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Surprise -Radiohead

앤디 블랙머는 웃음의 달인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이를 웃긴 것은 아니었다. 그의 웃음은 사회적 소수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정신병원, 노인정, 고아원과 교도소를 방문하며 특유의 독살스런 유머를 쏟아냈다. 블랙머의 코미디는 마피아와 건달, 범죄자와 창녀 등 미국 사회의 소외된 그룹에게는 대단한 호소력을 가진 것이었지만 소위 ‘WASP’라 불리는 백인 상류계층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예외적으로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의 고객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2차대전의 참전 여부를 놓고 골머리를 앓던 루스벨트도 그의 능청 앞에서는 공인으로서의 긴장을 풀고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앤디 블랙머, ‘시카고의 꼬맹이’란 별명을 가진 이 작달만한 사나이를 위해 미국의 연예 잡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1938년 4월 넷째주의 특집기사 전체를 할애했다. 특집의 제목은 <헤이 미스터 멜랑코리>. 계율에 구애받지 않는 발랄한, 그러면서도 인간적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는 블랙머 특유의 아슬아슬한 입담에 힘입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출간 후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한다. 1938년이라면 블랙머의 나이는 스물 다섯, 아직은 그의 유머가 원숙단계에 접어들기 전이라 그의 유머엔 아직 이십대의 치기가 드러나지만 특집기사 중의 <나는 어떤 동물의 자식인가>는 삶에 대한 블랙머 특유의 독기 어린 통찰을 보여준다. 평자들은 블랙머의 후반기 유머의 씨앗을 품고 있는 걸작 중의 하나로 평가하기도 한다. 욕설과 속어들이 기관총처럼 속출하는 그의 생동감 있는 문체를 필자의 빈약한 번역 실력으로 따라잡기란 역부족임을 안타깝게 고백하며 그의 글을 소개한다.
 
내 태생에 대해서는 묻지를 말라구. 어떤 작자와 장난을 쳤는지 알게 뭐냐구. 시카고에서 한다하는 건달 치고 우리 엄마씨 모르면 잔챙이지. 내가 생기긴 이렇게 생겼어도 우리 엄마씨는 좀 달랐나 봐. 지나가는 비루먹은 개들도 우리 엄마씨를 보고 침을 흘렸다는 거야. 뭐 그렇다고 내가 그 개 아저씨들이 흘린 씨앗이라고 생각지는 마시우. 어떻든 어떤 놈들이 묻혀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엄마씨 쭈쭈에서 묻어있는 니코틴과 알콜만으로도 나는 이미 열 살 때쯤에 동네에서 한다하는 건달로 성장할 수 있었지. 열다섯에는 부두노동자와 한판을 붙을 수 있을 만큼 깡다구가 커졌지.
 
바로 그때의 일인데. 하루는 구멍가게에서 담배 한 갑과 위스키 한 병을 뽀려가지고 달아나는데 좀팽이 같은 가게 주인이 죽기살기로 따라오는 거야. 그래 나를 잡아보라는 심정으로 뿔나게 도바리를 치는데 귀퉁이를 돌 때 재수 없게 한 쭉쭉빵빵걸과 부딪힌 거야. 성질 같아서는 한방 먹이고 싶었지만 미인을 때려눕히는 건 매너가 아닌 것 같아서 한번 야무지게 쏘아붙였지. “야 씨발, 넌 눈을 브라자 속에 넣어두고 다니냐.” 그랬더니 이 쭉쭉빵빵걸이 맵차게 야부리더군. “그래‘ 너는 눈깔을 부랄 두 쪽에다 넣고 다니냐” 앗 뜨거라, 그래 너 임자 만났다. 한 번 대차게 응수하려는데 이 여자가 ‘개자식!Son of Bitch'이라고 내뱉는 거야. 어랏, 쎄게 나가는데 어디 한번 맛좀 봐라, 대꾸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리 열받은 엄마씨가 나타난 거야. “야 이 년아 너는 황소의 새끼냐, 말의 새끼냐. ’암캐의 새끼Son of Bitch‘라니. 이 년이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려,” 내가 건달들에게 맞아 눈탱이가 퍼렇게 돼서 집에 돌아왔을 때도 아무 말 않던 이 엄마씨가 그날따라 열받은 거야. 계속해서 우리 엄마씨는 “니 년은 칠면조 새끼냐, 고라니 새끼냐. 암캐의 자식이라니.” 버럭버럭 짖어대는 거야. 어쭈구리 아들이라고 감싸고 도시네,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얼마 있다가 갑자기 울컥 울화가 치미는 거야. 이 여자가 열받은 것은 Son 때문이 아니라 Bitch 때문이라는 필이 나에게 팍 꽂혔던 거야. Son인 나는 완전히 열받았지. 우리 엄마씨가 열받는 것은 그 놈의 Bitch 때문이었지 Son에는 관심도 없었던 거야. 그래서 나는 소리 질렀지. “그만 하라구. 씨팔!”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나도 애새끼 하나 질러놓고 보니까, 그 때 우리 엄마씨가 Son 때문에 열받았는지 Bitch 때문에 열받았는지 알 수가 없더라구. 어쩌면 Bitch 때문이 아니라 Son 때문에 열받았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 거야. 인생이 그런 건가? Son of Bitch! 암튼 헷갈리는 세상이야. 또 보자구. See You A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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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향기의 보석, 향수의 심장
 
 
보기 싫으면 눈을 감으면 그만이고, 듣기 싫으면 귀를 막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냄새가 싫다고 해서 코를 막을 수는 없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냄새를 피할 수는 없다. 숨이 붙어 있는 이상 냄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냄새란 호흡의 한 형제다. 냄새는 우리를 뒤덮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몸 안으로 쉼 없이 침투한다. 침투의 베테랑인 냄새는 숨쉬는 자의 불가피한 숙명이다.
 
하나의 냄새는 지나간 시간을 불러온다. 라일락 향기는 봄날의 기억을 불러오고, 비릿한 냄새는 해풍의 기억을 불러온다. 그 기억이 불안과 방황으로 점철된 청춘의 시간이든, 그늘을 모르는 유년의 시간이든 이미 지나간 시간은 지나갔다는 사실만으로 묘한 상실의 감정을 유발시킨다. 그러므로 건조하고 냉정한 역사가의 정신으로 과거를 회상하기는 쉽지 않다. 회상의 순간은 조금은 씁쓸한 신파의 표정을 갖기 마련이다.
 
냄새의 목록에는 저마다의 역사와 경험이 있다. 냄새와 결부된 역사와 경험, 그것이 '나'를 구성한다. 냄새가 나의 점막을 두드릴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사람이 된다. 하나의 냄새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추억의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 간다.  무정형의 냄새가 일정한 형상을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냄새의 대여점'에서 냄새를 빌려다 플레이어에 넣고 플레이버튼을 누르면 '나'만의 영상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 영상 속에서 나는 '마들렌' 과자의 먹는 어린아이일 수도 있고, 연인의 머리칼에서 풍기는 향기를 하염없이 들이키는 사내일 수도 있고, 지병으로 육신을 가누지 못하는 아내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를 견디는 남편일 수도 있다.
 
향기는 모든 사물의 미학적 가치를 극대화한다. 코가 딸기향을 맡지 못한다면 입은 가장 맛있는 딸기를 먹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후각의 상실은 부분적으로 미각의 상실을 동반한다.  어찌 미각뿐이겠는가. 4월의 라일락과 5월의 장미를 향기없이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밋밋한 일인가. 후각을 잃는 것은 세상의 풍요로움을 잃는 것이다.
 
냄새를 제 몸 안에 영접하기 위하여 어떤 이는 깊은숨을 들이킨다. 그는 냄새를 가짐으로써 실체를 소유했다는 환상을 가진다. 사랑하는 이의 속옷에 베인 냄새를 소유하려는 열망은 엄밀히 말하면 도착적 열망이 아니다. 모든 욕망이 소유를 열망하는 욕망이라면 냄새에 대한 욕망이라 해서 도드라지게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연인들은 냄새를 소유함으로써 그 냄새에 밀착된 피부와 체온을 소유했다는 환상 속에 사는 존재다. 환상이 없이는 어떠한 사랑도 없다. 아니 사랑은 환상이다. 『은밀한 생』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냄새에 대한 우리의 도착적 열정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한 사람의 냄새를 미친 듯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그러나 아쉽게도 냄새는 냄새일 뿐이다. 사향노루가 지나간 길에 사향냄새가 풍기듯, 그가 지나간 길에도 그의 냄새는 남는 법이다. 냄새는 있지만 냄새의 발원지인 '그'가 없다는 사실이 모든 슬픈 연애의 알파요 오메가다. 라일락 향기는 봄날의 기억을 불러오지만 그 냄새와 결부되었던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리고 없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다. 냄새는 시간의 비가역적 숙명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연어는 태어나자마자 모천(母川)을 냄새맡는다. 그 냄새의 기억을 안고 연어는 태평양의 끝 베링해협을 돌아 산란을 향하여 모천으로 돌아온다. 기억에 각인된 냄새의 길을 따라 모천에서 알을 낳고 죽음을 맞는 연어는 탄생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는 태어날 때부터 냄새가 없는 인간이었다. 냄새의 진공상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핍이 생의 본질이라는 말일까. 결핍의 존재 그르누이는 온갖 것들의 냄새를 맡고 분류하고 합성해낸다. 그는 냄새의 소유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냄새를 창조하고 발명한다. 수많은 음정을 배합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듯 그는 수많은 냄새를 배합해 '향수의 심장'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는다. 그 야심이 그로 하여금 살인을 부추긴다.
 
그의 살인은 '너'를 내 뼈와 살 속에 스미게 하겠다는 식인(食人)의 충동에 다름 아니다. 너를 내 속에 삼키고야 말겠다는 에로스의 충동. 한 사람의 향기를 맡는다는 것은 내 존재의 내부에 그의 존재를 흠뻑 빨아들이는 일이다. 그윽한 냄새를 맡는 자는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쉰다. 눈을 감고, 오직 후각에만 감각을 집중시키기 위해 시야를 차단하는 것이다. 냄새를 사랑하려는 자는 감각의 독점권을 후각에게 넘겨주기 위해 눈을 감는 것이다.
 
그루누이에게 세상의 도덕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거대한 냄새, 그의 관심은 오직 냄새일 뿐, 세상의 계율이 아니다. 그는 한 자락 미풍에 부드러운 냄새의 실마리가 실려 오면 그것을 가슴속 깊숙이 빨아들여 영원히 간직했다. 가장 위대한 향수를 만들겠다는 그르누이의 예술가적 야심은 죽음으로까지 파고드는 에로티시즘의 열정과 닮아 있다. 가장 아름다운 향기의 보석과 향수의 심장을 위해서라면 그는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다. 『향수』는 가볍고 연약하면서도 단단하고 지속적인 향기의 보석을 발명하기 위한 그르누이의 예술가적 도정을 보여준다. 그것은 몹시 부도덕하지만 그 부도덕함이 아름다움까지 배반하는 것은 아니다.  'Grenouille'라는 이름을 번역하면 '개구리'라던가. 수륙양생의 이 이중정적 동물처럼 『향수』는 죄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껴안는다.
 
늙음은 악취를 동반한다. 노년층은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아 에너지를 완전히 쓰지 못해 노폐 물질이 많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특히 불포화지방산이 분해되면서‘노네날 알데하이드(C9H16O)’가 생기면 악취가 난다는 것이다. 땀샘, 겨드랑이, 성기 주변 등 분비선이 모여 있는 곳에선 탁하고 쾨쾨한 냄새가 떠나지 않는단다. 사람들은 나를 피한다. 이제 나는 무가치하다.노년이 슬픈 것은 그 냄새 때문이기도 하다.
 
괄약근을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병약한 자의 손을 잡으려면 악취를 견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휴머니즘이란 악취에 다가설 수 있는 용기다. 우리의 후각은 쉽게 피로를 느낀다. 어떤 악취에도 쉽게 길들여지는 것이다. 쉽게 피로해지는 후각의 매커니즘은 더러움에도 다가서라는 신의 명령인지도 모른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O.S.T-Moon River- Audrey Hepb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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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학적이고 무거운 글쓰기로 악명이 높은 니콜 마이어의 『작가노트』에는 <핸더슨 부인의 별명>이라는 간결한 글이 실려있다.
 
핸더슨 부인은 '미세스 조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쾌활했다. 10살 때 앓은 천연두는 피부를 살짝 얽혔지만 그녀의 쾌활함을 손상시킬 수는 없었다. 어떤 비극도 그녀의 쾌활함을 넘보지 못했다. '미세스 엘리펀트'라고 불리어도 자연스러울 180킬로의 체중도 그녀를 우울하게 하지는 않았다. 대학졸업을 몇 일 앞둔 아들 토니가 죽었을 때도 그녀는 심각하게 슬퍼하지 않았다. 쿠키와 초코렛의 도움을 얻어 그녀는 그녀의 별명에 걸맞은 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 스미스씨가 집을 팔겠다는 매매계약서에 사인을 했을 때 수심을 모르던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의 빛이 감돌았다. 그녀의 일기장은 그날의 핸더슨 부인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다. <사람은 어디에서나 살 수 있지만 추억은 어디에서나 살 수 없다> 집주인이 바뀌기 전날 저녁 핸더슨 부인은 테라스 기둥에 입맞추었다. 잘 있거라. 내 무거운 몸을 묵묵히 받아주던 바닥들아. 내 손길 하나 하나에도 광택의 기쁨을 돌려주던 벽들아. 창문들이 보여주는 풍경들아. 더 이상 사람들은 그녀를 '미세스 조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핸더슨 부인이다. 집이 그녀에게 그녀의 이름을 돌려준 것이다.
 
 


elliott smith - miss mis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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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나드 밀렛과 절친한 교분을 맺었다는 질레트 페론. 그와의 교분이 없었다면 <문밖의 여자>도 없었을 것이라고 시카고 대학의 J. 트리어티 교수는 말한다. 학문적 연구의 거의 전부를 버나드 밀렛에 바쳐온 그는 질레트 페론의 전문가로서도 익히 알려져 있다.
 
 내가 질레트 페론과 만난 것은 청계천변의 <삼일서적>에서였다. 버나드 밀렛의 책에서 간간히 언급되어온 질레트 페론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책방 한 구석에 꽂혀 있었다. 고집센 늙은이라구, 나는 그의 첫인상을 똑똑히 기억한다. 여송연을 입에 문 채 몇 달이고 자기 서재에 웅크리고 있었다던 질레트 페론,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봐, 자네, 이제야 나타났군.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와서 이 머저리 같은 먼지들을 털어보라구.
 
  먼지를 털고 책의 첫장을 열었을 때 나는 이 책이 내 운명의 한복판으로 걸어들어 오고 있었음을 알았다. <잃어버린 손목시계>, <핀치히터의 수첩>, <오늘은 추수감사절>,<미시시피의 선물>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와 <워터멜론 슈가>를 연상시키는 그의 투명한 문체에 내 감수성은 허둥대고 있었다. 다음은 그의 짧은 소설 <미시시피의 선물>이다.
 
영리하고 고집센 물고기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잭은 물고기들의 볼을 움켜쥐어 바늘을 빼내려 했지만 입을 열면 상처가 깊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물고기들은 눈치채고 있었다. 네 마리째의 물고기마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잭은 가볍게 불평했다. 제길, 이 강이 물고기들에게 가르친 것은 침묵뿐이란 말인가. 그러나 다섯 마리째의 물고기마저 한사코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잭은 어쩌면 물고기들이 무언가를 그에게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잭은 서둘러 물고기들을 강물에 놓아주고 집으로 웨곤을 몰았다. 길은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주 늦은 것도 아니다. 그녀를 만나면 그가 결심한 침묵들을 쏟아내리라. 침묵은 상처를 움켜쥐는 것. 어쩌면 침묵은 잭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인지도 몰랐다. 그는 힘을 주어 엑셀을 밟았다.
 
 
 
 

'돌아오지 않는 강' (River of No Return, 오토 플레밍저 감독, 1954년작)에서 마릴린 몬로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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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밖의 사람

 
         -버나드 밀렛
 
 
내가 있고 싶은 곳은 당신의 일기장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는 파티의 댄스플로어
플로어의 조명이 일제히 우리들의 존재를 공인할 거예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둘러싸여
당신의 친구들로부터 열입곱 당신의 첫사랑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열입곱의 당신은 무엇을 꿈꾸었지요
저 친구가 당신을 때려눕혔다던 거한인가요
그날 이후로 그는 성장이 멈추었고
복수를 꿈꾸는 당신의 키는 훌쩍 커졌다지요
새떼처럼 날아가버리는 말들 속에 당신과 나의 기쁨을 새기고 싶어요
내 열일곱은 내 마음에 맞는  방을 갖기를 원했지요
당신은 이제  나의 방
내 눈을 들여다 보세요
보이지 않나요
 내가 당신을 위해 피워낸 한 송이 제비꽃
오늘밤 당신은 우리의 방에서 그 꽃을 꺾어도 되지요
그 꽃에서 피어나는 향기에 당신은 코를 묻을 거예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어디에든 스며들어요
어떤 사내에게나 한때 지나가는 여자들은 있는 법이죠
그러나 어떤 매혹적인 향기도 이런 침투를 상상하진 못했을 거예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자정의 별들에게 입을 맞추어요
하늘은 어떤 셀레임으로 지상으로 별똥 하나를 흘려주어요
 와이퍼 저 너머 그 별이 닿는 곳에 우리 사랑이 있어요
우리의 사랑은 늘 몰락과 추락의 운명을 닮아있지요
그러나 오늘 나는 아무도 나를 돌아가게 할 수 없는 집에서
식탁에 앉은 당신의 커다란 등을 위해서
한잔의 커피를 마련할 거예요
한잔의 커피가 당신의 몸 속으로 흘러갈 때
나는 더 이상 문밖의 사람이 아닌
당신 안의 사람이 될 거예요
당신 안의 어둠이 될 거예요
 
-버나드 밀렛의 <문밖의 사람> 중에서
 
 
버나드 밀렛의 소설을 누군가가 나에게 권했는지
 언제 그 책을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위의 구절은 똑똑히 기억한다
 
<내가 있고 싶은 곳은 당신의 일기장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는 파티의 댄스플로어>
라는 구절이 오늘은 나의 가슴을 친다
 
모든 이에게 공인받고 싶은 그녀의 사랑!
그 사랑의 아픔을 소설로밖에는 말하지 못하는 그녀의 비밀스런 고통
그 고통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 고통이 C, 그녀의 이름이다
 
고통에 대한 연민으로 가을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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