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
에릭 J. 카셀 지음, 강신익 옮김 / 들녘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현대의학은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몇 해 전에 방영된 의료 드라마에서는 직장암을 앓고 있는 한 앵커우먼에 관련한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직장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항문을 절개해야 한다는 나이든 의사와, 항문을 절단하는 것은 환자의 사회생활에 사형을 선고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이유로 다른 치료 방법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젊은 의사와의 논쟁이 드라마의 핵심이었다. 나이든 의사는 의사의 임무가 생명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값싼 동정심을 버리고 가장 확실한 치료방법으로서 항문을 절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젊은 의사는 의사의 존재 이유가 단지 생명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환자의 복지까지도 책임져야 하고, 환자의 사회적 삶까지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록 위험이 따르지만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의 주장은 팽팽하게 전개된다.


미국인 의사 에릭 J. 카셀(코넬대 의대 공중보건학 임상교수 겸 뉴욕병원 내과의)의 저서,  『고통 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가 이런 논쟁을 지켜보았다면 누구의 편을 들었을까. 답은 젊은 의사다. 물론 카셀의 의견을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카셀은 나름대로의 경청해볼 만한 이유를 제시한다.


카셀은 현대의학이 고통을 너무 물리학적으로만 이해한다고 비판한다.  고통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성, 즉 환자의 과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통증이나 호흡곤란은, 전체유기체로서의 인간을 제압하여 고통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신체적 증상이다. 하나의 온전한 유기체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에서만 온전한 것은 아니다. 의학의 대상인 개개의 환자들은 물체의 속성만을 갖는 인간이 아니다. 고통의 온전함과 개별성은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수집한 모든 정보를 통해 그 사람을 이해한다. 고통을 옳게 이해하려면 시간감각이 있어야 한다. 단순한 미래 뿐 아니라 지속적인 과거도 고통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내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내 자신의 일부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자아의 개념에 다른 사람이 포함되어야 한다.” 라는 주장은 현대의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위에서 말한 의료 드라마의 논쟁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나이든 의사는 환자의 물리적 고통을 없애는 것에 치료의 중심을 두었지만 젊은 의사는 환자의 ‘개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환자의 개별성이란 바로 환자의 ‘시간성’을 말한다. 그녀의 시간성이란, 그녀가 과거에 무엇이었으며, 오늘은 어떤 존재이며, 내일은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정보 모두를 말한다. 그녀는 과거에도 앵커우먼이었으며, 현재에도 앵커우먼이고, 미래에도 앵커우먼으로 살고 싶어 한다. 바로 그런 시간성이 그녀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바로 그 정체성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고통이다. 육체적 고통은 단순히 통증에 불과하지만 심리적 고통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가령 아이를 낳는 엄마의 경우 통증을 느끼지만 심리적 고통은 느끼지 않는다. 목이 쉬었을 때 사람들은 통증을 느끼지만 그것 때문에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수의 경우는 다르다. 가수는 목이 쉬었을 때 육체적 통증과 함께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 의사가 치료해야 할 것은 물론 1차적으로는 육체적 통증이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고통 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의 저자, 카셀의 주장이다.


앵커우먼의 항문을 절개하는 것은 축구 선수의 다리를 절단하는 것만큼이나 사회적 삶에 치명상을 입히는 행위다. 그것은 통증을 없앤다는 목적 아래 그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므로, 어떤 점에서 그들의 미래를 앗아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의사들이 질병 상태와 신체 기능에만 관심을 가짐으로써 점차 환자의 미래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카셀은 말한다.


카셀은 의사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치료하여 그 사람을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그 사람이 앓고 있는 질병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 질병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 이상으로 병을 앓고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이 그 병을 앓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이자 뮤지컬 가수였던 쥴리 앤드류스는 성대 결절로 수술을 받아 원래의 목소리를 잃자 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상대로 의료소송을 벌여 엄청난 위자료를 받아냈다고 한다. 성대 결절은 학교 교사나 가수와 같이 지속적으로 음성을 남용함으로써 목에 염증이 생기는 증상이다. 그 염증은 분명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므로 의사로서는 당연히 통증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수술에 앞서 환자의 삶에 대해 보다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카셀의 주장이다. 환자의 삶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의사의 임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학은 환자의 통증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환자의 삶에는 무관심했다고 카셀은 말한다.


카셀은 현대의학이 질병의 일반론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질병이 특이한 체질을 가진 한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발병 양상에는 거의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의사는 환자를 통하지 않고는 질병에 접근할 수 없다.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치료한다. 더구나 같은 질병이라도 환자의 체질, 유전적 특성, 해부학적 변이에 따라 다른 발병 양상, 경과, 결과를 보일 수도 있다. 과학적 의학은 이러한 개별 변이를 인정하지도, 그것을 해결할 두 있는 방법론을 제시해주지도 못한다.”라는 발언은 의사들이 환자 한 명 한 명의 개별성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카셀의 충고로 읽힌다.


카셀은 어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신념과 가치체계는 주로 문화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어떤 질병이 한 사라에게 미치는 영향의 성격은 문화적 요인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됨을 강조한다. 이러한 강조는 결국 한 인간이 느끼는 고통도 문화적 요인에 좌우될 수 있으므로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속한 문화에 대해 의사의 이해가 필요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또한 환자와 의사의 바람직한 관계에도 주목한다. 의사가 치료의 대상을 질병을 가진 환자로 이해하기보다는  환자를 한 명의 인간으로 이해할 경우에 질병의 경과도 좋아지고, 환자의 순응도도 높아진다고 한다. “병자는 누군가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좋은 의사란 환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의사이며, 이 경우 환자와의 관계는 더욱 확고해진다.”라고 카셀은 말한다. 이 환자와 의사와의 신뢰관계가 얼마나 긍정적인 치료 효과를 주는지 그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들어 말한다.


몇 년 전 나의 환자 한 명이 초기 낭소암 제거수술을 받았다. 당시 그런 환자에게는 수술 뒤 얼마 동안 멜팔란이라는 항암제를 투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투여한 멜팔란이 그 환자의 골수를 파괴해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을 만드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이처럼 심한 재생불량성 빈혈은 언제나 치명적이다. 이런 경우에는 혈액,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을 수혈하면서 골수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환자를 치료한다면서 오히려 그녀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든 결과를 내고 말았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관계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그 환자는 몇 주 동안 수혈 받으면서 병원에 머물렀다.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솔직히 물었다. 내가 바로 그녀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든 장본인인데 어째서 의사를 바꾸지 않고 나에게 계속 자신을 돌보도록 하느냐고. 그 환자는 정색을 하고서는 “당신이 일부러 그렇게 한 거는 아니잖아요”라고 답했다. 나는 환자의 그런 태도가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 환자는 그 뒤 완전히 회복되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병의 증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약을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확실하게 나을 것이다'라고 말을 해주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병이 호전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위약효과)’다. 이때 의사나 약사 등 그 병에 대해 권위가 있거나 신뢰성이 높은 사람의 말이라면 더욱 큰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의사가 환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은 치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의사의 신뢰감은 먼저 의사의 실력에서 온다. 의사의 실력은 의학에 관련한 부단한 지식의 습득의 결과다. 생명과 질병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 의사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제일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사람과 그 사람의 생명을 보는 따뜻한 인간성이 보태진다면 의사의 환자에 대한 신뢰성은 한결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의술의 아버지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음미하며 어떤 의사가 환자에 대해 깊은 신뢰의 마음을 선사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게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환자가 나에게 알려준 모든 것에 대하여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관계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한 때로부터 더 없이 존중하겠노라.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 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나는 자유의사로서 나의 명예를 걸고 위의 서약을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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