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세상을 움직이는 책 34
E. H. 카 지음, 박종국 옮김 / 육문사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로 보는 동북공정의 의미



방대한 메모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나간 모든 사실들을 남김없이 기록하기는 역부족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것이 역사가의 운명이다. 대체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면 된다. 즉 가치가 있는 것은 취하고 가치가 없는 것은 버리면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치가 있고 무엇이 가치가 없는 것인가? 사람들마다 세계관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다 보니 가치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1970년대를 독재의 시절로 인식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그 시절을 획기적인 경제개발의 시대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판이하게 달라지고 과거의 사실도 다르게 해석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역사연구가라면 1970년대를 독재의 시대로 해석할 것이고, 경제성장에 우선적 가치를 두는 생각을 가진 역사연구가라면 1970년대를 경제성장의 시절로 해석할 것이다. 전자의 역사연구가는 열악한 노동자의 삶과 비정상적인 정치현실에 관련된 기록들을 제시할 것이고, 후자의 역사연구가는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GNP와 수출액을 제시할 것이다. 이렇게 역사연구가의 현실인식은 무엇을 연구의 테마로 설정하고 어떤 역사적 자료의 수집할 것이며, 수집된 자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상호작용의 과정, 즉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요체다. 과거의 사실만 가지고 역사를 볼 것이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라는 것이 E.H 카의 주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사를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를 아는 문제의식을 의미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역사연구를 한 것은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문제의식의 소산이었으며, 고려말 몽고의 침입기에 이규보가 동명왕편을 쓴 것도 민족의 설화를 통해서 자주권을 되찾겠다는 문제의식의 소산이었다. 이렇게 현재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으로부터 과거의 사실을 수집하고 해석하는 것, 바로 이것이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이는 현재를 망각하고 오직 실증적․ 객관적 엄밀성만을 추구하는 실증주의적 태도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른바 ‘동북공정’이 문제가 되고 있다. 역사연구를 현재의 문제 해결에 유용하게 써보겠다는 것이 동북공정을 기획한 역사연구가들의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E.H 카가 말하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얼치기 대화다. 진정한 대화는 타인의 견해를 수용하는 열린 자세를 전제로 한다.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서 역사연구가 학문적 엄밀성마저 잃고 그로 인해 이웃국가들과의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식민사관에 불과하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역사는 과학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이다. 그는 진보를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의 확대”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은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획기적으로 확장시켜 주었지만 환경파괴와 인간성 상실이라는 만만치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E.H 카가 말하는 ‘과학과 진보’에 대한 전면적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 바로 이곳이다. 진정한 현재는 미래를 껴안는다. 협소한 현재적 가치에만 매몰되어 타자를 배척하는 배제의 논리가 아닌, 타자를 껴안는 평화와 공존의 논리가 진정한 미래의 가치다. 그 타자의 개념에 환경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포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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