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소나타 - Tokyo Son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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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도쿄 소나타>, 제목이나 영화 소개로 봐서는 천재 소년의 성공담인가 싶었다. 이미 <피아노 소년>인가 하는 만화에서 본 거잖아. 그래도 감독을 믿고 보러 갔다. 그리고 영화는 천재 소년의 성공담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쿄 소나타>란 제목은 도쿄의 단상을 의미하는 거다. 지금까지 모두가 꿈이고 다시 태어나고 싶어 라고 말하는 기성세대와 그들의 다시 태어남의 현현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인 아이들의 이야기.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만나는가에 대해 일본 중심지를 통해 결국 일본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하는 기성세대의 자식들은 그들에게 눌려 기성세대가 다시 태어나면 살고 싶던 대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

주인공 켄지와  천식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피해 미친듯이 달리는 가출한 그의 친구가 그 반증이다.

또는 이런 질문을 한다. “그럼 뭘해야 하죠?” 아르바이트를 하는 첫째 아들의 질문이다. 그에 대해서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한다. 무엇이 행복인지 무엇이 정의인지 자신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르쳐줄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따라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켄지의 선생님은 그저 시스템에 맞춰 시간을 흘려보내자는 망령 같은 소리나 내뱉는다.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꿈 같은 에로만화밖에 없단 얘기다.

이 가족에게 위기가 현실화되는 것은 가장의 실직 이후. 고름이 터지는 것처럼 각자의 불안이 터져나와 이전까지 유지해오던 삶을 바꿀만큼 요동친다. 고름이 슬슬 터져나오는 모습은 사실적이다. 아빠는 아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행복을 강요하고 폭력적으로 돌변하고 엄마는 점점 어딘지도 모를 심연으로 가라앉은 채 누가 날 좀 일으켜주라고 말하지만 가족 중 아무도 듣지 못한다.

그러다 그만 죽음 근처로 흘러든다. 지금까지 영화는 순차적으로 진행됐지만 이 장면은 특이하게 역순행적으로 처리된다. 엄마는 집에 든 도둑을 따라나서 오픈카를 타고 바닷가 끝까지 가 자살을 꿈꾸고, 아빠는 청소부 일을 하며 몰릴 때까지 몰려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도망치다 차에 치인다. 큰 아들은 미군에 자원 입대하지만 자신의 행위가 지닌 의미(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에서 점점 내부로 파고들며 그 모순을 깨닫고 좀 더 내부로 들어가고자 한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영화는 개인의 행복, 가정의 행복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메시지를 확대하는 데 큰아들이란 장치를 둔다. 과연 이 사회에서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답을 찾지 못한다. 미국 혹은 미국이 대표하는 자본주의도 아니지만 자본주의를 이길 방법을 모른다. 바로 나의 현실이다. 켄지는 가출하려다 잡혀 구치소에서 밤을 보낸다. 꿈을 포기하자 곧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텅 빈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는 장면. 켄지는 구치소에서 나온 그 차림으로, 아빠는 차에 치인 뒤 노숙한 더러운 모습으로 밥을 먹는 장면. 큰아들은 여전히 답을 찾아 헤매느라 집에 없지만. 아침 햇빛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삶이 꿈이고 다시 살고 싶어하던 그 소망처럼.

마지막 장면은 켄지의 연주회. 켄지가 피아노 치는 모습은 이 때 한 번 나온다. 급식비를 삥땅쳐 교습소에 다닐 때, 교습소 원장의 이혼 소식은 전해오지만 켄지가 피아노 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장면을 보는데 눈물이 흐른다. 이 눈물은 연민인지 겨우 자신의 자리를 찾아내서 다행이라는 그런 마음인지 모르겠다.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 거의 꿈이고 실은 다 죽어버린 거잖아 하는 안타까움일 수도 있다. 어쨌든 켄지의 연주는 환상적이다. 그 앞에 피아노를 치던 아이가 단지 기교를 흉내냈다면 켄지는 음악을 살아있게 한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든다. 피아노를 치겠다는 켄지에게,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켄지의 소식을 들은 뒤 아빠는 그것은 입에 발린 말이라고 켄지를 다그쳤었다. 하지만 실제로 켄지는 만에 하나, 아니 그보다 더 적은 확률로 존재할 법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였던 것이다. 아빠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앞으로 되돌아가자. 아빠가 실직한 채 무료 급식을 받을 때,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직업 상담소를 오갈 때, 아빠처럼 멀쩡한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남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심지어 청소부 일을 가르쳐주던 선임조차 그와 똑같은 처지라 화장실에서 번듯한 양복으로 갈아입고 퇴근한다. 과연 그들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보다 더 못한 확률을 타고난 천재 아들을 키우고 있을까. 그 아이가 자신의 꿈에 안착해 꿈과 현실이 같은 면이 될 수 있을까. 차에 치였지만 다행히 죽지 않을 수 있고, 도둑을 따라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마 아빠의 고등학교 동창처럼 동반자살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어떻게든 삶을 꾸역꾸역 살아나가며 상처를 덧씌우고 그 상처가 상처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어갈 것이다. 다시 태어나면 다시 살아보리란 희미한 희망을 품지만 다시 태어난 자신의 자식들에겐 자신들도 모르는 행복을 강요하며 그들에게 불행의 올가미를 다시 덧씌우며. 
 

이미 되돌이키기기엔 너무 늦어버린 건가, 대지진이라도 일어나서 다 망하길 빌 수는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우린 잘못 살고 있는 걸까. 무엇으로 2000년 전의 천재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인생의 목적이라 되뇌던 행복을 찾아내 그것을 충족시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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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09-04-04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봤지만, 그간의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와는 달리 어떤 호러 코드도 없었는데도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 왠지 모를 공포가 밀려오는 영화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kangda 2009-04-04 23:58   좋아요 0 | URL
전 사실 이 감독 영화 좋다는 말만 듣고 못 봤는데요. 현실이야말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인 것을 다시 한번 확인....^^;;

프레이야 2009-04-04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봐야할 영화가 하나 더 늘었네요.

kangda 2009-04-0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감사합니다^^
 
카사블랑카 - Casablan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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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날로그틱한 인간이군

생각했다

 

유머와 위트와 낭만과 멋진 남자와 예쁜 여자가 있는 영화

영화란 이런 게 아닐까

 

 

필름포럼 옥상은 카사블랑카와 너무도 어울리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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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 - Coffee and Cigaret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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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는 별 세계에 있지 않다

바로 당신 곁에 있다

 

창작이란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일상을 포착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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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 - GHOST 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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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보러 간 공포 영화
더위를 싹 날려준 건 다름아닌 에어콘 바람

 
우뢰매식 공포영화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다

 

이런 식으로 대본을 쓴 게 아닐까

 

저기, 이거 런닝타임이 적어도 한 시간 반은 되야 되잖아

좀 더 끌자고

 

적어도 다섯 명은 죽어야지 공포스럽지

 

이거이거 어떻게 끝내지

그냥 대충 기어다니면 무섭잖아 그게 좋겠어

 

이래놓고 영화를 찍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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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 The 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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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가는 일은 즐겁다.

영화를 본다는 그 행위 자체보다 모든 사람이 어두컴컴한 가운데 화면에 집중해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재밌다. 같이 웃고 같이 놀란다.


'아~ 우리는 모두 인간이군요'

이런 느낌?

 

 

괴물은

시덥잖은 꿈이라든가 영화적이라는 미명 아래 뻔한 속임수가 없다.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괴물에게 하층민(?)의 자식이 잡혀갔다면

과연 우리 한국 사회는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게 이 영화의 기초다.

미국에 심히 의존한 우리의 국가성과

제 말을 할 줄 모르는 이들에 대한 높으신 분들의 태도(당연히 그런 말 안 들어준다)

매스컴의 조장에 따라 모두들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에 대비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풍경

생명은 무심히 희생당하고 그 희생당한 생명을 측은하게 여길 줄 모르는
 

괴물은 이러한 사회 구조이다.

이러한 사회를 만들고 그 구조에  길들여진 인간들이다.

 

영화 속 박해일의 말처럼

'좇까',

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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