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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형벌 - 사형의 비인간성에 대한 인간적 성찰
스콧 터로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실증적 경험을 통해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말한다
극단의 형벌/스콧 터로/교양인/2004
2000년 미국 대통령 후보 3차 토론에서 사회를 맡은 PBS 뉴스 진행자 짐 레러는 두 후보에게 사형이 범죄 억제책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가 대답했다. 민주당의 엘 고어 후보도 같은 대답을 했다. 부시는 이어서 “그것이 사형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극단의 형벌』의 저자 스콧 터로는 사형이 범죄의 억제책이 될 수 없다는 실증적 자료들을 제시한다. 가령 1976년 이후 미국 전체 사형 집행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던 텍사스 주는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살인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 간 사형제도가 없는 주들 전체의 살인율은 사형제도가 있는 주들의 살인율보다 늘 낮았을 뿐 아니라, 그 차이는 늘 점점 벌어져 왔다고 한다. 어떤 사회학자들은 사형집행이 도리어 살인을 자극한다고 하는 이른바 ‘야만효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스콧 터로는 미국에서 사형의 살인 억제효과를 학문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주로 시장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모든 사회적 선택은 자극에 반응하는 합리적인 결정권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형으로 대표되는 형벌이 살인을 막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스콧 터로는 사회과학보다는 경험에 기초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는 검사 출신 변호사이자 베스트셀러 소설가이다. 공화당 출신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 조지 라이언이 지난 2000년 3월 사형집행의 일시 중지를 선언하고 사형제도 개혁을 위한 ‘사형 위원회’를 설치했을 때 스콧 터로는 일리노이 사형위원회에서 2년 동안 사형제의 문제점과 개선안을 연구했다. 『극단의 형벌』은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씌어진 책이다. 사형에 관한 그의 발언이 실증적 무게를 갖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실증적 경험을 동원해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는 동일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도덕적 균형’ 인데 현실에서는 이런 균형이 깨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가령 그는 백인을 죽인 살인범은 흑인을 죽인 경우보다 사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3.5배나 높다는 사실, 사형수의 90% 이상이 변호사를 제대로 선임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 공범인데도 부자는 징역형에 그친 반면 가난한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는 사실, 재판에 참여하는 검사와 변호사들이 일을 잘 못하면 못 할수록 사형수들은 아무리 심각한 죄를 지었어도, 아무리 증거가 강력해도 더 오랜 산다는 사실들을 들어 사형구형에 있어서 ‘도덕적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말한다.
많은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사형이 공적 자금을 절약해준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무기징역을 받은 살인범을 평생 먹여 살릴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콧 터로는 미국에서 유죄판결로부터 사형집행에 이르는 평균기간은 11년 6개월이었으며, 이 기간 동안 변호사와 법원은 계속 소송에 필요한 자료들을 토해냈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이 모두 공적 자금이었으며, 사형수의 감방은 모두 독방이었는데, 이 독방의 운영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들어 사형이 공적 자금을 줄일 수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그는 비용절약이 사형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한다. 사형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라는 것이다.
스콧 터로는 범죄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노벨 평화상이라도 받을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윤리적 기반 위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과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법에게는 높은 수준의 승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만이 법의 승리가 아니라 범죄자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도 법의 승리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콧 터로는 사형 제도에 대해 반대하지만, “살인이 잘못된 것이라면 국가는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단순한 논리에도 반대한다. 이는 인간 행동의 복잡함을 고려하지 않는 단순논리라는 것이다. 그는 국가의 살인을 부정해야 한다면 전쟁이나 경찰의 무기 사용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무고한 범죄자에 대한 사형집행이다. 그는 죄수가 교도소 안에서라도 살아 있기만 하다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희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사형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콧 터로는 살인범이 계속 살아있다면 피해자의 가족들이 계속해서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됨으로써 그들의 슬픔이나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는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형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와 구성원인 우리 자신의 수많은 측면들과 얽혀 있기 때문에 피해자 가족들만을 염두에 둘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만약 사형 제도에 찬성을 하게 된다면 사형이라는 것이 유족들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유익한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범죄가 끔찍한 경우에는 그 범인을 죽이는 것만이 ‘도덕적 균형’이라는 일반인들의 믿음에 대해 스콧 터로는 일리노이 주의 통계를 제시하면서 이런 입장으로는 사형 제도를 존속시킬 만한 타당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반박한다. 일리노이 주에서는 일급 살인 사건의 경우에도 50건 가운데 49건은 사형이 선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형이 선고되지 않은 98%의 사건에서는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스콧 터로는 어떤 점에서는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듯하지만 종국적으로는 사형폐지론자에 가깝다. 그가 그런 입장에 서게 된 것은 사법적 판단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 불완전하다면 인간이 만든 법 또한 불완전하기 때문에 언제나 오판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믿는다. 또한 아무리 법이 정확하고 예리하다 할지라도 인간 행위의 이면에 숨어 있는 동기와 의도를 명쾌하게 밝혀내는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사형은 비인간적인 형벌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책의 말미에 “이 책은 경험에 바탕을 둔 개인적 기록이므로 학술적인 책으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사형에 관련한 여러 논점들을 꼼꼼하고도 쉽게 보여줌으로써 사형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에 깊이를 더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