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라사를 우쓰와 봤다. 

 분명 윤영선 선생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뭔가를 써야 하는데 

지금은 남의 무엇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짧게 나마 하자. 인생은 훈련이 필요하고 습관이 필요하다. 확실히 그렇다. 

시동라사에 대해 처음으로 말했던 것이 윤영선 선생님이구나. 

잘 썼다고 

그랬었다.  

그때부터 연극으로 보고 싶었는데 보는데 4년이 걸린다.  -_-; 

그 사이 윤영선 선생님은 돌아가셨다.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재미가 있었다. 어떤 면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 대한민국 소시민들의 삶을 추적한다.  

무뚝뚝하고 땅딸막한 대한민국 아버지라 할 법한 시동 라사 주인과  

예쁘고 세련된 삶을 원했거나 어울릴지도 모를(피아노로 대변되는) 그의 아내  

그리고 그 사이에 등장한 남자, 아내의 옛 남자친구이자 지금은 성공한 공무원으로  

시동라사에서 300만 원 짜리 하얀 양복을 맞추는 

그래서 시동라사 주인이 근 5년만에 양복을 만들게 한 그 남자 

그 남자에게 굽신거리는 남편을 보는데 아찔하고 서글프고 그러면서도  

주변 인물들(시동라사 주인의 친구인 군인과 전파상 주인)이 웃음을 준다.  

세상은 변하는데 거기 적응하지 못하는 자그마한 남자의 절규  

그 절규에 힘겨워하기도 하며 때로는 응원도 하는 아내

그것을 양복점이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그린다. 

현실과 관계를 잘 그려나간다. 

웃기면서 슬프다. 

배우들 연기도 좋았다.  

여자의 점점 펴가는 얼굴이 피아노 때문인지 바람 때문인지 모른 채 

연극은 끝난다.  

남편이 손을 완전히 다쳐가며 만든 그 양복을 입은 남자가 아내를 채갔는지  

아니면 그것으로 그 둘 사이에 현실의 출구가 생겨 헤쳐나갈 수 있는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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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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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 9 - District 9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디스트릭트9의 서사는 꽤 단순하다. 익히 보아온 헐리웃 액션(로봇, 펑펑 터지는 피의 난무극, 테러 작전 등)도 존재하고 대의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비극적 파토스를 흠뻑 뿜은 주인공도 등장한다. 게다가 그가 처음부터 비극적 파토스를 가진 초인은 아닌 일상적인, 연약한 한 가장이었다는 설정도 이미 꽤 보아온 설정이다. 게다가 정부측과 진정성의 대결이 아니라 거기 끼어든 남아메리카 갱단의 설정은 3중 갈등 관계를 형성하는 그 설정 역시 이제는 새롭다고 할 수는 없다. 갈등이란 1:1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실은 다양한 집단들의 대립이라는 인식 속에 세워진 이 갈등 구조는 가이 리치의 <락스탁 앤 투 스모킹 베럴즈>의 영화를 봤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영화에 열광할까?

이 영화는 ‘공존이 존재할까?’ 라는 질문에 대해 현재적 우리로서는 힘들다는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공존이란 말의 달콤한 허구성 이면에는 정치적, 경제적인 갈등을 해소할 아무런 비전도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미국이 나빠서 강대국이고 착취하는 세력이며 아프리카가 착해서 약소국이 아니라 누구나 지배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얼마나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통해 보여준다.

외계인이라는 약간은 역겹게 생긴 이 존재들은 지구의 방식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약탈이라는 가장 일차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생존 본능을 이어나간다. 이런 외계인들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냉대는 인상적이며 또한 현실적이다.

그런 외계인들과 전혀 가까워질 마음이 없던 주인공은 약간의 호기심과 붕뜬 마음 때문에 외계 약품(유동액)을 뒤집어쓰고 외계인의 유전자와 자신의 유전자가 결합하는 기이 체험을 하게 된다. 이 기이 체험은 극의 마지막 주인공의 다른 두 눈동자를 통해 잘 드러난다.(피터 잭슨은 눈 연기를 좋아한다. 킹콩에서도 킹콩의 눈으로 말하기 연기는 압권이었고 이번에 외계인 크리스토퍼의 눈도 깊은 말을 한다.) 대립된 양극 지점을 함께 가진 이에 대해 사회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회가 말하는 달콤한 공존은 실은 그것을 어떻게 상품화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갱들의 측면으로는 그의 힘을 어떻게 자기의 것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다. 말하자면 그는 소유의 문제로 취급되는 상품, 물건이다.  


그런 우리들에 대해 우리 자신이

얄팍한 희망인가 쓰디쓴 절망인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지만, 영화는 얄팍한 희망 뒤편에 도사린 쓰디쓴 절망을 이야기한다. 중간자적 존재는 차츰 외계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왕따로서 이 사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풍문, 이름만 남은 존재가 되었다는 마지막은 씁쓸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들이 올지도 몰라. ‘날아와 머리 위로 날아와’(패닉의 <UFO>) 라는 그날에 대한 주문이 남는다. 외계인의 3년이 우리의 3년과 같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 언젠가는.(지구의 시간은 지구적 차원일 뿐, 우주적 차원이 아니다) 그날은 맑스주의자들이 말했던 혁명의 그날일까?(물론 이조차 얄팍한 소리일 테지만) 언제 올지도 모를 혁명을 기다리던 그들처럼 우리도 혁명의 그날을 기다려야 할까.? 그 혁명은 단순한 경제적 착취 구조의 해소가 아니라 우리 본성에 대한 새로운 비전의 날일 테니 훨씬 더 지독할 것이다. 뿌리째 바꾸어야 할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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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09-10-16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우리 본성의 바뀌는 날이란 표현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으니까요.
 
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처음엔 좀 작위적이구나 이제 보니 좀 그렇구나 했는데 결국 나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해버리고 그리고 우울증을 가져다줬다. 이 소설을 일고 읽고 좋았던 부분이 어디인가 보니 이전엔 이 부분이 좋았는데 또 어느새 다른 부분이 좋다. 아이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중이군 하지만 어느새 어른이 하는 헛소리보다 훨씬 나은 목소리가 들린다. 게다가 이 모든 인물들, 그러니까 유태인, 아랍인들이 섞여 있고, 창녀, 포주, 흑인들, 트랜스젠더 등 모든 것들이 함께 한다. 그건 좋다. 그건 좋지만, 이번엔 울지 않았다. 사랑해야 한다. 이 말은 참 이상한 말이다. 로맹 가리는 이 말을 위해 이 소설을 썼을 것이다.

 

 

-“나는 절대로 정상인은 안 될 거예요, 선생님. 정상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비열한 놈들뿐인걸요.”

“정상인을 말하는 거다.”

“나는 정상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예요, 선생님…….”

그는 다시 일어났다. 난 이때가 그걸 물어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를 심각하게 괴롭힌 문제였으니까.

“말해주세요, 선생님. 내가 열네 살인 건 확실한가요? 스무 살이나 서른 살이나 혹시 그 이상은 아니겠죠? 처음에는 열 살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열네 살이라고 하잖아요. 나이를 좀더 올려줄 수는 없나요? 혹시 내가 난장이는 아니겠죠? 아무리 정상이 아니고 남다르다고 해도 난쟁이가 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거든요.”

카츠 선생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게 좋은 소식을 들려주게 된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아니다. 모모야. 넌 난쟁이가 아니야. 의학적으로 말해주는 건데, 너는 열네 살이 맞다. 로자 부인은 가능한 한 너를 오래 붙들어두고 싶어했어. 부인은 네가 떠날까봐 두려웠던 거야. 그래서 네가 열 살밖에 안 되었다고 했던 거란다. 내가 좀더 일찍 말해줄 걸 그랬구나…….”

그는 미소지었다. 그것이 그를 더욱 슬프게 보이게 했다.

“하지만 그건 아름다운 사랑이었기 때문에 내가 말을 할 수 없었던 거야.”




 

면접을 보러갔을 때 원장이 어떤 책을 가장 재밌게 읽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자기 앞의 생이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매번 바뀌지만 어쨌든 그때는 이 소설이 생각났다. 그 이후 다시 읽어봐야지 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아무런 타의의 강요 없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이긴 하다. 세 번 봤다.

나는 로맹가리를 좋아한다. 어쩌면 그의 독특한 이력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의 독특한 이력 속에 숨겨진 생각들, 그가 했다는 말, 나는 인정을 받지 못한 게 아니라 무명이었을 뿐이네, 라는 그의 술회가 좋은지도. "나는 익명으로 남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익명의 시골 마을에서 익명의 여자와 익명의 사랑을 나누어 역시 익명의 가족을 이루고 익명의 인물들을 모아 새로운 익명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라는 술회.

그 때문에 에밀 아자르라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즐거워하지만 결국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그런 참담함이 그 사람 속에 깃들여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좋아한다기보단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결국 우리는 모두 익명으로 죽어갈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생에는 연극이 필요하다. 때때로 환상이 필요한 것과 같이. 질 낮은 비유로서가 아니라 누구의 생에나 왔다 가는 것들이다.

왠지 학원 원장에게 잘못 말했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인지 오늘 그 학원 원장이 꿈에 나왔다. 그곳과 지금 다니는 학원이 합병했다. 제길, 이라고 생각했다. 성녀란 테레사 수녀님만이 아니란 것을 알려주는 소설이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아니다. 결국 사랑이 성녀를 만든다는 점에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설이란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예전에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테러리스트가 될 거야 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대학도 졸업한 시점에 어쩌다 그런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그때 그 말을 듣고 같이 놀던 사람이 좀 화를 냈었다. 그때는 왜 그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달 전 어떤 아이가 전 테러리스트가 될 거예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면 너희 어머니가 너의 테러 행동으로 가장 먼저 죽을 거야, 그래도 된다면 테러리스트가 되라고 하자 그 아이는 겁을 먹었다.

모모는 종종 테러리스트가 되겠다고 말한다. 사랑이 테러리스트의 꿈을 만든다. 하지만 진짜 테러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이제 안다.

자연 법칙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모모. 사랑이 자연법칙을 이길 수 있나. 나는 잘 모르겠다만 종교에선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자연법칙이란 게 있다. 유일한 자연법칙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늬가 남는 것은 맞다. 그 무늬마저 지우면 다 끝인가? 그럼에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불가능하니 사랑하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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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사람이 원하는 게 보인다.  

그 안에서 행동하거나 밖에서 행동하거나(??? 무슨 뜻으로 썼지?) 

  

2. 마음은 안에서 노는데 

이야기는 그것을 밖에서 볼 수 있도록 한다. 

 이야기 속에 마음을 새겨넣어야 한다. 

 

3. 마음이 뭔가에 사로잡히면 검이 나오지 않는다.  

보려하지 말고 전체를 보아라.  

 

4. 단 한가지 걸리는 것은 

마음이, 너무도 평온하다. 생애 최강의 적을 앞에 두고 이게 뭐지? 필살의 싸움 중에 이래도 되는 걸까?  

머리가 차다.  

뒤에 있는 나뭇잎까지 똑똑히 보인다.  

 

5. 我 

우리가 추구하는 검은 그렇게 작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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