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캠브릿지 강의록을 다시 꼼꼼하게 읽고 있다. "논고"나 "탐구"를 읽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그 깊이에 의구심을 느낀 적이 있다면(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 책을 읽어 봐도 좋을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이 의심의 여지없이 심오한 철학자라는 걸 단박에 느끼게 될 테니까. 이 책에 나타난 비트겐슈타인은 럿셀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철학자다. 비트겐슈타인이 육성으로 자신의 철학에 대해 해명한 자료가 그토록 많음에도 그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이해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그를 기를 쓰고 오해하려 하지 않은 한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점을 점점 의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와이즈만이 기록한 대화록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단 한번 하이데거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데 웃기게도 필로소피컬 리뷰에 실려 출판되었을 때, 와이즈만의 원래 대화록에서 "하이데거에 대해서: 나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불안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 수 있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삭제되어 버렸다. 이 말이 삭제된 이유는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바로 이와 같다! 세상엔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차라리 이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 왕성하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철학자들의 세계는 다를 거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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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가 독서 주간이라서 강의가 없다. 그래서 이번 주 내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할까 했는데... 집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지더라. 주로 지난 주말에 빌려온  비트겐슈타인의 1930-1932 캠브릿지 강의를 읽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여전히 가장 불투명한 철학자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그 불투명성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든 면이 있다. 강의록, 대화록, 철학 노트 등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고, 비트겐슈타인과, 예컨대 "논고"를 한 줄 한 줄 토론한 사람이, 내가 알기로 적어도 세 명은 되기 때문이다(럿셀, 램지, 노만 맬컴).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번 느끼게 되는 것은, 특히 초기 철학에 관한한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가장 훌륭한 해석서는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노트나 대화록, 강의록 등이라는 점이다. 당연한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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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공부, 이후에 푹 놀았다. 밤에 테레비로 지옥의 묵시룩을 봤다. 말이 필요없는 걸작. 광기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인간 광기 일반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하는 것은 이 영화에 대한 가장 끔찍한(!) 오독이 될 것이다. 이런 오독에 기대어 사람들은 곧장 허무주의자가 되고 현실주의자가 되고 보수주의자가 된다. 즉, 알리바이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말을 비틀어 말하자면, 전쟁터의 군인들의 광기는 높고 화려한 빌딩 숲의 사무실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리는 자본가의 광기와 많이 다르다. 이러한 분별력만이 우리를 진정한 현실주의자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일요일밤, 자기 전에 보기에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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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고, 철학 토론을 했고, 새로운 철학자를 발견했고, 감질나는 진전에 애를 태웠고, 일주일 안에 이 문제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고 말 것이야, 라는 다짐과 함께,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왔다. 미쳐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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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4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ekly 2012-11-05 18:37   좋아요 0 | URL
하하 말씀 감사합니다. "끝도 안나는 공부를 끝내다", 멋진 말씀입니다.^^
 

스피노자의 관념 이론을 명제 태도와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심리 철학 에세이 주제로 구상한 것인데, 스피노자에 과도한 시간을 쏟는 것을 정당화하려 만들어낸 알리바이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렇다면 나중에 쫄딱 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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