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 좀 들어봐
줄리안 반즈 지음 / 열린책들
리뷰어: urblue 님
평점 :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편이 나쁘다, 아내가 나쁘다, 이혼을 해야 한다, 그 정도는 극복을 해야 한다, 쉽게들 얘기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라면? 이 사람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인생은 그렇게, 상대적인 진실로 가득한 것 아닐까.

 

블루님, 문학레터에 떴길래 델꼬 왔어요.
그냥 두기엔 넘 아깝잖아요 ^^

가을도 깊어가는데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느 한 곡 놓고가요.
좋아하시려나?
좋아하시길....^^

플레이 누르세요.  


Eric Satie- Gnossie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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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0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플레져 2005-11-04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사소한 것에 열광하는 우리의 마음을 블루님이 아실까요? 호호~ =3

플레져 2005-11-04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근데 이상하다. 블루님 리뷰에는 이 리뷰가 없어요. 저 책 리뷰에도 없고...어찌 된 일이지??

urblue 2005-11-0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플레져님. ^^
이 리뷰, 1년도 전에 다른 출판사판에 써 놓은 거에요. 그러니 저 책 리뷰에는 없지요. 소개할 책을 미리 정하고 그에 맞는 리뷰를 고르나봐요. 열린책들 판에는 리뷰가 하나도 없는 모양이네요. 흠.
회사 컴에는 스피커를 빼 버려서 음악을 들을 수가 없어요. 집에 가서 잘 들을게요. ^^

2005-11-07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1-09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뿔베다는, 옳은 생각 하는 것도 좋은 일 하는 것도 잘 알겠는데,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을 제외하곤 별달리 맘에 차는 작품이 없다는게 흠. <연애 ...>를 너무 좋아하는게 흠인가.
 <갈매기...>도 지나치게 따뜻하고 평범하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라니, 참.

 

 

 

 역시 당신의 본업은 미학이야. 너무 재미있어서 당신이 그 진중권이라는 걸 잠깐 잊었지 뭐야. 결국 말투가 어디 가진 않아서 기억하긴 했지만.

 진중권이랑 윤종신이랑 닮았다고 했더니 친구가 누구 한 사람을 더 대며 세 쌍둥이같다고 했었는데, 누구인지 잊었다. 이렇게 생긴 사람, 또 누가 있지.

 

--------------------------------------------------------------------------------------

여기에 어느 분이 말씀하셨다. 
정지용 아닌가요. 아닌데요. 그럼 지석진?
친구한테 물었다. 지석진 맞단다. 그리고 덧붙인다.
진중권, 윤종신, 지석진 셋이 모여 정지용 추모회라도 만들면 되겠네.
푸핫.

 


정지용


 

요즘 <장송>으로 페이퍼 도배를 하고 있다고 하셔서, 생각난 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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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1-02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ㅋㅋㅋㅋㅋㅋ

sudan 2005-11-02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익. 그 '어느 분'이 전가요?

sudan 2005-11-0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는 s로 지칭해주세요. ~

sandcat 2005-11-02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뿔베다는, 옳은 생각 하는 것도 좋은 일 하는 것도 잘 알겠는데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을 제외하곤 별달리 맘에 차는 작품이 없다는게 흠. <연애 ...>를 너무 좋아하는게 흠인가"

공감, 공감

urblue 2005-11-02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ndcat님, 공감하시니 반갑군요. ^^

s, 앞으로 그럽지요. ㅎㅎ

따우님, 라주미힌님, 재미있어하시니 저도 즐겁습니다. ㅋㅋ

클리오 2005-11-02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닮은 사람.... 저렇게 이미지가 다른 사람들이 닮았을 줄이야... ^^

울보 2005-11-02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코아랫부분때문일까요,,아닌듯하며서도 비슷한듯하네요,,

반딧불,, 2005-11-02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지석진이 끼니까 영...개그가 되는군요.
가만 있어도 개그가 되다니 역시 대단하신걸요?

(저는 미학오디세이와 너무 비슷한 듯 해서 그냥 저냥 그랬었거든요^^;;;)

panda78 2005-11-0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재밌어요-

urblue 2005-11-02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석진은 그렇다치고, 진중권과 윤종신은 정말 닮지 않았나요? ㅋㅋ

(아, 저는 미학 오디세이 안 봤거든요. ㅠ.ㅜ)

하루(春) 2005-11-0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비슷한 내용으로 언젠가 포털 사이트에 떴던 것 같아요. 정지용 닮은 연예인.. ㅎㅎ~

urblue 2005-11-0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나요. ㅎㅎ

반딧불,, 2005-11-1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 멘트가 영 걸려서 다시 꺼내봤습니다.
내용 자체가 비슷한 것이 아니라 스타일, 틀이 비슷하다는 말이었어요.
여전히 참 독특하고 그 글발에 빠지게 만들지요??

urblue 2005-11-11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전 미학 오디세이는 안 봤고, 천천히 그림읽기랑 춤추는 죽음을 읽었는데, 네, 참 잘 씁니다.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
 

 

 

 

 

<장송>은 이제 2권의 1/3쯤을 넘어가고 있다. 1권 700페이지, 2권 900페이지. 그러니까, 이제 1,000페이지쯤 읽은 것이다. 길다. 보통이라면 소설 세 권쯤을 이미 읽은 셈이다. 그러나 그다지 길다거나 지겹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냥, 한 자리에 앉아서 쭉 읽었으면 좋겠다. 월요일부터 계속, 지금이 주말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내리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어제만해도, 집에서는 겨우 한 시간 정도밖에 읽지 않고 딴 짓만 했다.
클래식이라고는 고등학교 이후로 담 쌓고 지냈는데, 쇼팽의 녹턴과 프렐류드를 듣고 싶어졌다. 2권 첫머리에 몇 장에 걸쳐 묘사된 쇼팽의 연주회 장면은, 음악이란 이런 것인가, 이렇게 느끼는 것인가, 하는 감상을 남긴다.
음악 뿐만이 아니다. 들라크루아의 하원 도서관 천장화를 묘사한 부분은 또 어떤지! 들라크루아의 일기와 다른 사람들의 자료를 상당 부분 참조했을테지만, 이 젊은 작가의 감성에 감탄한다.

<달>이야 워낙 여러번 읽었고, 전에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일식>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런데 책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설마, 전에 방출할 때 내 놨던가. 낭패다. 다시 사든지.

 

생전에 아버지는 항상 염색을 하셨다. 이미 30대부터 자라나기 시작한 허연 새치 때문에, 당신은 스스로 젊다 여기시는데 버스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못내 싫으셨던거다.
어제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흰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뿌리부터 끝까지 완전히 하얀색. 추석 때인가, 어린 사촌 동생을 시켜 새치를 몽땅 뽑게 했었는데, 어느새 또 자란 것인지. 이리 저리 머리를 뒤적이다 서너개를 더 찾았다. 짧아서 혼자 뽑지도 못했다. 아버지를 닮았나보다, 이런 건.
흰 머리카락에서 문득 아버지의 부재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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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1-0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블루님 페이퍼는 <장송>으로 도배.
귀여우십니다.
그리고 흰머리카락을 새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가 좋은 거라우.
아버지 이야기 들으니 짠하네요.
나중에 마이 도러도 엄마를 그렇게 추억하겠지? 글썽!

로드무비 2005-11-0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지붕과 이미지가 바뀌었네?
심해의 불가사린가 뭔가? 자세히 봐야겠다!;;

urblue 2005-11-0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장송> 나온다는 소리 들었을 때부터 읽고 있는 지금까지, 푹 빠져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고 귀엽다니요. -_-;
주하가 그렇게 엄마를 추억하려면 몇 십년도 더 걸릴텐데! 벌써 글썽! 이시라니!
이미지는 블로그 스킨인데, 참 맘에 들어요. 심해까지는 아니고, 그냥 바닷속 사진이랍니다.

sudan 2005-11-02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글썽하시는 로드무비님도 귀여우세요.

2005-11-02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로쟈 > "요즘 시 어떻습니까?"

오늘자 한국일보 문화란에 '요즘 시'의 경향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오늘이 '시의 날'인 걸 기념해서인 듯한데, 며느리도 모를 법한 이 날의 유래는 이렇다고: "11월1일은 제19회 '시의 날'이다. '시의 날'은 우리나라 현대시의 효시로 알려진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1908년 11월 잡지 '소년' 창간호에 실린 것을 기념해 1986년 제정됐다." 1986년이면 전두환 정권하이다. 5공 때 이어령 선생이 문화부 장관을 한 적도 있으니 그 분 아이디어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딱 이어령표 마인드의 산물 같다. 어쨌거나, 그런 날이 벌써 19번째이건만, 무슨 행사를 벌인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시시한 날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저런 기념일을 챙기는 건 문화부 기자의 본분에 충실해 보이며, 덕분에 나는 아침부터 '요즘 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연예인들만한 사이즈로 지면에 오른 요즘 시인들의 면면들을 구경해볼 수 있었다. 혹 기사를 지나쳐버린 분들을 위해서 내용을 정리하고, 생각할 거리를 챙겨두도록 한다.

"일군의 젊은 시인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는 우리 시의 새로운 경향을 짚"고자 하는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요즘 시(詩)가 어려워졌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시인 평론가들조차 불편함을 토로할 정도다. 한 두 사람 한 두 편의 돌출적인 현상이 아니라, 최근 등단했거나 한 두 권의 시집을 낸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뚜렷한 경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 경향을 다른 말로는 '엽기시'라고 한다.

 

 

 

 

얼마전 미당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되었는데, 수상자는 작년에도 시인들이 뽑은 최고작을 쓴 바 있는 문태준 시인이며 수상작은 <누가 울고 간다>이다. 짧은 시이므로 옮겨본다.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낼 수 없는

특별히 덧붙일 것도 뺄 것도 없는 소품인데, 사실 이런 정서와 리듬감, 시상 전개 등이 한국 서정시의 주류를 형성해왔다(문태준 이전에는 장석남이 있었다). 기형도 이후에, 혹은 장정일, 유하 이후에 여전히 이러한 시가 씌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퇴행'이면서도 '관례'이다. 유구한. 그리고 그런 시인과 시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건 당연해 보인다. 2000년도 이후에 나는 시도 쓰지 않고 읽는 것도 게을리 하고 있지만(나는 시에 대한 '기대'를 거의 접었다) 요즘 동태를 보아하니 그 사이에 꽤 특이한 젊은 시인들이 여럿 등장한 모양이다. 세태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문학적 성감을 찾아나선 이들의 이름은 김행숙 황병승 김민정 김근 김언 이민하 김이듬 등이다. 기사에는 8명의 시인들이 8인방처럼 거명돼 있는데, 요약하면 1:8이요, '문태준과 아이들' 혹은 '문태준과 엽기들'이다. 이들을 차례로 호명해보자.

 

 

 

 

 

 

 

 

 

 

모두가 올해 데뷔시집이나 새시집을 낸 젊은 시인들이다. 김이듬, <별모양의 얼룩>(천년의시작, 2005); 진수미, <달의 코르크마개가 열릴 때까지>(문학동네, 2005); 김근, <뱀소년의 외출>(문학동네, 2005); 김언, <거인>(랜덤하우스중앙, 2005); 이민하, <환상수족>(열림원, 2005); 김민정,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열림원, 2005); 황병승,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중앙, 2005); 김행숙, <사춘기>(문학과지성사, 2005)

(평론가 이장욱에 의하면) '외계어'로 시를 쓰는 이들은 (평론가 권혁웅에 의하면) 우리 시단의 '미래파'이다. 물론 이들이 떼로 몰려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외계인들끼리는 소통가능한가?) 하여간에 앞에서 인용한 문태준류의 시와는 달리 알아먹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 시의 특징이고 특장이다. 기자도 이 점을 표나게 지적하고 있다: "그 변화의 선두에 김행숙(35) 시인의 비교적 짧은 시 ‘달무리’를 보자. “그의 진동이 그에게 후광을 만든다. 그가 문둥이같이 뭉개질 때/ 배는 출렁이고 있었다. 내가 깔고 누운 파랑은 나를 통과한 그의 뒤편일까? (중략) 그의 뭉개진 코가 킁킁대며 누구니? 누구니? 묻고, 다시 물을 때// 아으, 부풀어 오르는 한 그루 버드나무.” 그의 시는 이성적 사고체계로 스며들지 않는다. 오히려 무의식과 느낌, 환상ㆍ분열적 내면 풍경에 철저히 기대고 있는 듯하다. 전통 서정시의 독법에 따라 어떤 의미나 이미지를 포착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고 무모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실 알아먹을 수 없는 시가 문학사에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1930년대의 이상이 '욕먹는' 시 <오감도>를 썼다. 1950년대에는 '초현실주의 시'를 쓴 조향 시인 같은 분도 있었고(<조향 전집>(열음사, 1994)), 김춘수 시인의 무의미시나 이승훈 시인의 비대상 시들도 다 낯선 시들이었다. 그렇다고 이성복과 황지우의 시는 주류적인 시였나?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요즘의 '엽기시' 경향에 대해 특별히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다만, 최근의 나온 시집들이 주된 경향을 이루면서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는 게 눈에 띌 뿐. 더불어, 현란한 이미지들이나 수사의 국적, 계보, 혹은 전통을 종잡을 수 없다는 게 이채로울 뿐. 해서 새로운 시 독법이 필요하다? 

"이들 시의 메커니즘은 다양하다. 빛이나 공기 입자의 산란처럼 어지럽게 좌충우돌하는 사유의 혼종성, 세계와 자아의 대립과 반영을 넘어 자아분열적이기까지 한 현란한 이미지, 성적ㆍ관능적 환상과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상징 등…. 이성과 관념 이전의 원초적 시어들이 은닉하고 있는 ‘무엇’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 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김행숙 시인은 문학적 감성의 변화를 말한다. “어떤 시는 시인/평론가보다 시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들이 오히려 뜨겁게 반응합니다. 폭 넓게 소통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좁은 대신 깊이 소통하는 층이 분명히 있어요.” 그는 그것을 생물학적 세대차이라기 보다는 차별화한 문화체험에서 비롯된 문화적 세대차이일 것이라고 말했다."(강조는 나의 것) 참고로 기자가 나열하고 있는 찬반론은 이렇다. 

이들 시에 대한 비판도 있다.

-문학의 본령이 문자언어를 통한 소통이다. 암호에 가까운 자의적 기호와 자폐적 무의식의 흔적들이 어떻게 문학인지 모르겠다.

-환상이 없는 문학은 없다. 두보의 시에도, 카프카의 글에도 환상은 있다. 하지만 이들의 시는 삶의 리얼리티를 상실한 채 머리(환상) 속에서 떠오른 느낌들을 시적 긴장 없이 풀어놓은 것 같다.

-하나 하나의 작품을 놓고 보면 참신하지만 모아놓고 보면 시를 형성하는 문법이나 문장을 엮는 방법 등이 흡사하다. 일종의 유행 같다는 생각이다.

그에 대한 반론이다.

-나는 말쑥하고 균형 잡힌 시를 혐오한다. 안정감 있고 깨달은 자는 침묵하면 좋겠다. … 나는 내가 쓴 시에 관해서 말하기가 뭐하다. 낯설고 잘 모르겠고, 몰라서 쓴다.… ‘노력’해야 한다면 그때는 안녕.(김이듬, ‘시와 반시’여름호-현대시와 퇴폐)

-시단에서 유일하게 죄악인 것이 있다면 바로 다양한 꼴을 못 보아주는 태도이다. 시적으로 봐도 그렇고 생물학적 측면에서도 굉장히 위험한 태도다.… 자신 안에 스스로 잡종의 비율을 높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김언, ‘웹진 문장’ 10월호-우리 시의 다양성과 새로움)

-아름다움은 움직이는 거다. …최근 시들을 비판하는 이들이 논거로 삼은 자리는 절대로,항구적인 진리의 자리가 아니다. 차라리 최근 시들이 진리로 간주되어온 그 자리를 비판의 대상으로 겨누고 있다고 말해야 옳다. (권혁웅 비평집 ‘미래파’-2005년 젊은 시인들)

긍정적인/전향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경향을 바라보는 세 평자의 의견:

-황현산(고려대 불문) 교수는 “한국 현대시단의 양대 흐름을 형성했던 농경사회적 정서와 도시적 정서의 굳은 틈을 비집고 서울의 하위정서 혹은 지방도시적 정서들이 새로운 경향을 형성하는 듯하다”며 “하기에 따라서는 향후 2~3년 내에 우리 시단의 지형도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통의 문제와 관련, 그는 “승리한 자의 말은 상식에 근거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소통되지만, 억압 받는 자는 말 한 마디 하기도 힘들고 하더라도 타박 당하기 일쑤”라며 “하지만 그 말은 우리가 반드시 소통해야 할 말“이라고 말했다.

-2003년 김행숙씨의 첫 시집 ‘사춘기’(문학과지성사)의 해설에 이장욱(시인ㆍ소설가ㆍ평론가)씨는 “우리가 도달해가는 현대시의 어떤 징후”라는 조심스러운 표현을 쓴 바 있다. 이제 그 징후는 좋든 싫든 하나의 도도한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최근 젊은 시인들의 경향이 우리 현대시의 다양성을 확장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지배적 경향을 형성할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최근 낸 비평집에서 이들 젊은 시인들의 경향을 ‘미래파’라 명명한 권혁웅(시인ㆍ평론가)씨는 “60년대의 김수영, 80년대의 이성복이 당대 시단에 충격을 준 것처럼, 이들 시가 낯설고 불편한 것은 새로운 미학과 세계관을 한 발 앞서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먼 훗날, 이들의 작품이 낡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다르게 말해서 이들의 작품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시의 분명한 대안이라는 것을 인정할 날이 올 것이다.”(‘미래파’ 171쪽)

이어서 기자는 두 편의 시를 예시하고 있다. 나의 독후감으론 황병승과 진수미의 예시된 시는 종류가 좀 다르다. 그것은 시가 그 독법에 있어서 어느 만큼의 논리를 허용하는가, 혹은 어떤 종류의 논리를 요구하는가에 달려 있다. 더불어, 시의 난해성이 시적 주체의 개성과 연관되는 것인지, 아니면 개별성 이전의 전주체성(presubjectivity)과 연관된 것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요즘 시'를 한번 읽어보시라. 그리고 해독/해석해 보시라. 나의 생각은 조만간 다른 자리에서 정리해두도록 하겠다.

▲ 커밍아웃 / 황병승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얼굴을 맨바닥에 갈아버리고
뒤로 걸을까 봐요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항문이 도무지 혐오스럽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며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 봐요

부끄러워요 저처럼 부끄러운 동물을
호주머니 속에 서랍 깊숙이
당신도 잔뜩 가지고 있지요

부끄러운 게 싫어서 부끄러울 때마다
당신은 엽서를 썼다 지웠다
손목을 끊었다 붙였다

백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도 됐다가 고모할머니도 됐다가…

부끄러워요? 악수해요

당신의 손은 당신이 찢어버린 첫 페이지 속에 있어요

▲ 그러다가 어느 날 / 진수미

유방은 부풀어오른다 터질 듯이 고요한 프로펠러
갈증을 느낀 비행선이 그림자를 몰고 나타난다.
보라색 태양일랑 내가 오려냈다오.

승냥이들이 거품 무는 파도가 쫓아오고
내장 없는 배의 항로를 걱정하는
어머니, 이 배에 앓는 항구가 누워 있어요.

사랑스런 임차인들아,
나는 그들에게 돌려줄 것이 있다오.

당신의 장기를 물어뜯는 거리의 개들
적선은 더 큰 바람을 부를 거예요.

소유를 짤랑이는 열쇠와 함께
집달리들이 득달같이 들이닥친다.
그들은 신부의 의상을 하고 있어요.

냉장고는 머리가 깨져 시큼한 국물을 지리는데
벌레들이 바람의 커튼을 흔들며 날아올라요.

뒤엉킨 서랍의
껍질 벗고 교미하는 실뱀 한 꾸러미,
그들은 신부의 의상을 하고 있어요.

05.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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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5-11-0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론가 이장욱이라 하면, 혹시 [내 잠속의 모래산]이라는 시집을 낸 그 시인인가요?
좋아하는 시집인데.
물어보면 답해주실수 있을려나. 문학적인 얼블루님.

urblue 2005-11-01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시랑 평론이랑 다 안 친합니다. 결국 안 문학적인거였어요. 흑.
 
 전출처 : merced > 캘리포니아

어느 미국인이 그랬다. 미국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뉴욕시, 캘리포니아주, 그리고 나머지 진짜 미국. --아하!

뉴욕은 그러니까, 미국적이라기보다는 세계 속에 따로 떼어놓고 싱가포르처럼 한 나라라도 해도 좋을 만큼, 뉴욕적이라 해야 할까 그런 독특함이 있다. (뉴욕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캘리포니아는 <심슨 가족>과 더불어, 가장 미국적이면서 또한 가장 미국적이지 않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가장 미국적인

미국은 이민으로 만들어진 나라이다. 다인종 국가로서 인종차별 폐지-평등한 인권을 표면에 내세우지만 여전히 백인 중심적이고 glass ceiling (여성과 유색인종이 승진 또는 권력의 사다리에서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백인 사회에 잘 어울린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머리 위로 텅 부딪히는 최고강도 유리천장)은 절대로 깨지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더라도 유색 인종은 비제도적인 (그래서 더욱 견디기 힘든) 억압과 무시를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백인들만 또는 흑인들만 모여 사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이처럼 "섬세한" 인종 차별이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을 대하는 태도는 이민자에 대한 태도와는 또 다르다. 신비함, 신기함, 손님에 대한 예의 등으로 적의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는 20세기 후반 미국 이민사, 그리고 새로운 이민이 만들어내는 미국 문화의 변화에 첨단에 있다. 20세기 초까지의 꾸준한, 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의 독일계 유태인을 위주로 한 대량 유럽 이민의 관문이 동부의 항구 도시들이라면 (특히 뉴욕), 지난 반세기 급격하게 늘어난 아시아계와 남아메리카계 이민의 관문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멕시코-미국 국경)이다. 캘리포니아는 이민으로 이루어진 다인종 국가로서의 미국의 특징을 집약하면서 인종 차별 또는 인종간 대립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미국적이지 않은

그러나 20세기 후반 서부의 아시아계와 남아메리카계 이민은 동부의 유럽 이민과는 성격이 다르다. 유럽계 이민들이 백인 중심의 사회에 일조하고 비교적 쉽게 융화될 수 있었고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미 어느 정도 정착한 반면, 또 흑인들이 백인과 유색인종 모두를 배제하며 (노예 해방 이후로도 끝없이 인종차별에 맞서야 했고 여전히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박탈을 대물림하기에 반작용으로 생성된 "역차별" 태도이기도 하겠지만) 자기들만의 어투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어쨌거나 미국의 "당당한 구성원"이라는 입지를 차지한 한편, 이민의 역사가 짧은 아시아와 남미의 이민의 문화는 그야말로 마이너리티이며 독특하다.

캘리포니아는 다국적, 다문화적이다. 캘리포니아의 인종 비율은 다른 주와 다르고, 상이한 소수 문화들간 부대낌이 가장 첨예한 곳인가 하면, 미국에서 다양한 문화들이 가장 존중받고 "다름"이 어색하지 않고 열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주민이 가져온 본국의 다양한 전통, 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이민자들만의 문화 (이민자 그룹마다의 미국 문화를 수용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이것도 천차만별이다), 이민 1세대와는 또 다른 2세들의 문화 등 다양한 문화가 캘리포니아에는 공존한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melting pot 이라는 널리 받아들여졌는데, 한물 갔다. 여러 문화들이 만나 이도저도아닌 어떤 것으로 섞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색깔들이 공존하며 새롭고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낸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반가운 인식의 변화는 민간 영역에서 국제 교류가 큰 폭으로 확장된 지난 20년간의 세계적인 경향이기도 하겠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일상적으로, 현실적으로 여러 문화의 생명력과 접점을 경험하게 된다.

미국의 초기 이민이 다들 그렇듯이, 시민권을 갖지 못한 캘리포니아의 많은 이민 1세대들은 백인들이 꺼리는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뉴욕의 택시 운전사들은 엑센트가 제각각인 여러 유색인종 이민이며 미국 남서부 식당설거지, 청소, 공장,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영어를 아예 못하는 히스패닉이다) 아메리칸 드림 실현과 정착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근래의 아시아계 이민들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가진 것 없이 몸만 달랑 왔던 초기 이민자들과는 달리, 부유한 한국계와 중국계 투자(또는 투기) 이민들은 미국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미국의 부동산 경기나 산업관례 등을 빠르게 변화시키며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시 미국적인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이러한 특징은 이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다. 영어와 스페인어 공용화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먼저 시행되었지만 이제는 미국 전역에서 일반화되었다. 아시아계와 히스패닉의 비율이 미국 전역에서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아시안과 히스패닉에 대한 미국 전역의 인식도 전처럼 마냥 타자가 아니다.  

반면, 캘리포니아에서는 다양한 문화들에 열려 있는 태도 이면에 서둘러 정착하고자 하는 욕망에 얼른 돈 벌고 자리잡아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지극히 미국적인 개인주의와 천박한 상업주의가 이민자들 스스로에 의해 여과없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를 테면 "성공한" 이들이 다른 소수민족과 덜 가진 이들을 나서서 차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단순한 역차별--그러니까 제 민족과 다른 소수를 감싸고 백인들을 차별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이해하기가 쉽겠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정도 충돌과 변형을 경험한 문화들이 이제는 "미국의 일부"로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 비교적 유연하게 수용되며 파급되는 반면에, 캘리포니아에서는 "미국적인" 인종차별과 불평등이 재생산, 복제되고 있다.

그나저나, 캘리포니아에 대한 지리적인 이야기

원래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잘 살고 있던 곳을 18세기부터 스페인이 선교사와 병사들을 이끌고 와서 식민지로 만들었다. 1822년 스페인으로부터 멕시코공화국이 독립하면서 멕시코령이 되었는데,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미국 영토가 되었다. 대부분의 지명이 스페인어이고, 카톨릭 성자 이름이 많다. 뺏어서 잘 개발해서 잘 쓰고 있다. 애리조나에서 끌어다 쓰는 물로 야채, 과일, 유제품, 소고기 생산 미국 1위. 닭고기 칠면조는 미국 2-3위. GNP의 45%는 항공, 우주, 전자 등 첨단산업이 차지한다. 공업은 미전역의 10%. 시멘트 1위, 광업 2위, 석유 4위. 캘리포니아 주만 따로 떼어놓아도 경제적 생산력이 세계 10위 안에 든다.

1920년대에 미국 8위였던 인구수가 쑥쑥 자라 1970년대 이후 줄곧 미국 1위. 미국에서 남아메리칸, 아시안 인구가 가장 많은 주.

북반은 대체로 서안해양성, 남반은 포도가 잘 자라는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 여름이 길고 건조하며 겨울에 비가 내린다. 눈 펑펑 내리는 고산지대가 있는가 하면 사막도 있다. 서부 해안선을 따라 불안정한 지반으로 때때로 화산도 폭발하고 자주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난다. 다양한 기후와 변화가 많은 지형, 태평양 해안 등으로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이 많아 관광객, 휴양객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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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11-02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캘리포냐 주민으로 공감 많이 하며 읽었어요. ^^ 미국 이곳 저곳을 다녀봐도, 캘리포냐만큼 다양한 이민족이 섞인 곳도 없는 것 같더군요. 그만큼 인종차별을 몸으로 느끼진 않고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비록 안보이는 인종차별이 있을진 몰라도..)

urblue 2005-11-0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쓴 친구가 미국서 공부하고 직장도 다니고 했는데, 아마 캘리포니아였던가...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러니까 썼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