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서판 -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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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나는 인간의 본성은 과연 없을까?

빈서판/스티븐 핑커/사이언스북스/2004



플라톤은 인간의 행동에는 세 가지 근원, 곧 욕망, 감정, 이성이 있으며, 그 세 가지 중에 어떤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계급이 정해져야 한다고 보았다. 물질적 욕망에 머무르는 이들은 시민계급, 권력과 싸움을 좋아하면 수호계급, 지혜와 이성을 중시하면 통치계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이런 논리를 받아들일 사람이 없겠지만 노예제도나 봉건제도의 민중들은 자신이 천하게 사는 것은 천한 혈통을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열등하게 태어났으니 열등한 삶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패배주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운명론적 사고방식은 오늘날의 입장에서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시대의 민중들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리 불합리한 현실일지라도 그것이 하늘이 결정해준, 하늘의 뜻이라면 기꺼이 감수해야만 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왕후장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이가 있다. 바로 고려시대의 만적이다. 비록 그의 반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는 인간의 지위가 하늘이 결정해준 것이 아님을 분명히 천명했다.


‘nature’와 ‘nuture’는 그 단어의 모양새가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다. nature는 말 그대로 ‘자연’ 혹은 ‘본성’이라는 뜻이요, nuture는 ‘기르다’, ‘양육하다’라는 뜻이다. nature와 nuture라는 단어를 새로운 의미관계로 결합시킨 사람은 ‘우생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골턴이었다. 그는 인간성이 플라톤이 주장하는 대로 ‘본성(nature)’에 의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인지 만적이 주장하는 것처럼 ’양육(nurture)'에 의해 후천적으로 결정되는지를 물으면서, 전자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골턴의 이런 본성론은 인간의 결함도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면 결함을 가진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도태시킴으로써 인간성을 개조해야 한다는 우생학으로 발전되면서 나치의 유태인․동성애자 학살과 같은 커다란 유혈의 비극을 불러오기도 하였다.


17세기 철학자 존 로크는 경험론에 바탕을 두고 인간이 이상, 진리, 신의 관념 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본성론을 공격했다. 존 로크는 인간의 마음은 아무 개념도 담겨 있지 않은 흰 종이와 같으며 그 내용은 오로지 경험에 의해 채워진다는 '빈 서판(書板)'(the blank slate) 개념을 들고 나왔다. 그는 이 개념을 내세워 인간의 마음은 타고난 특성이 없으며, 환경으로부터 얻는 경험이 각 개인의 차이를 만들 뿐이라며 세습 왕권과 신분제의 정당성을 부인했다.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얻어진다는 경험론에 바탕을 둔 그의 빈서판 이론은 본성론에 기반하고 있는 모든 불합리한 특권제도를 철폐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합리주의 전통을 계승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학자들은 ‘인간에게 타고난 본성이 있다’는 주장을 극단적으로 혐오하게 된다. 그들은 인간성이 환경에 의해서 구성되고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사회정의를 달성하는 길이요, 사회 정의를 위한 것이 개혁이요,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도 이런 생각에서 멀지 않았다. 인간성이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 이들은 본성론은 패배적 운명론을 조장하고, 사회의 불합리와 모순을 정당화하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고 끊임없이 경고했다.


행동주의자들도 본성론을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그들은 행동은 유전적 요소들의 발현도 아니고, 유전에 의해 설명될 수도 없으며, 오직 자연환경의 영향력에 의해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수동적이고 강요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본성(nature)이냐 양육(nurture)이냐 하는 논쟁에서 철저히 양육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행동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는 스키너다. 개를 대상으로 조건반사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한 파블로프는 스키너에게 이론적 힌트를 제공했다.


밥을 줄 때마다 먼저 종소리를 울리고 밥을 준다. 그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종소리만 울리더라도 개는 침을 흘린다는 것이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이론이다. 이 이론은 배운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체계화했다. 파블로프는 이 이론을 시발점으로 해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을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다. 스키너는 인간이란 존재는 자유의지를 지닌 고상한 존재가 아니라 자극과 반응의 관계에 의해 길들여진 기계와 같은 존재로 보았고 인간의 언어습득도 자극과 반응, 즉 훈련에 따른 행위일 뿐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언어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그의 저서『빈서판』에서 스키너식의 결정론적 사고방식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의 이론은 인간이 언어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의 이론적 연장선상에 있다.(실제로 그는 노암 촘스키의 제자다.)


촘스키는 인간에게 있어서 말을 하는 능력은 선천적으로 결정된 능력이라고 했다. 어린아이는 생존에 알맞은 환경과 영향이 공급되면 저절로 신체기관이 자라듯이 적절한 환경이 주어지면 저절로 말하는 능력이 싹튼다는 것이다. 만약에 인간의 언어가 경험에 의한 것이라면 인간은 어떻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문장을 말할 수 있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 안 밥 먹었다”와 같은 문장을 말하는 것은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주장한다. 바로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든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보편적인 언어능력이 인간 속에 잠재되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명명하면서 이 자연주의적 오류의 위험성 때문에 사람들이 인간의 자연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어느 누구도 굴욕감을 느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어느 누구도 불공정하게 대우받기를, 즉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특성(자연성)에 따라 대우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공통된 특성이 인간에게는 있다고 말하면서, 차별과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감정은, 어떤 특성이 사람에 따라 아무리 큰 차이가 나더라도 그 때문에 사람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한다. 설령 개인의 피부색깔과 성향이 다르더라도 차별대우를 받는 것을 인간이면 모두 다 싫어하는 보편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개인의 특성이 차별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핑커는 인간의 선천적 특성이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분명히 못을 박는다. 가령 인간에게 이기적인 특성이 있다는 사실이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된다는 사실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존재가 당위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핑커는 개혁적 정치가들이 인간에게 고유한 본성을 무시함으로써 정책적 오류를 빚을 수도 있다는 예를 이스라엘의 키부츠 경영에서 든다. 키부츠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집단농장이다. 여러 가구들이 모여 철저한 분업형식으로 공동생산, 공동분배, 공동소유를 원칙으로 하는 공동생활체이다. 키부츠에서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전 키부츠 구성원들이 노동에 종사한다. 또 양로원과 탁아소 및 유치원 시설을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키부츠에서는 자신의 아이를 양육할 수 없었는데 바로 이 점이 인간이 자식에게 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정책이고 그 결과 자식을 부모와 떨어뜨려 양육하는 정책은 철회되어야 했다고 말한다. 이런 실패는 구소련과 중국의 집단농장에서도 빚어졌다. 이런 정책적 실패도 결국은 인간은 환경에 의해 얼마든지 개조될 수 있다는 '빈 서판' 이론에 기인한다는 것이 스티븐 핑커의 주장이다.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을 얼마든지 가공 가능한 원재료로 파악해 오로지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강압적인 교육과 환경 조성에 집중하도록 했다는 것이 빈서판 이론 추종자들의 오류라는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신체적 외모나 지역 문화와 같은 피상적 차이 밑에 숨어 있는 인류의 심리적 통일성을 밝혀줄 것이기에 인간의 본성을 밝혀내는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스티븐 핑커의 주장은 계급적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보수적 동기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본성에 대한 주장들을 저울의 어느 쪽도 슬며시 손가락으로 누르지 않고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하며, 그 주장들이 결국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우리의 삶에 받아들일 것인가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본성을 부인할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를 분명히 알고, 그 인식의 바탕 위에서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바로 이 점이 스티븐 핑커를 보수주의적 본성론자와 확연히 구분시켜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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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주권 - 헤르만 셰어의 21세기 에너지 생존전략
헤르만 셰어 지음, 배진아 옮김 / 고즈윈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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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인가?

  에너지 주권/헤르만 셰어/고즈윈


  제레미 리프킨의 『수소혁명(The hydrogen economy)』은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에너지 위기를 경고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리프킨은 20세기를 지탱하게 해준 화석연료, 특히 석유는 몇 십 년 안에 고갈될 것이며 얼마 남지 않은 석유마저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동지역에만 남아 있게 된다고 저자는 경종을 울린다. 그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의 환경문제가 일으킬 재앙도 함께 지적하면서 그 대안으로 수소에너지체제로 가자고 역설한다.

  리프킨이 들고 있는 수소의 장점은 수소가 물의 구성원소인 만큼 거의 무궁무진한 자원이라는 점, 그리고 연료전지 등을 통해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고 기체연료로 쓸 수 있으며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는 태양에너지의 중요한 저장 수단 즉 에너지 매체라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강력하게 제동을 걸고 있는 학자가 있다. 바로 『에너지 주권』의 저자, 헤르만 셰어다. 셰어는 먼저 수소 에너지가 석탄 석유 등과 같이 땅에서 캐낼 수 있는 1차 에너지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수소는 변환 과정을 거쳐 얻어야 하는 2차 에너지인데 이 변환과정에서 일정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가령 물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하여 수소를 생산하려면 우선 전기가 필요한데, 이 전기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끌어와야 한다면 적어도 10퍼센트의 에너지 손실을 감수해야 하고, 또 물의 전기분해, 수소의 액화과정, 압축저장과정, 운송과정, 수소를 전기로 전환시키는 과정 등에서 커다란 에너지 손실이 있기 때문에 수소 에너지는 비효율성이 엄청난 에너지라고 셰어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수소에너지를 옹호하는 것일까. 세어는 수소에너지를 옹호하는 그룹을 셋으로 분류한다. 첫째, 수소에너지에 대한 선의의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정보 부족으로 편중된 사고를 하는 사람, 둘째, 단기적인 사회 안정을 위하여 전통적 에너지 시스템과 관련된 변화를 뒤로 미루고자 하는 사람, 셋째, 핵전력을 이용하여 수소를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밝힐 의사가 없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세어는 세 번째의 사람들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셰어는 최근 수소와 연료전지를 주제로 하여 수많은 회의가 개최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다수는 세 번째 의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일고 있는 수소에 대한 열광과 보편적인 공감대를 위하여 핵에너지를 다시 끌어들이려는 것이 그들의 숨은 의도라는 것이다. 셰어는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추구하고 있는 17억 달러짜리 수고 프로그램은 핵수소를 중심으로 한 것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연구비로 책정된 예산을 끌어와 그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수소캠페인은 전통적인 핵로비스트들과 석유로비스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이들이 바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수소를 유괴한 자들‘이라고 세어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1950년대만 하더라도 ‘핵에너지의 평화적인 사용’이 온갖 종류의 물질적 궁핍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으리라는 낙관론에 인류는 빠져 있었다.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그의 저서『희망의 법칙』에서 “사하라 사막과 고비사막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고, 시베리아와 캐나다 북부, 그린란드, 남극 지방을 리비에라(휴양지)로 바꾸어 놓으려면 몇 백 파운드의 우라늄과 토륨만 있으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핵무기를 반대하는 1954년의 <러셀과 아인슈타인 선언>에서도 “오로지 너의 인간성만을 상기하고,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도록 하라.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파라다이스가 활짝 열릴 것이다”라고 원자력의 긍정적 이용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핵에너지는 정부로부터 광범위한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셰어는 원자력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낭만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조목조목 반박한다.

  첫째, 물 부족 문제다. 원자로증기발생과정과 냉각을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다. 세계인구 증가에 따른 물 수요 증가를 감안할 때 심각한 문제가 향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낮은 효율성의 문제다. 핵폐열을 이용하여 전기-난방 연계시스템을 가동시키려면 멀리 떨어진 장소에 중앙집중식으로 모여 있는 발전소로부터 열을 끌어와야 하는데, 이 때 소요되는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셋째, 위험성의 문제다. 현재 특정 국가들 간의 대립을 넘어서 새로운 형태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계적으로 원자로를 목표로 핵테러리즘의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에너지 경제적 방안의 오류 문제다. 핵발전소 건설을 위해서는 집중적이고 장기적인 자본투자가 필요한데, 이는 전력시장의 자유화정책과 어긋난다는 것이다. 전력시장 자유화 정책은 단기적인 투자비용회수를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핵폐기물의 최종처리 문제다. 핵 폐기물은 반드시 10만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데, 사회적인 불안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정치적인 시스템도 이 긴 기간을 책임지고 보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섯째, 은밀하게 진행되는 방사능 오염 문제다. 방사능 누출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에 초래할 위험에 대해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연구하고 이를 어떻게 시민들의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 있는 <에너지전환> 대표 이필렬 교수도 <원자력 석유대체론의 허구성>이란 글을 통해 원자력 발전이 화석에너지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단정 지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원자력도 고갈된다. 땅속에서 쉽게 캐낼 수 있는 우라늄은 무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돌아가는 원자력발전소 440개를 50년 정도 돌릴 양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전기, 자동차연료, 난방용 연료 등의 에너지를 모두 원자력으로 공급하려 한다면 원자력발전소가 150개가량 필요한데, 이것이 더해지면 그 연한은 37년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150개의 원전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존 버스비(John Busby)도 <왜 원자력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답이 되지 않는가>란 글에서 “현재 세계의 연간 우라늄 광산의 전체 산출은 고작 3만6천 톤이다.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연간 6만6천 톤 수요에서 모자라는 나머지 3만 톤은 재고, 과거 무기 재료, MOX, 그리고 재가공한 광산의 선광 부스러기에서 나온다. 그런데, 현재의 세계 에너지 수요를 원자력으로만 채우려면 우라늄 생산은 140배 늘어야 한다.”라고 우려를 표명한다.

  그는 원자력이 무(無)탄소(carbon-free)라는 주장도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이산화탄소는 원자로에서의 핵분열 과정을 제외한 모든 핵연료 사이클의 구성 부문에서 방출된다. 채광, 광석 제분(milling) 그리고 광석 농축과정에, 연료캔 준비 과정에, 발전소 건설, 사용 중단, 폐로(demolition) 과정에, 핵폐기물 관리와 핵폐기물 재처리 과정에, 그리고 핵폐기물 보관을 위한 암반을 뚫는 과정에 화석연료가 필요하다.”고 전 버스비는 말한다. 원자력이 깨끗한 에너지라는 믿음이 허구임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헤르만 셰어는 원자로는 '원천적 불안전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당국자들이나 전문가들이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와 경보장치가 설치돼 있어 원자로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원자로는 근본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세어는 꼬집는다


 『에너지 주권』에서 저자는 현재 에너지 위기를 타개하려는 세계 각국의 시도를 살피고, 위기의 대안으로 핵에너지, 석탄에너지, 석유에너지에서 재생가능에너지로 넘어가지 않으면 더 이상의 생존은 물론이고 인류의 생존도 위태롭다고 경고한다.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는 경우 연료를 공급할 필요가 없고, 광범위한 전력공급망도 필요가 없게 되어 비용효과면에서 커다란 경제성이 기대되지만, 대체에너지 방식으로의 전환은 기존의 에너지업계에게는 타격이 되기 때문에 기존의 에너지업계로서는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세어는 지적한다. 정부 역시 기존의 에너지 업계의 타격이 곧 국민경제의 몰락으로 비추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책결정시 기존 에너지업계를 배려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런 태도들이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태양열 주택이나 풍력발전을 하면 정부에서 더 많은 보조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편견에 불과하다고 셰어는 지적한다. 오히려 핵에너지나 화석에너지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이 지금까지 지급된 모든 종류의 재생가능에너지 보조금보다 몇 배나 많았다는 것이다.

  셰어는 에너지원이 다양하고 소규모 자체 발전이 가능한 재생에너지가 각 국가 또는 지역별, 지자체별로 효율적인 에너지 생산과 공급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이는 국가간 불균형과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셰어는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인식 개선과 발전을 위해서 전통적 에너지체제 중심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에너지 소비’, ‘에너지 시장’, ‘환경 부담금’ 같은 표현도 그 고정관념의 일부라고 셰어는 지적한다. ‘에너지 소비’라는 말은 에너지가 ‘모두 소모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재생가능에너지의 장점을 배제한 표현이라면서 세어는 ‘에너지 사용’이라는 표현을 그 대체어로 제시한다. ‘환경부담금’도 마찬가지다. 환경부담금은 환경유해물질, 특히 화석에너지에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런데  이 개념은 관심의 초점을 환경오염에서 세금부담으로 옮기고 있으므로 ‘환경부담금’보다는 ‘유해물질 부담금’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세세한 곳에서까지 의식의 혁명을 요구하는 셰어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별 지역별 차이를 인정하고 경쟁력 있는 에너지 생산을 위한 다양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에너지 주권 확립은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 세계적 합의의 주축은 선진국가와 국가를 초월하는 거대 에너지 기업들일 수밖에 없고 이들의 이권을 보호하는 선에서 협약과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존에너지 업계가 자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별․지역별로 자체적인 에너지 운용이 가능할 수 있는 방안은 오직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뿐이라고 그는 거듭 말한다. 이를 위해 셰어는 10가지 철칙을 제안한다. ① 의식적 자율성을 되찾는다. ② 새로운 경제 발전 모델을 세운다. ③ 국내 자원에 원칙적인 우선권을 부여한다. ④ 전통적 에너지를 대체할 순서를 정한다. ⑤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얻은 국민 경제적 이익을 개별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극제로 전환한다. ⑥ 에너지업계 내에 존재하는 카르텔을 실질적으로 해체한다. ⑦ 국가가 본보기가 되어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에 앞장선다. ⑧ 재생가능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조경계획과 도시계획을 세운다. ⑨ 지식의 결핍을 극복한다. ⑩ 위협적인 세계경기 침체에 대처하려면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해 경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원자력만이 미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지식의 결핍에서 연유된 것이라면 편견의 극복을 위해서라도 헤르만 셰어의 『에너지 주권』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읽혀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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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형벌 - 사형의 비인간성에 대한 인간적 성찰
스콧 터로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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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실증적 경험을 통해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말한다

        극단의 형벌/스콧 터로/교양인/2004



2000년 미국 대통령 후보 3차 토론에서 사회를 맡은 PBS 뉴스 진행자 짐 레러는 두 후보에게 사형이 범죄 억제책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가 대답했다. 민주당의 엘 고어 후보도 같은 대답을 했다. 부시는 이어서 “그것이 사형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극단의 형벌』의 저자 스콧 터로는 사형이 범죄의 억제책이 될 수 없다는 실증적 자료들을 제시한다. 가령 1976년 이후 미국 전체 사형 집행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던 텍사스 주는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살인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 간 사형제도가 없는 주들 전체의 살인율은 사형제도가 있는 주들의 살인율보다 늘 낮았을 뿐 아니라, 그 차이는 늘 점점 벌어져 왔다고 한다. 어떤 사회학자들은 사형집행이 도리어 살인을 자극한다고 하는 이른바 ‘야만효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스콧 터로는 미국에서 사형의 살인 억제효과를 학문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주로 시장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모든 사회적 선택은 자극에 반응하는 합리적인 결정권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형으로 대표되는 형벌이 살인을 막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스콧 터로는 사회과학보다는 경험에 기초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는 검사 출신 변호사이자 베스트셀러 소설가이다. 공화당 출신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 조지 라이언이 지난 2000년 3월 사형집행의 일시 중지를 선언하고 사형제도 개혁을 위한 ‘사형 위원회’를 설치했을 때 스콧 터로는 일리노이 사형위원회에서 2년 동안 사형제의 문제점과 개선안을 연구했다. 『극단의 형벌』은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씌어진 책이다. 사형에 관한 그의 발언이 실증적 무게를 갖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실증적 경험을 동원해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는 동일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도덕적 균형’ 인데 현실에서는 이런 균형이 깨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가령 그는 백인을 죽인 살인범은 흑인을 죽인 경우보다 사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3.5배나 높다는 사실, 사형수의 90% 이상이 변호사를 제대로 선임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 공범인데도 부자는 징역형에 그친 반면 가난한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는 사실, 재판에 참여하는 검사와 변호사들이 일을 잘 못하면 못 할수록 사형수들은 아무리 심각한 죄를 지었어도, 아무리 증거가 강력해도 더 오랜 산다는 사실들을 들어 사형구형에 있어서 ‘도덕적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말한다.


많은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사형이 공적 자금을 절약해준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무기징역을 받은 살인범을 평생 먹여 살릴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콧 터로는 미국에서 유죄판결로부터 사형집행에 이르는 평균기간은 11년 6개월이었으며, 이 기간 동안 변호사와 법원은 계속 소송에 필요한 자료들을 토해냈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이 모두 공적 자금이었으며, 사형수의 감방은 모두 독방이었는데, 이 독방의 운영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들어 사형이 공적 자금을 줄일 수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그는 비용절약이 사형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한다. 사형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라는 것이다.


스콧 터로는 범죄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노벨 평화상이라도 받을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윤리적 기반 위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과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법에게는 높은 수준의 승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만이 법의 승리가 아니라 범죄자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도 법의 승리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콧 터로는 사형 제도에 대해 반대하지만, “살인이 잘못된 것이라면 국가는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단순한 논리에도 반대한다. 이는 인간 행동의 복잡함을 고려하지 않는 단순논리라는 것이다. 그는 국가의 살인을 부정해야 한다면 전쟁이나 경찰의 무기 사용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무고한 범죄자에 대한 사형집행이다. 그는 죄수가 교도소 안에서라도 살아 있기만 하다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희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사형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콧 터로는 살인범이 계속 살아있다면 피해자의 가족들이 계속해서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됨으로써 그들의 슬픔이나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는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형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와 구성원인 우리 자신의 수많은 측면들과 얽혀 있기 때문에 피해자 가족들만을 염두에 둘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만약 사형 제도에 찬성을 하게 된다면 사형이라는 것이 유족들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유익한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범죄가 끔찍한 경우에는 그 범인을 죽이는 것만이 ‘도덕적 균형’이라는 일반인들의 믿음에 대해 스콧 터로는 일리노이 주의 통계를 제시하면서 이런 입장으로는 사형 제도를 존속시킬 만한 타당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반박한다. 일리노이 주에서는 일급 살인 사건의 경우에도 50건 가운데 49건은 사형이 선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형이 선고되지 않은 98%의 사건에서는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스콧 터로는 어떤 점에서는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듯하지만 종국적으로는 사형폐지론자에 가깝다. 그가 그런 입장에 서게 된 것은 사법적 판단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 불완전하다면 인간이 만든 법 또한 불완전하기 때문에 언제나 오판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믿는다. 또한 아무리 법이 정확하고 예리하다 할지라도 인간 행위의 이면에 숨어 있는 동기와 의도를 명쾌하게 밝혀내는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사형은 비인간적인 형벌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책의 말미에 “이 책은 경험에 바탕을 둔 개인적 기록이므로 학술적인 책으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사형에 관련한 여러 논점들을 꼼꼼하고도 쉽게 보여줌으로써 사형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에 깊이를 더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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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 지구의 체온과 맥박을 체크하라
제임스 러브록 지음 / 김영사 / 1995년 3월
평점 :
절판


 

지구생명체에게 인간은 무엇인가

 


  찬 물을 들이켰다고 해서 인간의 체온이 급격하게 내려가지는 않으며, 온탕에 들어갔다고 해서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인체는 체온의 온도를 36.5℃로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을 가진다. 바로 이것이 생물체가 생리적 조건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 즉 항상성이다. 생명체를 무생물체와 구별 짓는 특징도 바로 이 항상성에 있다.

  생물체는 자동조절시스템에 의해 항상성이 유지되고 있다면 바닷물과 같은 무생물은 어떻게 일정하게 염분농도를 유지할까. 이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가이아』의 저자인 러브록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로부터 그 이름을 빌려온 이 책의 핵심 내용은 본질적으로 지구는 ‘자기조절기능을 갖춘 하나의 생명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과학자인 러브록은 지난 30억년 동안 대기권의 원소 조성과 해양의 염분농도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그 항상성의 비밀을 생물의 존재에서 찾았다. 그는 탄소, 질소, 인, 황, 규소 등 지구를 구성하는 주요 원소들이 대륙과 해양을 오가며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 메커니즘이 전적으로 생물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바닷물의 염분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것은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작용인 것이다. 이런 실례들을 통하여 저자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균형조절 시스템의 존재를 확신하고 이를 '가이아'라고 이름 붙인다. 

  이러한 가이아의 세계에서 인간은 지구의 주인도 관리인도 아니다. 비유하자면 인간은 지구라는 하나의 유기체를 구성하는 세포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많은 생물종들이 멸종하는 상황에서 인류의 숫자가 60억을 넘고 있다면 인류는 지구라는 생명체에 기생하는 암세포로 비유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암세포의 활동, 곧 인간의 산업활동으로 인한 환경오염은 곧 지구 생명체의 이상을 가져온다. 온실가스의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가 그것이다.

   최근 미국의 주요 정유시설이 몰려있는 멕시코만 일대를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해 환경운동가들은 ‘가이아의 경고’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이면서도 온실 가스 주 배출원인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을 감축하기 위한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해온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논리다.

   러브록은 온난화로 인한 재앙으로 죽음을 피할 다른 대안이 없으며 더 늦기 전에 강력한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원자력을 그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에너지원으로서의 원자력은 언제든지 가공할 만한 무기로서의 원자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일원으로서 인간은 자연 앞에 겸손해져야 함을 역설하는 러브록의 메시지는 환경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에서 여전히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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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구도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가이아"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9-23 14:17 
    가이아 - 제임스 러브록 지음/김영사 전반적인 리뷰 이 책을 정확히 언제 읽었는지 모른다. 내 정리된 자료에도 2002년 12월 31일(책을 DB화시킨 날)로 되어 있으니 그 이전에 읽었던 책인 것만 확실하다. 기존 홈페이지에 리뷰도 없다. 그러나 이 책을 몇 년도에 읽었는지 그리고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지 난 아직도 기억한다.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강렬했기에... 이 책은 내가 재수를 하던 1995년도에 읽었던 책이..
 
 
 
정의의 여신, 광장으로 나오다 - 법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18
강정혜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법은 시대 정신의 반영이다

정의의 여신, 광장으로 나오다/강정혜/프로네시스/2006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과 권력의 관계를 규정하는 하나의 커다란 틀이다. 그 틀을 시대에 걸맞게 바꾸어야 한다는 개헌론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한쪽에서는 개헌의 당위성을 외치고 한쪽에서는 불가론을 외친다. 한 국가의 정체성과 권력의 관계를 결정하는 헌법에 손을 댄다는 것은 신중을 요하는 일이다. 결코 정략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사안이 아니다. 국민들의 법에 대한 인식의 깊이가 필요한 것도 이 대목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법이라면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의 법에 대한 정서다.


그러나 『정의의 여신, 광장으로 나오다』의 저자, 강정혜는 법은 우리에게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제도라고 말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법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하루하루의 생활을 영위해 간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가 상했을 경우에는 법에 의해 제조사에 책임을 추궁할 수 있고, 버스를 타는 순간 우리는 자동적으로 운송계약의 당사자가 되고, 운행 중 사고가 나면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다. 또 회사에 출근하면 근로계약과 노동법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저자는 법이 왜 중요한가를 ‘론스타 과세 문제’의 사례를 들어 설득력 있게 말한다. 론스타는 국경을 넘다드는 거대한 투기자본이다. 론스타는 IMF 이후 외환은행 인수를 통해 4조 5,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차익을 남겼다. 이익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는 법. 그러나 그들은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론스타는 펀드의 주소지를 세금이 가벼운 벨기에로 옮겼고, 한국과 벨기에는 ‘이중과세방지협약’을 맺어 한쪽에서 세금을 내면 다른 쪽에서 세금을 징수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엄청난 세금 납부에 대한 책임을 피했다는 것이다. 제일은행을 사고팔아 1조원 이상을 남겼던 펀드 뉴브리지 캐피탈 역시 이런 방법으로 무거운 세금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거래상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면 물건을 잘 만들어 수출을 잘 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 못지않게 촘촘하고 튼튼하게 법률의 그물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대국 법률의 허술함을 이용해 최대한 자기 이익만을 챙기려는 게 자본의 속성이므로, 느슨하고 조악한 법률은 욕심 많은 자본가들이 부당한 이익을 노릴 기회를 많이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총과 칼이 한 나라의 이익을 보장해주었지만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화 시대에는 잘 짜여진 법률의 그물망만이 국익을 지켜줄 수 있는 무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법률조항을 암기하는 것으로 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법률조항에 대한 해석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1999년 무렵 헌법재판소는 제대 군인에게 가산점을 주는 법률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한편 2001년 헌법재판소는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법률조항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왜 이런 결정이 내려졌을까. 저자는 바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말한다.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은 남녀평등이라는 시대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에 가산점을 주는 것을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만약에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에 대한 위헌 여부의 판결이 전쟁의 상황에서 내려져야 했다면, 즉 시대정신이 애국심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라면 아마도 다른 판결이 내려졌을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이들은 이렇게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법을 암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법률들의 공통의 틀’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법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틀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훈련을 받는 것이고 그 훈련의 결과로 법적 사고력이 갖추어지면 복잡한 사회 현실에 걸맞은 틀을 적용하여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봄에 에어컨 판매업자와 에어컨 1대에 대한 구매계약을 체결하고 대금은 납부하였다고 하자. 그런데 아직 여름이 안 되었기 때문에 바로 배달받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하여 운송일자는 몇 달 후인 여름초로 정했다. 그런데 막상 여름이 되어 에어컨을 배송받으려 하자 판매업자가 하는 말이 구매계약을 체결했던 봄 이후 품귀현상으로 가격이 많이 올랐으니 오른 가격을 추가로 지불하면 물건을 배달해주고 아니면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하면 여러분이라면 이런 판매업자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겠느냐고 저자는 독자에게 묻는다. 법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의 법적인 핵심 요소를 ‘바뀐 약관의 적용 여부’라는 단 한 어구로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해결함에 있어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칙, 곧 법의 틀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법의 틀이라고 해서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는 합리적으로 사고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예로 들어 법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는 악랄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면서, 약속한 날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자신의 살 1파운드를 주겠다고 계약한다. 약속한 날까지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는 나중에 빚을 10배로 갚겠다고 하였지만,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화해 요구를 무시하고 예약대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가지겠다고 주장하였다. 두 사람은 결국 법정에 서게 되었고, 재판관 포샤는 "살 1파운드는 법률에 비추어 그대의 것이니, 절단해 가라. 그러나 계약서에는 살 1파운라고만 쓰여 있을 뿐임을 명심하라.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는 날에는 당신의 재산이 모조리 국법에 의하여 나라에 몰수될 것이다."라고 판결한다. 이에 저자는 안토니오와 샤일록 사이의 계약은 사람의 신체를 거래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공서양속(公序良俗) 위반’(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이므로 무효라고 간단하게 못을 박는다.


엘빈 토플러는 미국의 기업은 시속 100마일, 정부 관료조직은 25마일, 학교는 10마일, 정치조직은 3마일, 그리고 법은 1마일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비유하며 법의 보수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저자는 영미법과 대륙법의 융합, 공법과 사법의 융합, 국내법과 국제법의 융합으로 우리가 처한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함을 강조한다. 법이 현실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14년간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경험을 살려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법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통해 민법과 상법 그리고 형법을 살펴보는 식이다. 때문인지 법이 딱딱하고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 법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대륙법과 영미법의 형성과 차이점 등을 알아보고 우리 법체계의 계통을 추적해 보고 있지만 문체는 현학적이지 않고 쉽고 친절해 법의 초보자들이 독서의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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