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하우스
스티븐 J.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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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드, 진화이론으로 다양성의 가치를 논하다

  

   풀하우스/스티브 제이 굴드/사회평론/2003




미국의 남북전쟁 전쟁 때 북군은 표준화를 이용해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방아틀뭉치가 고장난 총과 노리쇠뭉치가 고장난 총이 있다면 적어도 한 정은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오늘날의 상식이다. 그러나 당시의 총은 방아틀뭉치와 노리쇠뭉치를 갈아끼울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 부품끼리의 호환성이 없었다. 결국 1개의 부품이라도 파손될 경우 소총을 통째로 버려야했다. 지금의 입장에서 볼 때 비효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군은 소총을 표준화하였다. 노리쇠 뭉치가 고장난 총의 방아틀뭉치를 방아틀뭉치가 고장난 총에 끼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결국 표준화를 통해 호환성이 뛰어난 소총을 가진 북군은 이 표준화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표준화의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실감케 해주는 사례다.


 ‘3S' 즉 표준화(Standardization)?객秉廢(Simplification)?걋渙화(Specialization)는 생산성 향상에 필수적이다.  ‘3S'은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제품의 질적 향상과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3S'로 대표되는 획일성과 규격화는 경제성, 즉 효율성을 낳았다.


인간의 지각 시스템도 어찌 보면 획일적이라 할 수 있다. 장미의 붉은색과 혈액의 붉은 색은 엄격하게 말해서 다르다. 장미의 붉은색과 입술의 붉은색도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는 그 다양한 사물 현상들을 뭉뚱그려서 ‘붉다’라고 인식한다. 사물은 저마다의 섬세한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하나의 개별적 사물이 가지는 섬세함을 그 자체로 인식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종달새의 다리와 타조의 다리, 코끼리의 다리와 조랑말의 다리는 엄격히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획일적으로 ‘다리’라고 인식한다. 언어의 이런 추상성 덕택에 우리는 세계 속의 사물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세계에 대한 통일적 인식을 획득했다.


과학도 이런 획일화, 추상화의 산물이다. 우리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돌멩이가 떨어지는 등의 수많은 낙하현상을 경험한다. 우리의 인식의 시스템은 그것을 낱낱의 경험으로도 인식하지만 아울러 그 수많은 경험적 사례로부터 ‘낙하법칙’이라는 추상적 이론을 추출해낸다. 추상(抽象)이란 개별적 현상으로부터 공통점을 ‘뽑아내는’ 과정이다. 그런데 사물의 공통점을 뽑는 추상(抽象)의 과정은 구체적 사물이 가지는 개별적 고유성을 버리는 사상(捨象)의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장미꽃을 ‘붉다’라고 표현했을 때, 우리는 그 장미가 가지는 고유의 독특한 색깔을 간과하게 된다는 점이다. 하나 하나의 구체적 사물은 바로 그 독특한 무늬와 향기 속에  자신의 개별성을 구현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인식은 추상적이고도 획일적으로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


세상은 이분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이 있고 밝음이 있지만 새벽이나 저녁과 같이 흐리멍덩한 시간도 있으며,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도 있다. 획일적으로 ‘어떻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애매모호한 상황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퍼지이론의 이론적 핵심은 사물이 존재하는 양상을 섬세하게 인식하자는 데 있었다. 퍼지이론에 의하면 공산품을 제작할 때 사물의 다양한 측면을 의식한다면 보다 정확하면서도 효율적인 물건을 생산할 수 있다고 보았다. 퍼지이론의 중요성은 복잡한, 즉 단순치 않고 ‘흐리멍덩한’ 사물 현상을 보다 엄격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수학적 이론이라는 데 있다. 구체적 사물 현상을 획일적 도식으로서가 아니라 보다 세련된 수학적, 즉 정확하고도 섬세한 사고로써 처리함으로써 보다 바람직한 기기들을 만들자는 것이 퍼지이론을 공학적으로 이용한 과학자들의 의도였다.


추상화를 통해 인간은 자연의 사물들을 질서 있게 분류하여 자연을 체계화시켰지만, 그 반대로 하나하나의 사물이 가지는 특성과 뉘앙스(섬세한 차이)를 잃어버렸다. 철학자 니체는 이를 두고 ‘추상은 구체에 대한 폭력’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과도한 추상화가 구체적 사물이 가지는 섬세한 느낌과 풍부한 표정을 잃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를 획일적으로 인식하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사물이 가지는 섬세한 느낌과 풍부한 표정을 그 자체로 인식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물이 가지는 섬세한 느낌과 풍부한 표정, 그 어떤 추상적 언어로도 환원될 수 없는 그 사물만이 가지는 독특성의 세계, 바로 그것이 우리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연의 세계, 곧 다양성의 세계다.


어렸을 때 생물학 도감을 펴면 어류에서 파충류, 포유로의 진화를 보여주는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생물학 도감은 등이 유인원에서 현생인류로의 진화과정 또한 친절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 그림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화는 단세포-다세포-파충류-포유류의 단계를 거쳐 영장류인 호모사피엔스로 단선적으로 진행되고 인간은 단선적 진화의 정점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것이 "오만한 인간중심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일축해버린다. 그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고 단적으로 말한다. 그는 인간을 다른 생물들과 분리시켜 우월감을 느끼는 전통적 관념을 버리고 인간을 생명의 거대한 역사 속에 나타난 우연한 존재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인간이 다른 생물에 비교해 특별히 잘난 게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인간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 위에 군림할 자격이나 특권이 없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다른 생물들처럼 자연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생물체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진화를 우발적인 돌연변이와 이에 대한 자연선택의 결과로 해석한다. 고생물의 화석 연구를 통해 그는 진화가 특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발견하고, 1972년 '진화는 생태계의 평형상태가 갑자기 깨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가설을 제안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굴드는 진화의 동력을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고 보았다. 즉 생물은 생태계가 안정된 평형 상태에서 오랫동안 거의 진화하지 않다가 빙하기, 운석 충돌 등으로 평형 상태가 깨지면서 순식간에 진화하거나 소멸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진화를 곧 '발전'으로 보는 직선적 생명관, 인간을 궁극적 가치로 보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우회적인 공격이었던 셈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인간의 언어능력은 그 능력이 갖는 장점을 획득하기 위한 적응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 뇌가 커진 결과로 인해 얻어진 ‘우연의 부산물’일 뿐이다. 또 진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뇌 용량이 커지거나 말의 체구가 커지는 등의 직선적인인 과정이 아니며, 다양한 종이 우발적으로 창출되어 제각기 생존하는, 즉 모두 함께 모여 지구라는 ‘집house'을 꽉 ’채우는full‘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풀하우스’는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공존하는 진화의 최종목적지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지구의 역사를 다시 비슷한 조건에서 반복한다 해도 인간이 탄생할 확률은 거의 제로가 되는 셈이다. 결국 인간의 바람과는 달리 '인류의 탄생은 한순간 우연히 일어난 우주적 사건에 지나지 않으며, 생명의 씨앗이 다시 뿌려져 생명의 나무가 비슷한 조건에서 자라난다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사건'일 뿐이다.


그는 "생명의 우수함은 한 뛰어난 특성이 아니라 넓게 퍼져 있는 차이"라며 차이를 강조한다. 차이가 낳는 것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특성만을 배타적으로 우월하게 강조한 결과다. 인간이 진화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은 만물의 영장도 아니요, 수많은 자연계의 생물종처럼 우연의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인간은 보다 겸허해질 수 있을 것이다. 파괴된 생태계를 회복하는 것은 인간 종(種)으로서의 겸허함을 회복하는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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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대담 시리즈 1
도정일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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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통을 꿈꾼다.

 대담/휴머니스트/도정일, 최재천/2005



  제나라에 사는 석(石씨) 성을 가진 목수 하나가 신상(神像)을 만드는 데 쓸 수 있는 큰 나무를 발견했다. 나무 그늘이 얼마나 큰지 소 수천 마리가 누울 수 있을 만큼 자리가 넉넉했다. 하지만 목수는 나무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의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이렇게 크고 좋은 목재는 처음 보았습니다. 한데 스승님께서는 왜 그 나무를 쳐다보지도 않으십니까?" 목수는 대답했다. "저 나무로 배를 만들면 물에 가라앉을 것이고 관을 만들면 금방 썩을 것이네. 그야말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지. 그래서 아무도 베지 않고 나무도 장수하면서 그렇게 높이 자란 걸세.“ 쓸모없는 것이 오히려 쓸모가 있다는 이른바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역설을 장자는 우화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만들면 이내 썩어버리는 나무는 당장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나 짧게 보지 말고 길게 보자. 그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면 그 나무는 풍성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을 쉬게 하고 곤충들과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뿐인가. 나무는 멋진 경관의 일부가 되어주고, 신성한 산소를 공급해 삶에 활력을 부여한다. 경제적인 효율성이라는  ‘눈 앞의 쓸모’만으로 그 나무를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쓸모없는 나무의 비유는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심장한 의미를 우리에게 준다.

  목수의 제자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때만이 사물은 존재가치가 있다는 실용적 관점을 대변한다. 자본주의의 현실에서는 바로 이런 실용적 관점이 사회의 주류를 형성한다. BK21 사업에서 인문과학의 초라한 예산 배정에 비해 자연과학분야나 공학분야에 천문학적 예산이 배정된 것도 이런 현실을 말해주고, 의학이나 법학과에 고득점자들이 몰리는 현상이나, 실용서들의 강세와 인문서적들의 약세 또한 실용적 관점이 우리 사회의 대세임을 말해준다. 

 『대담』은 동물행동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최재천 교수와 영어학부 교수이자 문화연대 공동대표인 도정일 교수와의 대담을 묶은 책. 이 책에서 도정일 교수는 ‘눈앞의 쓸모’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효율성 만능주의 현실을 강도 높게 비난한다. “당장 시장에다 내다 팔 지식만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는 미래를 도살하는 나라예요....인문학의 기초가 없는 나라에서는 수준 높은 문화산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요." 도정일 교수 역시 인문학의 가치를 문화산업의 관점, 즉 실용적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한 최재천 교수의 관점도 흡사하다. ”기초학문의 연구 성과는 아주 천천히 나타나지만 굉장히 위력적이죠. 가령 몇 십 년 동안 진행된  영국 옥스퍼드의 박새 연구나 케임브리지의 사슴 연구 등이 갖는 학문적․경제적 위력은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도정일, 최재천 교수는 전공과 관심 분야는 다를지 몰라도 중요한 하나의 공통점을 말하고 있다. 즉 당장에는 쓸모없는 것 같아 보이는 인문학이나 기초학문도 결국은 쓸모 있는 것이라는 것. 장자가 말하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의 현대식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담』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최재천 교수는 “학문의 경계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자연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결국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구분 짓는 울타리를 넘어 서로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트랜스(Trans)‘‘를 해야 할 때가 왔음을 역설한다. 이에 도정일 교수는 ”’트랜스‘란 한 사람의 연구자가 다수의 전공영역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를 살찌우기 위해서, 혹은 연구대상에 대한 더 나은 통찰에 이르기 위해서, 혹은 어떤 연구 대상에 대한 더 나은 통찰에 이르기 위해서 인접학문이나 다른 학문의 성과들을 부단히 조회․참조하고 원용할 때만 의미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동의한다. 가령 심리학의 통찰을 빌려 인간의 경제행위를 설명하려는 경향이 트랜스한 연구 경향의 한 예라는 것이다.

  이에 최재천 교수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며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라는 책을 소개하며 이 책이 자연환경이 문화와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가에 대해 깊이 있고 폭넓은 분석을 해낸 것이라는 점을 들어 간접적으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를 흥미롭게 시사해준다.

 두 교수의 논쟁이 불을 뿜는 곳은 ‘유전자’를 주제로 하고 있는 제2장이다.

 도정일 교수는 인간의 모든 행동과 행위 동기, 가치와 목표들이 생물학적․유전학적으로 다 설명될 수 없다면서, 생물학이라는 이름을 여기저기 갖다 붙이는 것은 좋게 말하면 통합학문적 열정이고 나쁘게 말하면 생물학의 제국주의라고 말한다. 독자로서는 아연 긴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인간의 사회라면 적어도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규정하는 일련의 가치와 규범, 기준에 인간이 눈을 뜬 것은 자연스런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이기보다는, 구태여 진화라는 말을 쓰자면 사회적 진화의 결과죠. 사회적 진화는 정치적․사회적 선택, 한마디로 ‘문화적 선택’의 결과”라고 도정일 교수는 단언한다. 그러나 문화적 선택도 생물학적 토대 위에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에 최재천 교수는 유전자만 가지고 생명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견해를 르원틴 교수의 책 『3중 나선』을 들어 설명한다. 유전자․ 생명체․환경 등의 세 가지의 상호작용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이렇게 『대담』은 논쟁을 통해 논점들에 깊이를 부여하고, 인문학적 사유에 풍성함 질감을 확보해준다.

 인문학은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대답하는 학문이다. 르원틴의 주장대로 DNA가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DNA가 인간의 성향에 미치는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면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인문학도 생물학과 무관할 수는 없다. 또 인문학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인지심리학이나 뇌신경학, 인공지능 연구를 내 몰라라 할 수만도 없다.

“복잡다기한 사회 현실의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참신한 학제간 연구 방법론의 개발에 소홀했으며, 새로운 사회적 요구와 수요가 반영되도록 인문학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겸허히 받아들인다.”라는 것이 고려대 인문대 교수들의 ‘인문학 선언문’의 한 구절이다. 인문학이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학문간의 소통으로 학문의 외연과 깊이를 확보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서 인문학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대담』의 한 구절은 왜 학문간의 소통이 필요한지를 영감에 찬 소리로 말하고 있다. “진화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 있다면 생명이란 가둘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한다는 겁니다. 그 어떤 힘도 생명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을 말하는 과학과 자유를 말하는 인문학에 대체 무슨 구별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학문간의 소통을 통해서 인문학이 새롭게 변모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이 책의 잠재적 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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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09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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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 시장에 관한 6가지 질문
이정전 지음 / 한길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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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시장을 위하여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이정전/한길사/2002년



  이정전은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시장이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를 포드 자동차의 영업 사례를 통해 말한다.

  1970년대 후반 세계 굴지의 기업인 포드 자동차 회사는 서민을 겨냥한 주력 품목으로 ‘핀토(Pinto)’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나 이 차는 충돌 시 연료탱크가 폭발하는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포드사는 이 차의 양산을 강행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결함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드사는 왜 알면서도 ‘핀토’의 출시를 강행했을까. 경제학에서 언급되는 ‘합리적 계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결함을 가진 차를 회수해서 교정하는 비용이 사고가 났을 때 보상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더 크다는 계산이 이미 나왔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경우에 포드사가 이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인명을 더 생각했다면 기업은 손해만 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포드사는 제너럴 모터(GM)사와 치열한 경쟁을 하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윤극대화를 꾀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치명적 결함을 가진 차라도 계속 파는 것이 합리적인 행위라는 것이 경제적 판단이다.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이 경제적 판단, 효율성의 논리다.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의 저자 이정전은 바로 이 ‘효율성’의 논리가 인간 사회의 전 영역을 지배하는 한 인간의 행복은 요원하다고 주장한다. 이정전은 ‘경제영역에서는 성과주의, 즉 경제 원리에 입각해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생산을 많이 하도록 하며, 정치영역은 평등의 원칙에 입각해서 분배를 고르게 하고, 사회화영역에서는 필요의 원칙(필요한 사람이 그때그때 더 많은 재화를 가져가게 하는 방식)에 따라 잘 나누어 쓴다면 조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가령 가난한 사람이 병이 난서 치료를 필요로 한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의료는 사회화영역이기 때문에 개인적 능력에 따라 분배(치료)를 받을 것이 아니라, 분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의 행복은 최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자본주의의 민간의료 체제하에서의 의사에게는 의료는 필연적으로 경제영역일 수밖에 없다. 성과주의에 의해 필요의 원칙 또는 약자보호의 원칙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자본주의의 시장이 만능일 수 없다는 논리가 도출된다.

  이정전은 어느 한 영역이 비대해져서 다른 영역을 침범하면 여러 가지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서 정치영역이 이상적으로 비대해져서 평등의 원칙이 경제영역을 지배하게 된다면 경제는 엉망이 될 것이고, 반대로 시장의 원리가 정치영역을 지배하고 사회화 영역까지 좀먹는다면 이 역시 정의롭지 못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경제적 성과주의의 원리가 정치권에도 적용될 수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자리, 국회의원의 자리, 장관 자리 등 공직에 가격이 붙어서 돈 주고 자리를 사고팔게 하면, 즉 정치 영역이 시장의 원리에 의해 지배되면 정치는 끝장이라고 경고한다. 한때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기여입학제’도 평등의 원리가 적용될 곳에 경제의 논리가 파고든 결과는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가령 복지와 의료는 분명 모든 사람들이 필요할 때마다 그 혜택을 누려야 할 사회화의 영역이다. 그러나 현실은 소위 ‘돈이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경제의 영역이다. 종교에서는 어떨까. 신도수를 늘리고, 교회의 재정을 튼튼히 하는 목사가 뛰어난 목사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종교의 문제를 경제의 논리로 환원시킨 결과다. 이 역시 경제의 영역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져서 경제적 정의의 원리가 종교에까지 확산된 결과다. 시장의 원리가 자기가 있어야 할 영역을 뛰어넘는 현상을 이정전은 ‘시장의 월경(越境)’이라고 이름 붙인다. 시장의 월경은 학문 세계에도 여실히 나타난다.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도 시장의 월경의 결과다. 그는 현재와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자본주의 시장의 힘 그리고 시장원리가 경제영역을 넘어서 정치영역을 침범해감으로써 체계 전체를 장악하고 생활세계까지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여기에서의 생활세계란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매개로 해서 서로 문화적으로 익숙한 가치를 공유하고 서로 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평을 말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지하고 성실한 의사소통을 통한 상호이해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가령, 우리 사회를 보자.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돈에 쏠려 있다. 어떻게 하면 돈을 효과적으로 벌 수 있는지 사람들이 모이며 재테크에 관한 이야기를 주요 화제로 떠올린다. 이런 가운데 사람들의 사이는 피상적으로 변하고 만다. 이 피상적 관계를 ‘고스톱’과 ‘음주’로 요약할 수 있는 유흥문화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제적 가치가 생활세계에까지 그 힘을 뻗치면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상적 배경을 가진 사람인지, 알 필요가 없다. 시장에서는 거래하는 모든 행위자의 행위는 인간관계가 아닌, 가격이라는 객관적 지표를 통해서 조정되기 때문이다. 가격이라는 객관적 지표가 대화를 필요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아무리 나의 사정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대형할인마트에서 물건 값을 깎아줄 리가 없다. 그러나 서로 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활세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그곳은 소위 ‘인정’과 ‘눈물’이 통하는 세상이다. 말하기에 따라서(의사소통의 결과에 따라서) 얼마든지 할인이 가능하고 때에 따라서는 외상도 가능한 곳이다.

  시장에서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인정 때문에 거래를 그르칠 수도 있고, 인정 때문에 계약이 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경쟁자를 이해하게 되면 경쟁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시장에서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냉정한 시장의 원리가 생활세계에까지 파고들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정전은 진정한 의사소통이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하버마사의 이론을 빌려온다.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우선 모든 대화자가 서로 경청하고 답변해야 하며, 상대방을 속일 의도를 가져서는 안 되며, 상대방을 성실한 주체로 인정해야 하며, 모든 대화자들이 동등해야 하며, 금기시되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되고, 누구든지 질문에서 제외되는 특권을 가져서도 선입견이나 억압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쟁취했을 때, 경제적 논리(도구적 합리성)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힘 있는 자는 힘이 없는 자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다. 일등병보다 소령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소령보다는 대령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며, 대령보다는 대장이 더 많은 정보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보는 누구나 똑같이 나누어 가질 수 없다. 어떤 한쪽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갖기 마련이다. 이를 그러나 나누어 가진 정보가 큰 차이가 없을 때는 몰라도 소유한 정보의 양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면 문제가 따른다. 이를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이라 한다. 한쪽은 상대방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 이것이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곧 정보의 불평등이다. A는 주가에 대한 정보가 풍부한 반면 B는 주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면 승패는 뻔하다. 주식투자자들이 경제신문을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읽는 것도 승리를 위한 양질의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국가는 권력을 이용해 국민들보다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그 정보 중에는 집권정당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보도 있을 수 있고, 집권정당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정보도 있을 수 있다. 기업 또한 이런 이유로 정보를 배타적으로 획득하려 하고 이를 통제한다. 그러나 정보의 통제가 집권정당이나 기업에게는 이익이 될지 몰라도 국민전체에게는 해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국가나 기업의 정보수집 행위에 대한 적절한 감시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누가 해야 하겠는가. 바로 언론이다. 언론을 통해서 기업의 활동과 국가의 행정행위가 투명하게 공개될 때,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런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때 비로소 시장은 완전하게 돌아간다. 그러나 아파트 가격의 원가를 공개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에도 건설사들은 꿈쩍도 않는다. 정보가 꽁꽁 묶여 있는 셈이다. 이런 상태에서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이질 리가 만무하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라는 시장주의자들의 요구가 재고되어야 할 곳도 바로 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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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테크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전영택 외 옮김 / 민음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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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초래하는 생태계의 대재앙

 바이오테크시대/제레미 리프킨/민음사/1999년



  전세계에 조류인플루엔자(AI)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도 경제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AI 바이러스와 사람 독감 바이러스가 인체에서 변종을 일으키면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도 경고한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재앙은 흔히 있어 왔던 일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바이오테크시대』에서 1845년에 있었던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사례로 들어 대재앙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설득력 있게 말해준다.


  아일랜드는 1840년대에 인구가 800만을 넘어 유럽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였다. 아일랜드 사람의 주식은 감자였는데, 그들은 아메리카에서 전파된 감자를 심었다. 그런데 1845년에 블라이트병이 감자작물을 덮쳤다. 거의 모든 감자가 죽어갔다. 그 피해는 실로 막대했다. 역사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굶어 죽은 사람이 최고 100만 명이나 되며 이민을 간 사람도 15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1870년대에는 인도와 스리랑카 지방에 커피 녹병이 발생하여 커피 생산을 황폐화시켰고, 1904년에는 미국에서 굴기녹병이 밀 작물을 덮쳐 막대한 손상을 입혔다. 이 모든 재앙이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단일재배를 채택한 결과이기 때문에, 만약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다양한 종의 식물들을 재배했다면 재앙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제레미 리프킨은 말한다.


  세계의 각 지역마다 개량된 여러 재래적 품종이 있는데도 농민들이 하나의 품종만 획일적으로 심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로 경제적 압력 때문이다. 단일재배(한 가지 품종만 집중적으로 심는 농법) 수확하기가 용이하고, 품질이 좋고, 생산성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한 가지 품종만 심는 경향은, 녹색 혁명이 시작된 196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결과는 어떨까. 녹색 혁명 이래 도입된 단일 품종 재배 방식이 세계 전역에서 생물의 다양성과 안정적인 식량 공급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유엔 식량 농업 기구에 의하면, 한 세기 전에 농작물이 가지고 있었던 유전자의 다양성은 현재 75퍼센트가 사라진 상태인데, 이는 주로 상업적인 영농 방식 때문이라고 한다.


  2003년 1월 한국에서는 인터넷 ‘대란’이 일어났다. 윈도 2000/NT 서버를 집중 공격하는 웜 바이러스 때문에 국가 인터넷망 대부분이 무력화되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대란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국가 기간 인터넷망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2000/NT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른 나라들보다 유독 피해가 컸다고 한다. 백업과 우회 체계 등의 대비책이 갖추어져 있거나, 리눅스나 유닉스 등 여러 시스템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었다면, 대혼란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체제가 사실상 컴퓨터시스템 운영 프로그램을 독점함으로써 인터넷 대란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독점은 생물계에서도 재앙을 초래한다. 이런 재앙에 대처하게 위해 생물들은 나름대로 유 연한 전략들을 구사한다. 이종교배도 그러한 전략 중의 하나다. 동식물을 통틀어 근친 간 짝짓기, 즉 동종교배(同種交配)가 유전적으로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유전학의 상식이다. 동종교배는 이종교배보다 동일한 형태의 대립유전자들을 발생케 하여 개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고, 상황에 적응하는 유연성이 부족해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데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동종교배를 통해 종들은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개체들은 환경에 대한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한다.

  성의 기원도 이런 환경에 대한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설명된다. 가령, 원생생물은 남녀의 구분도 종의 구분도 없다. 무성생식의 경우 아무리 세대를 거듭해도 유전적인 구조가 바뀌질 않는다. 아무런 변화도, 발전도, 진화도 없다. 그러나 남녀가 나뉘어 번식하는 유성생식은 정자와 난자가 서로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 낸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계속 새롭고 다양한 개체가 만들어진다. 즉 변화하고 발전하고 진화한다. 바로 이것이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성의 분화를 통해 다양성을 확보함으로써 생명체는 환경에 대한 대처능력을 향상시켰다.


  제레미리프킨은 “새로운 유전자 이식 농산물과 동물들은 더 빨리 자라고, 더 많은 소출을 올리며, 다양한 환경 및 기후와 관련된 스트레스에 견딜 수 있도록 조작된다.”라고 말한다. 유전자 조작을 하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의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가령 3배의 젖을 짜낼 수 있는 젖소에 대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낙농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경제적 압력 때문에 가축업자들은 이런 가축을 선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하나로 통일된 유전자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훨씬 더 재앙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농업에서 다양성이 결여된 단일재배 시스템이 지속되면 병충해나 자연재해 같은 현상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약해진다. 제레미 리프킨은 말한다. “종래의 품종 개량 방법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식물이 저항력을 갖게 하며, 때때로 수백 개의 유전자가 그 저항형질에 관련되는 데 반해, 유전자 조작방법은 어떤 가능한 환경으로부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항형질을 갖는 단지 하나 또는 두 개의 유전자를 삽입하는 데 그친다.” 자연의 변종들이나 재래식 품종 개량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종들은 해충이나 바이러스 등에 훨씬 더 다양한 저항형질로 대처하지만 유전자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동식물들은 이식된 불과 한 두 개의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저항형질을 가지고 이에 대처할 수밖에 없다. 빈곤한 무기로의 싸움은 끝은 처참한 패배다. 기본적으로 생태계는 복잡한 시스템인데, 단일재배나 유전자 조작과 같은 인위적 행위로 생태계의 다양성이 줄어들게 되면, 그 피해가 증폭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자연에 생명력을 불어넣듯이 인간의 조직도 활력을 위해서는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제각기 다른 개성을 가질 때, 그 조직은 다양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다양성의 가치에 주목하여, 노동력의 다양성을 기업의 효율성 증대와 연관지어 설명하면서 구성원간의 차이를 수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고무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증가하고 있다. 다양성을 기업 경쟁력 강화의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장에는 항상 기회가 존재한다. 이를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수적이다. 다양한 경험과 배경, 아이디어를 지닌 인재들을 확보함으로써 고객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차별적인 가치 제공이 가능하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인자의 결합이 열성 인자를 배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물학적 원리처럼, 생각과 문화가 같은 집단들끼리만 무리를 이뤄서는 경쟁력을 높이기 어렵다. 타인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흡수함으로써 다양성을 내면화할 때 인격의 진화와 사회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획일화, 단일화는 비약적인 생산성으로 이어질지 모르나, 거기에는 그만한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아일랜드 대기근 사태가 말해준다. AI이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깊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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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유전적 다양성과 사회(Genetic Diversity and Society)
    from * Saphi-N-tia centre blog. 2007-08-17 22:28 
    유전적 다양성과 사회 Genetic Diversity and Society - 유전에서 찾는 대립과 갈등의 해결. “너는 정말 돌연변이야...” 우리가 친구를 놀릴 때나, 아니면 특이하거나 때로는 주위 사람과는 다른 사람을 지칭할 때 돌연변이(mutation)라는 말을 자주 쓴다. 딱히 개념이 어려운 단어도 아니지만 돌연변이야 말로 진화생물학이나 유전학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져다 준다. 돌연변이가 나타나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여러가지 경우가..
 
 
 
경제를 보는 눈 - 세상을 읽는 눈 세상을 읽는 눈
홍은주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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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은 완전한 시장인가?

  경제를 보는 눈/홍은주/개마고원/2004



  내륙운하 개통, 아파트 반값 분양 등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꿈같은’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야 모두 당론으로 채택한 ‘아파트 반값 분양’만을 두고도, 시장주의자들은 정치권의 개입으로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가 하면 이에 반해 서민의 주거 안정에 큰 긍정적 효과를 주리라는 의견을 내는 반시장주의자들도 있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어느 한쪽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의 복잡성 때문이다. 이론은 예측을 위한 것이지만 이론은 존재가능한 모든 현실의 변수를 빠짐없이 고려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경제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길을 제공하는 책으로 활용할 수 있게 편집된 홍은주의『경제를 보는 눈』의 제4장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는 시장주의와 반시장주의의 문제점과 긍정성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

  자유방임, 자유시장의 신념은 지본주의 하에서의 이해관계는 시장에서의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에서의 가격의 자동조절기능에 의해 가장 잘 조절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독점과 담합 등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온갖 비합리적인 이익 추구 방식이 현실에는 엄연히 존재한다. 정부개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반시장주의자들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만 보더라도 완전시장은 아니다. 홍은주는 “모든 시장이 잘 작동할 경우 자본이익률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정상이윤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와 같은 전제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시장의 질서와 균형을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기업이 정상적인 생산 활동으로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그런데 부동산 투기로 얻는 이익이 더 크다면 기업의 자금은 생산설비의 확충이나 기술력 개발 등의 생산자금으로 쓰이기보다는 투기자금으로 쓰이기 쉽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이 완전한 시장이 아니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홍은주는 현대 경제에 있어 시장 실패의 주요한 이유로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든다. 부동산 시장을 두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설명해보자. 아파트의 가격의 원가가 얼마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아파트 가격의 원가에 대한 정보는 제로다. 하지만 시공의 주체인 건설사는 가격의 원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아파트 가격의 원가가 공개되지 않으면 소비자로서는 정상가격 이상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아파트 가격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질서인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 위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혹자는 소비자가 원가를 알고 사는 제품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주택에 대해서는 원가를 공개하라고 하는 요구는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들고 나온다. 하지만 주택이나 토지는 다른 소비재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물론 시장경제 체제에서 주택은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택은 공공재의 성격도 동시에 갖고 있다. 주택가격은 금융이나 소비 등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커서 일반 상품과 똑같이 간주할 수 없다. 또 대한민국에서는 국토 면적이 좁아 주택을 무한정 지을 수 없고, 농경사회의 전통으로 땅이나 집에 대한 애착이 유별난 것도 원인이다. 따라서 한국처럼 수요는 많고 공급은 한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장에만 맡길 경우 여러 가지 왜곡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간 강남 등 인기지역의 주택 가격은 과도하게 오른 것이 사실이다. 강남북의 집값 격차가 벌어지면서 사회적인 위화감이 조성되고 일반 서민들의 근로의욕도 꺾이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연이어 내놓으며 시장에 개입하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홍은주는 『경제를 보는 눈』에서 정보의 심각한 왜곡으로 발생하게 되는 시장 실패의 극단적인 유형으로 ‘투기’를 들면서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경제적 선택 가운데 하나인 투자 행위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전제로 하며, 투자 수익은 미래의 위험에 대한 대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미래에 많은 위험을 져야 하는 투자의 경우 대가가 높고, 위험을 적게 지는 투자의 경우 기대수익도 낮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정보의 왜곡으로 인해 시장의 모든 참여자들이 위험에 비해 수익이 엄청나게 높다고 동시 다발적으로 기대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막연하고 낙관적인 상상력과 희망이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시장에 만영되고 상호작용하면서 거품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투기 현상에는 한 번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낙관적인 상상력과 함께 묵시적인 담합의 카르텔(연합)도 작용한다. “우선 아파트 주민들은 가만히만 있어도 수억 원의 시세차익이 생기기 때문에 말없이 아파트 투기의 담합에 가담한다. 주변의 다른 아파트들도 일제히 환영한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주변 아파트의 시세도 따라 오르기 때문이다. 주택업자들도 물론 환영한다. 여러 가지 옵션을 붙여서 분양가격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왜곡된 구조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정부가 적절하게 개입할 경우 시장 실패를 치유하고 침체에 빠진 경제를 구할 수 있다는 경제학자 케인스의 견해는 일단의 학자들에 의해 반론에 부딪힌다. 책이 소개하는 시장주의자들의 반론을 들어보자. “정부개입에 대해 시장주의자들이 제기한 문제는 최대의 경제주체인 정부가 일반 기업이나 소비자 등 개별경제 주체들과 똑같은 도덕적 해이와 사적 동기의 유혹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처럼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적지 않은 정부조직이 선의의 관리자나 중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스에 대한 시장주의자들의 반격이다. 이들은 정부는 ‘형편없는 운전사’라고 하며 시장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나서기보다는 시간이 거리더라도 시장이 스스로 자연치유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밀튼 프리드먼 같은 학자가 이 입장을 대변한다. 책이 소개하는 프리드먼의 입장은 이렇다. “정부는 그 자체로는 단 한 푼도 생산할 수 없는 거대한 경제주체이기 때문에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해 정부소비를 늘리려면 민간부문으로부터의 세금을 더 많이 거둬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지나치게 나설 경우 상대적으로 민간기업이나 소비자들의 몫이 줄어들고 소비와 투자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어 경제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

  아파트반값공급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논리도 이와 유사하다. 아파트를 반값에 공급하려면 공공기관이 민간의 땅을 사들여야 하는데 여기에 따르는 엄청난 재정부담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문제의 국가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스와 이에 반대하는 프리드먼의 오랜 지적 투쟁은 미국의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미쳐왔지만, 현실적으로 어느 한쪽도 만능처방이 아니라는 경험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두 주장을 절충하고 있다고 한다.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냉정하게 득실을 따지는 한국의 정치인들의 합리적 균형감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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