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인 더 페이스 : 스모크 2
웨인 왕 감독, 하비 키이틀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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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크 OST-<Tom Waits - Innocent When You Dream>

일상은 단조롭기만 한 것인가
   -영화 <스모크>에 대한 단상

맛있는 음식도 자꾸 상에 오르면 물리기 마련이고, 처음 들었을 때 즐겁던 농담도 자꾸만 하면 재미없다. 10년 전에 유행하던 '최불암 시리즈'나 '영구시리즈'의 개그를 재탕 삼탕 우려먹는 개그맨은 한마디로 날 샌 개그맨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발성과 의외성에 웃음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판에 박은 듯한 사고방식은 하품을 만들어내기엔 제격이다. 무언가 새로운 게 없을까, 무언가 재미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기의 삶이 즐거운 생동감으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
 
하지만 문제는 일상이다. 아들은 매일매일 학교에 가서 판에 박은 수업을 해야 하고, 아버지는 같은 노선 버스를 타고 매일매일 같은 직장으로 출근을 해서 어제와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고, 어머니는 집안 청소에 빨래에 찬거리 준비에 그렇고 그런 일을 반복해야 한다. 학생이 공부를 하고 가장이 출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일이 때로는 힘겹고 버겁게 느껴진다.
 
어떻게 일상의 단조로운 리듬을 깰 수 없을까. 일상을 만들어내는 규칙, 가령 일찍 일어나라, 열심히 일해라, 복장을 단정히 해라, 아껴 써라, 등과 같은 규칙들을 뒤집어 단 몇 일만이라도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을까. 그런 궁리 끝에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축제다. 축제는 모든 것을 뒤집는다. 조선시대의 탈놀음을 보라. 천한 백정이 양반을 나무라고 조롱한다. 축제의 기간이 아니면 어림도 없다. 학교의 축제에서는 학생들이 교장선생님을 풍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은 호기 있게 껄껄 웃으신다. 축제기간이 아니라면 학생부에서 단단히 본떼를 보여주었을 텐데 말이다.
 
일상적인 것을 뒤집는 축제는 단조롭기만 했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축제를 통해 사람들은 일상으로 복귀할 힘을 얻는다.
 
그렇다면 일상은 단조롭기만하고 따분하기만 한 것일까. 늦게까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면 나를 맞아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라. 언제나 평범 그 자체다. 스타의 화려함도 없다. 매일매일 수수한 차림이다. 밥을 해주고, 교복을 세탁하여주는 어머니의 노동은 표가 나지도 않는다. 시계추처럼 일터를 오가시는 아버지의 노동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의 위대함은 단조로움울 인내하는 마음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농부의 위대함이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을 하는 그 단조로운 노동 속에 있듯이.

 
영화 <스모크>에서 담배가게 주인 오기랜은 매일매일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사진에 담아내는 일을 취미로 삼는 인물이다. 오전 8시 브룩클린 거리. 그는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무려 12년간 같은 프레임 속에 담아냈다.‘다 똑같은 사진이잖아’라고 퉁명스레 말하던  폴은 주인공 폴은 그 사진들 속에서 총기사고로 죽은, 살아있을 때의 자신의 부인을 발견한다. 그리고 오열한다.
 
일상의 시간을 벗어난 비일상의 시간, 즉 축제의 시간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을 무가치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바라볼 수 있는 우리의 지혜에 달려있는 것은 아닐까.
 
감독:웨인 왕. 주연:하비 케이틀, 윌리엄 허트. 제작: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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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4-0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갑니다.^^
 
얼라이브 - [할인행사]
프랭크 마샬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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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나였더라면 어떠했을까 -영화<얼라이브>에 대한 단상

 

 재채기를 심하게 하는 사람을 두고 당신 왜 자꾸 재채기를 하느냐고 따질 수 있을까. 물론 이는 부당하다. 재채기는 생리적 현상이고, 생리적 현상은 인간의 의지로서 좌지우지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재채기를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대꾸를 준비해 두는 것도 좋다. "당신도 코감기에 걸린다면 재채기를 피할 수 있겠어. 어쩔 수 없는 현상을 가지고 시시콜콜 따지는 당신의 작태가 오히려 한심할 뿐이야 " 문화는 상황의 산물이다. 한 국가의 특수한 환경에서 어떤 특정한 문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 문화의 정당성 여부를 놓고 시비를 가리는 일은 옳지 못하다, 라는 것이 문화적 상대주의자들의 논리다. 쉽게 말해서 재채기가 재채기를 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터져 나온 것이라면 그 재채기를 두고 옳으니 그르니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시신을 토막내어 새에게 먹이는 티베트의 장례문화인 천장(天葬)을 금지하기 위해 티베트에 모진 박해를 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은 천장 문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티베트에서는 고산지대의 한랭건조한 기후 때문에 땅 속에서 시신이 쉽게 썩지 않으며, 일부 지역을 제외한 티베트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목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시신을 태우는 화장(火葬)은 일부 특권층이 아니면 엄두도 낼 수가 없다. 물에 시신을 흘려보내는 수장(水葬)은 귀한 물을 오염시키게 되니,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랭건조한 기후가 흙을 딱딱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티베트에서는 흙을 파서 시신을 묻는 토장(土葬)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천장이다. 천장은 티베트에서 가장 빠르고 깨끗하게 운구를 처리하는 방법이다.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티베트인들이 천장을 택한 것은 아니다. 천장에는 티베트인들의 불교적 가치관이 투영되어 있다.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육신을 새들에게 보시(布施)함으로써 인생을 선행으로 마무리하는 명예로운 방법이라고 티베트인들은 생각한 것이다. 티베트의 환경과 종교를 고려할 때 천장이 비도덕적이라고 함부로 단정하긴 곤란하다.. 1972년 12월 교황청은 "생존을 위해 인육(人肉)을 먹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런 발표가 있기 전에 영화 <얼라이브>의 소재가 된 사건이 있었다. 1972년 10월 전세비행기가 눈으로 덮인 안데스산맥에 추락한 것이다. 조난자들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72일을 버텼을 때, 구조대원들이 도착했다. 도덕을 택하여 죽음 쪽으로 갈 것인가, 인육을 택하여 삶 쪽으로 갈 것인가의 기로에서 삶을 선택한 이들에게 교황청이 면죄부를 준 것이다. 도덕적 상대주의는 다른 게 아니다. 만약에 나였더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에 다름 아니다. 감독: 프랭크 마샬. 출연: 에단 호크, 빈센트 스파노. 제작: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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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위민 원트 - 할인행사
낸시 메이어스 감독, 멜 깁슨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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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오블라디 오블라다


여자의 마음을 읽는 것은 명백한 도둑질
   -영화 <왓 위민 원트>에 대한 단상

영화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에서 잘나가던 광고 기획자 닉 마샬은 승진의 기회를 경쟁사 여직원인 달시 맥과이어에게 빼앗겨 버린다. 달시는 강력한 소비력을 가진 여성들을 위한 제품 광고를 기획할 팀을 꾸리고, 이에 밀릴 수 없는 닉은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여자가 되어 보기'로 결심한다. 여자들처럼 화장도 하고 여자들 속옷도 입어보던 닉은 욕실바닥에 넘어지는 사고로 여자의 마음을 훤히 꿰뚫게 된다. 여성의 속마음을 읽게 됨으로써 여성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확보하게 된 닉, 과연 그에게 문제는 없는 것일까?
 
노름을 할 때 상대방이 가진 패를 보는 것은 명백히 규칙 위반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적백승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패를 알면 상대방이 어떤 수를 쓰고 어떤 전략을 세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상대방의 패를 읽을 수 있다면 상대방이 쓰려는 수를 앞질러 그의 전략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므로 노름에서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패를 읽히지 않으려고 애쓴다. 악질적인 노름꾼만이 상대방의 패를 보기 위해 전자장치를 이용하거나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는 법.
 
한쪽은 상대방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 이것이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곧 정보의 불평등이다. A는 주가에 대한 정보가 풍부한 반면 B는 주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면 승패는 뻔하다. 주식투자자들이 경제신문을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읽는 것도 승리를 위한 양질의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정보화 사회는 정보가 곧 힘이요, 권력이 되는 사회다. 만약 어떤 관리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고급 정보들을 취급하는 위치에 있다면 이 관리는 자신의 정보를 이용해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건설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떤 지방에 대규모 공업단지가 들어선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곧바로 그 공업단지가 유치될 인근의 땅을 미리 매입함으로써 상당한 시세차익을 남길 수도 있다.
 
한 회사가 제품을 출시할 때도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에서 1970년대 후반, 세계 굴지의 기업인 포드(FORD) 자동차 회사는 서민을 겨냥한 주력 품목으로 핀토(Pinto)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나 이 차는 충돌시 연료탱크가 폭발하는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포드사는 이 차의 양산을 강행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결함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알면서 왜 그랬을까. 결함을 가진 차를 회수해서 교정하는 비용이 사고가 났을 때 보상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더 크다는 계산이 이미 나왔기 때문이었다.
 
회사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가급적 제품에 대한 많은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자신의 영업이익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을 소비자들에게 알려주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통제함으로써 소비자들을 현혹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정의다. 닉 마살의 도덕적 문제는 혼자서 정보를 독점한 데 있다. 레드카드!!!
 
 감독:낸시 마이어스    출연:멜 깁슨, 헬렌 헌트 . 제작: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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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 - 강정인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본 우리 안의 서구중심주의 책세상 루트 3
강정인 외 지음 / 책세상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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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나의 한 친구를 소개한다. "자 여기 있는 사람은 용산의 미군기지 내에 있는 매릴랜드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모니카 캐시아양입니다." 금발의 캐시아는 가벼운 포옹으로 선생님과의 우정을 과시하며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입을 연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이 친구와 오래 친구했습니다."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오, 마이 가드, 금발의 아가씨가 선생님의 친구라니.
 
 이번에는 다른 친구를 소개한다. "여러분 인사하세요. 여기 있는 친구는 네팔출신의 산업연수생 샤말 타파입니다. 한국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주 다정다감한 친구죠." 타파 역시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입을 연다.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 한국 불교, 저는 사랑합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샐쭉하다.
 
 '이런 경우를 한번 상상해보자'라는 주제로 수업을 하며 학생들에게 두 개의 경우를 머리 속에 그려보라고 하면 모두들 피식 웃는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학생들의 반응이다. 여러분들의 머리 속에는 서양인들은 합리적이요, 위생적이지만 동양인들은 비합리적인데다 비위생적이라는 선입견이 자라잡고 있지는 않느냐고 물으면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수업은 계속된다. 만약 슈퍼맨과 배트맨과 스파이더맨과 타잔이 유색인종이라면 어떨까, 타잔에 나오는 짐꾼들이 모두 백인이라면, 뒷골목에서 마약을 파는 사람들이 거의가 백인들이라면 어떨까. 과연 그때도 우리들은 유색인종은 천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노벨상 수상자들이 거의가 다 유색인종이고 농구선수들이나 댄스가수들이 거의 백인이라면 어떨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노는 '바비인형'이 만약에 흑인이라면 어떨까. 그때도 우리는 백인의 모습을 좇아서 여전히 코를 높이고 쌍꺼풀 수술을 하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할까. 지금으로부터 수 백년 전, 유럽의 허여멀쑥한 백인노예들을 빛나는 검은 피부를 가진 아프리카인들이 혹독하게 부렸다면 어떨까. 과연 우리들은 모니카 캐시아양을 친구로 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샤말 타파를 친구로 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할까. 학생들은 여전히 빙긋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는 이렇다. "아뇨!"
 
 호텔과 같이 분위기 있는 곳에서는 클래식음악이나 재즈를 들으며 양식을 먹어야 하고 장터에서는 트로트음악을 들으며 국밥을 먹어야 제격이라는 생각은 한 개인에게 국한된 생각이 아니다. 모든 세련된 것의 중심에는 서구가 있다는 서구우월주의가 한국인의 심층심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과연 우리는 스스로를 몇 퍼센트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학생들의 두뇌 속에서 동양과 서양은 단순히 지리적인 개념만은 아니다. 서양은 우월하고 동양은 비속하다는 관념은 비단 학생들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인 대부분의 생각이 그럴 것이다.
 
 『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는 한국인의 심층 깊숙이 자리잡은 '서구중심주의'를 문제삼고 있는 책이다.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라는 학술서를 출간하기도 했던 강정인 교수가 서구중심주의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면서 서구중심주의의 기본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썼다. 수업 시간에 강정인 교수는 학생들에게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각자의 고민을 짧은 글에 담으라는 숙제를 냈고, 그 결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이 책이 딱딱한 강의노트와 구별되는 곳이 바로 이 대목이다. 이 책이 고등학교 고학년과
대학의 교양학부생에게 두루 읽힐 수 있는 가능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
 
 왜 미술사는 서양미술사인가, 왜 서양음악은 '음악'으로 보통 명사화하여 부르고, 한국음악이나 한국의학은 '국악'이나 '한의학'으로 특수화하여 부르는가, 우리는 왜 칠월칠석이 아닌 화이트데이에 사랑을 고백하는가, 친구의 옷에 묻은 자국이 김치 국물이면 촌스럽고, 케첩 자국이면 세련된다고 믿는 것은 왜일까, 왜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고, 어머니는 헨델인가, 왜 과학의 아버지는 데카르트이고, 어머니는 뉴턴인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질문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바로 그런 질문들로 해서 이 책은 대중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계몽서로 읽힌다.
 
 강 교수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해 많은 이들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서구중심주의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중심주의를 강의의 주제로 택한 것도 그 때문이라 한다. 강정인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나 몽테스키외, 헤겔, 마르크스 같은 서구 사상가들이 서구 중심주의에 빠져 어떻게 다른 지역 사람들이 유럽에 지배되어야 하는지 역설했는가를 보여주고, 어떻게 서구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자기들이 만든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세상에 퍼뜨렸는지 보여준다.
 
 이 책이 대중서로 읽힐 수 있는 큰 장점은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언어로 씌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은 우리의 일상 언어 속에 서구중심주의가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가를 풍부한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청소년들이 쓰는 접두어 ‘왕’과 ‘캡’ 가운데 우리말이랄 수 있는 ‘왕’은 ‘왕재수’, ‘왕따’ 등 부정적 의미에 쓰이고 ‘캡’은 아주 좋은 것, 멋진 물건이나 사람을 부를 때 쓰인다는 것들을 짚어주는 식이다.
책을 펼치면 풍부한 삽화들과 눈을 즐겁게 하는 시원한 편집이 이론서들은 으레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허문다. 그렇다고 이 책은 청소년들만이 읽을 책은 아니다. 성인들의 시각교정에도 요긴할 듯싶다. 무엇보다 진지한 사고력을 요구하는 논술참고서적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책 뒤에는 서구우월주의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교정시켜줄 참고서적들을 열거해 주고 있다.
 
인터넷 시대, 클릭 하나로 전지구의 문화가 안방으로 흘러 들어오는 시대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인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서구는 우월하다는 서구중심주의다. '국내학자들은 서구 학문에 익숙한 경우 자신들이 내면화한 서구중심주의에 따라 동양적인 것을 폄하하는 의식을 청산하고, 동양학문에 익숙한 경우 서구적인 것에 대한 과민하고 배타적인 경계의식을 극복하여 호혜성, 평등성, 차이의 존중에 입각한 교차문화적 대화를' 수행해야 한다는 강정인 교수의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는 폐쇄주의와 서구의 것은 좋은 것이라는 패배주의에서 이제는 그만 자유로워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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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의 나비
프란시스코 지메네즈 지음, 하정임 옮김, 노현주 그림 / 다른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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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난의 의미를 일깨우는 책
프란시스코의 나비/ 프란시스코 지메네즈 저/ 하정임역/ 다른,2004
 





01.Drug - The Czars


이 년 전 고3 인문계 학급을 맡아 진로조사를 한 결과를 보고 적이 놀란 적이 있다. 조사 결과 한 학급의 약 70-80퍼센트의 학생들이 경제경영과 관련하여 학과를 선택하고 있었다. 인문학을 선택한 학생들은 고작 10퍼센트 남짓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돈을 벌어야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나 경영을 택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학생들의 진로선택의 변이었다.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하기엔 뭔가 씁쓸했다.
 
좀더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크게 나무랄 것은 없다. ‘로또열풍’과 '부자열풍'이 몰아치는 것도 한반도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일상화되고 전면화되는 현실에서 ‘무소유’를 도드라지게 강조하는 것은 시대착오인지는 모른다. ‘무소유’를 역설하는 책마저도 자본의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팔려야 이념이지, 팔리지 않고서는 공염불일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이다.
 
경쟁력을 길러라,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여라, 자신의 특징과 개성을 살려라, 미래를 준비하라는 학교에서의 교훈적 언설들은 따지고 보면 냉혹한 경쟁의 질서를 알고 적절하게 대처하라는 일종의 처세술적 담론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처세술의 담론은 학교 현장에서 막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 담론들은 대개 부드러운 위협의 형태를 띠게 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어떠어떠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공부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는 식이다. 이때의 ‘공부’란 것도 인문학이나 철학과 같은 성찰적 지식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향후 자신의 상품적 부가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도구적 지식을 이른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네 삶의 국면들을 조목조목 성찰하는 반성적 글쓰기로서의 논술은 입시의 전략적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윤리는 타인과 어울려 사는 지혜의 학문이기 이전에 사회탐구의 주요한 전략적 과목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소유’나 ‘자발적 가난’이라는 말이 학생들의 귀에 들릴 리가 만무하다. 국어시간의 ‘안빈낙도’는 구태의연한 수사에 불과하다. 광고가 열심히 소비의 미덕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유행에 뒤떨어진 핸드폰이나 MP3를 떳떳하게 가지고 다니는 학생들은 도저히 어깨를 펼 수가 없다. 단언하건대 대한민국에서 과시적 소비의 전형적 모델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10대다. 또래 집단 속에서 청소년들의 지위는 소비를 통해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 가정을 들여다 보라. 가장 질 좋은 핸드폰이나 음향기기는 대체로 자식들의 몫이지 않은가. 상품이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한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 했다. 눈물 섞인 빵을 먹어 본 사람의 위로가 배고픈 자를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다. 타인의 가난과 고통을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풍요의 시대를 살아온 10대에게는 이런 말들이 낯설다. IMF 이후 TV에서 ‘가난’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고 있지만 6시에서 9시까지의 소위 ‘골든타임’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화려한 의상과 악세사리로 치장한 인기연예인들의 엎치락뒤치락을 보여주는 시끌벅적한 연예프로그램들이다. 대중적인 상품들을 팔겠다는 마케팅의 논리 앞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삶을 성찰하게 하는 프로그램들은 자정 무렵이나 새벽녘으로 시간대를 물려야 하는 것이 유감스러운 현실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류의 책들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일상에서 반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부란 나쁘고 가난은 좋다라는 흑백논리도 경계해야 마땅하고, 부만이 선이며 가난은 악이라는 이분법 또한 폐기함이 마땅하다. 적절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식의 ‘무소유’는 학생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감과는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고, ‘흥부전’식의 이야기 역시 낡아도 한참 낡은 이야기다.
 


<프란시스코의 나비>는 ‘가난’을 소재로 한 성장소설이다. 작가는 실제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은이가 "이 책의 내용은 거의 90%가 사실이고 10% 정도가 픽션"이라고 밝히듯 이 작품은 거의 논픽션에 가까운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살던 꼬마 판치토의 가족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몰래 넘어 캘리포니아로 간다. 판치토 가족은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목화와 포도, 딸기 수확을 하며 유랑생활을 한다. 텐트촌, 오두막, 창고 등지에서 생활하며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만 한다. 힘겨운 삶이다. 그럴수록 판치토와 그의 형제들은 서로 돕고 사랑한다.
 
너무 작아 일하러 나갈 수 없어 혼자 남아 목화를 따던 판치토는 목화의 무게를 더 나가게 하기 위해 목화더미에 흙을 섞는다. 이런 판치토에게 양심을 속이는 일은 나쁜 짓이라며 꾸짖는 아버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생이 죽을 고비에 처했을 때 간절히 기도하는 가족들의 모습, 상을 받은 나비 그림을 자신과 싸운 친구에게 선물로 주는 판치토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감동이다. 부자라고 해서 감동을 만들어내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란 말도 있듯이 한 인간의 진정성은 궁핍함을 통해서 비로소 그 최대치를 구현한다. 가난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인간의 진정성이 발현될 수 있는 조건적 의미에서 그렇다.
 
삶이 각박해질수록 유머를 잃어버리기 십상이지만 판치토의 가족들은 가난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를 보여준다. 판치토의 아버지는 비록 배우지 못했고 가난하지만, 판치토에게 남을 속이는 것은 나쁜 짓이고 돈보다 신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어머니는 흰 목화자루를 몸에 두르고 세상에서 가장 예쁜 웨딩드레스라고 웃으면서 말하며, 형은 불법입국자 단속에도 '이민국 여자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며 유머를 잃지 않는다.
 
판치토 가족은 미국에서 어렵게 자리를 잡지만 결국 이민국의 단속에 걸리게 된다. 그러나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라는 독립선언문을 외우는 판치토의 모습에서 여전히 세상에 대한 낙관적 희망을 버리지 않는 꿋꿋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고통이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속담도 있다. 가난이 어떻게 인간성을 고양시켜주는지, 가난이 어째서 형제애가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이 되는지, 소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가난의 의미를 제대로 알 기회가 없다면 그들에게 가난의 의미를 알릴 의무는 문학에 있다. 궁핍을 소재로 한 문학은 한 시대의 유행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프란시스코의 나비>에는 가난에 대한 일체의 미화도 없다. 가난을 옹호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표현은 담담하고 어조는 가라앉아 있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인간승리’ 류의 결론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가안이 어떻게 인간애의 바탕이 되는지를 잔잔한 어조로 말해준다. 12가지의 에피소드들이 각각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탄탄한 구성력도 이 책이 가지는 미덕 중의 하나다.
 
현재 어문학 교수라는 저자는 현재의 자신이 있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한시도 잊지 않고,반이민단체의 강력한 저항을 무릅쓰고 겨울방학 때에는 학생들과 함께 연극단체를 만들어 이민 농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을 하고 있으며, 불법 이주민 아이들의 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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