘는 어떻게 말할까? 의문형에 붙는 어미를 붙여보면 ‘야(와)호‘가 된다. 정확한 발음을 한국어로 적을 수는 없지만, ‘야와호‘ 또는 ‘야호‘가 원음에 가깝다. 야-호. 이 말도 몽골어의 ‘갈까요?‘에서 왔던 것이다. - P297

알타이산이 가지는 또다른 의미는 사라짐이다. 고향을 바람 속에 묻어둔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고향이다. 유목민들은 조상의 묘를 찾아, 부모의 고향을 찾아 천릿길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과거는 지나간 시간에 불과하다. 과거는 흘러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초지를 찾고, 새로운 방목을 시작해야 한다. 삶도 죽음도 전쟁의 승리도 실패도 모두 그렇다. 과거를 버리지 못하면 분노와 복수심에 발목이 잡혀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알타이산이 이동한다는 것, 마음속에 성산을 두고 산다는 것은 고향을 몸으로 찾지 않고 마음으로 찾는다는 뜻이다. 유목민의 고향은 바람 속이다. - P325

사람이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조촐한 장례를 치른다. 몇 잔의 술을 마시고, 양고기를 나눠먹고, 하늘에 별이 가득할 무렵 나이 지긋하신 노인이 달구지를 끌어온다. 그러곤 하얀 천에 싼 시신을 싣는다. 화요일을 제외한 어느 길일이어야 한다.
노인은 독한 보드카를 들이켜며 덜그럭덜그럭 삐그덕삐그덕, 울퉁불퉁한 초원 길을 하염없이 돌아다닌다. 달구지를 끄는 노인이 만취하여 상주의 집으로 돌아올 즈음, 뒤에 실려있던 시신은 어딘지 모를 대지에 떨어지고 없다.
시신은 가고 없는 상가喪家에서 달구지꾼 노인은 술과 음식을 먹으며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전날 갔던 길을 똑같이 따라가본다. 초원 어느 땅에 사흘 전 내려앉은 시신이 있다. 달구지에서 내려 시신을 살펴보는데, 육신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크게 슬퍼하고 흰 뼈만 빛나고 있으면 기뻐하며 돌아온다. - P330

흥청망청하는 저 시간, 유목민들이 한 해를 보내는 의식이다. 조금 변형돼서 ‘서양식 파티‘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흘러가버린 한 해를 기억하기 위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그 시간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기 위해, 시간을 쌓아두지 않고 툴툴 털어버리기 위해 축제를 즐기는 것이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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