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밀렛과 절친한 교분을 맺었다는 질레트 페론. 그와의 교분이 없었다면 <문밖의 여자>도 없었을 것이라고 시카고 대학의 J. 트리어티 교수는 말한다. 학문적 연구의 거의 전부를 버나드 밀렛에 바쳐온 그는 질레트 페론의 전문가로서도 익히 알려져 있다.
내가 질레트 페론과 만난 것은 청계천변의 <삼일서적>에서였다. 버나드 밀렛의 책에서 간간히 언급되어온 질레트 페론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책방 한 구석에 꽂혀 있었다. 고집센 늙은이라구, 나는 그의 첫인상을 똑똑히 기억한다. 여송연을 입에 문 채 몇 달이고 자기 서재에 웅크리고 있었다던 질레트 페론,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봐, 자네, 이제야 나타났군.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와서 이 머저리 같은 먼지들을 털어보라구.
먼지를 털고 책의 첫장을 열었을 때 나는 이 책이 내 운명의 한복판으로 걸어들어 오고 있었음을 알았다. <잃어버린 손목시계>, <핀치히터의 수첩>, <오늘은 추수감사절>,<미시시피의 선물>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와 <워터멜론 슈가>를 연상시키는 그의 투명한 문체에 내 감수성은 허둥대고 있었다. 다음은 그의 짧은 소설 <미시시피의 선물>이다.
영리하고 고집센 물고기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잭은 물고기들의 볼을 움켜쥐어 바늘을 빼내려 했지만 입을 열면 상처가 깊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물고기들은 눈치채고 있었다. 네 마리째의 물고기마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잭은 가볍게 불평했다. 제길, 이 강이 물고기들에게 가르친 것은 침묵뿐이란 말인가. 그러나 다섯 마리째의 물고기마저 한사코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잭은 어쩌면 물고기들이 무언가를 그에게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잭은 서둘러 물고기들을 강물에 놓아주고 집으로 웨곤을 몰았다. 길은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주 늦은 것도 아니다. 그녀를 만나면 그가 결심한 침묵들을 쏟아내리라. 침묵은 상처를 움켜쥐는 것. 어쩌면 침묵은 잭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인지도 몰랐다. 그는 힘을 주어 엑셀을 밟았다.
'돌아오지 않는 강' (River of No Return, 오토 플레밍저 감독, 1954년작)에서 마릴린 몬로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