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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 시장에 관한 6가지 질문
이정전 지음 / 한길사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시장을 위하여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이정전/한길사/2002년
이정전은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시장이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를 포드 자동차의 영업 사례를 통해 말한다.
1970년대 후반 세계 굴지의 기업인 포드 자동차 회사는 서민을 겨냥한 주력 품목으로 ‘핀토(Pinto)’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나 이 차는 충돌 시 연료탱크가 폭발하는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포드사는 이 차의 양산을 강행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결함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드사는 왜 알면서도 ‘핀토’의 출시를 강행했을까. 경제학에서 언급되는 ‘합리적 계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결함을 가진 차를 회수해서 교정하는 비용이 사고가 났을 때 보상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더 크다는 계산이 이미 나왔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경우에 포드사가 이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인명을 더 생각했다면 기업은 손해만 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포드사는 제너럴 모터(GM)사와 치열한 경쟁을 하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윤극대화를 꾀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치명적 결함을 가진 차라도 계속 파는 것이 합리적인 행위라는 것이 경제적 판단이다.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이 경제적 판단, 효율성의 논리다.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의 저자 이정전은 바로 이 ‘효율성’의 논리가 인간 사회의 전 영역을 지배하는 한 인간의 행복은 요원하다고 주장한다. 이정전은 ‘경제영역에서는 성과주의, 즉 경제 원리에 입각해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생산을 많이 하도록 하며, 정치영역은 평등의 원칙에 입각해서 분배를 고르게 하고, 사회화영역에서는 필요의 원칙(필요한 사람이 그때그때 더 많은 재화를 가져가게 하는 방식)에 따라 잘 나누어 쓴다면 조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가령 가난한 사람이 병이 난서 치료를 필요로 한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의료는 사회화영역이기 때문에 개인적 능력에 따라 분배(치료)를 받을 것이 아니라, 분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의 행복은 최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자본주의의 민간의료 체제하에서의 의사에게는 의료는 필연적으로 경제영역일 수밖에 없다. 성과주의에 의해 필요의 원칙 또는 약자보호의 원칙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자본주의의 시장이 만능일 수 없다는 논리가 도출된다.
이정전은 어느 한 영역이 비대해져서 다른 영역을 침범하면 여러 가지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서 정치영역이 이상적으로 비대해져서 평등의 원칙이 경제영역을 지배하게 된다면 경제는 엉망이 될 것이고, 반대로 시장의 원리가 정치영역을 지배하고 사회화 영역까지 좀먹는다면 이 역시 정의롭지 못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경제적 성과주의의 원리가 정치권에도 적용될 수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자리, 국회의원의 자리, 장관 자리 등 공직에 가격이 붙어서 돈 주고 자리를 사고팔게 하면, 즉 정치 영역이 시장의 원리에 의해 지배되면 정치는 끝장이라고 경고한다. 한때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기여입학제’도 평등의 원리가 적용될 곳에 경제의 논리가 파고든 결과는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가령 복지와 의료는 분명 모든 사람들이 필요할 때마다 그 혜택을 누려야 할 사회화의 영역이다. 그러나 현실은 소위 ‘돈이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경제의 영역이다. 종교에서는 어떨까. 신도수를 늘리고, 교회의 재정을 튼튼히 하는 목사가 뛰어난 목사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종교의 문제를 경제의 논리로 환원시킨 결과다. 이 역시 경제의 영역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져서 경제적 정의의 원리가 종교에까지 확산된 결과다. 시장의 원리가 자기가 있어야 할 영역을 뛰어넘는 현상을 이정전은 ‘시장의 월경(越境)’이라고 이름 붙인다. 시장의 월경은 학문 세계에도 여실히 나타난다.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도 시장의 월경의 결과다. 그는 현재와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자본주의 시장의 힘 그리고 시장원리가 경제영역을 넘어서 정치영역을 침범해감으로써 체계 전체를 장악하고 생활세계까지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여기에서의 생활세계란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매개로 해서 서로 문화적으로 익숙한 가치를 공유하고 서로 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평을 말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지하고 성실한 의사소통을 통한 상호이해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가령, 우리 사회를 보자.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돈에 쏠려 있다. 어떻게 하면 돈을 효과적으로 벌 수 있는지 사람들이 모이며 재테크에 관한 이야기를 주요 화제로 떠올린다. 이런 가운데 사람들의 사이는 피상적으로 변하고 만다. 이 피상적 관계를 ‘고스톱’과 ‘음주’로 요약할 수 있는 유흥문화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제적 가치가 생활세계에까지 그 힘을 뻗치면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상적 배경을 가진 사람인지, 알 필요가 없다. 시장에서는 거래하는 모든 행위자의 행위는 인간관계가 아닌, 가격이라는 객관적 지표를 통해서 조정되기 때문이다. 가격이라는 객관적 지표가 대화를 필요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아무리 나의 사정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대형할인마트에서 물건 값을 깎아줄 리가 없다. 그러나 서로 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활세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그곳은 소위 ‘인정’과 ‘눈물’이 통하는 세상이다. 말하기에 따라서(의사소통의 결과에 따라서) 얼마든지 할인이 가능하고 때에 따라서는 외상도 가능한 곳이다.
시장에서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인정 때문에 거래를 그르칠 수도 있고, 인정 때문에 계약이 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경쟁자를 이해하게 되면 경쟁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시장에서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냉정한 시장의 원리가 생활세계에까지 파고들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정전은 진정한 의사소통이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하버마사의 이론을 빌려온다.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우선 모든 대화자가 서로 경청하고 답변해야 하며, 상대방을 속일 의도를 가져서는 안 되며, 상대방을 성실한 주체로 인정해야 하며, 모든 대화자들이 동등해야 하며, 금기시되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되고, 누구든지 질문에서 제외되는 특권을 가져서도 선입견이나 억압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쟁취했을 때, 경제적 논리(도구적 합리성)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힘 있는 자는 힘이 없는 자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다. 일등병보다 소령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소령보다는 대령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며, 대령보다는 대장이 더 많은 정보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보는 누구나 똑같이 나누어 가질 수 없다. 어떤 한쪽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갖기 마련이다. 이를 그러나 나누어 가진 정보가 큰 차이가 없을 때는 몰라도 소유한 정보의 양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면 문제가 따른다. 이를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이라 한다. 한쪽은 상대방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 이것이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곧 정보의 불평등이다. A는 주가에 대한 정보가 풍부한 반면 B는 주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면 승패는 뻔하다. 주식투자자들이 경제신문을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읽는 것도 승리를 위한 양질의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국가는 권력을 이용해 국민들보다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그 정보 중에는 집권정당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보도 있을 수 있고, 집권정당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정보도 있을 수 있다. 기업 또한 이런 이유로 정보를 배타적으로 획득하려 하고 이를 통제한다. 그러나 정보의 통제가 집권정당이나 기업에게는 이익이 될지 몰라도 국민전체에게는 해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국가나 기업의 정보수집 행위에 대한 적절한 감시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누가 해야 하겠는가. 바로 언론이다. 언론을 통해서 기업의 활동과 국가의 행정행위가 투명하게 공개될 때,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런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때 비로소 시장은 완전하게 돌아간다. 그러나 아파트 가격의 원가를 공개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에도 건설사들은 꿈쩍도 않는다. 정보가 꽁꽁 묶여 있는 셈이다. 이런 상태에서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이질 리가 만무하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라는 시장주의자들의 요구가 재고되어야 할 곳도 바로 이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