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처음엔 좀 작위적이구나 이제 보니 좀 그렇구나 했는데 결국 나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해버리고 그리고 우울증을 가져다줬다. 이 소설을 일고 읽고 좋았던 부분이 어디인가 보니 이전엔 이 부분이 좋았는데 또 어느새 다른 부분이 좋다. 아이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중이군 하지만 어느새 어른이 하는 헛소리보다 훨씬 나은 목소리가 들린다. 게다가 이 모든 인물들, 그러니까 유태인, 아랍인들이 섞여 있고, 창녀, 포주, 흑인들, 트랜스젠더 등 모든 것들이 함께 한다. 그건 좋다. 그건 좋지만, 이번엔 울지 않았다. 사랑해야 한다. 이 말은 참 이상한 말이다. 로맹 가리는 이 말을 위해 이 소설을 썼을 것이다.

 

 

-“나는 절대로 정상인은 안 될 거예요, 선생님. 정상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비열한 놈들뿐인걸요.”

“정상인을 말하는 거다.”

“나는 정상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예요, 선생님…….”

그는 다시 일어났다. 난 이때가 그걸 물어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를 심각하게 괴롭힌 문제였으니까.

“말해주세요, 선생님. 내가 열네 살인 건 확실한가요? 스무 살이나 서른 살이나 혹시 그 이상은 아니겠죠? 처음에는 열 살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열네 살이라고 하잖아요. 나이를 좀더 올려줄 수는 없나요? 혹시 내가 난장이는 아니겠죠? 아무리 정상이 아니고 남다르다고 해도 난쟁이가 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거든요.”

카츠 선생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게 좋은 소식을 들려주게 된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아니다. 모모야. 넌 난쟁이가 아니야. 의학적으로 말해주는 건데, 너는 열네 살이 맞다. 로자 부인은 가능한 한 너를 오래 붙들어두고 싶어했어. 부인은 네가 떠날까봐 두려웠던 거야. 그래서 네가 열 살밖에 안 되었다고 했던 거란다. 내가 좀더 일찍 말해줄 걸 그랬구나…….”

그는 미소지었다. 그것이 그를 더욱 슬프게 보이게 했다.

“하지만 그건 아름다운 사랑이었기 때문에 내가 말을 할 수 없었던 거야.”




 

면접을 보러갔을 때 원장이 어떤 책을 가장 재밌게 읽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자기 앞의 생이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매번 바뀌지만 어쨌든 그때는 이 소설이 생각났다. 그 이후 다시 읽어봐야지 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아무런 타의의 강요 없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이긴 하다. 세 번 봤다.

나는 로맹가리를 좋아한다. 어쩌면 그의 독특한 이력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의 독특한 이력 속에 숨겨진 생각들, 그가 했다는 말, 나는 인정을 받지 못한 게 아니라 무명이었을 뿐이네, 라는 그의 술회가 좋은지도. "나는 익명으로 남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익명의 시골 마을에서 익명의 여자와 익명의 사랑을 나누어 역시 익명의 가족을 이루고 익명의 인물들을 모아 새로운 익명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라는 술회.

그 때문에 에밀 아자르라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즐거워하지만 결국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그런 참담함이 그 사람 속에 깃들여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좋아한다기보단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결국 우리는 모두 익명으로 죽어갈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생에는 연극이 필요하다. 때때로 환상이 필요한 것과 같이. 질 낮은 비유로서가 아니라 누구의 생에나 왔다 가는 것들이다.

왠지 학원 원장에게 잘못 말했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인지 오늘 그 학원 원장이 꿈에 나왔다. 그곳과 지금 다니는 학원이 합병했다. 제길, 이라고 생각했다. 성녀란 테레사 수녀님만이 아니란 것을 알려주는 소설이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아니다. 결국 사랑이 성녀를 만든다는 점에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설이란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예전에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테러리스트가 될 거야 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대학도 졸업한 시점에 어쩌다 그런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그때 그 말을 듣고 같이 놀던 사람이 좀 화를 냈었다. 그때는 왜 그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달 전 어떤 아이가 전 테러리스트가 될 거예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면 너희 어머니가 너의 테러 행동으로 가장 먼저 죽을 거야, 그래도 된다면 테러리스트가 되라고 하자 그 아이는 겁을 먹었다.

모모는 종종 테러리스트가 되겠다고 말한다. 사랑이 테러리스트의 꿈을 만든다. 하지만 진짜 테러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이제 안다.

자연 법칙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모모. 사랑이 자연법칙을 이길 수 있나. 나는 잘 모르겠다만 종교에선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자연법칙이란 게 있다. 유일한 자연법칙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늬가 남는 것은 맞다. 그 무늬마저 지우면 다 끝인가? 그럼에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불가능하니 사랑하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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