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독립 투표가 부결되었다. 제삼자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므로), 아쉽기도 하다(뭔가 커다란 변화가 있을 뻔 했는데). 하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것은 투표 운동 기간 동안 영국 사람들이 보여 준 성숙한 모습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영국 사람들은 분명히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었고 나는 그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투표 운동 기간 동안 영국 공영 방송 비비씨가 보여 준 모습은 어떠했을까? 독립했을 경우의 난감한 상황과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국수주의적인 태도를 비판해 댔을까? 아니더라. 철저하게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면 중립인 척 하면서 실은 외면을 하고 말았을까? 아니더라. 스코틀랜드가 독립하여 노르딕 국가들을 모델로 할 경우의 긍정적인 모습과, 또 그 실천의 어려움도 같이 보여주더라.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작가들이 겪은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더라. 제삼자 입장에서 비비씨의 이러한 다큐먼터리를 보고 나는 "아,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나름 비젼이 있는 거구나!" 하고 느낄 정도였다. 

아마 비비씨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비씨에 고무되어 독립파로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은 아닌가? 나는 그런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독립 투표 전후로 비비씨의 위상은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비비씨를 공정한 보도자로, 믿을 수 있는 매체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꺼꾸로 비비씨가 중립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를 상상해 보자. 어쩌면 그것은 비비씨 종사자들의 악몽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정말로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게 되어 버렸다면 비비씨는 국가 반역죄를 저지른 셈이 되지 않는가? 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비비씨 사람들에 동의한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국민들(스코틀랜드 사람을 포함하여)에게 제공하여 더 나은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 공영 방송의 존재 이유라면, 비비씨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사회가 존경스러운 것은 이처럼 절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언제나처럼 꿋꿋하게 해내는 기관들,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마 어떤 정치인도 비비씨에 압력을 넣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국민들 또한 그랬을 것이다(물론, 비비씨를 비난하는 댓글 하나를 비비씨 사이트에서 본 기억이 나긴 한다). 

이에 비한다면 한국의 문제는 매우 분명하다. 한국의 장점은 더 실용적이고 덜 이념지향적인 것이지만, 이것이 때로는 지나치게 상황 논리적으로 흘러가 버릴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법원도 검찰도 상황 논리(정치 논리)가 최우선적인 고려 사항이 된다. 어제 한국 식당에서 읽은 신문 기사에 따르면 아파트 관리실도 전체 주민에 대한 공정한 서비스보다는 부녀회를 더 잘 모시는 것이 우선적 고려 사항인 것 같다. 한국의 대통령이나 아파트 단지의 부녀회장이란 완장은 무엇을 뜻할까? 원칙 적용의 예외가 되는 것! 대통령이니까 국회의원이니까 남자니까 여자니까, 혹은 늙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허다한 사람들이 예외로 빠져 나가버리면 원칙의 적용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바보가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어제 읽은 신문에 따르면 김부선씨처럼 싸워야 할 것 같다. 그런 뜻에서 멀리에서나마 김부선씨께 존경을 표하고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뭔가 앞뒤가 안맞는 글이 되어 버린 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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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2014-10-0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비비씨에 대해 너무 일방적인 예찬을 한 것 같다. 더 알아보니 비비씨가 꼭 칭찬받을 만한 일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스코틀랜드 독립과 관련해서도 공정성을 유지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또, 예를 들면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에 대해 공정한 보도를 했는가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비판적 시각이 엷어진다면 비비씨도 강자(정권) 쪽으로 편향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비판적으로 감시하는 시선들이 있고, 그것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비비씨의 공정성을 만들게 된 것이리라.
 

내일 스코틀랜드가 독립 투표를 한다. 반대가 대체로 앞서는 분위기이지만 대단히 박빙이기 때문에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것 같다. 만약 찬성이 우세하여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확정된다면 참으로 역사적인 일일 것 같다. 영국에 살면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대단한 사건을 놓치면 안되겠다 싶어 내 생각을 적어놓는다.

사실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한 일 주일 전쯤에 여론조사에서 독립 찬성파가 처음으로 우세를 보인 적이 있었다. 일시적이긴 했지만 갑자기 분위기가 확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영국의 총리를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이 다 스코틀랜드로 날아갔다. 어제 영국 총리는 "당신들이 보수당을 싫어하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보수당이 영원히 집권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제발 부탁이다. 떠나지 말아달라."고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이야기 했다. 여왕도 나섰다. 여왕은 이번 일에 절대 개입하려 하지 않았었다. 독립과 관련된 일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대변인을 통해 미리 선을 그어놓았었다. 그러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여왕이 나서야 한다는 압박이 심해졌는가 보다. 여왕은 "잘 생각해서 선택하라" 정도의 교과서적이고 애매한 말을 내놓았다. 여왕의 충고가 독립 투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심각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작은 나라다. 그래서 독립하여 자립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통화 문제라든지, 독립 찬성 결과가 나오는 순간 스코틀랜드 금융 기관들의 뱅크 런 가능성이라든지 하는 수 많은 예측 가능한 난제와 또, 경제계에서 주로 나오는 협박도 있다(스코틀랜드에 있는 기업 본사를 다른 데로 옮긴다든지 하는). 

그러나 나는 이 모든 부정적 전망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는 독립해서도 파운드화를 계속 쓰려 하는데 잉글랜드 중앙 은행에서는 이에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말한 바가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 중앙 은행이 이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파운드화 경제 권역의 몰락을 피하려면 스코틀랜드 독립파가 기대하는 대로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와 파운드 통화 동맹을 맺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독립이 확정될 경우 스코틀랜드 은행들의 뱅크 런을 방지하기 위해서 잉글랜드 측은 이미 많은 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건 말건 두 나라는 적어도 한 세대 동안은 공동 운명체일 수 밖에 없다. 잉글랜드에서 일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비자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도 있던데, 당연히 비자 협정을 맺어 현상을 유지하게 할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작은 나라에 작은 인구를 가진 소국이다. 당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북해 유전이다. 그래서 석유만 믿고 독립하려 한다는 비판이 많다. 스코틀랜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모델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인 것 같다. 특히 노르웨이와 같은 소국이면서 잘 사는 나라. 솔직히 내 생각에는 이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 한동안은 물론 석유 자원에 기대야 겠지만 스코틀랜드 국민들은 잘 교육되고 합리적이고 투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정된 석유 자원을 갖고 흥청대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든지 고부가가치의 생존 전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영국 정부와 다른 노선을 취하면서 말이다. (독립 투표의 찬반이 50 대 50으로 갈리는 와중에서도 선거 운동 양상은 차분해 보인다. 비비씨에서 찬반 대표를 스튜디오에 불러 토론을 하는데 의자 하나씩 갖다놓고 나란히 무릅을 맞대고 차분히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런 합리적인 국민들이니 독립해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된다.)

내 생각에 스코틀랜드의 독립으로 진정한 타격을 받는 쪽은 잉글랜드일 것 같다. 무엇보다도 영국(유나이티드 킹덤)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진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경우 유니언잭은 사라진다. 유니언잭 깃발에 스코틀랜드 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유나이트드 킹덤이라는 정식 국호도 사라진다. 이제는 갈라선 킹덤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브리튼이라는 말도 영국을 호칭하기 위해 쓸 수 없다. 브리튼섬의 북부 3/1이 스코틀랜드이기 때문이다. 국토의 3/1, 인구의 10% 정도, 그리고 정체성도 잃고 나면 영국의 위상은 추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은 이미 자신들이 세계를 이끌고 가는 강국 중 하나라는 생각을 버리기 시작했다. 이런 현실 인식이 더 가속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영국은 어디로 갈까? 영국 테레비젼의 한 방송에서 기자가 터키 사람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터키는 유럽인가 이슬람인가?' 이 우문에 터키 사람들은 이렇게 현답을 말했다. "터키는 유럽과 이슬람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마치 영국이 미국과 유럽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듯이." 

어떤 의미에서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는 바로 이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스코틀랜드는 역사적으로 잉글랜드를 싫어한다. 그런 국민 감정이 이번 투표의 주된 동기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를 감수하고서라도 독립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이번에 50%에 육박하게 된 것은 현 집권 세력 즉, 보수당에 대한 혐오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대처 수상 이래로 스코틀랜드 내의 보수당은 거의 씨가 말랐고 현재도 보수당 의석은 한 석이든가 전무이든가 한 상태다. 스코틀랜드 사람들로서는 자신들이 거의 선택하지 않은 정권이 자신들을 통치한다는 현실에 대한 반발감이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선거가 독립 반대로 끝났으면 좋겠다. 별 이유는 없고 그냥 영국이 단일한 정체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아마, 특히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꽤 많으리라 생각한다. 보수당 정권이 이끄는 대로 자유주의적 전략을 계속 가져가도 좋을 것인가 등등의 고민 말이다(작년엔가는 우체국을 민영화시켰다). 다른 대안은 없는가? 한쪽에서는 대안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런던은 거대한 국제 도시가 되어 해외로부터 엄청난 투자를 유치해 온다. 그리고 그 수익을 영국 전체가 나눈다. 그러니 자유주의적 전략을 쓰지 않고는 영국 전체가 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런던과 런던 나머지 지역의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지고 있다. 잉글랜드 북부 어떤 마을에 대한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대처 정권때 산업 기반이 싹 사라진 후 마을 전체가 거의 복지 수당에 의존해 사는 현실. 테스코(한국으로 말하면 이마트) 카운터 말고는 딱히 일자리도 없는 현실... (영국은 산업 선진국이지만 놀랍게도 자국 기업이 보유한 자동차 회사가 없다. 다 팔아버렸으니까. 또, 놀랍게도 독일은 선진국이지만 아직도 연필을 만드는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간다. 영국과 독일의 차이는 독일이 훨씬 많은 옵션을 갖고 있다는 것이리라.) 이런 고민들은 영국 사람들이 알아서 잘들 하겠지...

[딴 나라이야기였다. 한국은... 뉴스를 거의 보지는 않지만, 네이버에 프리미어 리그 뉴스를 보러 들어갈 때면 제목은 그래도 스쳐 보게 된다. 야권에서 난리가 있는 모양이다. 자세한 내용을 보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인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겨도 국민들이 여권을 옹호해 주고 야권에는 표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 야권은 무기력에 빠지고 위축되고 분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렇게 난리가 났다고 야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지난 밤에 잠을 자지 않았으니 지금 졸린 것과 똑같은 생리적 현상이니까. 현재 한국 정치는 시스템의 실패를 겪고 있는 것 같다. 반전의 계기는 무엇일까? 글쎄... 반전의 계기는 무엇일까? 아마 반전의 계기보다는 일말의 반전의 계기라도 없애버리려는 정권의 활약이 더 돋보이는 것 같다. 쳇... 뭔가 희망적인 이야기로 이야기를 맺고 싶었는데 찾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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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9-1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때 영국에 거주했던 사람으로서 스코들랜드 독립 여부가 투표에 부쳐진다는,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를 듣고 놀라웠는데 weekly님의 이 글을 읽으니 마치 정리 잘 된 신문 기사를 읽는 듯 하네요.
여왕이 최소한의 관여만 하는 모습, 총리가 스코들랜드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모습과 대조를 이루어 참 영국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영국 우체국이 민영화 되었다는 것도 지금 처음 알았어요. 그럼 더 이상 Royal Mail이 아닌거네요?

weekly 2014-09-19 23:11   좋아요 0 | URL
예, 저 엄청난 일을 참 영국스럽게 잘 치뤄낸 것 같습니다. 오늘 J K 롤링이 민주적인 절차로 일을 처리해 낸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고(트윗), 어제자 가디언 사설은 민주적 절차로 분리 독립 문제를 처리해 내는 영국의 모습을 세계는 부러워 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엄청 부러운 일입니다.

로열 메일 이름은 그대로예요. 여기서도 팔릴 당시 헐값 매각 논란이 있었구요...

마태우스 2014-09-1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많은 것을 알게해주는 글이네요 감사드립니다

weekly 2014-09-19 23:11   좋아요 0 | URL
말씀 감사합니다.
 

1. 

8월10일부터 14일까지 웨일스에 다녀왔다. 그동안 유럽 국가들을 여행 할 때 목표지는 주로 도시, 갤러리, 박물관 등이었는데 이번 웨일스 여행은 거의 바다와 산으로만 다녔다. 첫 숙박을 한 스완지가 마침 딜런 토마스의 고향이라 딜런 토마스 센터와 스완지 박물관의 딜런 토마스 섹션을 잠시 둘러 본 것을 제외하면.


해안가 트래킹 코스나 800미터 높이의 어떤 산에 오른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마 내년에도, 아마 매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웨일스에 대한 기억은 나의 모든 디지털 기기의 월 페이퍼를 장식하고 있다.


2. 웨일스의 800미터 정도 높이의 산을 오를 때의 일이다. 길이 완만하고 잘 관리되어 있어 오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정상 부분만 15미터 높이로 약간 가파른 성 모양이었다. 약간 험해 보였지만 높이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꼭대기에 올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성 모양의 중간 부터가 구름 속이었다. 비바람이 매섭고 차갑게 불어대었다. 정상에 올라가자 비바람에, 짙은 구름에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을 찾으며 무심코 걷는데 바로 앞이 벼랑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 미친 듯 불어대는 차가운 비바람 속에서 어느 젊은 부부가 4살,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묵묵히 걷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비바람 속에서 어른들에게도 위험해 보이는 가파르고 커다란 돌무더기로 된 정상까지의 코스를 그 부부는 그 자그마한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온 것이었다.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젊은 부부도, 그리고 아무 투정 없이 묵묵히 걷고 있던 아이들도.


사실 영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에 무척 대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면, 차가운 가을날에 아이 둘이 연못에 들어가 있는데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부모, 개가 아이를 향해서 뛰어들고 아이는 놀라서 울며 아빠 뒤춤으로 숨는데, 그걸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아빠, 산을 달리는 증기 기관차를 탔을 때 차량 난간 위로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들어 올려서 아이가 풍경을 더 잘 볼 수 있게 도와주던 할머니... 


이런 생각을 했다.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더 행복한 환경 속에서 살 수 있도록 그 환경을 가꾸어주는데 가장 큰 관심을 갖지만 영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자율적인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가장 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평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후자가 더 성숙한 부모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윤일병 구타 사망 사고. 여자는 회계사, 남자는 IT 종사자인 한국 부부가 있는데 영국으로 이주오고 싶다고 한다. 아이가 이제 겨우 4살인데 한국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 현재 영국 영주권을 따고 브라질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IT 종사자가 있는데, 아들을 한국 군대에 보낼 거냐는 질문에 답하기를 "안 보내려고 지금 이 고생하고 있는 건데?" 영국에서 영주권을 따고 한국에 돌아가 1년 정도 생활하다 1주일 전에 돌아온 친구 왈,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한국의)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군대 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네! 우리 애는 자기는 군대 안가는 줄로 믿고 있고..."


세월호 사태에 이어 이런 끔찍한 구타 사망 사고를 접하고 나면 진정 국가라는 것이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사고는 어느 때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에 대해 국가가 대처하는 모습이다. 그걸 보면 금방 견적이 나온다. 국가를 믿어도 될런지, 아니면 절대로 믿지 말아야 할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를 믿을 수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것 같다. 현실이 이렇다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나는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바로 귀국 비행기에 오늘 것이고, 아이를 낳게 되면 한국에 돌아가서 100% 한국 사람으로 키울 것이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 댓글이 있어도 대댓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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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주에 모처럼 런던에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의 참가는 별 것 없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에서 나와 판매하는 관련 신문, DVD, 버클을 사고 서명을 하는 정도. 


사진에 영국 의사당 건물이 보인다. 수상 관저인 다우닝 거리 10번지 바로 앞에서도 사람들이 확성기를 들고 이스라엘에 무기를 파는데 바쁜 나머지 이 무차별적인 학살에 대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영국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라!"를 외치고 있었다. 대 여섯살 정도의 아이들이 온 몸에 빨간 물감을 칠하고 바닥을 뒹구는 포퍼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2. 런던은 곳곳이 공사판이었다. 부동산 붐이 한창이었다. 친구가 워털루 역 뒤쪽에 흑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엘리펀트 카슬에 가자고 했다. 그곳의 길거리 음식들이 맛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그 '개발'이라는 것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그저 발걸음을 돌렸다.


이렇게 개발이 시작되면 그곳에서 수십년 동안 저렴한 임대료를 내며 살던 사람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언론에 종종 이런 뉴스가 나기도 한단다. -내가 요즘 신문, 뉴스를 통 보지 않는다. 암튼, 한국에서 많이 듣던 이야기를 영국에 와서도 듣게 된다.


3.


지난 가을, 겨울에 비가 많이 와서 잔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봄부터 씨도 뿌리고 신경을 많이 썼더니 이제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다. 내년 정도 되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을까 싶다. 작년 여름에 땅 파고 하느라 나름 고생을 조금 했기 때문에 볼 때마다 흐뭇하다.


정원이 정말 좁아보인다. 실제로 봐도 다를 바는 없지만:)


4. 요즘 뉴스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한국 뉴스 등은 내가 즐겨 가는 사이트나 블로그에서 얻어 듣는다. 친구들과 한국 뉴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한국이 이상한 나라가 되었어"라는 말로 짧게 이야기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새누리당이 연속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새누리당적인 색채가 사회 전체를 물들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사회에서 새누리당적인 세계관이 주류로 오래 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곧 변곡점이 오리라고 기대한다. 


5. 부모님이 노인 연금 7만원 돈 정도 받던 거 끊겼다고 하신다. 크게 의미있는 액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섭섭하다고 하신다. 그 7만원 돈은, 젊었을 때 고생하면서 세금도 내고 나라에 기여 한 것에 대해 나라가 고마워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계셨다고 했다. 


6.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한국의 운전 문화에 대해 읽었다. 또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연세대의 골품제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새누리당 정권이 지속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분노할 것도 없고 한탄할 것도 없다. 그냥 우리의 모습 그대로이니까.


교육부 장관의 논문 표절 문제로 난리가 났을 때 나는 흄을 읽고 있었다. 웹에서 한국어 문서를 찾다 마침 두툼한 pdf 문서가 있어 읽다 보니 흄의 생애를 서술한 부분이 표절이었다. (다른 부분은 모르겠다. 나는 거기서 읽기를 멈췄으니까.) 에이어의 책에서 출전 표시 없이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었다. 저 pdf 문서는 연구비를 받아 작성한, 신진 학자의 것일 것이다. 나는 교육부 장관보다 이 분에게서 더 심각한 문제를 느낀다. 


바로 이러한 부분들이 한국에 대한 착각을 거두게 한다. 새누리당, 경상도, 노인 세대... 이런 요소들 때문에 한국이 발목을 잡힌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저 요소들을 제하고 보아도 한국의 모습이 크게 달라 보일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의 한국은 우리들 모두의 평균적인 모습이니까. 


아마 교훈은 정치적 현상에 웃고 울지 말고 내실을 다져야 하리라는 것일 것이다. 적어도 내게 주는 교훈은 그렇다. 


7. 요즘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읽고 있다. 얼마 전에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이 사이트에 나 자신이 쓴 존재와 무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무지 무지한 고집이 잔뜩 들어간, 그러나 내실은 하나도 없는 글이었다. 창피했다. 폭파시켜 버리고 싶었지만 내 삶의 중요한 국면을 기록하고 있는 글이고 사이트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암튼, 그 글은 내가 존재와 무를 샀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책표지만 잔뜩 늘어놓는 이상한 독서법의 유행에 대해 경멸하고 있었다. 그러자니 나는 이 책을 꼭 독파해 내야 하리라는 의무감을 가지게 되어 버렸다. 


존재와 무는 이제 서론이 끝나간다. 나는 문장 하나 하나까지 완전하게 이해하고 싶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 본 철학책 중 최고로 어렵다. 그러니 들인 시간에 비하면 진도가 엄청 느리다. 내가 이 책을 완독하게 된다면, 그때 여기에 다시 자랑글을 쓸 생각이다. 사르트르가 슬슬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다 읽었을 때의 흐뭇함을 상상하는 것이 요즘 나의 주요한 설레임 중 하나이다. 저녁에 소파에 누워 염가판 존재와 무의 깨알같은 활자를 따라가는 것은 완전한 행복이다.


8. 오늘은 do nothing day. 나는 요즘 폭주 기관차같다. 인위적으로 날을 정해 주지 않으면 오직 한 곳만을 바라보면서 폭주한다. 


(혹  댓글이 달리더라도 대댓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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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4-07-3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밖으로부터의 시각/관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어떤 글들보다 인식/깨달음의 낙차가 큽니다.

한국은 우물 속에서 앞으로도 한 100년 이상은 벗어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100년을 가기는커녕 그 전에 아예 없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국민’이라는 개념 혹은 대상은 결코 신성(불가침)한 개념/대상이 아닙니다.

정치인들, 정통성 없는 불의한 정권보다

나/당신/이분/저분들을 포함한 국민들이 훨씬 더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이 사실은 가장 결정적인/critical 사실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비판을 받아야 할 대상은 ‘국민’이라는 신성한 대상입니다.

이 신성불가침의 신화 아닌 신화를 깨뜨리지 않는다면/못한다면

한국엔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막 다 읽은 참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그렇다. 처음 헌책방에서 사서 가볍게 읽었을 때는 지루하기만 하고 아무런 감응이 없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책에 줄을 쳐가면서 읽었던 것 같다. 마지막 페이지에 호러블하다고 코멘트해 놓은 게 있다.


이번 읽을 때 이 책은 확 달라져 있었다. 문장 하나 하나가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런 섬세함을 포착하지 못한 나의 정신의 둔탁함에 한숨이 나왔다. 그나마 하이데거는 그 명성으로 나의 주의를 두번, 세번, 네번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하이데거에 대해 서핑을 해보다가 하이데거의 일기가 출간되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이데거의 반유대주의가 있는 그대로 드러난 귀절도 있다는 것이다.


"... 하이데거는 자신이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세계 유대주의가 서구의 근대를 추진한 주요한 요소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또 노트에서 하이데거는 "세계 유대주의는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군사행동에 관여할 필요가 없는 반면 우리는 우리 민족의 최고의 피를 희생해야만 했다"고 적었다.


또 철학노트는 하이데거에게 반유대주의는 미국과 영국 문화에 대한 강한 적의와 겹쳐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런 문화를 '조작을 통한 지배'라고 부르는 것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한 구절에서 하이데거는 파시즘과 세계 유대주의처럼, 소비에트 공산주의와 영국 의회주의는 서구의 근대를 비인간적으로 만든 추동력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볼셰비키즘의 부르조아 기독교적 형상은 가장 위험하다. 그것의 파괴가 없다면 (부정적 의미의) 근대의 시대는 여전히 온전하게 남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출처는 레디앙. 2014년 3월13일자 가디언 기사를 대부분 참조한 기사인 것 같다.)


아마 이 귀절들에서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이 별안간 훤해지는 느낌을 받은 사람도 있으리라. 


하이데거가 말하는 시원, 망각, 그리고 회복. 회복은 망각을 거슬러 시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이데거가 대결하고, 해체하여 근거없음을 밝히려 애쓰고 있는 사유가 바로 그 망각의 사유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어쩌면 저 일기의 귀절들이 하이데거 왈 망각의 사유의 구체적 참조점들 중 일부를 지시하고 있을지 모른다.


정말로 이렇다면 하이데거는 철학 사상 최대의 스캔들이 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동안 하이데거가 정치적으로 순진해서 나치에 동조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나치 동조와 관련해서 변명만 해대는 것을 보면서는 인간적으로 덜 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 일기의 귀절들은 하이데거가 나치와, 방법과 분야는 달라도, 실지에 있어서는 동일한 심정에서 동일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하이데거의 사상이 많은 유태인 사상가들을 포함한 좌파 사상가들에게 특히나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이데거는 독일 계통 사상가들의 정서적으로 특징적인 일면을 보여주는 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으로 비트겐슈타인 역시 현대의 과학주의와 영국 문화의 피상성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의 철학적 투쟁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의 권리를 확보하고 그 안에 머무르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촌스러운 보수주의자일 수도, 신비주의자일 수도, 시대착오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비트겐슈타인의 기본 성향일 뿐이니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성향이 더 심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정치성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대결하고자 하는 사유가 어디에 귀속되는지 명확히 정의해 놓고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그의 나치 입당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치는 망했지만 기본적으로 나치와 동일한 고민에서 출발한 하이데거의 사상은 여전히 현대의 가장 심오한 사상으로 남아있다...


하이데거에 대해 서핑을 하기에 전에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반짝 반짝 빛나는 문장들에 대해 포스팅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헛헛 헛웃음이 나온다...


(혹 댓글이 있어도 대댓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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