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보는 눈 - 세상을 읽는 눈 세상을 읽는 눈
홍은주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부동산 시장은 완전한 시장인가?

  경제를 보는 눈/홍은주/개마고원/2004



  내륙운하 개통, 아파트 반값 분양 등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꿈같은’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야 모두 당론으로 채택한 ‘아파트 반값 분양’만을 두고도, 시장주의자들은 정치권의 개입으로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가 하면 이에 반해 서민의 주거 안정에 큰 긍정적 효과를 주리라는 의견을 내는 반시장주의자들도 있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어느 한쪽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의 복잡성 때문이다. 이론은 예측을 위한 것이지만 이론은 존재가능한 모든 현실의 변수를 빠짐없이 고려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경제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길을 제공하는 책으로 활용할 수 있게 편집된 홍은주의『경제를 보는 눈』의 제4장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는 시장주의와 반시장주의의 문제점과 긍정성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

  자유방임, 자유시장의 신념은 지본주의 하에서의 이해관계는 시장에서의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에서의 가격의 자동조절기능에 의해 가장 잘 조절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독점과 담합 등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온갖 비합리적인 이익 추구 방식이 현실에는 엄연히 존재한다. 정부개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반시장주의자들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만 보더라도 완전시장은 아니다. 홍은주는 “모든 시장이 잘 작동할 경우 자본이익률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정상이윤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와 같은 전제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시장의 질서와 균형을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기업이 정상적인 생산 활동으로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그런데 부동산 투기로 얻는 이익이 더 크다면 기업의 자금은 생산설비의 확충이나 기술력 개발 등의 생산자금으로 쓰이기보다는 투기자금으로 쓰이기 쉽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이 완전한 시장이 아니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홍은주는 현대 경제에 있어 시장 실패의 주요한 이유로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든다. 부동산 시장을 두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설명해보자. 아파트의 가격의 원가가 얼마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아파트 가격의 원가에 대한 정보는 제로다. 하지만 시공의 주체인 건설사는 가격의 원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아파트 가격의 원가가 공개되지 않으면 소비자로서는 정상가격 이상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아파트 가격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질서인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 위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혹자는 소비자가 원가를 알고 사는 제품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주택에 대해서는 원가를 공개하라고 하는 요구는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들고 나온다. 하지만 주택이나 토지는 다른 소비재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물론 시장경제 체제에서 주택은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택은 공공재의 성격도 동시에 갖고 있다. 주택가격은 금융이나 소비 등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커서 일반 상품과 똑같이 간주할 수 없다. 또 대한민국에서는 국토 면적이 좁아 주택을 무한정 지을 수 없고, 농경사회의 전통으로 땅이나 집에 대한 애착이 유별난 것도 원인이다. 따라서 한국처럼 수요는 많고 공급은 한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장에만 맡길 경우 여러 가지 왜곡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간 강남 등 인기지역의 주택 가격은 과도하게 오른 것이 사실이다. 강남북의 집값 격차가 벌어지면서 사회적인 위화감이 조성되고 일반 서민들의 근로의욕도 꺾이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연이어 내놓으며 시장에 개입하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홍은주는 『경제를 보는 눈』에서 정보의 심각한 왜곡으로 발생하게 되는 시장 실패의 극단적인 유형으로 ‘투기’를 들면서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경제적 선택 가운데 하나인 투자 행위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전제로 하며, 투자 수익은 미래의 위험에 대한 대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미래에 많은 위험을 져야 하는 투자의 경우 대가가 높고, 위험을 적게 지는 투자의 경우 기대수익도 낮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정보의 왜곡으로 인해 시장의 모든 참여자들이 위험에 비해 수익이 엄청나게 높다고 동시 다발적으로 기대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막연하고 낙관적인 상상력과 희망이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시장에 만영되고 상호작용하면서 거품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투기 현상에는 한 번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낙관적인 상상력과 함께 묵시적인 담합의 카르텔(연합)도 작용한다. “우선 아파트 주민들은 가만히만 있어도 수억 원의 시세차익이 생기기 때문에 말없이 아파트 투기의 담합에 가담한다. 주변의 다른 아파트들도 일제히 환영한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주변 아파트의 시세도 따라 오르기 때문이다. 주택업자들도 물론 환영한다. 여러 가지 옵션을 붙여서 분양가격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왜곡된 구조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정부가 적절하게 개입할 경우 시장 실패를 치유하고 침체에 빠진 경제를 구할 수 있다는 경제학자 케인스의 견해는 일단의 학자들에 의해 반론에 부딪힌다. 책이 소개하는 시장주의자들의 반론을 들어보자. “정부개입에 대해 시장주의자들이 제기한 문제는 최대의 경제주체인 정부가 일반 기업이나 소비자 등 개별경제 주체들과 똑같은 도덕적 해이와 사적 동기의 유혹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처럼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적지 않은 정부조직이 선의의 관리자나 중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스에 대한 시장주의자들의 반격이다. 이들은 정부는 ‘형편없는 운전사’라고 하며 시장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나서기보다는 시간이 거리더라도 시장이 스스로 자연치유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밀튼 프리드먼 같은 학자가 이 입장을 대변한다. 책이 소개하는 프리드먼의 입장은 이렇다. “정부는 그 자체로는 단 한 푼도 생산할 수 없는 거대한 경제주체이기 때문에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해 정부소비를 늘리려면 민간부문으로부터의 세금을 더 많이 거둬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지나치게 나설 경우 상대적으로 민간기업이나 소비자들의 몫이 줄어들고 소비와 투자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어 경제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

  아파트반값공급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논리도 이와 유사하다. 아파트를 반값에 공급하려면 공공기관이 민간의 땅을 사들여야 하는데 여기에 따르는 엄청난 재정부담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문제의 국가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스와 이에 반대하는 프리드먼의 오랜 지적 투쟁은 미국의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미쳐왔지만, 현실적으로 어느 한쪽도 만능처방이 아니라는 경험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 두 주장을 절충하고 있다고 한다.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냉정하게 득실을 따지는 한국의 정치인들의 합리적 균형감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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