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dohyosae >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1898년 미국은 스페인과의 "미서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그동안 자신들의 정책으로 유지하여왔던 "먼로주의"를 버리고 카리브해와 태평양상에서 강력한 식민주의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때 미국은 카리브해의 쿠바와 태평양의 필리핀을 스페인으로부터 빼앗아 제국주의 확대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미국은 사실 이보다 일찍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지만 남북전쟁이란 내란과 그 후의 재건과 치유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기에 제국주의 대열에 뒤늦게 합류하였던 것이다.

미국이 팽창주의로 나서는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찰스 다윈의 자연도태론에 바탕을 둔 자연 진화론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있다. 생존을 위한 끝없는 투쟁과 적자생존을 통해 더욱 강력한 존재가 태어날 수 있다는 다윈의 법칙은 사회진화론과 직접적으로 선이 닿아있는 것이었다. 이런 사상적 이론으로 무장한 미국의 제국주의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란 표어 속에 담겨져 자신의 팽창을 정당화하였던 것이다. 이는 영국인들이 신의 의지Divine Will로 자신들의 제국주의를 합리화한 것과 유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명백한 운명이란 단어는 미국의 역사가 존 피스크John Fiske가 1885년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피크스는 앵글로 색슨이 북미대륙을 식민화했을 때 시작된 인류의 교화사업은 미국에 의해 완수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용하는 영어가 결국은 전인류의 언어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그의 이런 주장은 1백년이 지난 현재 아주 적절하게 들어맞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패권주의의 끝은 아직도 알 수 없고, 전 세계에 불어닥친 영어열풍은 명백한 운명의 대상들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존 피크스와 같은 시기에 조합교회의 목사인 죠슈아 스트롱Josiah Strong은 <앵글로 색슨족과 세계의 미래>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스트롱은 "시민의 자유Civil Liberty"와 "순수한 영적 기독교 정신A Pure Spiritual Christianity"를 언급하였다. 미국은 이 두 정신으로 훈련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두 정신으로 무장한 미국인은 중남미로 그리고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아프리카로 뻗어나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주장한 것은 정치적 선구자로서 미국과 종교적 의무의 미국인이라는 두 명제를 혼합한 것이었다. 즉 미국인은 다른 세계에 자신들의 정치체제와 종교를 이식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가장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팽창주의자는 해군장교 출신의 이론가였던 알프레드 마한Alfred T. Mahan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지론을 담은 가장 유명한 저서인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한국에도 번역되어 있음>에서 1660년에서 1783년 사이에 영국 해군을 분석하면서 국가의 장래는 해군력에 달려있다고 주장하였다. 해군력은 평화시에는 국가의 통상을 위해 전시에는 상선을 보호하고 무역로를 확보하며 나아가서 식민지와 해외의 기지를 획득할 수 있는 기초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당시 미국이 추구하고 있던 대륙위주의 정책에 대한 반론이었다. 사실 그의 주장은 미국이 농업과 공업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면서 물건을 팔 시장의 확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 당시 미국이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미 세력을 확보하고 있던 기존의 식민세력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들이 진출할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었다. 일차적인 목표는 카리브해였다. 카리브해를 자신의 내해로 만들어 놓고 유럽 열강이 자리잡은 대성양이 아니라 태평양을 목표로 삼았다. 미국은 방대한 태평양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해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인식하게 되고 해군력의 확장과 태평양상에서 미국 해군력의 전초기지가 될 지역을 확보해야만 했다. 이 결과 1890년대 초 하와이를 중심으로 한 샌드위치 제도의 확보에 주력하였다. 하와이는 미국 서부해안의 방어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었다. 마한은 미국의 이런 팽창주의 정책이 미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그는 미국의 진출은 문명의 축복을 확장시키는 것으로 파악하였던 것이다.

마한의 이런 관점은 러시아의 관점과 상당히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면서 서방 라틴기독교세계로부터 정교 세계를 보호하는 최전방의 국가로 정의하였다. 이는 러시아가 종교의 수호자이면서 두 세계의 접점이자 중심이란 의미였다. 미국 역시 카리브해를 내해로 만들고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대서양 세계인 유럽의 보호자이면서 이 문명을 확산시키는 전도자라는 것이었다. 미국에게 아무도 그 임무를 지워주지 않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그 짐을 짊어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짐은 신성한 운명Divine Destint로 아직도 유효하다. 미국은 태평양을 지나 이제 인도양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다시 대서양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자신들의 신성한 임무가 종결된 것으로 이해할까. 역사의 교훈은 절대로 자신들의 임무에 만족한 제국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신성한 의무는 미국의 구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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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9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3-29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rrmi82 2005-04-17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백한 사명감(혹은 운명) 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피스크가 아니라 데모크라틱 리뷰라는 저널의 편집장이었던 슬리번이라는 사람이 했다고 하는데... 대체 어떤게 맞는 얘긴지 알수가 없네요 ^^;;

urblue 2005-04-17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저도 모르겠군요. ^^;
 
 전출처 : 水巖 > 발마사지

 

발마사지 손과 발의 행복한 만남

꼭꼭 꾹꾹 10분이면 "아 ~ 살 맛 나"

하루종일 신발 속에서 시달린 발에게 평소 당신은 어떤 '대접'을 하나.

얼굴처럼 화장품으로 호강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비누로 깨끗이 씻고 마사지해 주는 '예의'는 갖추고 있는가. 발은 주춧돌이다.

인체를 떠받드는 중노동을 하면서도 큰 불평 없이 소임을 다한다. 발은 인체의 거울이기도 하다. 어느 장기가 아프면 그 증상이 발에 나타난다.

발을 주무르면 피로가 풀리고, 특정 반사부위를 누르면 심하게 아픈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를 반사구라고 부른다.

한국발반사학회장을 맡고 있는 차병원 산모문화센터 김수자 발관리실장에게 가정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발반사요법을 들어봤다.

고종관 건강팀장<kojokw@joongang.co.kr>



발반사요법을 하는 첫째 목적은 혈액순환이다. 발은 제2의 심장으로 불린다. 발로 내려간 혈액이 다시 심장으로 U턴하는 부위다. 발을 강하게 주무르고, 마사지하는 것만으로 걷는 것과 같은 혈액 펌핑 효과가 있다. 노폐물은 신장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한다.

둘째 목적은 신경 반사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발바닥에 있는 인체 감각기관의 자극이 대뇌에 전달되고, 이 정보가 다시 인체의 각 기관에 전달돼 기능이 촉진된다.

셋째는 면역력 향상이다. 인체 호르몬 대사를 활성화해 몸 안에 쌓인 피로물질을 배출하고, 자연치유력을 높인다.

발반사요법을 시행할 때는 처음과 마무리가 중요하다. 요령은 항상 기본 반사구 자극을 하라는 것. 기본 반사구의 시작 부위는 신장의 반사부위인 용천(그림 참조)이다. 신장-수뇨관-방광-요도의 순서로 각각 상응하는 부위를 누른다. 비뇨기계가 중요한 것은 이곳이 혈액에 있는 노폐물을 걸러내고, 필요한 영양성분를 흡수하는 재활용기관이기 때문이다.

정맥마사지도 반드시 거쳐야 할 순서다. 발에 정체되기 쉬운 혈액을 심장 쪽으로 이동시켜 혈액순환을 돕기 때문이다. 발에서 시작해 종아리까지 마사지한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임산부, 당뇨 환자, 수족 냉증 여성, 오래 앉아 있는 학생에게 효과가 있다.

발반사요법은 난이도 높은 기술을 요하지 않는다. 발가락 사이는 미끄러지듯, 발바닥은 손으로 누르거나 주먹으로 두드린다. 또 발등은 엄지손가락으로 밀어주는 등 골고루 자극하면 된다. 지압봉이 없으면 볼펜의 뭉툭한 부분을 이용한다. 지그시 비비면서 아플 정도로 3~5초 동안 누른다. 종아리 마사지는 심장 방향으로 15~20분간 시행한다.

1. 뇌의 반사부위

(두통, 스트레스, 눈의 피로)

용천을 4초씩 3회 자극한 뒤 손으로 마사지한다. 엄지발가락 아랫부분을 3~4회 반복해서 누르거나 쓸어준다. 그리고 지압봉으로 위에서 아래로 긁어내린다. 다시 엄지손가락으로 엄지발가락 밑을 4초씩 3~4회 누르고, 엄지발가락을 감싸고 주무른다.

2. 척추의 반사부위

(요통, 뒷목의 뻣뻣함)

엄지손가락에 크림을 묻히고 목뼈의 반사부위인 엄지발가락 중간부위부터 지압봉으로 부드럽게 긁어준다. 그리고 그림과 같이 손으로 마사지하면서 내려간다. 흉추의 반사부위는 발 안쪽 약간 위에 있다. 밑에서 위로 올리듯 9회 이상 미끄러지듯 자극한다.

3. 소화기 계통의 반사부위

(복부 팽만감, 소화불량, 위통, 구토)

위장의 반사부위는 활처럼 휘어진 아치부위의 위쪽이다. 십이지장은 위장 반사부위 바로 아래쪽이며, 췌장은 위장.십이지장 반사부위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위장-십이지장-췌장의 순서로 4초간 3회씩 봉의 둥근 부분으로 누른 뒤 손으로 마사지하듯 풀어준다.

4. 임파계 반사부위

(면역력 증진, 피로, 감기 예방)

그림처럼 두 손으로 발을 감싸고 지압해 내려간다. 그리고 지압봉으로 발등에서 발목을 향해 4~5회 누르듯 긁어 올린다. 감기를 예방하려면 발가락 사이의 임파 반사부위를 자극한다. 특히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 사이를 손으로 마사지한다.

5. 생식선 반사부위

(생리통, 불면증, 정력 감퇴, 갱년기 장애)

발바닥 뒤꿈치에 있는 난소와 고환의 반사부위를 봉의 납작한 부분으로 위에서 아래로 9회 이상 미끄러지듯 자극한다. 그리고 뒤꿈치 윗부분의 자궁과 전립선의 반사부위를 아래에서 위로 9회 올려준다. 마지막으로 발부터 무릎까지 3회 마사지한다.  

2005.03.24 15:24 입력 / 2005.03.24 15: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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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홀로 떠나는 남자

Ilona Wellmann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Encounter




Encounter



Encounter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Imagine...





Embrace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Encounter




Encounter



The Stranger



Blue Dream



Taking a walk


The first snow




Alone



White all over



Three of Us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A visual poesy





Trees in fog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Tree family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Together




Together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Foggy morning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Country side in winter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Melancholy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I can hear the silence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In a winter day




In a winter day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Foggy evening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Walking in winter




Loneliness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Lost?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We belong together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Trees in fog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In the face of fog








Photographer Ilona Wellmann Caption Just two trees...

The John Dunbar Theme

 

출처:작은 곰 자리 북 극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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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퍼온글] [펌] 지만원 vs. 진중권 관전기.

텔레비젼을 멀리하고 살다보니 이런 좋은 구경을 못했었군요. -_-;;

파란여우님께서 이거 붙이시려고 시도하시는 것을 보다가 제가 아는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동영상으로 보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토론을 보고 관전평을 붙이신 어떤 분의 이야기에서 그날 분위기를 짐작하기에는 충분한 거 같습니다.^^;; (보고 혈압 오르신 분들도 많을 거 같더군요..하하~)

여러갈래로 갈라져 있는 생각들을 "이것이 맞다.나를 따르라~"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지요. 더구나 상상할 수 없는 경직된 머리를 가지신 분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그들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을 비교할 수 있는 통로가 우리사회에선 너무나 부족했었고, '권위'가 아닌 '논리'로서 의견을 이끌어가는 것은 더욱더 부재한 현실이었습니다. 자신의 사고,자신의 환경 속에서만 맴도는 자폐적인 모습의 지식인들,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이 결여된 지식인들의 궁색한 모습과 '역사의식'과 '사회의식' 과 함께 '분야의 전문성'을 획득한 지식인들의 모습이 날 것으로 드러나는 TV토론을 통해 우리들의 눈이 좀 더 열리고 '권위'보다는 '논리'로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흐~

그럼, 지만원 vs. 진중권 토론 대격돌에 한번 빠져 보시겄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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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김구는 빈라덴" vs 진중권 "망명해라"

[CBS 토론] 진중권, 지만원에 일방적 논박 “성취향 공개 삼가라”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 소장은 10일 “한승조 교수의 ‘일제 지배는 축복’이라는 발언은 한 문장만을 빼서 마타도어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는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하시더군요. ^^;;

이에 대해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이번 한승조 사태는 한국 우익들의 멘털리티가 어느 정도 썩어 있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일본에서도 포기한 일본 우익세력들의 주장을 그대로 설파하는 ‘앵무새’ 행태라고 비판했다.

‘한승조 살리기’에 나선 지 소장은 이날 오후 CBS TV 시사 프로그램인 ‘CBS 저널’을 통해 진 교수와 ‘친일 비판자는 좌익?’이라는 주제로 붙었다. 이전에 안티조선으로 붙은 적이 있는 두 사람은 격정적인 토론을 기대했지만 진 교수의 예견대로 ‘2+2=4’이냐 ‘2+2=5’ 이냐는 식의 논쟁에 머무르고 말았다.

▲ CBS 저널 '친일 비판자는 좌익?'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한국 우익 세력의 적나라한 실상에 대해 진 교수가 몰아쳤지만 지 소장은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왜 자꾸 과거를 들추냐며 반박논리를 펼치지 못하고 중언부언을 반복했다. 사회자마저도 지 소장의 왜곡된 논리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결국 ‘한승조 살리기’에 나섰던 지 소장은 “한 교수의 글을 제대로 꼼꼼히 읽어본 것은 어제 저녁”이라고 실토하기도 했다.

김근상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오후 3시 CBS 목동 사옥 지하 3층 공개홀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진중권 “말도 안되는 것을 키워주는 것이지만...”

토론 시작 전 데일리 서프라이즈와의 즉석 인터뷰에서 진 교수는 “이 토론은 어찌보면 2+2=4, 2+2=5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이랑 똑같다”며 “말도 안되는 것을 키워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왜 이런 망언들이 계속 나오는지 사회 문화적, 역사적인 것들을 짚어줄 것이라면서 토론에 임하는 자세를 밝혔다. 그는 지 소장과는 예전에 안티 조선 문제로 토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토론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지 소장은 “국민들에게 입장을 전하겠다”며 “구체적인 자세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박정희를 때리면 얻는 것이 무엇인가라며 박정희를 국부라 여기는 사람이 국민의 80%인데 분열을 일으키는 과거사 규명은 전혀 영양가가 없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오후 3시 토론에 들어간 두 사람은 우선 한승조 교수의 발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지 소장은 “한승조 교수의 ‘일제 지배는 축복’이라는 발언은 한 문장 들어가 있다”면서 문장 하나만 빼서 사회가 마타도어하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한 교수의 글에 돌을 던지는 이유는 전체는 보여주지 않고 자극적인 부분만 떼어내어 논란하는 것”이라며 이는 국제 정세를 모르는 사람에게 국가 A가 국가 B를 아무런 이유 없이 강제로 점령해서 욕을 보이고 고통을 줬는데 그 나라가 좋은 나라냐, 나쁜 나라냐고 물어보는 것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 진중권 교수와 격돌한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그러나 지 소장은 한 교수의 글에서 잘못된 점이 20% 있다면서 위안부 언급을 지적했다. ‘위안부 사죄 요구’는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 좌파들이 반미를 선동하는 것과 똑같다며 그는 할머니들을 앞세워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 교수가 용기 있게 지적했지만 구태여 그런 이야기까지 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잘못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한국 사정을 뻔히 아는데 ‘축복’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한 것도 또한 작은 잘못”이라고도 덧붙였다.

“ 한승조 지만원 발언으로 일본 우익들만 신났다”

지 소장은 그러나 "80%이상은 배울 점이 있다"면서 "잘난 사람에게 역사를 배워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왜 이 시점에서 과거를 따지는지 모르겠다"며 과거사 진상 규명의 정치적 의도를 주장했다.

이 같은 지 소장의 ‘침소봉대’ 주장에 대해 진 교수는 우선 “한 교수의 기고문은 전문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고 있고 국민들도 다 읽어보고 판단하고 분노하고 방송이나 신문도 다 읽어보고 기사 쓴 것”이라고 정정했다.


-> 조선 동아 중앙도 한 입으로 한교수의 발언을 비난하고 있는데 그러면 조선 동아 중앙도 주사파 386이냐...는 반문에 지 박사님 침묵하시더군요. 연로하신 석학을 이렇게 몰아세우다니 진중권 그 사람 참 몹쓸 사람입니다. ^^;;;

이어 진 교수는 "당시 러시아는 반정시위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취약한 나라였다"며 러시아 지배 가능성을 일축한 뒤 “일본 식민지 아니면 미국 식민지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면 그럴듯하다”고 속내를 꼬집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 소장은 “1860년에 미국은 흑인의 인권을 놓고 자기들끼리 싸웠다”며 인권국가인 미국이 어떻게 한국을 먹겠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 civil war의 이유가 단지 흑인의 인권 만을 위한 사움이었을까요? 이 이야기 꺼내시는데 지 박사님 아미스타드 이야기 부터 하시더군요.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애초에 흑인 노예들을 미국으로 안 데려왔으면 그런 내전 안 벌여도 되는 거 아니었나요?   

이같은 지 소장의 거침없는 ‘사대주의’에 진 교수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일본 보고 먹어버리라고 했던 미일간의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지적하며 미국도 식민지를 가질 수 있는 나라였다고 반박했다.

이어 진 교수는 한승조 씨가 미국, 중국도 있었는데 왜 러시아를 지목했는가 자문한 뒤 이는 러일 전쟁의 추억에서 나온 것이며 일본 우익들의 대동아공영권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일본이 당시 러시아를 이겨 아시아의 열등을 극복했고 이는 아시아의 승리이고 일본이 아시아를 구원했다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로 파시즘의 맥락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번 한 교수와 지 소장의 ‘커밍아웃’으로 일본 우익들이 신났다고 하더라면서 진 교수는 “일본이 점령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점령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수천만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따라서 원자폭탄은 일본의 축복인 ‘원자 복탄’”이라고 꼬집었다.

-> 원자폭탄... 원자복탄... 아 이 사람이 바로 진중권이었지~ 라는 생각이 번뜩 다시 들더군요. ㅎㅎㅎ

이러한 진 교수의 주장에 지 소장은 논리 대결은 하지 않고 “한 교수의 연구 방법이 있고 진 교수의 연구 방법이 있다”며 “가쓰라 테프트 조약을 보는 것도 다르다, 서로 존중돼야 한다”고 물러섰다.

“하이에나, 메뚜기, 들쥐로 비유하는 사람이 인권을 알겠는가”

지 소장은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세계 열강들이 아시아로 몰려들고 있는데 한국은 궁전 돌담 안에 앉아서 노론, 소론하며 문닫고 귀양 보내고 모함하고 그랬다”며 “그런 모습으로 36년을 지냈다면 일본이 없었다면 철로나 항만, 발전소, 법률, 행정이 지금같이 발전했겠는가”라고 개발주의론을 펼쳤다.

▲ 프로그램 녹화 스튜디오에 진중권 씨가 들어서고 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이에 대해 사회자마저도 “국권의 중대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말”이라며 “식민지가 국가에 도움이 됐다는 아니 제국주의도 도움이 되는 제국주의, 식민주의도 올바른 식민주의가 있다는 주장인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지 소장은 “100% 좋은 것만 있는 것, 100%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없다”며 “이념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혼재돼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는 일본하고 앞으로 잘 살면 되는데 왜 자꾸 과거를 따져서 증오심을 부추기느냐며 여기에는 분명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진 교수는 지 소장의 글에는 민족비하 발언이 여러 번 나온다며 한국인을 들쥐 근성으로 비유하고 언론을 ‘후레인간’ ‘메뚜기떼’ ‘하이에나 떼’로 묘사한 것을 지적했다. 그는 이는 한국 민족은 안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 소장과 한승조 씨의 망언은 임상심리학적 연구 대상이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몰아쳤다. 그는 또한 “메뚜기떼, 들쥐떼, 하이에나떼 발언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인권을 존중하냐”고 꼬집기도 했다.

먹힐 만하니까 먹혔다는 지 소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진 교수는 “정말 먹힐 짓 하는 사람을 을사오적이라 한다”며 “김구 선생은 먹힐 짓 안했다”고 정면 반박했다. 그는 지만원, 한승조는 먹힐 짓 한 사람이라고 몰아붙인 뒤 당시 조선 민족이 먹힐 짓을 한 것이 아니라 조선민족 일부 사람들이 먹힐 짓을 했으며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 다시 망언을 퍼붓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 교수의 김구 주장에 대해 지 소장은 이승만을 내세우며 이승만은 국력을 키우는 외교에 주력한 사람이지만 김구는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했다. 지 소장은 김구가 안중근, 윤봉길 같은 젊은이들에게 무기를 줘서 죽이라고 했다며 무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으면 애시당초 먹히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의 극우세력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지적에 대해 지 소장은 “일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잘 모른다”며 “내가 당했으면 물론 나쁘지만 본인에게는 잘못이 없겠느냐”고 한국민의 반성을 주장했다.

일본 우익에 관심없다는 발언을 낚아 채 진 교수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안가진다는 발언이 바로 먹힐 짓”이라 꼬집기도 했다.

“ 김구가 빈라덴이면 우리 헌법은 테러리즘 헌법인가”

김구는 테러리스트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진 교수는 대한민국 헌법에는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 한국은 빈라덴의 테러리즘의 헌법을 갖고 있다는 것인가라며 대한민국 국민이 맞는가 몰아쳤다. 또한 그는 정작 테러리스트는 김구를 죽인 이승만이라면서 지 소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친일파 청산은 좌파 주사파들의 신앙이라는 논거에 대해 지 소장은 386 주사파들 역시 공산주의자인데 일본이 공산주의를 탄압하자 386 주사파도 일본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이나 미국은 한국에 유익한 존재라며 포항제철을 먹여 살리는 100% 기술이 선진국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지 소장은 노무현 정권은 386 주사파가 정권을 잡았다며 이들이 사회 주도 세력을 바꿔나가는데 기득권 세력은 다 일제에 동조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과거사 청산 주장, 박정희·박근혜 때리기는 기득권 죽이기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위안부로 반일 감정을 부추겨서는 안된다며 일본과 협력해서 새지평을 열어야 국민 앞날에 도움이 된다고 ‘친일 외교’를 거듭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진 교수는 “친일을 비판하고 한 교수를 비판하면 다 386 주사파냐”며 “국민 대부분이 비판하고 조중동도 소극적이지만 비판한다”며 이들이 몽땅 노 정권이 사주한 주사파냐고 꼬집었다

이어 지 소장(<- 진 교수겠죠? ^^;;; 민기자님 수정 좀 하시지~♡)은 한국 우익 세력들의 극단적인 주장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지 소장의 ‘친일보다 더 나쁜 것이 친북이다’는 주장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음이 깔려 있다며 빈 라덴이 아랍의 자결권을 위해 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테러라는 수단이 옳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고 설파했다.

“과거만 들추지마라, 피곤하다”

이어 진 교수는 한미일 동맹 강화와 북한 고립을 위해 민족도 내버려야 하고 일본 식민지배를 축복이라며 참아야 한다면 그 사람은 어느 국적의 사람인가라며 지 소장은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닌 나라 밖 사람이라고 몰아쳤다. 진 교수는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극단주의가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지 소장은 한국의 좌파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며 그 신념은 북한은 친일파를 깨끗이 피로 숙청하고 세운 정권이기에 정통성이 있고 남한은 친일파로 세운 정권이기에 하루 빨리 친일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우리는 빨간 세력 속에서 살고 있다”며 그것이 자신이 무서워하는 좌익이라고 말했다.

지 소장의 좌파 운운에 진 교수는 "대한민국에는 좌익이 거의 없다"며 "사회적 안전망, 사회 복지 등을 주장하는 나 같은 사람을 좌익이라고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다 우익이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대 공화국이었고 지금 노 정권은 삼성공화국이지 좌우파 대립이 아니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한 교수의 망언에 대한민국 전체가 들고 일어나는데 다 주사파냐며 현 정권도 선거라는 국민들의 심판을 받아 형성됐는데 빨갱이 정권이라고 하면 어떻게 사는가, 망명하라고 몰아치기도 했다.

진 교수가 박정희 정권도 전두환 정권도 김영삼 정권도 북한 유화 정책을 썼다면서 현대사를 제시하자 지 소장은 왜 자꾸 과거 얘기를 하냐며 ‘sick and tired’라고 영어까지 써 가며 지긋지긋함을 드러냈다.

이어 지 소장은 진 교수를 향해 “친일과 친북 중 뭐가 나쁘냐”고 질문하자 진 교수는 “친일 친북 둘다 나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여기서 지 소장님 갑자기 말 문이 턱 막히시더군요. 애처로왔습니다.) 이어 진 교수는 “두개의 나쁜 점이 하나의 올바른 점을 만들지를 않는다(two wrongs doesn't make a right.)”는 속담을 영어로 받아친 뒤 친일을 했으면 그것대로 나쁜 것이지 친북을 안했다고 옹호를 하니까 비판하는 것이라고 지 소장의 논리 허점을 찍어냈다.

이때 사회자가 우익세력들도 한 교수의 주장에 다 동감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익을 대표하는 발언은 아니라고 지적하자 지 교수는 “사실 한 교수의 글을 꼼꼼히 읽어본 것은 어제 저녁”이라고 실토했다. 그는 한 교수를 욕하는 사람에게 하도 전화를 많이 받아서 다 읽어봤냐 했더니 안읽어봤다고 대답했다며 조선일보 동아일보도 안 읽어보거나 수용능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과서 문제와 관련 한국 우익은 왜 자꾸 비하적으로 보느냐는 일본우익의 주장에 대해 지 소장은 “비하가 아니라 반성”이라며 자신은 “경계인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주장했다. 즉 “코스모폴리탄적”(제 조언이 먹힌 것은 아니겠지만 '차라리 세계 시민을 자처(클릭)'했군요. ㅋㅋㅋ)으로 양국의 입장을 분석해야 제대로 나오지 일방적으로 한쪽의 시각으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진 교수는 “자학사관”이라며 이는 독일 우익들이 과거를 반성하는 것을 자학이라고 폄훼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우리에게 하면 가학증이고 우리가 하는 것은 자학증이라며 한국의 일부 멍청한 우익들이야말로 자학증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헉헉대며 개인적 성취향으로 자위 행위하는 것은 뭐라 할 수 없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성취향을 표현하는 것은 삼가 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지 소장을 비꼬았다.

그러나 지 소장은 과거 집착은 자폐증이라며 일본도 깨인 나라인데 반성하건 안하건은 그들 문제이지 우리가 요구한다고 고개 숙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더럽고 미국이 아니꼬우면 미국 일본 학생보다 더 공부하고 일을 해야지 맨날 인터넷 두드리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뻘에게 욕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 한교수 글은 어제야 꼼꼼히 읽었다” 실토

이러한 왜곡된 외교 주장에 대해 진 교수는 외교 관계는 공통된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왜곡된 역사관으로 한일 관계가 제대로 맺어질 수 없으며 또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과도 관련된 문제인데 한국 우익은 외교 카드를 다 내보이고는 우리는 못났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본이 뭘 하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는 주장이 바로 먹혀버릴 짓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 소장의 ‘일본 우익에 관심없다’는 주장을 꼬집었다.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진교수의 손가락... 의미심장합니다 ^^)
이어 진 교수는 한승조, 조갑제, 지만원 등이 ‘커밍아웃’을 하며 일본 우익 망언에 놀아난 발언을 하고 있다며 이는 박정희 찬양론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즉 조선민족은 자립할 능력이 없어서 일제 통치를 통해 발전을 이룩해줬는데 일본에게 감사하지는 않고 보상을 하라고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한국 사람은 자립할 능력이 없으며 박정희가 없었으면 여전히 보릿고개 시대일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에게 감사는 안하고 과거사 청산하자고 주장한다는 논리라는 것"이다.

-> 지 박사님의 기술 하나가 누락되었군요. 우선 진 교수에게 묻습니다. "진 선생. 헤이그 밀사 이준 열사 존경하세요?" 진 교수 '이 사람이 무슨 기술을 쓰나' 의아해하면서 머뭇거립니다. 지 박사님 다시 거듭 묻습니다. '존경해요?' 마지못해 진교수 '예 존경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 박사님 "그 이준 열사가 조선 사람들은 정말 답 안나오는 민족이다. 라고 말했어요. 춘원 이광수는 뭐라 했는지 아세요? 할수만 있다면 조선민족을 맷돌에 갈아 다시 빚고 싶다고 했어요. 구한말 조선이 조선민족이 그랬었습니다."라고 공격을 가하시더군요. 이준 열사를 꺼내시길래 무슨 대다한 공격을 하시나 했는데... 실망이었습니다.   

그는 일제 식민주의자들이 이광수 같은 사람들에게 계속 주입을 했고 그러자 나름대로 독립운동을 하거나 지식인이라고 자처했던 사람들도 머릿속으로 받아들이고 친일을 하게 됐다며 바로 지 소장 같은 생각들을 갖고 있었기에 친일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제가 퍼트린 민족 자족론(제가 듣기로는 이광수가 주장했던 것은 '민족 개조론'이었습니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미래 지향적이냐며 한국 우익들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정면 비판했다.

이에 대해 지 소장은 “나는 미국 가서 일등하고 미국인들도 못맏드는(못 만드는) 수학 공식을 만들었고 수학 논리를 정리했던 사람”이라며 “이런 것이 미국을 이긴 것”이라고 억울해 하자 진 교수는 “다음부터 성적표 가지고 나와라”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 정말 억울해하셨습니다. 그 억울함을 얼굴로 말씀하시더군요.

현 정권을 빨갱이라고 비판한 지 소장은 그러나 “난 대한민국을 고치는 사람이지 치사하게 망명하지는 않는다”고 하자 진 교수는 “아직 살만하다는 얘기네”라며 냉소로 받아치기도 했다.

진 교수는 “내 아내도 일본 사람”이라며 “일본에도 배울 점 있지만 우리보다 훨씬 뛰떨어진 점도 있는데 기껏 배우는 것이 일본 우익 사상을 배우느냐”며 비판했다. 그는 일본 우익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아느냐며 조직의 90% 이상이 야쿠자이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려고 옷 차려 입고 신사참배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배우는 것이 바로 잡아먹힐 짓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치사하게 망명않는다”에 “ 아직 살만하단 얘기네”

지 소장이 거듭 과거사 규명은 증오심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주장하자 진 교수는 일본 관광객들 몰려들고 한류 열풍 있는데 증오심 없다며 단지 외교 관계에서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원칙론적인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과거사 반성은 안하고 망언을 할 때는 용납하지 말고 압박을 가하는 것이 외교이지 친하게만 지내자고 하는 것이 외교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우익들이 원하는 것이나 미국이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을 다 받아 주는 것이 아니라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이해 갈등을 오해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외교라고 한다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진 교수는 한국 보수 우익들은 이에 대한 전략이 전혀 없고 대책도 없다며 일본에서도 포기한 사람들이 하는 망언을 대단한 이론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데 정신차려야 한다고 성토했다.

진 교수의 외교 주장에 대해 지 소장은 외교란 예의바르고 논리로 무장되고 정중하게 지가 의견을 관철하는 것이지 노 대통령이라는 대표 선수는 수준 이하라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올바른 외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진 교수는 이번 사건은 한국 우익들의 멘털리티가 어느 정도 썩어 있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우익은 국익을 위해 발언해야 하는데 국익을 배반하는 발언들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을사오적’ ‘임상심리 연구 대상’이라는 말까지 들었으면서도 지 소장은 이날 토론회의 소감에 대해 “매우 만족스럽다”고 자평했다. 그는 한 교수의 식민지배 축복은 마타도어라며 그 분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2005.03.10/민일성 기자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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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nein 2005-03-18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만원씨가 마음이 나쁜 사람인가는 별개로 치더라도, 머리가 나쁜 사람인 건 분명하네요. 언제나 호보호우(보수를 보수라고 부르고 우익을 우익이라 부르는) 할만한 격을 보여 주려나... 전에 진중권씨가 한국의 우파가 우파 본연의 임무를 방기하는 바람에 본디 국제주의자인 좌파가 민족이나 국가를 다 걱정해야 한다는 맥락의 글을 썼던게 생각났습니다^^;;

urblue 2005-03-1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이거 읽으면서 한참 웃었더랬지요. ㅎㅎㅎ
 
 전출처 : 바람구두 > 전우용 - 역사인식과 과거사 문제

역사인식과 과거사 문제

전우용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체험의 기혹과 반성의 한계

1985년 민청련 의장 김근태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야만적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시대를 산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1986년 서울대 출신 여성노동자 권인숙이 부천경찰서에서 문귀동이라는 형사에게 차마 밝힐 수 없는 끔찍한 성고문을 당했다는 ‘사실’도 모두 아는 일이다. 이 두 사건은 이미 집단적 기억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이제 결정적 ‘증거’는 없다. 가해자의 주장과 정반대되는 피해자의 진술 외에 문서상의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남아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작성되지 않았다. ‘문서화된 자료’만으로 유일한 증거로 받아들일 경우, 이 사건은 ‘가공된 사건’이거나 기껏해야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건’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권력이 자행한 이런 유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사건에 관련도니 양측의 엇갈린 ‘주장’을 듣는 것만으로는 진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고문사실을 부정하는 여러 명의 가해자와 고문피해를 호소하는 단 한 명의 피해자 사이에서 수량적 형평성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가해자의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사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건들의 연쇄로 이루어지는 ‘상황’에까지 눈을 돌려야 한다. 상황은 집단적 체험과 기억은 다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1970․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일상에서 수시로 국가보안법과 마주쳐야 했다. ‘박정희는 김일성보다 나쁘다’는 말이 ‘김일성을 고무찬양했다’는 죄로 둔갑하는 지독한 역설의 세계 속에서 살았고, 누구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 시대를 김근태․권인숙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나 그들이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증거’를 접하지 않고도 쉽게 믿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는 자와 ‘쥐도 새고 모르게 죽을 수’있는 자의 체험과 기억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도 권인숙을 ‘성조차 혁명의 도구로 삼은 좌경용공분자’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좌경용공세력’이나 그로 의심되는 자에게는 고문을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상당히 많다. 문제는 어떤 상황인식 위에서 ― 어느 편에 서서 ― 사건을 바라보느냐 하는 데 있을 뿐이다. 완전히 중립적인 영역에서 사실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그런 위치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솔직히 고백하라’밖에 없다. 그러나 사건 당사자들이 사실관계를 누락 없이 고백한다고 해도 사건의 진상에 접근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개인적 차원의 반성만을 증빙자료로 삼는다면 사실관계가 완전히 왜곡될 수 있다.

나는 아직껏 공개적으로 반성하거나 사과한 고문경찰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거니와, 설령 이들이 반성한다고 고백한다고 해도 그 반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사실관계 전체를 파악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본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정보부 직원이나 경찰간부에게 직접 고문을 지시했을 리는 없다. 경찰청장이나 치안본부장이 고문하라는 공문을 보냈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 고문경찰들의 고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기껏 “고문은 했지만, 상부의 지시는 없었다”는 내용뿐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누가 그런 일을 ‘직적’, ‘구체적으로’, ‘문서를 통해’ 지시하겠는가. 고문경찰들에게도 고문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심하게 할 것인가 적당히 할 것인가를 선택할 여지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양심적으로 고백할수록 고문경찰을 포상하고 고문하지 않는 경찰을 징계한 ‘권력’의 책임은 은폐되고, 책임의 한계는 그들 내부에 국한된다. 국가권력은 ‘경찰을 제대로 권리하지 못한’ 간접적인 책임만 지면 된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관련자들의 ‘성찰적 고백’도 사실관계를 완전히 왜곡할 수 있다. 지금도 일본 군부나 조선총독부가 ‘종군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증거자료’를 찾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의욕적인 연구자들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이 명백하고도 확실한 ‘증거’를 확보할 수는 없을 것이라 본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위안소’를 설치하고 ‘위안부’를 모집하라는 지시만 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위안부 모집방법이라든가 모집대상이라든가 하는 문제에까지 시시콜콜 개입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그들은 다만 ‘위안부’ 모집과정에서 자행된 취업사기와 강제연행, 개인적 보복 등을 모른 체 해주면 되었다. ‘위안부’를 모집한 자들이나 ‘위안소’를 찾은 병사들이 양심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내용도 거기에 국한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한국인들 사이에서 도덕성 회복의 열풍이 불어 ‘성찰적 고백’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해도 일본군이나 조선총독부가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명백한 ‘증거’는 아마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또 물어야 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처한 ‘총체적 상황’에 대한 집단적 체험과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집단적 체험의 기억은 ‘민족’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가상의 기억’이 결코 아니다. 학대와 차별, 학살과 수탈이 ‘민족’을 경계로 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형성된 집단적 기억이다. 그 민복의 ‘경계 밖’에 있었던 자들 ― 일본인과 이른바 ‘민복반역자들’ ― 은 결코 공유할 수 없었던 기억이다. 군사독재체제의 수혜자들 역시 피해자인 대다수 민중의 집단적 기억을 공유할 수 없다. 그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을 범죄라고 생각할 뿐, 국가보안법 자체가 반인간적 법률이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한다. 신이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중립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터이다. 해석자 역시 ‘상황’ 속에서 살며 판단하는 인간인 이상 어느 한 쪽의 상황인식을 ‘부정’하는 순간, 그는 다른 한쪽의 상황인식을 ‘긍정’할 수밖에 없다.

계량의 매력과 함정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자들이 입버릇처럼 뱉어내는 말은 “국가보안법이 보통사람들이 사는 데 불편을 주는 게 뭐냐”는 것이다. 국민이 절감하는 문제인 ‘경제난’은 외면하면서 과거사 규명이니 국가보안법 폐지니 하는 일에 매달리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얘기도 한다. 사실 수치만으로 따져보면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친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보안법으로 ‘직접’ 피해를 본 사람은 전국민의 1%도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수치를 확대하는 순간,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에 아주 ‘미미한’ 영향만을 준 법이 된다.

근대과학에서 ‘숫자’는 대단히 매력적인 도구이다. 그것은 모든 사물과 사건을 측정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근대과학자들은 크기와 무게, 속도와 빈도, 화폐가치나 생산량으로 측정하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전제한다. 모든 사물과 사건은 수집과 분류, 재배열과 수학적 종합의 과정을 거쳐 ‘평균적’ 수치와 ‘표준적’ 수치로 전환된다. 숫자는 이제 ‘표준적인 것’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됨으로써 모든 가치판단에 선행하는 ‘객관성’의 체현체가 된다. 이 객관성은 ‘표준적이고 평균적이며 보편적인’ 사건과 사물, 사람들 속에서 ‘일반적 진리’로 통용된다. 그러나 숫자는 ‘현상’을 그럭저럭 기술할 수는 있지만, ‘본질’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산술적인 평균’ 역시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고 지속되며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근래 식민지시대사 연구에서도 ‘평균적인’ 보통 사람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이 연구들의 결론은 대개 유사하다. 식민지 시기에도 ‘보통’ 사람들은 신문물에 열광하고 연애와 사교에 열중했으며 경제적 성취에 몰두했을 뿐, 민족해방운동이니 민족문제니 하는 것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같은 결론은 다시 식민지시기의 ‘민족문제’를 상대화하는 자세를 낳고, 더 나아가 “민족주의라는 색안경을 쓰고 역사를 본 결과 민족문제가 실제보다 과도하게 인식되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식민지시기를 산 98%의 조선인 ― 보통의 조선인 ― 들은 1%도 안되는 ‘민족운동가’나 1%도 안 되는 ‘친일파’들이 사는 공간과는 다른 어떤 지대에서 그들 특수한 부류와는 다른 생각, 다른 생활을 하며 ‘정상적’으로 살아갔다는 것이다. 그런 분석방법을 취하면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가 보통사람들의 평균적 요구가 되고 ‘조선독립만세’는 극소수 사람들의 특이한 선언이 될 수밖에 없다.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했다고 한 100여 명의 증언은 기껏 ‘특수한 사례’에 관한, 그것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기록이 되어버리고, 나머지 ‘위안부’ 수만 명의 ‘무언(無言)’은 오히려 ‘위안부 조달이 대체로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음’을 입증하는 수량적 근거가 된다.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 표준적인 것과 일탈적인 것이 숫자로 표현될 수 있다고 해서 숫자가 그 경계를 나누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엇ㅂ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텍스트들이 ‘평균적으로’ ‘무엇을 말했는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 텍스트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 출현했고, 어떻게 유통되었는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출판금지 처분건수, 필화사건의 횟수, 검열에 걸려 삭제된 자행의 수따위만 가지고 본다면 텍스트 생산에 가해진 제역은 ‘무시해도 좋은’ 수치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푸코가 말했듯이, ‘인위적인 경계짓기’는 모든 산술적 표준화에 선행한다. 감옥과 수용소는 ‘비정상적이고 반사회적인’ 사람들을 가두어둠으로써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상과 합법’의 표준적 규율을 강제한다. 더구나 식민지 감옥의 심리적․문화적 크기는 문화적 연속성 위에서 만들어진 서구 사회의 감옥보다 훨씬 컸다. 조선인들이 ‘민족주의’의 색안경을 쓰고 일본인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일본인들이 ‘민족차별주의’의 색안경을 쓰고 조선인들을 쳐다보았다. 멸시와 차별은 일반적이었고 전면적이었다. 일본인들이 설정해놓은 ‘표준’에 의해 대다수 조선인은 잠재적 범죄자요 ‘비정상적인’ 열등인이 되어버렸다. 그로써 ‘표준적’ 조선인과 ‘평균적’ 조선인 사이의 거리도 더 멀어졌다. 조선인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설정해 놓은 표준에 근접해가야 했다. 일제하 조선인들은 그 표준에 가까이 있는 텍스트만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었다.

일본제국주의 권력은 한두 차례의 단호하고 혹독한 처벌만으로도 대부분의 저항적 언어 ―  이 언어가 조선인들의 진정한 ‘평균적’ 요구를 표현하는 것이었겠지만 ― 를 잠재울 수 있었다. 노래 <황성옛터>를 지은 왕평과 전수린이 종로경찰서에 잡혀가 치도곤을 당하고 난 뒤로는 그와 비슷한 노래는 물론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노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검열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검열과 처벌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는 ‘자기검열’ 기제가 중요한 것이다. 그 기제가 작동함에 의해 식민지 상황에서 생산된 텍스트는 ‘위험한 경계선’ 곁이 아니라 그 한참 바깥에서 평균화되었다. 동시에 민족, 독립, 해방, 혁명, 자주, 평등 등 수많은 언어들이 사람들의 의식 저편으로 숨어들어갔다. 중국인 비단장수 ‘왕서방’은 마음껏 조롱할 수 있었지만, 일본인 지주 ‘나카무라’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식민지 시기에 금기의 영역은 너무 넓었고, ‘보통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합법적 공간’은 너무 좁았다. 그럴진대 자신의 요구와 희망을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 말해서 안되었던 사람들에게 ‘보통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들이 만든 텍스트들을 수집학도 분석하여 ‘보통사람의 생각’을 그려내고서는 마치 무슨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양 흥분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들은 민족에 대해, 독립에 대해 말하기 싫었거나 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것이고, 그 말할 수 없음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내뱉을 수 있었던 저항의 언어는 풍자와 비아냥의 선을 넘을 수 없었고,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저항의 행위는 ‘공공성(公共性)’― 이 역시 일본인들이 정한 표준 위에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지만  ―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무시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일제하에서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한국인들이 공중도덕을 안 지킨 것은 그 이율배반적 표준에 대한 뿌리깊은 저항심리가 오히려 평균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제하 ‘합법공간’이 더 넓었다면, ‘감옥’의 심리적․문화적 크기가 더 작았다면, 그 시대 평균적인 ‘보통 사람들’의 이미지는 다른 준거에서 구축되었을 것이다. 조선태형령이 없었다면, 치안유지법이 없었다면, 살인적 고문이 없었다면 평균치를 추출할 모집단의 크기는 훨씬 커졌을 테니까.

우리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해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보안법은 접근해서는 안되는 금기의 영역이었고, ‘보통사람들’은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말이나 행동은 물론 저촉될 ‘우려가 있는’ 말이나 행동도 해서는 안되는 세계로 내몰렸고, 그 안에 고립되었다. 인민이나 동무는 물론 노동자, 민주주의, 평화통일, 독점자본 같은 단어가 한꺼번에 또는 번갈아 금기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국가보안법은 그렇게 ‘좁은 세계 안에 갇힌 비정상적인 사람들’에게 ‘국가보안법’은 아무런 불편도 주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그러나 그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듯이,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 순간부터 ‘보통사람의 공간’은 서서히 확대될 것이고, ‘보통사람’의 표준도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국가보안법폐지를 결사반대하는 자들이 정녕 두려워하는 것은 이로 인해 이번에는 그들 자신이 ‘비정상적인 인간들의 고립된 세계’로 내몰릴 것이라는 점이다.

민족주의의 색안경과 간도문제

근래 많은 지식인들이 한국사회의 ‘민족주의 과잉’ 현상을 비판하고 있고, 다수의 일반대중 역시 세계화의 화두를 마치 종교처럼 끌어안고 있다. 나는 오늘날 한국인의 민족의식이 ‘과잉상태’에 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거니와, 설령 그같은 주장을 펼지라도 그 공격의 화살이 애꿎은 ‘위안부 할머니’나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향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분명히 다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문제를 단지 일본제국주의자의 범죄행위로만 인식해서는 안된다는 말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를 젠더나 관슴의 문제로만 환원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일본군 성노예를 납치, 감금, 학대, 유기하는 전과정에서 일관된 민족차별주의적 기분을 적용했을 진대, 민족적 관점을 빼고서야 어떻게 이 사건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신이 겪은 참혹한 고통을 ‘조선인 여성’이기에 겪은 일로 기억하고 있는 한, 민족적 관점을 버리고 이 사건을 이해하려 드는 것이야말로 지적 오만이 자행하는 최악의 횡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민족주의적’ 시각이 편협하다고 주장하던, 그래서 식민지시기를 ‘청산’한다는 것이 원천적으로 부조리하다고 목청을 높이던 지식인들이 정작 자신들에게 기꺼이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수구 언론들의 ‘간도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하고 있는 기묘한 현실이다. 수구 언론들은 마치 우리가 간도를 영유한 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식민지시기에 우리 민족이 입은 정신적 ․ 물질적 피해는 ‘가공의 산물’인 양 취급한다. 그러나 과연 어느 쪽이 가공된 것인가. 간도가 역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우리 영토라는 주장은 그것을 뒷받침할 충분하고도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최근 수구언론들은 시시때때로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와 관련해 ‘새로’ 공개된 지도만 해도 여러 장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텍스트는 그것이 생산된 상황과 관련해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에만 그것이 담고 있는 진실의 편린을 보여준다. 사진이나 지도, 숫자처럼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텍스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수구 언론들은 이들 텍스트가 생산된 상황은 거리낌없이 외면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들이 제시한 지도들에는 토문강과 두만강이 별개의 강으로 그려져 있긴 하지만, 간도의 영역이 명확히 표시한 바는 거의 없다. 지도에 토문강이 두만강과 다른 강으로 표시되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백두산 정계 직후 조선정부에서도 파악하고 있었고, 그것이 청과 외교문제로 비화될까 우려했던 일이다. 정계비를 세울 당시에는 청이나 조선이나 토문강이 두만강의 지류라고 착각했다. 정계비에서 토문강 상류까지 토축을 쌓은 사람들조차 애초에는 그 토축이 두만강으로 이어진다고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두산 정계비만을 근거로 국경에 긋자고 우길 양이면 왜 영역조차 불확실한 간도만 우리 땅이라고 하는가. 토문강은 송화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송화강은 다시 흑룡강에 합류한다. 아예 흑룡강 동쪽 전체와 러시아령 연해주까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해야 맞다.

통감부 시기에 일제가 만든 지도 중에는 간도의 영역을 제멋대로 그려넣은 지도도 있다. 그러나 그 무렵 일본인들이 만든 지도는 모두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들의’ 지도를 증거자료로 삼아 ‘간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려면, 먼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인정해야 맞지 않는가.

그들은 또 ‘간도 협약’을 무효로 하고 이 지도를 ‘근거’로 하여 우리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도협약은 당연히 무효이다. 을사조약이 무효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중화인민공화국’이 1949년에 무효선언을 했기에 무효이며, 1962년 조중변계조약이 간도협약 무효화를 기초로 체결되었기에 무효이다. 을사조약이 무효이기에 조선의 외교문제와 관련된 통감부의 모든 정치적․행정적․군사적․외교적 조처 역시 무효이다. 당연히 통감부나 일본군부가 대륙침략의 의도를 품고 만든 이 ‘지도’ 역시 무효이다. 어떻게 같은 자료를 두고 독도부분은 무효이고 간도부분만 유효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조선후기 이래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은 있었지만, 간도가 우리 땅이었던 적은 없다. 숙종대 백두산 정계비 아래에서 토문강 상류까지 토축을 쌓았던 장본인 허량(許樑)조차 “물줄기를 따라가보니 야인(野人)의 땅이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당연히 간도에 조선과 대한제국정부의 군현이 설치된 적도 없다. 북․중 국경조약이 무효이고 간도협약이 무효라고 해서 바로 간도가 ‘우리 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국경선은 간도협약 당시의 국경선이 아니다. 수구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이 한국전 참전의 대가로 중국에 영토를 떼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 영토를 더 얻었다. 1880년대 조선정부가 주장했던 경계선이 오늘날의 북․중 국경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구 언론들이 간도문제를 수시로 꺼내드는 것은 우리 영토를 ‘되찾는 일’이 과거사 문제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든 간에 실재하지도 않았던 간도 영유권을 내세우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다. 인식태도의 문제는 논쟁의 영역 안에 머물 수 있고, 또 머물러야 한다. 사실에 관한 수많은 기록과 기억들 중에서 어떤 것을 승인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실’ 자체에 대한 임의적 왜곡이 정당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해석자의 권리는 사실관계 안에 국한된다.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순간, 역사는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어지러운 ‘주장’들의 집합체가 되어버린다.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역사와 인간에 대한 범죄이다.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를 비난하고 싶다면, 바로 이런 유의 ‘민족주의’를 비난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민족주의의 극복과 과거사 규명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미온적이라고 질타하고 간도협약을 무효로 하여 간도를 우리 땅으로 귀속시켜야 한다고 선동하는 수구언론들이, 과거사 진상 규명 문제에 대해서는 ‘정략적’이니, 국론을 분열시키는 일이니,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의 소산이니 하면서 그냥 묻어두자고 한다. 천년도 더 지난 까마득한 옛날 일은 ‘민족정체성’에 관련된 일이니 확실히 밝히자고 별반 설득력도 없는 자료들을 긁어모아서는 백 년 전에 간도가 우리 땅이었으니 원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하면서, 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서 증언하고 있는 반세기도 안 된 과거의 일은 그냥 덮어두자고 하는가. 고구려연구재단 설립에는 격려와 박수를 보내던 자들이 왜 일제하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이나 국가권력의 인권탄압행위 진상 규명에는 손사래를 치는가. 도대체 어떤 태도가 정략적이고 반역사적인가.

물론 역사란 누적되는 것이지 청산되는 것이 아니다. 청산할 수 있는 것은 과거사 자체가 아니다. 과거를 청산하자고 하는 것은 과거 역사를 잊어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갈등관계가 더 이상 현실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는 것이다.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 그대로 민족주의는 세계사적 시야에서 볼 때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것이 어디 민족주의뿐인가. 지역주의도 가부장제도 모두 시대착오적이다. 이 모든 것이 그냥 덮어두면 저절로 사라질 것들인가. 가해자들이 과거의 특권을 세습적으로 유지한 채 피해자들의 입을 틀어막고서는 이미 지난 일이니 더 거론하지 말라고 윽박지른다고 해서 없어질 것들인가.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지속되고 재생산되는 한 피해자들의 자기방어적 태도와 세계관 역시 재생산되게 마련이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의 피해자들이 피해의 체험을 통해 형성한 세계관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그들을 피해자로 만든 사회적 관계를 지속시키려는 자들을 먼저 비판해야 한다. 자신의 부당한 특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진실에 접근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자들을 공격해야 한다.

과거사 진상규명은 과거의 지배자들과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입과 귀를 막고 눈을 가린 채 제 입맛에 맞게 꾸며놓은 기록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피해자들이 강압과 위협에 눌려 오랜 세월 가슴 깊이 묻어두고 피울음을 울면서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말들을 비로소 뱉어낼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그것은 가해자들에게 진정한 반성의 기회를 주고 스스로 가해와 피해의 관계에서 비껴나 있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다, 과거사 진상 규명은 또한 과거에 대한 기억과 기록에 공평한 발언 기회를 주는 일이다. 백번 양보해서 역사가 단지 과거에 대한 ‘기억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지금과 같은 일방적 기록만 가지고는 정대로 제대로 된 기억을 만들 수 없다.

과거사 규명과 국가보안법 폐지는 또한 ‘보통사람’의 인식 지평을 넓혀주는 일이다. 제국주의자들과 독재권력이 편한 대로 그어놓은 금기의 영역을 줄이고, 보통 사람들의 공간을 늘리는 일이다. 그것은 집 한 평 넓히는 데는 기를 쓰면서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넓히는 데는 무관심한 이 시대 ‘보통 사람’들의 불구성을 교정하는 일이다. 그것은 한국인들에게 세계의 ‘보편적 표준’에 맞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는 일이다. 그것은 결코 ‘민족주의적 편견’이나 ‘민중주의적 편향’애서 제기되는 요구가 아니다. 금기의 영역을 표시하는 선이 식민지 시기에는 조선민족과 일본민족 사이에, 군사독재시기에는 민중과 독재권력 사이에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민족이, 민중이 그 선 바깥에서 불구적 삶을 살아야 했던 상황 전반에 대한 집단적 체험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집단적 체험에 기반하여 형성된 ‘민족적 태도’는 과거 사실 관계를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부분까지 볼 수 있도록 해주지만, 우리의 집단적 체험과 무관하게 조작된 ‘민족주의적 태도’는 과거 사실관계를 왜곡해버린다. 우리의 민족적 체험은 제국주의로부터 학대와 박해, 멸시를 받는 약소 민족으로서 겪은 체험이었고, 그런 만큼 반침략주의, 반제국주의, 민족자결주의, 민족평등주의의 가치와 결합된 것이었다. 침략적 민족주의, 팽창적 민족주의, 억압적 민족주의는 우리의 민족주의가 아니라 일본 제국의 민족주의였으며, 그 일본제국주의에 기생한 파렴치한 반민족행위자들의 ‘민족주의’였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자신의 영구 집권을 위해 만들어냈던 일민주의니 한국적 민주주의니 하는 것들은 모두 그것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지금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식민지시기 우리의 민족적 체험을 상대화하는 일이 아니라, 황국신민의 총후보국을 외쳤던 과거의 족쇄에 묶인 채로, 이승만과 박정희의 망령을 불러들여 ‘팽창적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있는 수구 언론들의 역사인식 태도를 공박하는 일이다.

<출처 : 역사비평, 2004년 겨울호(통권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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