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학적이고 무거운 글쓰기로 악명이 높은 니콜 마이어의 『작가노트』에는 <핸더슨 부인의 별명>이라는 간결한 글이 실려있다.

 

핸더슨 부인은 '미세스 조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쾌활했다. 10살 때 앓은 천연두는 피부를 살짝 얽혔지만 그녀의 쾌활함을 손상시킬 수는 없었다. 어떤 비극도 그녀의 쾌활함을 넘보지 못했다. '미세스 엘리펀트'라고 불리어도 자연스러울 180킬로의 체중도 그녀를 우울하게 하지는 않았다. 대학졸업을 몇 일 앞둔 아들 토니가 죽었을 때도 그녀는 심각하게 슬퍼하지 않았다. 쿠키와 초코렛의 도움을 얻어 그녀는 그녀의 별명에 걸맞은 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 스미스씨가 집을 팔겠다는 매매계약서에 사인을 했을 때 수심을 모르던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의 빛이 감돌았다. 그녀의 일기장은 그날의 핸더슨 부인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다. <사람은 어디에서나 살 수 있지만 추억은 어디에서나 살 수 없다> 집주인이 바뀌기 전날 저녁 핸더슨 부인은 테라스 기둥에 입맞추었다. 잘 있거라. 내 무거운 몸을 묵묵히 받아주던 바닥들아. 내 손길 하나 하나에도 광택의 기쁨을 돌려주던 벽들아. 창문들이 보여주는 풍경들아. 더 이상 사람들은 그녀를 '미세스 조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핸더슨 부인이다. 집이 그녀에게 그녀의 이름을 돌려준 것이다.

 

 





elliott smith - miss mis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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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든 하나의 일에 자신의 일생을 바친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비범함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를 끼고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숨이 차다 싶은 곳에 허름한 이발관이 하나 있다. '오복이발소'라니, 아직도 이런 촌스러운 상호를 쓰는 곳도 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발사 김방옥씨의 이발솜씨는 그런 대로 괜찮은 편이어서 잠실에 있는 어떤 깡패는 머리를 깎을 때마다 그를 찾는다. 소위 '상고머리'는 맵시 있게 깎아낼 수 있는 이발사가 흔하지 않은데 바로 김방옥씨가 그 흔자하 않은 이발사 중의 하나인 '상고머리의 예술가'라는 것이 잠실깡패의 주장이다. 그는 이 부분을 말할 때마다 늘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곤 했다. 다른 이발소에서는 상고머리를 바리깡을 대고 밀어 깎지만 김방옥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위 하나만으로 맵시 있는 상고머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3대째 이발사라는 사실을 대단한 영광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가위를 들 수 있는 날까지 이발 일을 계속하겠다는 그의 나이는 올해로 일흔 여섯. 이발사치고는 꽤 늙은 나이지만 그의 언변 하나만은 숫돌에 간 가위날처럼 전혀 녹슬지 않았다. 다음은 지난 여름 까딱까닥 졸고 있는 나의 머리를 연신 바로 잡으면서 그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숫돌에 가위날을 갈며 시작한 가위질이 벌써 60년이 넘었어요. 그동안 내가 깎은 머리에서 나온 머리카락이 대한민국 사람들 머리통에 씌울 가발 분량은 안 되겠지만 대한민국 사람들 배꼽아래 거웃 정도라면 충분히 차고도 넘칠 거예요. 그런데 이발일을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머리통을 들여다보는 일을 수 십 년 하다 보니 뭔가가 보이더라구요. 바로 그 사람 '물건'이 보이더란 말이예요. 무슨 말씀이냐면 머리통 모양을 보고 이 친구 '물건'이 사타구니 왼쪽으로 향했는지 오른쪽으로 향했는지를 알겠더라는 말입니다. 머리통 왼쪽이 평평한 사람은 왼쪽으로 누워서 자는 잠버릇이 있을 테니깐 아무래도 물건이 왼쪽으로 기울어졌을 테고, 오른쪽 머리가 평평한 사람은 오른쪽으로 누워서 자는 잠버릇이 있을 테고 이런 사람은 아무래도 오른쪽으로 물건이 기울어졌을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자주 오는 손님들에게 선생 물건이 어느쪽으로 기울어졌느냐고 물아보았지요. 물론 그런 말에도 기분이 상하지 않을 만큼의 절친한 단골들이죠. 후후 별 걸 다 물으시네, 라면서도 손님들은 대개 답을 가르쳐 주었는데. 웬걸 제 짐작의 95퍼센트가 맞더라는 말입니다.

 

나는 졸린 목소리로 이렇게 묻고 싶었다. "그럼 왼쪽으로 누워 자는 잠버릇이 있는 여자의 젖가슴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을까요?" 그러면 김방옥씨는 이렇게 되물을지도 몰랐다. "여기는 미용실이 아니라 이발소인 거 아시지요?" 김방옥씨는 충분히 그럴 사람이었다.




 

music for paul auster cd1

 

no. 08 fade song by kathryn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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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애거서 크리스티의 딸’이라고 불릴 만큼 탁월한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의 여성 추리작가 산드라 헤세는 영국의 추리작가협회에서 매년 가장 뛰어난 추리소설을 발표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황금단도상Gold Dagger의 1993년 수상작가이다. 토스토예프스키의 악마적 감수성에 범죄 스릴러를 절묘하게 배합한 그녀의 소설은 어떤 진공청소기보다 강력하게 독자들을 빨아들였다. 그녀의 소설이 출간되는 날을 기다려 팬들은 일제히 휴가를 신청했고 미처 휴가를 신청하지 못한 팬들은 기꺼이 결근을 감수했다고 한다.

 

그녀의 수상작 『회색 머리털』을 두고 "매혹적이다. 매혹적이다. 지극히 매혹적이다."라는 지극히 이례적인 평가를 한 것은 영국의 <선데이 텔레그래프>지였다. "앞으로 추리소설을 쓸 작가들은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다."라고 <더 타임지>는 한술을 더 떴다. 그녀가 <버밍햄 하이스쿨> 재학시 친구에게 썼다는 이 엽서에는 그녀의 추리소설의 무엇이 그토록 언론을 열광시켰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단초가 있다.

 

제임스가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빳빳하게 긴장되었어. 그러나 내 마음은 마치 최초의 대기에 노출된 것처럼 파들거렸지. 더워지는 혈관을 돌아나온 호흡이 파들거리는 내 마음에 광시곡의 리듬을 부여했어. 폭풍이여, 어서 와서 나를 멋지게 흔들어 봐. 어서 나를 뿌리째 흔들어 보라구. 나는 눈을 감고 그 설레는 리듬에 복종했어. 저주스런 노예들이나 할 짓이라고들 하겠지만 모든 의지와 결의를 타인에게 반납한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설렘인 줄 알아? 폭풍우를 예감하는 나무들은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설렘에 떠는 것이지. 파괴를 예감하는 저 나무들의 떨림, 그 두려울 정도로 매혹적인 사랑에의 예감!!



 


When I Dream -Carol Ki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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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로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의 아버지, 클라렌스 에드번즈 헤밍웨이는 외과의사였다. 그의 체격은 건장했다. 그는 수렵과 낚시에 열광적이었다. 그의 부인 그레이스는 남편과는 달리 음악을 즐기고 신앙심이 깊은 세련된 문화인이었다. 『노인과 바다』는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났다.

 

클라렌스 헤밍웨이는 인디언 부락으로 회진을 나갈 때는 장남 어네스트를 데리고 가는 일이 많았다. 어네스트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마취도 시키지 않은 인디언 여인을 제왕절개 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수술하는 동안 아내의 고통을 지켜볼 수 없었던 인디언 남편이 그 자리에서 자살하는 일이 벌어진다. 어네스트는 이 일을 목도한다. 역설적이게도 훗날 클라렌스 헤밍웨이 역시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아프리카에서는 사자나 코끼리를 사냥하고 권투와 심해어 잡이, 투우 등 남성적 스포츠에 몰입했던 비정한 사나이,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끊임없이 모험을 찾아 나섰다. Destroy but not Defeated. 파괴할 수는 있다. 그러나 패배할 수는 없다. 그는 끊임없이 위험에 부딪혔다.  그는 패배를 기다리기보다는 파멸을 찾아 나섰다.

 

헤밍웨이의 절친한 스페인 친구 호세 루이스 카스티요 푸체는 헤밍웨이가 죽은 지 30년이 지나서 이런 회고를 하게 된다.

 

헤밍웨이는 언제나 잘 때 불을 밝혔어요. 어둠 속에서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죠. 그는 무엇에 늘 쫓기는 듯했죠. 1962년 6월 24일에 내가 받은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어요. <아프리카 사냥 여행 중에 나는 사냥 가이드로부터 나미비아 사막에 있다는 여우제비선인장이라는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네. 나미비아 사막에는 일 년에 단 한 차례의 비가 내린다고 하더군. 그것도 단 몇 시간 말일세. 그런데 이 여우제비선인장은 바로 그 시간을 기다려 재빨리 꽃을 피우고 생식을 하고 져버린다더군. 단 한번의 우기(雨期), 단 한 번 사랑, 단 한 번의 죽음! 우리는 한참 멀었네. 그 선인장은 내게 이렇게 말하네. 여기가 끝이다. 더는 없다. 나의 사랑은 여우제비선인장과 같은 사랑이 아니었네. 나에겐 한 번도 우기가 없었네. 이제 나는 그 우기의 땅으로 갈 걸세. 나의 마지막 모험을 축하해주게.> 그때 내가 출장중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편지를 받는 즉시 어네스트에게 달려갔을 겁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1961년 7월 2일 엽총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우기였다.


 
 


영화 스모크 중에서- Innocent When You Dream - Tom Wa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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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의 캐서린의 유서



 『매저키스트의 치욕과 환상』의 저자 알프레도 커밍스는 마이클 온다치의 소설을 각색한 안소니 멩겔라 감독의 영화 <영국인 환자 English Patient>를 본 후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시나리오는 할리우드의 누구에게도 주목을 받지 못한다. 각색한 작품이 지나치게 자학적이라는 것도 문제지만 <영국인 환자 English Patient>는 이미 아카데미상 12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9개 부문을 석권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인 환자 English Patient>는 아카데미가 선호하는 서사, 장대한 스케일, 사랑, 화해 등 이미 관객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다 보여주었다는 것이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판단이었다. 미국 영화잡지 '스크린 인터네셔널'이 공개한  알프레도 커밍스의 시나리오 중 홀로 동굴에 남겨진 캐서린의 독백 부분은 다음과 같다.


(비행기 추락사고로 부상을 당한 캐서린은 홀로 동굴에 남겨진다. 어두운 동굴을 비추는 작은 손전등, 헤로도투스의 책과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캐서린에게 남겨둔 채 알마시는 구원을 요청하러 떠난다. 홀로 남겨진 캐서린, 응급조치로 지혈은 했지만 붕대 사이로 피가 새어나온다. 알마시가 피워 놓고 간 장작불은 이미 꺼져버렸다. 손전등마저 꺼지고 눈꺼풀은 감긴다. 장작의 열기마저 식어버렸다. 어둠 속에서 캐서린은 극심한 갈증을 느끼며 알마시에게 편지를 쓴다.)


한 모금의 물을 찾듯이 나는 당신을 부릅니다. 내 그리운 알마시, 나의 부름이 닿지 않아도 당신은 사막의 어디쯤에서 나를 향하여 오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약속도 썩지 않는 불후의 땅, 이곳에서 이집트인들은 일찍이 미이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사랑이 단 한 번이 아님을 믿은 민족입니다. 알마시, 바람은 사막의 모든 경계선을 지워버리지만 당신과 나의 국가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바람에 지워지는 모래의 사랑이 아닙니다. 어떤 전쟁도, 어떤 이념도 당신과 나의 국가를 지울 수 없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나일강 삼각주의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었습니다. 썩지 않는 소금, 그것이 우리의 사랑입니다. 나의 피가 모두 증발되고, 내 안의 모든 물기가 증발되고 나면 나의 사랑은 한줌 소금처럼 이 사막의 동굴에서 빛날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역사가. 또 하나의 헤로도투스, 그가 바로 사막입니다. 썩지 않는 나의 사랑 알마시, 얼마 남지 않은 호흡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당신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던 목덜미도 차가워졌습니다. 당신을 향하여 달아오르던 입술도 갈라졌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신에게로 가는 마지막 꿈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리운 알마시,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로 가는 불멸의 길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소금을 꿈꾸는 나일강 삼각주의 바닷물처럼 내 몸의 물기가 말라갑니다. 사막이여, 내 사랑의 심장이여, 너의 몸에 열기가 남아있다면 내 몸의 모든 물기를 앗아 가다오. 아, 알마시, 나는 행복합니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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