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dohyosae > 중세의 色

 

中世의  色

 

그녀의 부탁을 받은 사람은 외투와 겉옷을 그녀에게 가지고 왔는데, 은 소매에까지 흰 담비 털이 대어져 있었다. 손목과 목선에는 반 마르크의 무게 이상이 되는 금박이 둘러쳐져  있었고, 금이 있는 곳에는 남빛, 초록, 청색, 암갈색 등등 다양한 색을 지닌 보석들도 박혀 있었다…….외투는 매우 호사스러웠으며 섬세했다. 목 주위에는 검은 담비털이 대어져있었고 장식술에는 1온스가 넘는 황금이 달려있었다. 한쪽에는 풍신자석風信子石이, 다른 한쪽에는루비가 촛불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흰 담비 털로 선을 대놓은 것은 여지껏 듣도 보도 못한 섬세한 것이었다. 천에는 정교한 십자수가 아로새겨져 있었는데, 색깔은 남색, 주홍색, 암청색, 흰색, 초록, 청색, 황색 등 모두 다른 색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중세의 미와 예술 가운데에서-                  


 

  중세 유럽인들에게 색이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 특별하다고 하는 것은 이들이 색을 빛과 같은 하나의 감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태양이 언제나 하늘에 존재하고 있듯, 색 역시 중세인 들의 삶 곁에 가까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겨울의 회색, 여름의 푸른색, 가을의 황금색, 봄의 초록색과 같은 일상의 색에서부터, 순교자의 붉은색, 죽음의 검은색, 순결의 하얀색과 같은 종교적 의례에 까지 색은 중세의 전 부분을 감싸고 있었다.1)

  중세인 들은 인간의 세속적 나약함이 종교의 천상적 엄격함을 절대로 이길 수 없음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중세인 들은 현세적인 지금의 삶과 죽은 뒤에 맞이하게 될 내세의 삶을 똑같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교회에서는 인간은 이 세상의 나그네로 왔다가 소리 없이 가버리는 찰나의 존재이기에 현세보다는 내세를 더욱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종교적 충실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대중들에게 설파했다.2) 하지만 위계질서의 맨 아래층에 위치하는 대다수의 평민들에게 교회의 이러한 설교는 실제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현세의 가혹하고 얽매인 삶을 하루하루 이어가는 것 그 자체가 삶의 전쟁터에서 투쟁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루의 투쟁에서 실패한다면 그것은 곧 바로 죽음이었다. 그러기에 일반 평민들은 조그마한 일에도 축하하고 즐기는 놀이의 삶을 선호했다. 그들이 선호한 놀이의 삶의 한 부분이 바로 화려한 색의 세계였다. 

  중세의 유럽인들은 밝은 원색을 사용함에 있어 오늘날의 사람들과는 달리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오히려 이들은 옷, 가구, 장식, 건물, 성당 등에 강열한 색을 사용함으로서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외관을 역동적으로 바꿔 놓았다. 이는 네덜란드의 문화사가인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가 <중세의 가을>이라는 저서에서 “중세의 유럽인들은 아름다움을 절도節度나 질서, 우아함이나 유용성 따위의 개념들과 대체하여 설명할 수 있다”는 진술을 하고 있는데 이는 중세의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생활 전체를 위계질서-귀족, 성직자, 평민- 속에서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색 역시 이러한 테두리 속에서 하나의 질서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색을 사용하는데도 엄격한 규정을 따라야만 했다.

  또 호이징가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란 저서에서 중세인 들의 삶을 ‘놀이로

충만 된 생활’이라고 정의했다. 놀이란 공동체의 관습과 질서 안에서 공동체 밖의 일탈로 방전되는 역동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인 들에게 이러한 일탈성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었다. 교회의 달력은 365일 성인들의 축일로 채워졌고, 사람들은 교회의 축일에 맞춰 축제와 참회의 시기를 보냈던 것이다.3)

  중세의 맨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던 대다수의 하층 평민계급의 삶은 로마시대부터 계속 이어져 온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형식과 형태가 고정되어 있었다. 이 로마적인 것을 중세인 들은 주변부문명인 <게르만-켈트>적인 요소와 결합시킴으로서 지극히 중세적인 것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로마의 실용적이면서 몰개성적인 문명과 <게르만-켈트>의 개성적인 이교적 원시성이 가미된 <기사도騎士道>는 이후 중세적인 모티브를 창출해 내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문화적 융합은 색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중세인 들에게 하나하나의 색은 상징성과 신비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반면에 중세인 들보다 먼저 이 세상에 존재했던 고대인들-로마인들에 의해 통합된 고대의 세계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고전적인 색의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예를 들면 지구는 흙, 공기, 불, 물의 4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고, 흙은 초록, 공기는 노랑, 불은 빨강, 물은 파랑색과 연결된다고 믿었다. 이들은 자연의 색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색을 자연의 질서와 연결된 고정불변의 진리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중세인 들은 고대인들이 자연의 상징으로 인식한 색을 불변의 진리인 교회의 신앙과 연결된 개념으로 전이시켰다. 이렇게 함으로서 색은 자연의 견고성에 종교의 상징성과 영속성을 부여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인 들의 의식 한 구석에는 여전히 고전적인 색의 개념이 남아있었고, 이런 생각은 교회의 상징적이면서 종교적인 차원과 괘를 달리하는 이단적인 신비주의적 성향으로 발전하였다. 

  그렇다면 중세인 들이 선호했던 색은 어떤 것이었을까? 중세에 기록된 연대기 작가들의 글에 따르면 중세 유럽인들이 선호했던 색은 현대인의 기준에서 생각하는 정교한 색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과학적인 색이 아니라 단순하면서 일차적인 색이었다. 중세의 유럽인들은 <르네상스 정신>으로부터 파생된 근대적인 색-정확한 수치에 의거한 혼합과 배합을 한 색이 아니라 단순하고 치졸하게까지 보이는 고대로부터 전해온 순수의 색을 고집스럽게 사용했던 것이다. 고대의 색이란 삼원색-빨강, 노랑, 파랑-을 기본으로 하는 원색을 말하는데, 당시 사람들에게는 빨강에서 노랑으로 노랑에서 파랑으로 흐르는 색의 혼합 경계선이 현재와 같이 정확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그래서 빨강red과 주홍crimson, 주홍과 주황reddish-yellow은 종종 구별이 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호함으로 주홍은 빨강으로 불리 워 지기도 했고, 주황은 노랑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주황은 이국적인 과일 오렌지에서 따온 색이기에 영어와 독일어에는 이 색을 가리키는 독립적인 단어가 없다.4) 이러한 색의 불확실한 경계는 고대와 중세를 관통하는 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중세인 들은 이러한 고대의 색을 중세의 유럽 종교였던 그리스도교와 연결시킴으로서 색에서 이교적인 의미를 탈색시켰다는 점에서 한 단계 문명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색이 종교와 연결됨으로서 중세인 들에게 색을 종교적인 상징성속에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색이 종교적인 의미를 갖게 되자 종교적 경신에 대한 고려로 정확한 색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고, 이를 실현하기위한 노력 속에서 단순하게 분류되었던 중세의 색은 복잡한 근대적 색의 세계로 확장될 수 있었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가 르네상스기에 폭발적으로 발전한 서양 미술의 세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색에 대한 금기는 여전히 유효하였다. 이러한 금기사항은 사회적인 위계질서와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색에 따른 계급적 질서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질서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 따라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빨강은 창녀의 색이었지만 교회 최 고위직인 추기경들이 입는 옷의 색깔이었다. 노랑은 유대인과 이단자들을 표시하는 색이었지만 금발의 머리카락은 아름다움과 동일시되었다. 

  현대인들이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중세인 들의 원색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중세의 연대기 저자들이 세심하고 때로는 과장되게 일상의 모습과 사건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이들 연대기 저자들의 기록에는 색에 의해 화려하게 강조된 왕과 귀족들의 모습이과장된 모습으로 때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들 푸른 피의 후손-파랑색임을 주의할 것-들은 연노랑과 파랑, 오렌지색과 흰색, 오렌지색과 장미색, 장미색과 흰색, 흰색과 검은색, 파랑과 초록, 초록과 빨강과 같은 색으로 온 몸을 감싸고 등장한다.5)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 이들 고귀한 신분의 옷차림은 우리에게 광대와 같은 느낌을 주지만 연대기 작가들은 이러한 옷차림을 열열이 찬양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색의 강열함과 신분의 고귀함을 동등 배열함으로서 신분이 색에 의해 결정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중세의 인간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는 중세의 계급세계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이들은 자연적인 것이건 인공적인 것이건 겉으로 드러난 구조의 분류에 심혈을 기울였다. 중세인 들이 가장 기피하였던 것은 다양함이었다. 이들에게 신도 3위-성부, 성자, 성령-이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도 3계급-사제, 기사, 평민-이고, 색도 3원색-빨강, 노랑, 파랑-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사회였다. 이러한 구분은 사회를 엄격히 갈라놓는 안전판 구실을 하였다. 하지만 다양함은 이러한 안전판을 붕괴시킬 수 있는 뇌관과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다양함varietas이란 단어는 속임수와 악의적인 심술과 문둥병을 뜻하기도 하였다.6)

  연대기작가들이 찬양한 수많은 색 가운데서도 중세의 유럽인들은 특별히 붉은 색 계통을 선호했는데 이는 붉은색 그 자체가 아름다움으로 통하였기 때문이었다. 붉은색과 아름다움을 동일하게 사용한 예는 유럽의 언어에도 잘 나타나 있다. 붉은색과 아름답다는 뜻을 크라스느이красный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는 러시아어, 로사rosa라는 단어 속에 붉은 색의 장미와 은유적인 아름다움이 동시에 표현된 라틴어의 표현, 독일어의 로트rot와 프랑스어의 루즈rouge 역시 여인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붉은색 입술연지와 연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스페인어 콜로라도colorado는 색이란 뜻과 빨강이라는 색을 동시에 의미한다. 즉, 붉은색 자체가 색을 대표하는 단어인 것이다. 붉은색은 중세를 대표하는 색으로 힘과 에너지, 생명력을 상징하는 색으로 애용되었다. 화려한 원색의 물결을 상상하면 중세는 암흑의 시대가 아니라 빛의 시대라고 불러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축제 때를 제외한 일상의 삶에서는 귀족이나 서민들은 흑과 백, 회색 또는 갈색의 옷을 즐겨 입었다. 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경제적,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옷감을 물들이는 염색의 재료들은 일반서민들은 물론이고 귀족들에게도 부담스러운 가격이었고, 설령 염색을 했다하더라도 여기에 금실, 은실, 보석을 이용해 수를 놓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염료는 모두 천연에서 채취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성직자인 추기경이 입는 붉은색 수단은 사보텐 선인장에 서식하는 코치닐 깍지진디를 채취하여 색을 얻었다. 이보다 못한 검붉은 붉은색은 꼭두서니에서 채취하였다. 그리고 오렌지 빛깔은 사프란 꽃에서 채취되는데 샤프란 1온스-약 28g-를 얻으려면 대략 4000여송이의 꽃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왕의 색이라는 보라색은 팔레스타인의 티레 지역에만 서식하는 붉은 조개가 분비하는 체액에서 채취되었다. 그러므로 일반 평민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재력이 있는 귀족들도 보랏빛 염료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보랏빛은 왕들만이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7) 이러한 경제적인 이유로 인하여 부가 신분의 척도가 되는 신분제 사회인 중세의 세계는 신분에 따른 옷의 색깔을 자연스럽게 규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결과 일상에서는 귀족들은  흑과 백을 즐겨 입은 반면 일반인과 농부의 색은 회색과 갈색으로 고정되었다. 이러한 구분은 특별한 법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관습적으로 굳어지면서 신분을 규정하는 색이 되고 말았다.

  다른 한편 기술적인 이유로 인해 중세 사람들은 단순한 색의 옷을 입어야만 했다. 예를 들어 붉은색 염료인 자연산 꼭두서니의 염색법은 18세기에 와서야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이전까지는 꼭두서니의 잎은 농가에서 소의 사료로 이용되었다.8) 이러한 사정으로 모든 사람들은 원료에서 가공한 상태의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15세기경 시실Sicile이라는 사람이 쓴 글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귀족이나 평민 모두 평상복은 회색이나 검정색을 입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흰색은 7살 미만의 아이들이 입지만, 노란색은 전사. 시동. 하인들의 색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중세의 유럽은 무채색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축제 때가 되면 이러한 규제는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중세의 축제는 하비 콕스가 <바보제>에서 설파했듯이 계급적인 규칙이 깨지는 특별한 기간이었다. 이때만은 하층인 들이 귀족들과 성직자들을 마음껏 조롱하고 풍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는 모든 사람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중세의 기록을 잘 살펴보면 축제 기간 중에도 붉은색이나 노랑색 계통의 원색은 넘쳐나지만 청색과 초록은 상대적으로 드믄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중세의 전 기간을 통해 흰색, 빨강, 노랑, 검정, 갈색, 초록, 회색의 일곱 가지 색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되어 각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파랑은 여기에 끼어들지 못했다. 파랑과 초록-특히 파랑-이 드물었던 이유는 종교적 상징성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녹색은 에로스 적 사랑의 열정을 상징하는 지상의 색이었고, 청색은 아가페 적 사랑의 성실성을 표시하는 하늘의 상징 색 이었다.9) 신분적 질서가 엄격했던 중세 사회는 외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적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였지만 내적으로는 인간의 원초적인 역동성과 감정이 지배하는 이중적인 사회였다. 이러한 이중규범이 적용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넘어서 외적으로 특별하게 규정하는 것처럼 오해받을 수 있는 색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종교적인 경외심과 사회적인 겸손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일반인들과 귀족들은 신앙의 성실을 상징하는 파랑을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특별한 예외가 있다면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를 상징하는 문장이 있는데 이 문장은 파랑 바탕에 흰 백합이 수놓아진 깃발이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특별한 예외일 뿐이었다. 중세 시대에 파랑은 오직 <신의 어머니Theodokos>인 성모聖母 마리아에게 바쳐진 색이었다.10)

  파랑은 고대부터 신의 색이었다. 하늘과 신이 동일시 될 때부터 파랑은 인간의 속성을 떠나 신의 세계로 들어갔다. 이집트의 신 <아문>, 인도의 신 <비슈누>, 성당의 둥근 지붕은 파랑으로 표현된다. 그러기에 종교의 시대였던 중세에 파랑의 색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왕도, 교황도 아닌 오직 신 뿐 이었다.

  수도원의 수사들은 종교적인 채색화를 그릴 때 마리아에게 이 색을 부여함으로서 일생을 아들이며 신이었던 한 인간에게 변함없는 성실과 헌신을 바쳤던 여인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그러나 이때도 남색과 하늘색과 파랑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사용되었는데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뒤에 언급할 것이다. 그렇다고 중세의 유럽인들이 성실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외적인 형식에 너무나도 억매여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외적인 표시에 구속되는 것을 거부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중세인 들은 자신의 과오에 대한 종교적인 속죄를 할 때면 현대인들의 기준에서 볼 때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외적인 형식에 충실하였다.

  그럼 왜 중세에는 청색 계통의 색이 잘 사용되지 않았을까? 일상의 생활에서 청색과 녹색이 잘 쓰이지 않았던 것은 색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였기 때문이었다. 즉 중세의 유럽인들은 파랑과 남색의 차이와 남색과 보라의 차이를 정확하게 경계 지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파랑과 남색과 보라는 같은 색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초세기 그리스도교도들은 보라색을 기피하였는데 이는 귀족들의 색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초록의 경우 파랑색 계통만큼 혼동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교가 적대시하던 이슬람이 신성시한 색이면서 이교도들이 종교의식에 사용한 색이었기 때문에 잘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에 나오는 순례자들은 대부분 초록과 파랑계통의 옷을 입고 자신들이 종교적 충실성을 이행하고 있다는 무언의 암시를 하고 있다.11) 그렇지만 이러한 사회적 관습을 제외하고는 색에 대한 과학적인 미완성으로 중세에 가장 많이 사용한 색은 무지개를 구성하는 일곱 색 가운데 파랑과 초록계통을 제외한 나머지 빨강․주황․노랑이었다. 그러므로 중세를 규정짓는 색은 붉은 색이란 속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의 유럽인들은 왜 이렇게 화려한 원색을 선호하였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알려면 성 토마스St.Thomas Aquinas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에 나오는 진술, <사물이 밝게 채색되었을 때 아름답다고 일컬어 진다>는 말의 진의를 파악해야 한다.12) 이 말을 어린 아이의 미술작품에 나타난 유치한 색의 조합과 같은 피상적인 시각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중세인 들의 색에 대한 감수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성 토마스의 진술에 나타난 색의 은유적인 측면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여기서 색은 빛이란 관념과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다. 즉 성 토마스에게 있어서 색이란 빛-다르게 말한다면 신의 은총의 다른 형태-의 다른 형태로 파악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토마스에게 색이란 신의 현현을 증명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토마스의 사고를 반영이라도 하듯 중세의 유럽인들은 교회, 의복, 건물 등을 화려한 색으로 장식하였다. 이들이 이렇게 한 것은 색에 대한 경외심과 신앙의 측면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상의 꼭대기에 중세 예술의 정화인 스테인드글라스stainedglass가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신의 성전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빛과 색의 은근한 조화에 의해 지상에 하늘나라를 재현한 것이었다. 신의 은총인 태양이 인간 신앙의 총체인 색유리를 통해 지성소에 비출 때 그 곳은 바로 종말 이후에 도래할 은총으로 충만한 세계였던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비추는 빛은 조화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빨강-감정-과 노랑-지혜-과 파랑-이성-이 섞이면 흰색-완벽함과 조화-이 된다는 사실 또한 상징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것이었다.

  성 토마스가 색의 이성적인 측면을 옹호하였다면 성 보나벤투라St.Bonaventura는 색을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 보나벤투라는 빛을 룩스lux, 루멘lumen, 색채color 또는 광휘splendor의 세 가지로 나누어서 바라보았다. 보나벤투라에게 있어서 룩스는 빛 그 자체-속된 말로 원조 빛이라고 할 수 있을까-이고, 루멘은 공간 속을 돌아다니는 빛이었다. 이 공간 속을 돌아다니는 루멘이 빛나는 물체에 반사되면 광휘splendor가 되고, 지상의 물체들에 반사되면 색채color라고 보았다. 즉 이 말은 색채나 광휘는 루멘을 형상화 시키는 것이고, 루멘은 룩스를 형상화 시키는 것이다.13) 이는 신의 은총이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가를 설명하는 것이지만 성 토마스의 직접적인 방법보다는 보다 신비주의적인 측면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성 토마스가 이성으로 신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성 보나벤투라는 신앙의 빛에 의해서만 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 것만큼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양자 모두 절대자의 형태인 빛을 지상에 구현하기 위해 색을 강조했다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1) 미셀 파스투로Michel Pastoureau, 블루, 한길 아트, 2002, p7.


2) 토마스 아 캠피스Thomas a Kempis, 준주성범Imitatio Christi:1장 영적생활의 유익한 훈계. 제1장 그리스도를 본받음과 세상의 모든 헛된 것을 업신여김1-4참조.


3) 가톨릭 대백과 사전 참조:1월 1일 나지안의 성 그레고리오에서 시작하여 12월 31일 상스의 성녀 골롬바에 이르기까지 대략 1900여명의 성인이 축일표에 기록되어 있다.


4)에바 헬러Eva Heller, 색의 유혹, 예담, 2002, pp.317-320.


5) 중세 연대기 기자들의 기록에 나타난 색의 조합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대 유럽의 깃발-국기의 색조합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미셀 파스투로의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의 1장 줄무늬 옷을 입은 악마 13-16세기)를  읽어 볼 것.


6) 미셀 파스투로,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 이마고, 2002, p46.


7) A.셔클리프,에피소드 과학사;농업 기술 이야기,우신사,1992, pp.119이하.


8) 에피소드 과학사, p138.


9) 에바 헬러, 색의 유혹, pp.45이하 참조.


10) 로렌초 디 크레치, 수태고지,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화면의 위에 파란 원이 3개-성부, 성자, 성령-좌측의  가브리엘, 우측의 마리아, 그리고 원경의 색은 파랑으로 채색되어 있다.


11)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켄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 책있는 마을, 2002, 전체 서문 참조.


12) 신학대전Summa Theologica, Ⅰ, 39, 8. 이하에서는 S.T로 약칭한다.


13) 코플스톤F.Copleston, 중세 철학사, 서광사, 1989, pp.328-379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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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펌] 우리 역사관련 링크 사이트

'우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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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mo_2.gif 무덤 이름 짓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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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

 

#사계

 

1. 고드름 낙수 소리

2.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
3. 동굴 낙수 소리
4. 여름 폭포 소리
5. 몽돌 파도에 휩쓸리는 소리
6. 대나무 부딪히는 소리

7. 천둥 소리

8. 장마 비바람 소리
9. 우박 떨어지는 소리
10. 가시연꽃밭의 폭우 소리
11. 불어난 계곡물 쏟아져내리는 소리
12. 벼이삭 부딪히는 소리
13. 낙엽 지는 소리
14. 싸리비로 낙엽 쓰는 소리
15. 낙엽 밟는 소리

16. 바람에 낙엽 구르는 소리
17. 억새 부딪히는 소리
18. 갈대 부딪히는 소리
19. 눈보라 소리

20. 설피 신고 눈 밟는 소리
21. 겨울 얼음장 깨지는 소리

 

 

#향토

22. 할아버지 잔기침 소리
23. 달집 태우는 소리
24. 논두렁 태우는 소리
25. 소울음 소리
26. 소여물 먹는 소리
27. 가마솥 끓는 소리
28. 우시장 소울음 소리
29. 모내기하는 소리
30. 밭가는 소리
31. 장닭 우는 소리
32. 산나물 캐는 소리
33. 베틀짜는 소리
34. 시골장터 소리
35. 족타기로 벼 터는 소리
36. 탈곡기로 탈곡하는 소리
37. 키질하는 소리
38. 콩도리깨질 소리
39. 콩깍지 타는 소리
40. 멧돌 가는 소리
41. 절구 찧는 소리
42. 떡치는 소리
43. 어시장 경매 소리
44. 오징어 물 뿜는 소리
45. 숭어잡이 소리
46. 재첩 캐는 소리
47. 꼬막 잡는 소리
48. 해녀 숨비 소리
49. 연평도 풍어제 소리

 

 

#울림

50. 에밀레 종소리
51. 보신각 종소리
52. 가을 바람에 풍경 우는 소리
53. 법고 소리
54. 목어 소리
55. 운판 소리
56. 범종 소리
57. 성당 종소리

 

 

#추억

58. 학교종 소리
59. 풍금 소리
60. 아이들 전통놀이 소리
61. 가을 운동회 소리
62. 대장간 소리
63. 참숯 익는 소리
64. 노젓는 소리
65. 개울가 빨래 소리
66. 염전 수차 소리
67. 통방아 소리
68. 물레방아 소리
69. 디딜방아 소리
70. 다듬이질 소리
71. 마지막 비둘기호 정선선

 

#생명

72. 괭이갈매기 우는 소리
73. 가창 군무 소리
74. 둥지 떠난 새끼 제비들의 소리
75. 딱따구리 나무구멍 파는 소리
76. 보리밭 종달새 우는 소리
77. 백로 새끼 키우는 소리
78. 소쩍새 우는 소리
79. 둥지 떠난 꾀꼬리 새끼 어미찾는 소리
80. 큰유리새 새끼 키우는 소리
81. 삼광조 새끼 키우는 소리
82. 붉은배새매 새끼 키우는 소리
83. 파랑새 새끼 키우는 소리
84. 겨울 들판 두루미 구애하는 소리
85. 참매미 우는 소리
86. 쓰릅매미 우는 소리
87. 애매미 짝 찾는 소리
88. 왕소똥구리 경단 굴리는 소리
89. 토종벌 일하는 소리
90. 귀뚜라미 짝 찾는 소리

91. 여치 우는 소리
92. 방울벌레 노래소리
93. 베짱이 우는 소리
94. 긴꼬리 우는 소리
95. 누에 뽕잎 갉아먹는 소리
96. 개구리 울음 소리
97. 두꺼비 우는 소리
98. 맹꽁이 울음 소리
99. 섬진강 동자개 우는 소리
100. 남대천 연어 돌아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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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7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2-29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이라오.^^

urblue 2004-12-29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깜짝이야!

좋아요, 좋아. ㅎㅎ

눈에 딱 띄는 게 빨간 입술이네요. 어찌 저리 빨간건가...립 글로즈라도 발랐나..흠..

수염 슬쩍 난 것도 괜찮구..ㅋㅋ

말아톤은 극장에서 봐야겠어요.

2004-12-30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2-30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2-30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숨은아이 > 52일째 단식을 이어갈 거라는 마로 아빠

 

http://www.people1000.org에서 퍼왔습니다.
 
 
***

 



지난 22일 밤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아가며 침묵의 촛불행진을 벌이다 병원으로 후송된 단식농성단원들을 통일운동단체 원로들이 방문해 격려했다.

23일 낮 12시 30분경 범민련 남측본부(의장 나창순) 이종린 명예의장을 비롯해 통일광장 소속 비전향 장기수 김영승, 김영식, 안학섭, 이성근 선생은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 6108호에 입원하고 있는 한국청년단체협의회(의장 전상봉) 송현석 정책위원장과 범민련 남측본부 최복렬 대외협력국장을 만났다.

오늘로 단식 52일째를 맞은 송현석 정책위원장은 22일 밤 행진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급히 후송됐으나 현재까지 주사도 맞지 않은 채 단식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송현석 정책위원장은 단식 52일 동안 몸무게가 무려 24kg이 줄어 현재는 63kg이다. 취재를 해오던 기자가 봐도 52일전 모습과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송 위원장의 몸이 확연히 야위었다.

어제 밤부터 계속 간병하고 있던 안양사랑청년회 김광범 씨는 "일단 간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마쳤고 너무 오랜 단식으로 피부가 심하게 상해 피부검사도 받은 상태"라며 송 위원장의 신상을 전했다.

또한 김 씨는 "병원에서는 빨리 입원하기를 재촉하고 있지만 본인이 완강히 거부하고 있어서 일단 오후에 한청 의장이 병원에 오면 함께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밝혔다.

"단식을 계속 해도 될지" 건강상태를 확인해보겠다며 송 위원장의 진맥을 짚어보고
있는 안학섭 선생.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병원을 방문한 원로들은 하나같이 송현석 정책위원장의 건강을 염려하며 단식을 그만두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복식을 권유했다.

그러나 송현석 정책위원장은 "운동단체들이 '부도수표'를 너무 남발해서 이번에는 기필코 끝까지 하겠다"며 "만약 올해에 국가보안법이 폐지가 안되더라도 내년에 싸움을 계속하기 위해서도 동지들과의 신의를 위해서라도 약속은 지켜야 한다"면서 단식 농성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종린 명예의장은 송위원장의 단식농성에 대해 "어렸을 적 신문에서 인도의 간디가 수 십일동안 단식을 벌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었는데 간디도 단식하면서 끌고 다니던 양의 젖을 먹으면서 버텼었다고 했는데 그런 것도 먹지도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대단한 투쟁이다"고 칭찬했다.

44년동안 옥중생활을 지낸 비전향 장기수 안학섭 선생은 "죽어야겠다는 심정으로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힘내라"고 응원하고, 비전향 장기수 김영승 선생도 "감옥에서 단식할 때는 물도 안먹고 싸웠었는데 그때보다는 많이 좋은거니깐 기운내라"고 기를 북돋웠다.

그동안 누구보다도 마음고생이 심했던 송 위원장의 부인 김희정(33, 동서울청년회) 씨는 "각오하고 있었으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으나 남편의 의지를 꺾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남편 앞에서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범민련 남측본부 최복렬 대외협력국장은 같은 병실에 입원해 복식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17일간의 고통스러운 단식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해 복식을 시작한 범민련 남측본부 최복열 대외협력국장은 건강은 어떠냐는 질문에 "건강하게 있으니 걱정말라"면서 말을 아꼈다.

송 위원장은 30여분간의 방문을 마치고 떠나는 원로들에게 "이따가 다시 보게 될 겁니다"라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미니 인터뷰> "남편이 자랑스럽습니다"
- 송현석 정책위원장 부인 김희정 씨

▶부인 김희정 씨가 남편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사진 - 김규종기자]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의지의 한계를 시험하듯 곡기를 끊고 52일째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촉구하는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송현석 정책위원장의 부인 김희정 씨를 만나 그간의 안타까웠던 심경을 물어봤다.

□ 통일뉴스 : 현재의 심경이 어떤가?

■ 김희정 : 오늘 여야 회담이 결렬되길 바라는 마음만 간절할 뿐이다.

□ 51일 동안 단식하다가 이렇게 병원까지 오게됐는데 어떤가?

■ 각오하고 있었으니까......(눈시울이 붉어짐).

□ 누구보다도 더 마음 고생이 심했을텐데, 단식을 그만두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가?

■ 이번에 꼭 국보법을 폐지시키겠다고 각오한 상황에서 내가 가타부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한번도 그만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 (여.야간) 협상결과도 한번 지켜봐야겠다.

□ 자녀들은 아빠를 보고싶어 하지 않나?

■ 딸이 하나(송마로, 5세) 있는데 아빠랑 전화를 자주 하고 주말 집회에는 같이 참석해 만나고 아빠사진도 자주 보면서 지내고 있다. 매일 같이 보고 싶어한다.

□ 단식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하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

■ 아내로써 자랑스럽다. 이번에는 (국가보안법을) 끝내야한다.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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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2-2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만 몇번 봤는데. 마로 아빠가 정말 너무 여위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임시국회 끝날 때까지 건강을 유지하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urblue 2004-12-2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이 얼마나 애가 타실지..저로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전출처 : stella.K > 사진으로 보는 한국 100년




사진을 클릭하면 앨범이 나옵니다


사진으로 보는 한국100년


옛서울
(고궁과 도성)


옛서울(1)


구한말의
포졸과 군인


옛서울(2)

 

 


구한말 정치인물


구한말 놀이
(유흥)문화


구한말 교육활동


경주의 옛모습




구한말 교통수단


구한말 경제활동


포항의 옛모습


구한말 복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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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2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2-22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냠냠, 김치전 먹으며 댓글 쓴다우.

잘 지냈죠?

저도 조금 전 스텔라님 방에 가서 죄 퍼왔어요.

이거야 원 하루이틀만 서재활동 안해도 정신이 없으니......

어제 동숭씨네마떽에 임순례 감독이 나타났습디다. 사인 좀 받고 싶었는데

부끄러워서 말이오. 결국 아는척 못했지요.^^;;;




urblue 2004-12-22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렇죠? 저도 사인해 달라는 소리는 절대 안나오더라구요. 어째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요.

매일 나오세요. 역시 님 안계시면 심심하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