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
정지아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못」을 읽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읽었다. 그보다 오래 전 문예지에서「순정」을 읽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읽고 한동안 가만히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읽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금 내가 이 소설집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에 대해 넉두리를 해보아도 마치 흙바닥에 하는 아이들 놀이와 다를 게 없을 것 같아 차마 뭐라 하고 싶지가 않다. 「봄빛」에 나온 뚜부를 두고 하는 두 노인의 대화나 「소멸」에 나온 대사 “내 새끼 그래 시상에 나와봉께 재미난가?”/ “이” 이런 대화가 왜 고여드는지 설명하는 일은 힘겹다. 아니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해본들 되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어떤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설명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집은. 전하려 해도 몇 마디 말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딱 이 이야기들 속에서만 전해질 수 있는 것들로.
 

나는 마음 같은 것을 잘 믿지 않는다. 마음은 이기적이고 마음은 영악하고 마음은 순간적이므로. 그래서 마음 같은 것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소설이 마음을 다루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떻게 여태 그것을 몰랐을까. 그런데 이 소설집에는 내가 돌보려 하지 않았던 마음이 있다. 마음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영악하고 순간적이지만 그뿐은 아니다. 그 이외의 마음은 말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아무리 해도 말이 되지 않아 소설을 쓰는 것인가 보다. 아무리 아무리 해도 말이 되지 않는 마음을 이야기 속에 담아내는 일이 소설을 쓰는 일인가 보다. 
 

「양갱」을 읽다가 엄마가 발을 감싸주던 게 생각났다. 집에 가면 발이 차가우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종종 엄마가 발을 감싸주곤 했다. 지금도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발이 차갑구나 라고 생각하며 새우처럼 웅크려 발을 이불 속에 집어넣는다. 그러면 쓸쓸해진다. 정지아 선생님은 내가 꽁꽁 묶어둔 눈덩이 같은 것을 녹인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의 반응들을 다 눈덩이로 만들어서 뭉쳐두고 있었는데 그만 그 눈덩이가 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것 같다.  그것을 끝내 말로 하자면 쓸쓸함일까. 살아간다는 일의 쓸쓸함. 우리는 영원한 것이 없음을 받아들이는 데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봄빛은 생떼난 아이처럼 천지사방 흩날리는 흙먼지를 오냐오냐 다독이고, 생명을 틔우기 위해 마른 흙을 풀썩풀석 들이받는 새싹의 여린 손을 오냐오냐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손길이 꼭 저렇게 보드라울 거라고 건우씨는 생각했다. 작은어머니의 눈물도 잊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끝순이 딸내미의 자지러지는 울음도 잊고, 안주머니의 통장도 까맣게 잊고, 건우씨는 봄빛에 우두커니 몸을 내맡겼다. 마당 한편에서는 키만 멀쑥하니 자란 채 꽃이나 아니나 서너 망울 피기도 전에 떨궈버린 지난여름의 봉숭아 몇그루를 거름 삼아 두툼한 떡잎이 젖이나 되는 양 봄빛을 쑥쑥 빨아먹고 있었다.' 

-<못>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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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da 2009-01-07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시면 아실 거예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