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
조시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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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었지만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이라는 다소 말랑한 제목과 표지에 혹해 고른 책이다.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은 먼 미래의 지구인의 삶을 다룬 sf소설과 그로데스크 한 이야기들,그리고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다룬 소설 8편이 실려있다.

솔직히 ‘동양식 정원‘과 ’중국식 테이블’은 꿈인지 실제 경험인지 모호하기도 하고 이야기 중간 화자가 바뀌기도 하고 기승전결이 없이 진행된 탓에 제대로 읽고 있나 반문하며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반에 느껴지는 기괴함이나 섬뜩함만은 어떤 괴기소설보다 공포스러워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죽은 뒤 썩지 않는 인간의 몸은 산업 쓰레기로 분류되고(어스), 많은 사람들의 몸이 기계로 대처되는 시대에 인간의 유해는 우주로 쏘아 올려진다.(무덤 속으로)
인류가 컴퓨터에 다운로드되어 버린 시대에 육체가 없는 인간은 인공지능인 안젤리카에 의해 휴먼 슈트에 영혼을 주입하게 된다.(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지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미래를 그린 소설들은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확실해서인지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막막하고 희망 없는 황폐해진 지구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유언을 실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육체가 없는 데이터 상태이지만 끝없이 연인을 찾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세상에 사랑이 없어지는 순간이 바로 멸망의 순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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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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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한강‘ 작가의 신작 산문집입니다.
아주 얇고 작은 책은 속도를 조절하며 읽어야 할 만큼 짧은 글이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 강연문을 비롯해 미발표 시와 산문, 정원일기가 수록돼 있습니다.

작가님의 차분한 목소리로 이미 강연문을 들었지만 텍스트로 만나는 문장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작가님이 쓰신 소설 이야기와 특히 광주에 대해 쓴 <소년이 온다>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나 마음을 울립니다.

‘출간 후에‘의 글 속에 “않아도 된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일들이 소설을 쓰는 내내 작가님이 했던 일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북향의 정원을 가꾸기 위해 거울로 햇빛을 모으는 모습과 벌레의 침입을 받은 꽃나무를 지키는 모습은 소설 속 주인공들을 지키려는 마음과 닿은 듯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이 찍으셨다는 군데군데 빛이 아롱거리는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봅니다.
거울로 모은 작은 빛이 나무를 키우는 것이 한 자 한자 써 내려간 글이 소설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는 듯합니다.
후루룩 읽고 덮어버리기에는 소중한 글들이라 찬찬히 적어보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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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굴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강두식 옮김 / 빛소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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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굴 출판사 세계문학전집 서포터즈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작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거야?”라는 바퀴벌레 논쟁을 일으킨 소설 <변신>의 원작자인 카프카는 그의 소설은 읽지 않았어도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름은 알고 있는 작가다.
’20세기 가장 문제적 작가‘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카프카의 미완의 마지막 장편소설이 <성>이다.

토지 측량사 K가 백작의 부름으로 성에 가기 위해 마을에 도착한 것은 많은 눈으로 마을이 파묻힌 늦은 저녁이었다.
마을은 성의 소유로 백작의 허가 없이는 누구도 머무를 수 없는 곳으로 여관에 머무르는 K에게 마을 사람들은 조롱과 야유는 물론 의심이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대한다.

K는 마을에 머물며 성에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성은 형체도 보이지 않고 스스로 K의 조수라고 말하는 남자들에게서는 방해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던 중 마을 여관 주점의 점원인 프리다와 사랑에 빠져 약혼을 하고 학교 관리로 근무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성에 가기 위해 노력한다.

소설을 읽으며 내내 K가 가려고 했던 성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도달하려 해도 입구조차 찾을 수 없는 성은 마치 인간이 꿈꾸는 성공이나 인생의 목표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의 방해는 인생에서 부딪히게 되는 실패와 절망으로 읽힌다.

한편 성의 관료인 클람의 심부름꾼인 바르나바스 가족의 이야기와 K가 여관에서 ‘에어랑어’를 만나기 위한 오랜 기다림은 성이 권위적인 관료사회를 의미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직위를 이용해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대단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관료들의 모습은 마치 일처리에 속도를 내지 않는 공무원 사회를 보는 듯하다.

K는 측량사이지만 측량에 관한 업무는 해보지 못한 채 소설은 중단된다.
측량사지만 관련일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생계를 위해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실패한 사랑과 성에 도달하려 부단히 노력하는 K의 성 아래 마을에서의 생활이 쓰디쓴 인생을 압축해 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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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조약돌 Dear 그림책
질 바움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정혜경 옮김 / 사계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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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출판사 서평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호수도 강도 골짜기 개울도 없는 지역이다.
이곳엔 흐르는 물이 없다. 물은 깊은 구덩이에 고여 있거나
진흙에 엉겨 있거나 진창 속에 잠들어 있다.
오직 늪과 못뿐이다.”

나뭇가지나 종이로 만든 배마저도 꼼짝하지 않는 못은 낚시를 던져도 바늘만 반짝일 뿐, 물고기조차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조약돌로도 물수제비 하나 뜰 수 없는 못은 마치 움직이지 않는 식인귀 같습니다.
못의 깊은 권태는 독처럼 사람들에게로 퍼져 나가고 어른들은 기쁨의 환호 한 번 지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웬 허수아비 같은 차림의 남자가 나타나 작은 조약돌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남자가 던진 돌멩이는 굉장한 수제비를 만들며 튕겨 나가고 튀어 오를 때마다 반짝거리며 자주색, 황토색으로 주위를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마을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못을 빠져나가고 언어가 다르지만 허수아비 아저씨와 더 놀고 싶어 조약돌을 주워다 줍니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그림책 작가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림을 그린 A4용지보다 조금 큰 판형의 그림책은 울창한 나무가 가득 차 있는 표지에서부터 압도됩니다.
처음 펼쳐진 도시의 풍경은 암울하고 삭막해 동요하지 않고 정체된 못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여러 장에 걸쳐 펼쳐진 못을 그린 그림에서는 상쾌함보다는 지독한 물비린내와 우울함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그런데 허수아비 차림의 남자가 던지는 조약돌은 물속의 잉어처럼 살아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작은 균열을 낳게 합니다.
조약돌이 일으킨 파장을 따라 사람들은 고개를 젖혀 들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수면 위로 올라갑니다.
작은 조약돌 때문에 흐르지 않고 머물러 있던 세상의 아이들은 활기를 찾게 되고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무수한 함의를 담고 있는 글이 아름다운 그림을 만나 무엇이 세상을 변화시키는지 똑똑히 확인시켜 줍니다.
세상의 변화는 위대한 선구자가 나타나 커다란 바윗돌을 굴리는 데서 시작되지 않고 평범한 우리가 던지는 작은 조약돌에서 시작됩니다.
한번 시작된 균열은 낡은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을 세우게 되지요.

그림책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단번에 날리며 변화를 두려워하며 현재에 안주하고 있는 마음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혹시 주머니에 넣어두고 만지작거리고만 있는 작은 조약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세상을 향해 던져보세요.
던지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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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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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로 1년째 하늘에서는 멈추지 않고 회색눈이 쏟아지자 도시는 회색빛으로 뒤덮인 ‘회색시’가 되고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회색인‘이라 부른다.
엄마와 아빠, 여동생은 보름 전 회색인이 되어 도시를 벗어났고 ’나‘는 가족을 따라가지 않고 도시에 남아 나이 든 개 반(半)과 함께 사는 그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연락을 하겠다는 가족은 떠난 지 이주일이 지났지만 어떤 소식도 없고 도시는 점점 비어 가고 있다.

신발을 고치는 남자와 의사인 여자는 종말이 오는 세상에서 막 사랑을 시작했고 사람들이 떠나는 도시에 남아 늙은 개와 함께 그곳을 지키고 있다.
그의 영업장이자 거주지인 컨테이너 박스에는 아직 도시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사랑방을 드나들 듯 찾아오지만 어떤 희망도 없다.

회색시에는 세 부류에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생계를 버리고 행렬을 따라 회색시를 빠져나가려는 자들과 우리처럼 이곳에 남아 평소의 생활을 지키려는 사람들. 그리고 터전을 떠나는 것도 살림을 지키는 것도 여의치 않아 땅을 파고 지하 깊숙한 곳에 숨어든 자들. 그들은 대부분 도시의 약탈자가 되었다.(p47~48)

잿빛 눈이 내리는 도시는 겨울의 눈 내리는 날처럼 고요하지 않다.
비명이 난무하고 폭설은 창문을 때리고 땅은 진동하고 회색인의 기나긴 행렬 소리가 귀를 때리고 눈덩이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 사람을 바닥에 끌고 가는 소리, 그리고 스스로 추락하는 사람들의 소리까지 공포의 연속이다.

읽는 내내 급격한 기후 변화 후의 인간의 삶에 대해 다룬 영화의 여러 장면이 오버랩되고 앞이 안 보이는 어둠에 갇힌 것 같은 절망감이 덮쳐 진이 빠지는 느낌이다.
소설은 “그게 온다고 한다”로 시작해 지구 종말을 향한 카운트 다운을 세듯 번호를 매기며 이어져 간다.

‘나’의 곁에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고 컨테이너 박스는 외부와는 단절된 안전한 곳으로 느껴지지만 희망 따위는 찾을 수 없다.
망해가는 세상에 사랑이 존재하긴 하나 싶은 걸 보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싶다가도 온다는 그게 뭔지 궁금하고 언제 올까 궁금하고 진짜 오기나 할까 궁금해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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