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서판 -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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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나는 인간의 본성은 과연 없을까?

빈서판/스티븐 핑커/사이언스북스/2004



플라톤은 인간의 행동에는 세 가지 근원, 곧 욕망, 감정, 이성이 있으며, 그 세 가지 중에 어떤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계급이 정해져야 한다고 보았다. 물질적 욕망에 머무르는 이들은 시민계급, 권력과 싸움을 좋아하면 수호계급, 지혜와 이성을 중시하면 통치계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이런 논리를 받아들일 사람이 없겠지만 노예제도나 봉건제도의 민중들은 자신이 천하게 사는 것은 천한 혈통을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열등하게 태어났으니 열등한 삶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패배주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운명론적 사고방식은 오늘날의 입장에서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시대의 민중들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리 불합리한 현실일지라도 그것이 하늘이 결정해준, 하늘의 뜻이라면 기꺼이 감수해야만 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왕후장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이가 있다. 바로 고려시대의 만적이다. 비록 그의 반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는 인간의 지위가 하늘이 결정해준 것이 아님을 분명히 천명했다.


‘nature’와 ‘nuture’는 그 단어의 모양새가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다. nature는 말 그대로 ‘자연’ 혹은 ‘본성’이라는 뜻이요, nuture는 ‘기르다’, ‘양육하다’라는 뜻이다. nature와 nuture라는 단어를 새로운 의미관계로 결합시킨 사람은 ‘우생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골턴이었다. 그는 인간성이 플라톤이 주장하는 대로 ‘본성(nature)’에 의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인지 만적이 주장하는 것처럼 ’양육(nurture)'에 의해 후천적으로 결정되는지를 물으면서, 전자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골턴의 이런 본성론은 인간의 결함도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면 결함을 가진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도태시킴으로써 인간성을 개조해야 한다는 우생학으로 발전되면서 나치의 유태인․동성애자 학살과 같은 커다란 유혈의 비극을 불러오기도 하였다.


17세기 철학자 존 로크는 경험론에 바탕을 두고 인간이 이상, 진리, 신의 관념 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본성론을 공격했다. 존 로크는 인간의 마음은 아무 개념도 담겨 있지 않은 흰 종이와 같으며 그 내용은 오로지 경험에 의해 채워진다는 '빈 서판(書板)'(the blank slate) 개념을 들고 나왔다. 그는 이 개념을 내세워 인간의 마음은 타고난 특성이 없으며, 환경으로부터 얻는 경험이 각 개인의 차이를 만들 뿐이라며 세습 왕권과 신분제의 정당성을 부인했다.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얻어진다는 경험론에 바탕을 둔 그의 빈서판 이론은 본성론에 기반하고 있는 모든 불합리한 특권제도를 철폐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합리주의 전통을 계승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학자들은 ‘인간에게 타고난 본성이 있다’는 주장을 극단적으로 혐오하게 된다. 그들은 인간성이 환경에 의해서 구성되고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사회정의를 달성하는 길이요, 사회 정의를 위한 것이 개혁이요,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도 이런 생각에서 멀지 않았다. 인간성이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 이들은 본성론은 패배적 운명론을 조장하고, 사회의 불합리와 모순을 정당화하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고 끊임없이 경고했다.


행동주의자들도 본성론을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그들은 행동은 유전적 요소들의 발현도 아니고, 유전에 의해 설명될 수도 없으며, 오직 자연환경의 영향력에 의해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수동적이고 강요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본성(nature)이냐 양육(nurture)이냐 하는 논쟁에서 철저히 양육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행동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는 스키너다. 개를 대상으로 조건반사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한 파블로프는 스키너에게 이론적 힌트를 제공했다.


밥을 줄 때마다 먼저 종소리를 울리고 밥을 준다. 그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종소리만 울리더라도 개는 침을 흘린다는 것이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이론이다. 이 이론은 배운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체계화했다. 파블로프는 이 이론을 시발점으로 해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을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다. 스키너는 인간이란 존재는 자유의지를 지닌 고상한 존재가 아니라 자극과 반응의 관계에 의해 길들여진 기계와 같은 존재로 보았고 인간의 언어습득도 자극과 반응, 즉 훈련에 따른 행위일 뿐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언어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그의 저서『빈서판』에서 스키너식의 결정론적 사고방식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의 이론은 인간이 언어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의 이론적 연장선상에 있다.(실제로 그는 노암 촘스키의 제자다.)


촘스키는 인간에게 있어서 말을 하는 능력은 선천적으로 결정된 능력이라고 했다. 어린아이는 생존에 알맞은 환경과 영향이 공급되면 저절로 신체기관이 자라듯이 적절한 환경이 주어지면 저절로 말하는 능력이 싹튼다는 것이다. 만약에 인간의 언어가 경험에 의한 것이라면 인간은 어떻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문장을 말할 수 있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 안 밥 먹었다”와 같은 문장을 말하는 것은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주장한다. 바로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든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보편적인 언어능력이 인간 속에 잠재되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명명하면서 이 자연주의적 오류의 위험성 때문에 사람들이 인간의 자연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어느 누구도 굴욕감을 느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어느 누구도 불공정하게 대우받기를, 즉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특성(자연성)에 따라 대우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공통된 특성이 인간에게는 있다고 말하면서, 차별과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감정은, 어떤 특성이 사람에 따라 아무리 큰 차이가 나더라도 그 때문에 사람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한다. 설령 개인의 피부색깔과 성향이 다르더라도 차별대우를 받는 것을 인간이면 모두 다 싫어하는 보편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개인의 특성이 차별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핑커는 인간의 선천적 특성이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분명히 못을 박는다. 가령 인간에게 이기적인 특성이 있다는 사실이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된다는 사실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존재가 당위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핑커는 개혁적 정치가들이 인간에게 고유한 본성을 무시함으로써 정책적 오류를 빚을 수도 있다는 예를 이스라엘의 키부츠 경영에서 든다. 키부츠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집단농장이다. 여러 가구들이 모여 철저한 분업형식으로 공동생산, 공동분배, 공동소유를 원칙으로 하는 공동생활체이다. 키부츠에서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전 키부츠 구성원들이 노동에 종사한다. 또 양로원과 탁아소 및 유치원 시설을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키부츠에서는 자신의 아이를 양육할 수 없었는데 바로 이 점이 인간이 자식에게 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정책이고 그 결과 자식을 부모와 떨어뜨려 양육하는 정책은 철회되어야 했다고 말한다. 이런 실패는 구소련과 중국의 집단농장에서도 빚어졌다. 이런 정책적 실패도 결국은 인간은 환경에 의해 얼마든지 개조될 수 있다는 '빈 서판' 이론에 기인한다는 것이 스티븐 핑커의 주장이다.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을 얼마든지 가공 가능한 원재료로 파악해 오로지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강압적인 교육과 환경 조성에 집중하도록 했다는 것이 빈서판 이론 추종자들의 오류라는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신체적 외모나 지역 문화와 같은 피상적 차이 밑에 숨어 있는 인류의 심리적 통일성을 밝혀줄 것이기에 인간의 본성을 밝혀내는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스티븐 핑커의 주장은 계급적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보수적 동기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본성에 대한 주장들을 저울의 어느 쪽도 슬며시 손가락으로 누르지 않고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하며, 그 주장들이 결국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우리의 삶에 받아들일 것인가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본성을 부인할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를 분명히 알고, 그 인식의 바탕 위에서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바로 이 점이 스티븐 핑커를 보수주의적 본성론자와 확연히 구분시켜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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