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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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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책이 좀 많다. ‘많다는 기준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넓고 좋은 아파트를 책들에게 내어주고 빌라 반지하에서 월세를 산다거나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서재를 만들어 책을 소장할 만큼의 책을 가진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일단 내 책은 내 방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독립을 하면 내 방에서 내 집이 되겠지만) 몇 년 전에 10년간 사용해온 침대를 버리고 크고 튼튼한 책장을 들이면서부터 책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그러면서도 책을 세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이웃분이 책이 몇 권이냐 되냐며 물어봐주셔서 한 번 세어볼 기회가 있었다. 만화책과 영화 잡지를 포함해서 500권이 되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대략 550권 정도 된다. 읽지 않은 책보다 읽은 책이 많지만, 이렇게 계속 사 모으다가는 애서가인 척하는 장서가가 될 것 같아서 작년부터는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쪽으로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 중 절반은 읽다말고 사 모았지만 말이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통해 처음 만난 윤성근 작가님의 책은 그 뒤로 내가 침대 밑의 책을 찾아 읽으면서, 이번 책 책이 좀 많습니다는 세 번째로 만난 책이다. 여전히 책 이야기였다. 내 옆에 있고 우리 동네 사는 평범한 애서가 23명의 이야기. 23명 중에는 애서가인 동시에 장서가인 사람도 있었지만, 허름한 책꽂이 몇 개 있는 애서가에 관한 이야기가 분명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이며,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슨 책인지 물어보면 1초의 고민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애서가들 말이다.

 

단호한 성격이라 다른 사람 눈치 보는 걸 싫어하는 대학생 김바름씨는 그래도 마음이 흔들릴 때면 자본1판 서문 마지막에 마르크스가 옮겨 적은 신곡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중심을 잡는다고 한다. “너의 길을 걸어라, 누가 뭐라 하든지!Segui il tuo corso, e lascia dir le gent!"

그런 김바름씨의 이야기가 담긴 꼭지의 제목은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던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는데, ‘너의 책을 읽어라, 누가 뭐라 하든지였다.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읽는 책을 소개할 때면 너무 쉬운 책만 읽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건 아닐까?’하는 고민에 한 동안 읽을 책을 고를 때 망설였던 적이 있다. 나름의 슬럼프였던 그 시기를 지나올 수 있었던 건 그런 나를 인정하고, 그게 누구건 눈치 보지 않기로 결심한 덕분이었다. 쉬운 책만 골라 읽고 있는 건 사실이었고, 요 몇 년 사이에 많은 에세이를 읽게 된 건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책을 고르는 내 마음을, 마음보다 먼저 나가는 손을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그게 굳어져서 올해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서 읽기로 다짐했지만 말이다.

 

23명의 애서가 중 내가 가장 공감했던 애서가는 프리랜서 편집자 겸 여행 작가 이시우씨다.

 

제가 읽으려고 하는 책은 전부 사서 봅니다. 책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쫓기지 않고 차분히 읽어야 되니까 책을 사서 두고 읽는 게 여러모로 편합니다. 책 읽는 속도가 느린 탓도 있고요.”

 

한번 읽기 시작한 책은 밖에 나갈 때도 늘 갖고 다니기 때문에 가방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노트북과 다이어리, 필기도구, 두툼한 책까지 넣으면 꽤 무게가 나가는데, 오래전부터 그냥 그렇게 다녀서 그런지 특별히 불편하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호기심에 전자책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들기는 하지만 역시 종이책이 좋습니다. 종이만의 느낌, 만지고, 밑줄 긋고, 접고 하는 기능을 전자 기기가 구현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종이가 주는 그 느낌은 절대 아니니까요. 또 제가 평소에 메모를 즐기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종이와 필기도구 같은 아날로그에 더 마음이 끌립니다.”

 

이씨는 몇 해 전 읽은 메모의 기술에서 읽은, 메모하는 목적은 쓰고 나서 잊어버리기 위해서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습관처럼 무엇이든 읽을거리를 가까이 두고 살다보니 생활의 일부분이 된 느낌을 받는다.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든 늘 수첩과 책, 또는 책이 아니더라도 다른 읽을거리를 꼭 챙긴다. 이씨는 이제 읽을거리가 곁에 없으면 불안하다고 한다.

 

이상이 이시우씨의 인터뷰 중 발췌한 구절들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떤 작가는 때로 완전히 나하고 똑같은 삶을 산 것처럼, 또는 나하고 똑같은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끌리는 경우가 있다.'는 이 책에서의 구절처럼, 이시우씨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에세이는 조금 더 빨리 읽는 편이지만, 좀 더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소설의 경우 읽는 속도가 느린 탓에 빌려 읽지 못해서 대부분 사서 읽는 편이다. ‘해밀(본명을 닉네임으로 대신했다)의 가방은 늘 무겁다는 친구들의 말처럼, 내 가방은 책 뿐만 아니라 늘상 챙겨 다니는 노트와 필기구 덕분에 꽤 무게가 나가는 편이다. 오래전부터 그냥 그렇게 다녀서 그런지 특별히 불편하다는 생각은 없는 것도 똑같았다.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좋아하는 것도, 좋아하는 이유도 같았고 메모의 기술에서 메모하는 목적은 쓰고 나서 잊어버리기 위해서다라는 말을 기억에 남는 말로 꼽은 것도 같았다. 끝으로, 읽을거리가 곁에 없으면 불안한 것까지. 온라인에서 내 취향과 맞는 사람의 글을 읽게 되면 내가 쓴 글 같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랬다.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공감했던 부분이 있는가 하면, 배울 점도 많았다.

 

1.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머릿속에 든 게 많아도 그것을 버무려 자기 철학을 만들지 못하면 아는 척밖에 할 수 없(p.92)으니 자기 철학을 만드는데 힘쓸 것.

 

2. 서점은 책을 사러 가는 곳이고, 헌책방은 책을 만나러 가는 곳이라고. (중략) 그렇게 낯선 책들 중에 하나를 골라 읽어보면 뜻밖의 보물을 찾을 때가 있(p.138)으니 헌책방을 가까이 할 것.

 

3. 내가 갖고 있으면 몇 년 동안 책장 안에서 빛을 못 볼 운명인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장 필요한 책일 수도 있(p.148)으니 책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정리할 책은 정리할 것.

 

물론 모든 애서가에게는 책을 사랑하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겠지만, 내게 부족한 점을 채워 넣는다면 보다 넓고 깊은 애서가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열심히 밑줄 치고 메모하가며 읽었다.

 

글을 마무리하자니, 문득 작년에 재밌게 읽은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이 떠오른다. 장서의 괴로움이 책 제목처럼 장서의 괴로움을 호소하던 애서가의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장서의 괴로움을 기꺼이 짊어지고 애서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책이었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오카자키 다케시 『장서의 괴로움』 ]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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