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온생명
장회익 / 솔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인간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면 인간의 생명은 온전할 수 없으므로 인간의 생명은 그 자체로 자족적인 생명체라 할 수 없다. 곡식을 먹고 숲의 공기를 마신다는 점에서 인간의 생명은 다른 생명에게 의존해 있다.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 속에서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간의 생명은 개체적 특성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오직 관계 속에서만 인간의 생명은 의미가 있다. 더구나 인간의 생명은 자연현상으로만 환원시켜 이해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현상이므로 인간의 생명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법률, 윤리 등 모든 영역에 관련되는 복잡한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생명을 외부와 고립된 자족적인 체계라 생각하지 말고 다른 생명체와 연관된 시스템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유기체적 세계관을 대표하고 있는 저서라고 할 수 있는 장회익의 『삶과 온생명』을 면밀하게 들여다 보자.


장회익은 『삶과 온생명』중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생명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대사’, ‘생식’, ‘진화’의 개념이 전제되어야 하는 데, 이들 모두가 고립된 개체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적용시킬 수 없는 ‘관계적’ 개념이라고 전제한다. 즉 생명은 개체적 특성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온생명(global life)이라 함은 생명 개념의 핵심 사항을 이러한 '관계'에 놓고 이를 현실적으로 구현해내는 체계에 대해 부여한 명칭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장회익은 ‘온생명’은 개별적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와 갖는 모든 관계를 포괄하는 총체로서의 생명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는 온생명이 기존의 생명 개념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지구상에 나타난 전체 생명을 하나하나의 개별적 생명체들로 구분하지 않고 그 자체를 하나의 전일적(全一的 )실체로 인정한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본다면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의 부분적 질서, 즉 국소질서를 장회익은 온생명과 구분하여 ‘개체생명’이라 명명한다. 인간과 여타의 다른 동물과 식물들은 지구라는 온생명을 구성하는 부분적 질서로서의 개체생명인 셈이다. 장회익은 이 개체생명체들이 매우 복잡한 다층적 존재양상을 지닌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예컨대 우리가 세포들을 일차적인 개체생명이라 할 때, 이들로 구성되는 유기체들 즉 다람쥐나 전나무와 같은 동식물 생물체들은 한층 높은 이차적 개체생명이 된다. 그리고 다람쥐 나 전나무 등의 개체들이 속한 생물의 종들은 이들보다 또 한층 높은 개체생명의 예가 된다. 사람의 경우 하나하나의 세포로서의 개체생명, 각각의 개인으로서의 개체생명, 그리고 인간이 속하고 있는 생물학적인 종 즉 인류로서의 개체생명 등의 다층적 개체생명의 구조를 생각할 수 있다.”


온생명이론의 출발점은 생명의 기본단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장회익은 온생명을 ‘기본적인 자유에너지의 근원과 이를 활용할 물리적 여건을 확보한 가운데 이의 흐름을 이용하고 있는 각 단계의 개체들로 구성된 유기적 체계 전체’라고 정의한다. 기본적 자유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이다. 이 태양의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개체들로 구성된 유기적 전체가 곧 지구다. 인간은 지구 안의 다른 생명체, 나아가 지구환경을 떠나 생존할 수 없으며 다른 생명체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지구 생물계 전체와 태양과의 유기적 관계 전체를 생명의 최소단위로 봐야 하며, 이를 ‘온생명’이라 부르자는 것이다.


인간과 주변의 생명체들로 구성되는 개체생명체들의 생존은 필연적으로 온생명의 생존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며, 자신의 생존이 자신을 제외한 온생명의 나머지 부분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장회익은 온생명에서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개체생명에 대한 '보생명(co-life)'이라고 부른다. 인간을 제외한 자연계의 생명들이 인간에 인간에 대한 보생명인 셈이다. 인간은 이 보생명들과의 상호관계를 통해 생존해간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생명만을 위해 보생명을 돌보지 않는다. 그것이 곧 환경의 위기다. 이 환경의 위기는 곧 보생명의 위기이며 보생명의 위기는 곧바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위기에 직결된다.


장회익은 인간들이 '인간중심적'인 자연관에서 떠나 생명, 인간, 문명을 보다 포괄적인 틀에서 포용하라고 충고한다. 생명과 인간 문명은 온생명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부분적인 현상들이며, 보다 근원적인 생명체로서의 온생명을 이해하지 않고 개체생명들간의 이익만을 고려할 때 현대문명은 파멸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구를 하나의 인체로 간주하면 지구의 온난화는 곧 체온의 상승에 비유된다. 지구라는 온생명의 체액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상의 토양과 물, 대기 등의 성분과 농도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또 신체의 신진대사에 이상이 생겨 신체내의 필수 영양소가 소진되고 노폐물이 배설되지 않아 독성물질이 체내에 쌓이듯이, 대체불가능한 자원들이 급격히 고갈되고 처리 곤란한 폐기물들이 쌓여 나가고 있다.  또 세포에 해당하는 생물종은 자꾸 줄어들고 있다. 이런 온생명의 이상 현상은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바로 인간이라고 하는 생물종이 이루는 이상번영 현상에 있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엄청난 속도로 그 숫자를 늘려가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암세포와 같이 비정상상적으로 불어나는 인간의 숫자가 지구라는 온생명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시장경제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고, 확장된 인간의 욕망은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갈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증폭되는 인간의 산업활동이란 다름 아닌 온생명의 신체 위에서 신체의 각 부위를 각가지 방식으로 변형시켜 인간만을 위해 유용한 그 무엇을 짜내는 행위이다. 온생명에 대한 인간들의 이 무리한 요구가 지구를 병들게 하는 것이다.


이본 배스킨의 저서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이란 책은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들이 어떻게 연관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령, 로키산맥에 서식하는 나무제비는 딱따구리가 파놓은 가문비나무의 구멍에 둥지를 틀고 딱따구리는 뚫린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단물을 핥아먹는다. 그런데 딱따구리가 구멍을 팔 수 있으려면 곰팡이가 슬어 나무가 썩거나 부드러워져야 한다. 또한 말벌, 나비, 휘파람새, 다람쥐 등도 딱따구리 우물에서 수액을 훔쳐먹는 반면 가문비나무를 위해 해충을 잡아먹는다. 가문비나무, 딱따구리, 곰팡이, 말벌, 나비 등이 하나의 그물망을 이루는 셈이다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는 부분들은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상호 작용하고 상호 의존, 협력한다. 이들은 그물처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한 부분은 모든 부분들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자연의 한 부분의 손상은 기계의 한 부품이 손상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세계 전체의 손상을 가져온다. 모든 생명체는 개별적으로 삶을 지탱할 수 없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다른 존재의 덕분으로 살아갈 수 있다. 다른 존재 없이는 어떤 존재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생명은 거대한 연관의 체계다. 기계론적 세계관과 생명공학이 간과하는 것이 바로 생명의 거대한 연관체계다. 하나의 생명을 조작한다는 것은 그 거대한 연관체계에 혼돈을 야기하는 것이라는 점을 깊이 있게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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