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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테크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전영택 외 옮김 / 민음사 / 1999년 5월
평점 :
인간이 초래하는 생태계의 대재앙
바이오테크시대/제레미 리프킨/민음사/1999년
전세계에 조류인플루엔자(AI)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도 경제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AI 바이러스와 사람 독감 바이러스가 인체에서 변종을 일으키면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도 경고한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재앙은 흔히 있어 왔던 일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바이오테크시대』에서 1845년에 있었던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사례로 들어 대재앙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설득력 있게 말해준다.
아일랜드는 1840년대에 인구가 800만을 넘어 유럽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였다. 아일랜드 사람의 주식은 감자였는데, 그들은 아메리카에서 전파된 감자를 심었다. 그런데 1845년에 블라이트병이 감자작물을 덮쳤다. 거의 모든 감자가 죽어갔다. 그 피해는 실로 막대했다. 역사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굶어 죽은 사람이 최고 100만 명이나 되며 이민을 간 사람도 15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1870년대에는 인도와 스리랑카 지방에 커피 녹병이 발생하여 커피 생산을 황폐화시켰고, 1904년에는 미국에서 굴기녹병이 밀 작물을 덮쳐 막대한 손상을 입혔다. 이 모든 재앙이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단일재배를 채택한 결과이기 때문에, 만약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다양한 종의 식물들을 재배했다면 재앙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제레미 리프킨은 말한다.
세계의 각 지역마다 개량된 여러 재래적 품종이 있는데도 농민들이 하나의 품종만 획일적으로 심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로 경제적 압력 때문이다. 단일재배(한 가지 품종만 집중적으로 심는 농법) 수확하기가 용이하고, 품질이 좋고, 생산성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한 가지 품종만 심는 경향은, 녹색 혁명이 시작된 196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결과는 어떨까. 녹색 혁명 이래 도입된 단일 품종 재배 방식이 세계 전역에서 생물의 다양성과 안정적인 식량 공급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유엔 식량 농업 기구에 의하면, 한 세기 전에 농작물이 가지고 있었던 유전자의 다양성은 현재 75퍼센트가 사라진 상태인데, 이는 주로 상업적인 영농 방식 때문이라고 한다.
2003년 1월 한국에서는 인터넷 ‘대란’이 일어났다. 윈도 2000/NT 서버를 집중 공격하는 웜 바이러스 때문에 국가 인터넷망 대부분이 무력화되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대란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국가 기간 인터넷망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2000/NT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른 나라들보다 유독 피해가 컸다고 한다. 백업과 우회 체계 등의 대비책이 갖추어져 있거나, 리눅스나 유닉스 등 여러 시스템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었다면, 대혼란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체제가 사실상 컴퓨터시스템 운영 프로그램을 독점함으로써 인터넷 대란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독점은 생물계에서도 재앙을 초래한다. 이런 재앙에 대처하게 위해 생물들은 나름대로 유 연한 전략들을 구사한다. 이종교배도 그러한 전략 중의 하나다. 동식물을 통틀어 근친 간 짝짓기, 즉 동종교배(同種交配)가 유전적으로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유전학의 상식이다. 동종교배는 이종교배보다 동일한 형태의 대립유전자들을 발생케 하여 개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고, 상황에 적응하는 유연성이 부족해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데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동종교배를 통해 종들은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개체들은 환경에 대한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한다.
성의 기원도 이런 환경에 대한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설명된다. 가령, 원생생물은 남녀의 구분도 종의 구분도 없다. 무성생식의 경우 아무리 세대를 거듭해도 유전적인 구조가 바뀌질 않는다. 아무런 변화도, 발전도, 진화도 없다. 그러나 남녀가 나뉘어 번식하는 유성생식은 정자와 난자가 서로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 낸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계속 새롭고 다양한 개체가 만들어진다. 즉 변화하고 발전하고 진화한다. 바로 이것이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성의 분화를 통해 다양성을 확보함으로써 생명체는 환경에 대한 대처능력을 향상시켰다.
제레미리프킨은 “새로운 유전자 이식 농산물과 동물들은 더 빨리 자라고, 더 많은 소출을 올리며, 다양한 환경 및 기후와 관련된 스트레스에 견딜 수 있도록 조작된다.”라고 말한다. 유전자 조작을 하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의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가령 3배의 젖을 짜낼 수 있는 젖소에 대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낙농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경제적 압력 때문에 가축업자들은 이런 가축을 선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하나로 통일된 유전자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훨씬 더 재앙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농업에서 다양성이 결여된 단일재배 시스템이 지속되면 병충해나 자연재해 같은 현상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약해진다. 제레미 리프킨은 말한다. “종래의 품종 개량 방법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식물이 저항력을 갖게 하며, 때때로 수백 개의 유전자가 그 저항형질에 관련되는 데 반해, 유전자 조작방법은 어떤 가능한 환경으로부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항형질을 갖는 단지 하나 또는 두 개의 유전자를 삽입하는 데 그친다.” 자연의 변종들이나 재래식 품종 개량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종들은 해충이나 바이러스 등에 훨씬 더 다양한 저항형질로 대처하지만 유전자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동식물들은 이식된 불과 한 두 개의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저항형질을 가지고 이에 대처할 수밖에 없다. 빈곤한 무기로의 싸움은 끝은 처참한 패배다. 기본적으로 생태계는 복잡한 시스템인데, 단일재배나 유전자 조작과 같은 인위적 행위로 생태계의 다양성이 줄어들게 되면, 그 피해가 증폭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자연에 생명력을 불어넣듯이 인간의 조직도 활력을 위해서는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제각기 다른 개성을 가질 때, 그 조직은 다양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다양성의 가치에 주목하여, 노동력의 다양성을 기업의 효율성 증대와 연관지어 설명하면서 구성원간의 차이를 수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고무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증가하고 있다. 다양성을 기업 경쟁력 강화의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장에는 항상 기회가 존재한다. 이를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수적이다. 다양한 경험과 배경, 아이디어를 지닌 인재들을 확보함으로써 고객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차별적인 가치 제공이 가능하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인자의 결합이 열성 인자를 배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물학적 원리처럼, 생각과 문화가 같은 집단들끼리만 무리를 이뤄서는 경쟁력을 높이기 어렵다. 타인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흡수함으로써 다양성을 내면화할 때 인격의 진화와 사회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획일화, 단일화는 비약적인 생산성으로 이어질지 모르나, 거기에는 그만한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아일랜드 대기근 사태가 말해준다. AI이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깊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