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시티 - 죽은 자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는 시티!
케빈 브록마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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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은 좋다. 하지만 번역소설은 싫다. 어딘가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외국어를 좀 배워볼 생각을 해야할 텐데 게을러서 그렇지도 못하다. 늘 책을 읽고는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투덜이처럼 굴 뿐이다.

소설은 리듬이다. 단어 배치를 통한 리듬, 문장의 길이를 통한 리듬. 그 리듬이 좋아야 한다. 근데 번역 소설을 읽는 동안은 어떤 소설을 읽어도 딱딱함은 기본 조건으로 따라붙는다. 어딘가 딱딱하다. 번역자가 번역하는 동안의 딱딱한 마음 같은 게 글자들에 들러붙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글자들에 영혼이나 음악 같은 게 깃든다고 믿는 부류다. 그런 믿음을 아무리 버리려 해도 그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로라, 시티 괜찮은 소설이다. 바이러스가 지구를 뒤덮어 지구의 남극에 남겨진 단 한 여자, 로라와 그녀의 기억 속의 사람들이 사는 죽음 이후의 도시 이야기가 교차하며 펼쳐진다. 하지만 지구에 남은 단 한 명이란 생각이 잘 들지는 않는다. 고독 같은 것을 잘 느낄 수가 없다. 때때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구에 남은 단 한 명의 고독이라면 마음을 후벼팔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다. 살려는 힘겨운 투쟁 같은 것에 대해 잠깐씩 생각해볼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어떤 사람들이 시티를 이룰까 궁금하긴 하다.

시티 부분은 너무 영화스럽달까 하는 면들도 있다. 맹인 이야기나 루카 이야기 같은 경우 그렇다. 
 

-이 느낌은 어쩌면 소설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데다 기대가 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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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즉,  

사람에게 상냥해질 수 있다는 게 아닐까?" 

 

누가 내게 어른이 된다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아름다운 영화다. 사람에게 상냥한 영화라고 할까.  

"카모메 식당" 감독의 첫영화, 그 희안한 동화의 세계를 훨씬 더 귀엽게 보여준다.

타문명과 갈등을 겪는 이발소 아줌마와 아이들 이야기를 통해 타자와 상냥하게 함께하는 풍경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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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정지아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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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을 읽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읽었다. 그보다 오래 전 문예지에서「순정」을 읽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읽고 한동안 가만히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읽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금 내가 이 소설집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에 대해 넉두리를 해보아도 마치 흙바닥에 하는 아이들 놀이와 다를 게 없을 것 같아 차마 뭐라 하고 싶지가 않다. 「봄빛」에 나온 뚜부를 두고 하는 두 노인의 대화나 「소멸」에 나온 대사 “내 새끼 그래 시상에 나와봉께 재미난가?”/ “이” 이런 대화가 왜 고여드는지 설명하는 일은 힘겹다. 아니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해본들 되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어떤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설명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집은. 전하려 해도 몇 마디 말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딱 이 이야기들 속에서만 전해질 수 있는 것들로.
 

나는 마음 같은 것을 잘 믿지 않는다. 마음은 이기적이고 마음은 영악하고 마음은 순간적이므로. 그래서 마음 같은 것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소설이 마음을 다루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떻게 여태 그것을 몰랐을까. 그런데 이 소설집에는 내가 돌보려 하지 않았던 마음이 있다. 마음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영악하고 순간적이지만 그뿐은 아니다. 그 이외의 마음은 말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아무리 해도 말이 되지 않아 소설을 쓰는 것인가 보다. 아무리 아무리 해도 말이 되지 않는 마음을 이야기 속에 담아내는 일이 소설을 쓰는 일인가 보다. 
 

「양갱」을 읽다가 엄마가 발을 감싸주던 게 생각났다. 집에 가면 발이 차가우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종종 엄마가 발을 감싸주곤 했다. 지금도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발이 차갑구나 라고 생각하며 새우처럼 웅크려 발을 이불 속에 집어넣는다. 그러면 쓸쓸해진다. 정지아 선생님은 내가 꽁꽁 묶어둔 눈덩이 같은 것을 녹인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의 반응들을 다 눈덩이로 만들어서 뭉쳐두고 있었는데 그만 그 눈덩이가 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것 같다.  그것을 끝내 말로 하자면 쓸쓸함일까. 살아간다는 일의 쓸쓸함. 우리는 영원한 것이 없음을 받아들이는 데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봄빛은 생떼난 아이처럼 천지사방 흩날리는 흙먼지를 오냐오냐 다독이고, 생명을 틔우기 위해 마른 흙을 풀썩풀석 들이받는 새싹의 여린 손을 오냐오냐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손길이 꼭 저렇게 보드라울 거라고 건우씨는 생각했다. 작은어머니의 눈물도 잊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끝순이 딸내미의 자지러지는 울음도 잊고, 안주머니의 통장도 까맣게 잊고, 건우씨는 봄빛에 우두커니 몸을 내맡겼다. 마당 한편에서는 키만 멀쑥하니 자란 채 꽃이나 아니나 서너 망울 피기도 전에 떨궈버린 지난여름의 봉숭아 몇그루를 거름 삼아 두툼한 떡잎이 젖이나 되는 양 봄빛을 쑥쑥 빨아먹고 있었다.' 

-<못>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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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da 2009-01-07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시면 아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편집증 환자가 앉아 있는 광장 

 

헛것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자세로 소나기, 내린다. 문득 허공에 그어지는 사선 사이, 황혼의 시청 앞을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는 사람들. 지나가라 지나가라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라. 견딜 수 없이 느린 속도로 생애 너머를 지나는 구름. 물론, 

 

누구나 제 삶을 의심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가던 길을 가기 위해 문득 유턴하는 관광 버스. 지금 당신이 나를 의심하듯, 나도 나를 의심한다. 한 여자가 머나먼 골목의 나와 의아한 표정을 길 끝을 바라본다. 헛것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자세로, 

 

비 내린다. 새한빌딩의 가장 아래 계단에 앉아 광장을 바라본다. 깜빡깜빡 졸며 회상하는 일생. 이쯤이면 괜찮을 것이다, 이쯤이면 괜찮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혹은 집도 길도 아닌 오후의 술청에 들어 죽은 애인과 술 한 잔 하는 꿈. 우리를 위한 비, 

 

내린다. 저것은 헛것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자세다. 그러므로 당신은 지하도 계단을 내려가며 굽 높은 신발을 고쳐 신는 것이다. 나는 시선을 돌려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뒤돌아보는 자들에 대한 혐오. 그러므로 지나가라, 가능한 빨리 지나가라. 내가 나를 의삼하는 만큼 집요한 자세로, 구름을 향해 날아가는 광장의 비둘기. 비에 젖은 날개. 

 

-이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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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연약한 재료들 

 

밤이란 일종의 중얼거림이겠지만 

의심이 없는 

성실한 

그런 중얼거림이겠지만 

 

밤은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않고 

맹세를 모르고 

유연하고 겸손하게 밤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중 

 

죽은 이의 과거가 빈방에서 깊어가고 

소년들은 캄캄한 글씨를 연습하느라 손가락만 자라고 

늙은 개의 이빨은 밤마다 

설탕처럼 녹아가는데 

 

신축건물이 들어서자 

몇 개의 골목이 중얼중얼 완성되고 

취한 남자는 검게 그을린 공기 속으로 흘러가고 

밤은 그의 긴 골목이 되었다가 

그가 되었다가 

 

드디어 외로운 신호처럼 

보안등이 켜지자 

개의 이빨은 절제를 모르고 

 

갓 태어난 울음들이 

집요하고 가득한 밤을 향해 

오늘도 녹아가는 이빨을 

필사적으로 세우고 

 

-이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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