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증 환자가 앉아 있는 광장 

 

헛것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자세로 소나기, 내린다. 문득 허공에 그어지는 사선 사이, 황혼의 시청 앞을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는 사람들. 지나가라 지나가라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라. 견딜 수 없이 느린 속도로 생애 너머를 지나는 구름. 물론, 

 

누구나 제 삶을 의심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가던 길을 가기 위해 문득 유턴하는 관광 버스. 지금 당신이 나를 의심하듯, 나도 나를 의심한다. 한 여자가 머나먼 골목의 나와 의아한 표정을 길 끝을 바라본다. 헛것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자세로, 

 

비 내린다. 새한빌딩의 가장 아래 계단에 앉아 광장을 바라본다. 깜빡깜빡 졸며 회상하는 일생. 이쯤이면 괜찮을 것이다, 이쯤이면 괜찮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혹은 집도 길도 아닌 오후의 술청에 들어 죽은 애인과 술 한 잔 하는 꿈. 우리를 위한 비, 

 

내린다. 저것은 헛것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자세다. 그러므로 당신은 지하도 계단을 내려가며 굽 높은 신발을 고쳐 신는 것이다. 나는 시선을 돌려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뒤돌아보는 자들에 대한 혐오. 그러므로 지나가라, 가능한 빨리 지나가라. 내가 나를 의삼하는 만큼 집요한 자세로, 구름을 향해 날아가는 광장의 비둘기. 비에 젖은 날개. 

 

-이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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