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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기술과 사회 - 21세기 엔지니어를 위한 기술사회론 입문
이장규.홍성욱 지음 / 지호 / 2006년 2월
평점 :
기술은 모든 이들의 이익을 공평하게 증진시켜주는가
이장규와 홍성욱이 공동집필한 『공학기술과 사회』는 기술이 어떻게 태어나 변화하며, 인간과 사회와는 기술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또 기술의 성공과 실패 요인은 무엇인지, 현대 공학기술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해석과 논의들을 한 자리에 모은 책이다.
이 책의 2장은 「기술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들」이란 글이다. 현대사회에서 기술이 가지는 복잡한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지금까지 기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개념화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설명의 틀이 제공되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기술결정론’과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이다. 『공학기술과 사회』 의 2장은 바로 이 두 개념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을 요약해보자. 먼저 기술결정론이다.
기술결정론은 말 그대로 기술이 인간의 사회적 환경을 결정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타자기라는 새로운 사무기술 등장하면서 비서들은 능동적인 지위에서 지시받은 문서를 기계적으로 작성하는 수동적 처지로 전락했다든가, 세탁기와 같은 가사 기술의 발전으로 여성들이 가정에서 해방되었다든가, 피임기술이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해줌으로써 여성해방에 일조했다는 주장이 이른바 ‘기술의 결정론’의 입장이다. 기술결정론은 몇 가지로 그 주장을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술결정론은 기술이 그 자체의 고유한 발전 논리, 즉 공학적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은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동일한 경로를 밟는다고 가정한다. 기술결정론에서는 기술 그 자체가 사회와, 더 나아가 인간과도 무관하게 발전한다고 간주하며, 심지어는 기술이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기술결정론적인 입장에서는 기술의 발전경로는 단일한 것으로 어떤 특정 기술을 만들어 내는 데 유일하게 가장 좋은 설계 방식이나 생산방식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이라고 불리는 이론체계는 이러한 통념에 대해 반박한다. 이 이론체계에서는 어떤 특정의 기술이나 인공물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여러 행위자들- 엔지니어, 자본가, 투자은행, 정부, 소비자 등-의 이해관계나 가치체계가 기술이 특정한 형태로 결정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가령 대단위 아파트를 건설을 두고 공청회를 연다고 했을 때, 시민단체들은 삶의 질을 고려하여 친환경 개발을 주장하고, 건설업체들은 영리성을 주장해서 고층아파트 위주로의 개발을 주장한다고 할 때, 어떤 기술이 채택될 것인가는 그 기술이 가지는 우수성에 있지 않고, 그 기술을 주장하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 이상의 여러 개의 기술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경합을 할 때, 우리는 흔히 더 나은 기술이 선택되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의 이론체계를 지지하는 이론가들은 기술을 결정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에 관련된 사회집단들의 정치적․경제적 힘이라고 주장한다.
『공학기술과 사회』에서 자자들은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한다. 핀치(Trevor J. Pinch)와 바이커(Wiebe E. Bijker)의 ‘자전거’ 연구가 그것이다. 이 두 과학기술사회학자는 어째서 다이아몬드 형태의 틀과 고무 타이어를 쓰고 두 바퀴의 크기가 비슷한 안전자전거(safety bicycle) 모델이 지금은 보편적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묻는다. 이런 문제에 대한 상식적인 답은 대체로 지금 우리가 쓰는 모델이 다른 모델보다 편하고 안전하다는 것이다. 지금 살아남은 기술이 다른 기술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중들의 상식이다. 그러나 핀치와 바이커는 자전거가 어떻게 오늘의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그 발전과정을 두고 정밀한 분석을 했다.
자전거의 발전 과정을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전거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집단이다. 여기에는 자전거를 만든 기술자, 남성 이용자뿐 아니라 여성 이용자, 스포츠 자전거 이용자, 심지어 자전거 반대론자도 포함된다. 이들은 모두 특정한 자전거 디자인에 대해 그들 나름의 선호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스포츠 자전거 이용자들은 56인치짜리 커다란 앞바퀴가 달려서 페달을 밟아 격한 운동을 할 수 있는 모델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앞바퀴가 큰 자전거는 여성 이용자들을 위해서 특별히 설계된 모델을 개발해야 했는데, 당시 여성들은 보통 긴 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전거를 어떤 식으로 개발할 것인가를 두고 다양한 사회집단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랐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회집단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일한 기술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서로 다르게 파악하며 이에 대한 해결책도 다르게 제시한다. 따라서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사회집단들 사이에는 그 기술이 가진 문제점과 해결책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
이러한 갈등이 복잡한 협상을 통해 해소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하게 되면 안정적인 기술적 인공물의 형태가 선택된다. 사회적 구성론자들은 이 합의의 과정이 사회적 과정임을 강조한다. 자전거 변천 과정에서도 자전거 경주와 같은 사회적 요소가 논쟁의 종결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자전거 경주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공기 타이어를 장착한 안전 자전거가 다른 자전거보다 빠르다는 것이 경주를 통해 입증되었다. 이 과정에서 초기 자전거 설계에서 중요하지 않던 속도가 자전거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새로이 부각되었는데, 그 결과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안전 자전거 쪽으로 경쟁이 종결되었다는 것이다.
기술 디자인을 종결하는 데 중요했던 또 다른 요소는 여성 자전거 애호가들이었다. 자전거를 격렬한 스포츠로 여기던 남성들은 큰 앞바퀴가 있는 자전거를 선호했지만, 여성들은 치마라는 복장 때문에 앞바퀴가 작고 타이어가 쿠션 기능을 해주는 안전 자전거를 선호했다. 그러므로 안전 자전거가 다른 자전거보다 우월하다는 결론은 기술적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 집단, 이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자전거라는 인공물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나온 여러 가지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기술이 사회를 결정할 뿐, 사회구조는 기술의 논리 자체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기술결정론자들은 주장한다. 가령, 등자(stirrup)가 봉건제를 낳았고. 인쇄술이 르네상스를 만들었으며, 기계가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등자란 말을 타는 사람이 발을 고정시키는 마구의 일종인데, 이 등자가 도입되면서 말을 탄 채로 창이나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이 가능해졌고, 그 결과 기병이 부상했으며, 이 기병들이 성장을 해서 중세 영주가 되었다는 것이 중세 기술사를 연구한 화이트 주니어의 주장이다. 결국 등자라고 하는 기술이 봉건제를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술결정론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등자를 사용했던 프랑크족과 앵글로-색슨족 중 프랑크족만이 8세기 전반에 봉건제를 성립시켰다는 사실을 든다. 다시 말해 한 사회에 새롭게 도입된 기술이 그 사회의 변화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개인 혹은 집단적인 행위자의 선택과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사회와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발전한 기술은 사회의 변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그 기술의 발전이 모든 사회집단에게 보편적인 이익이 된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정보기술이 모든 사람에게 행복과 편리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소위 ‘정보 격차’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정보화 진전될수록 정보 부자'(information rich)와 정보 빈자(information poor)라는 새로운 권력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정보의 불균형은 소득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부동산이나 주식에 관련하여 고급정보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는 그 정보를 이용하여 더 많은 재산을 증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기술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편익을 증대시켰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기술이 인간에게 장밋빛 미래를 안겨준다는 기술유토피아에 대한 견해도 성찰을 요구한다. 정보화 기술은 지배 집단의 이데올로기로 사용될 소지를 충분히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기의 경우, 그것이 원래는 정보의 수집과 관리의 차원에서 도입된 기술일지라도, 그것이 일단 도입되면 기술이 인간성을 변화시켜 애초에 없던 기술의 속성이 부가될 수도 있다. 가령, 감시카메라의 경우도 인간이 그 기술을 결정하여 방범의 도구로 도입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 기술이 인간성을 변화시켜 감시카메라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도구로도 악용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기술은 단일한 발전경로를 가지며, 그 이익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간다는 기술결정론의 낙관주의는 결코 인간의 복지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술을 상대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의 영향성을 과소평가할 수만도 없다. 우리가 더 민주적이고 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의 기능과 역할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