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에든 하나의 일에 자신의 일생을 바친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비범함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를 끼고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숨이 차다 싶은 곳에 허름한 이발관이 하나 있다. '오복이발소'라니, 아직도 이런 촌스러운 상호를 쓰는 곳도 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발사 김방옥씨의 이발솜씨는 그런 대로 괜찮은 편이어서 잠실에 있는 어떤 깡패는 머리를 깎을 때마다 그를 찾는다. 소위 '상고머리'는 맵시 있게 깎아낼 수 있는 이발사가 흔하지 않은데 바로 김방옥씨가 그 흔자하 않은 이발사 중의 하나인 '상고머리의 예술가'라는 것이 잠실깡패의 주장이다. 그는 이 부분을 말할 때마다 늘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곤 했다. 다른 이발소에서는 상고머리를 바리깡을 대고 밀어 깎지만 김방옥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위 하나만으로 맵시 있는 상고머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3대째 이발사라는 사실을 대단한 영광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가위를 들 수 있는 날까지 이발 일을 계속하겠다는 그의 나이는 올해로 일흔 여섯. 이발사치고는 꽤 늙은 나이지만 그의 언변 하나만은 숫돌에 간 가위날처럼 전혀 녹슬지 않았다. 다음은 지난 여름 까딱까닥 졸고 있는 나의 머리를 연신 바로 잡으면서 그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숫돌에 가위날을 갈며 시작한 가위질이 벌써 60년이 넘었어요. 그동안 내가 깎은 머리에서 나온 머리카락이 대한민국 사람들 머리통에 씌울 가발 분량은 안 되겠지만 대한민국 사람들 배꼽아래 거웃 정도라면 충분히 차고도 넘칠 거예요. 그런데 이발일을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머리통을 들여다보는 일을 수 십 년 하다 보니 뭔가가 보이더라구요. 바로 그 사람 '물건'이 보이더란 말이예요. 무슨 말씀이냐면 머리통 모양을 보고 이 친구 '물건'이 사타구니 왼쪽으로 향했는지 오른쪽으로 향했는지를 알겠더라는 말입니다. 머리통 왼쪽이 평평한 사람은 왼쪽으로 누워서 자는 잠버릇이 있을 테니깐 아무래도 물건이 왼쪽으로 기울어졌을 테고, 오른쪽 머리가 평평한 사람은 오른쪽으로 누워서 자는 잠버릇이 있을 테고 이런 사람은 아무래도 오른쪽으로 물건이 기울어졌을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자주 오는 손님들에게 선생 물건이 어느쪽으로 기울어졌느냐고 물아보았지요. 물론 그런 말에도 기분이 상하지 않을 만큼의 절친한 단골들이죠. 후후 별 걸 다 물으시네, 라면서도 손님들은 대개 답을 가르쳐 주었는데. 웬걸 제 짐작의 95퍼센트가 맞더라는 말입니다.
나는 졸린 목소리로 이렇게 묻고 싶었다. "그럼 왼쪽으로 누워 자는 잠버릇이 있는 여자의 젖가슴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을까요?" 그러면 김방옥씨는 이렇게 되물을지도 몰랐다. "여기는 미용실이 아니라 이발소인 거 아시지요?" 김방옥씨는 충분히 그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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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08 fade song by kathryn willi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