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캠브릿지 강의록을 다시 꼼꼼하게 읽고 있다. "논고"나 "탐구"를 읽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그 깊이에 의구심을 느낀 적이 있다면(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 책을 읽어 봐도 좋을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이 의심의 여지없이 심오한 철학자라는 걸 단박에 느끼게 될 테니까. 이 책에 나타난 비트겐슈타인은 럿셀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철학자다. 비트겐슈타인이 육성으로 자신의 철학에 대해 해명한 자료가 그토록 많음에도 그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이해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그를 기를 쓰고 오해하려 하지 않은 한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점을 점점 의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와이즈만이 기록한 대화록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단 한번 하이데거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데 웃기게도 필로소피컬 리뷰에 실려 출판되었을 때, 와이즈만의 원래 대화록에서 "하이데거에 대해서: 나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불안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 수 있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삭제되어 버렸다. 이 말이 삭제된 이유는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바로 이와 같다! 세상엔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차라리 이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 왕성하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철학자들의 세계는 다를 거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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