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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탈회위크. 9,000년 전의 평등 세상.


모든 도시의 어머니 차탈회위크. 차탈회위크는 현재 터키 영토인 아나톨리아 평원에 세워진 마을이었다. 9,000년 전. . . / 당시 도시는 갓 발명돼 길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창문도 발명되지 않았다. 주민들이 집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이웃집 지붕을 넘어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집마다 밤하늘로 열린 현관에 사다리가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  왕궁이 없었다.  . . . 불평들이 없었다. . .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지 않았다. . . 나눔의 기풍이 아직 살아 있었다. 차탈회위크는 평등 사회였다. . . 유골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 .. 여자와 남자와 아이의 영양 상태가 놀랍도록 비슷했다. . . 모두가 비슷한 집에서 살았다.  . . . / 집들은 대단히 현대적이다. 구조는 무척 실용적이고 규격적이며 집집이 균일하다. 일하는 공간, 식사하는 공간, 노는 공간, 자는 공간이 나뉘어 있다. . . (54) . . . 사람들은 좌대에 시신을 올리고, 맹금과 비바람이 그것을 먹어 치우도록 내버려 두었다. . . . . . 이윽고 유골만 남았을 때 . . . 유골을 붉은 황토로 장식해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로 배치한 뒤 자신들이 사는 집 거실 바닥에 묻을 차례였다.(56) - P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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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시인선 151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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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4 매일 시읽기 98일 

얼음 조각 
- 이규리 

축제는 축제를 견디며 종일 서 있었다

잠시 그들의 일부가 되어주기로 하였으므로 

음악이 흐르고 
불빛이 내리고 

나는 잘 죽어야 한다 

하루를 사는 일 
이건 녹지 않으려 안간힘 쓰던 저들 삶과 얼마나 다를까 

잠시를 영원으로 아는 사람 눈먼 사람 말이네 

모든 날들인 하루 
그래 하루라는 건 결코 허한 시간이 아닌 거야 

부재하고 싶었어 멸하고 싶었어 저 실상으로부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목이 가늘어지지만 
자는 서서히 사라져야 한다 

어떻게 죽는 방식이 사는 이유가 되었니 

카펫을 적시며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적막을 

투명하다는 건 힘이 될 수 없지만 
어떤 패도 지킬 수가 없지만 

버티어온 힘으로 
그러니 다시 고쳐서 말해보자 

죽음이 이미 거기 

있었으므로, 


이규리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를 구매 후 띄 엄 띄 엄 읽다 새해를 맞아 소 몰이하듯 몰아쳐 읽었다.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한다고, 숨이 차고 목이 메는 경우가 수시로 발생했다. 시를 이렇게 읽으면 안 되지 라는 목소리와 그렇게 읽다 어느 세월에 다 읽어 하는 목소리가
천사와 악마의 목소리로 내 속을 휘젓고 다녔다. 악마 1승 천사 1승. 고루 나눠 가졌다.

시는 왜 쉽게 읽히지 않나. 쉽게 읽히지도 않는데 나는 왜 자꾸 들여다보고 있나. 이런 문장,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런 사색 앞에서 바삐 내딛던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루를 사는 일 / 이건 녹지 않으려 안간힘 쓰던 저들 삶과 얼마나 다를까˝ 결국에는 녹고 말 운명을 진 얼음 조각으로부터 ˝녹지 않으려 안간힘˝ 쓰며 ˝하루를 사는,˝ 그러니까 버틸 때까지 버티려 애쓰는 우리 인간의 삶을 끌어내는 사유라니.

이 시집에는 이런 사유들과 꼭꼭 기억하고 싶지만 끝내 기억하지 못할 문장들로 넘쳐난다. 하여 토끼 걸음을 멈추고 거북이 걸음으로 태세 전환을 하려 한다.

‘생사‘를 같이 붙여 말하고 쓰는 데는, 무릇 모든 생명이 죽음을 제 속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모든 것은 성장과 동시에 죽음으로의 여행도 곁들여 한다. 얼음 조각은 ˝서서히 사라져야˝ 존재. ˝죽는 방식이 사는 이유˝가 되는 존재.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적막˝을 품은 존재. ˝버티어온 힘으로˝ 버티고 있는 존재. 얼음 조각은 곧 우리다. 우리는 지킬 힘이 모자란 투명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세상을 적실 때까지 적시다 갈, 그 정도 버틸 만한 힘으로 견디고 산다. 고생했지, 고생스럽지, 라고 말해주는 듯해 뭉클했다.

이 시는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끝난다. 삶이라는 여정의 지속성을 뜻하는 것도 같고, 내쳐 왔으니 좀 쉬라는 휴식의 의미 같기도 하고. 흠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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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1-04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읽기님 글을 보면 시를 참 잘 읽으시는 것 같아요. 전 맨날 느낌독해다보니까, 어 이거 사랑신데? 사랑이야! 하는 시에만 꽂히고 마는 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
 

20210103 매일 시읽기 97일 

해 
-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맑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빛이 싫어, 달빛이 싫어,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빛이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ㆍㆍㆍ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뉘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휠훨휠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ㆍㆍㆍ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애뙤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2021년 1월 3일. 구름이 낀다 하여 미뤄둔 신년 해돋이 가족 산행에 나섰다. 집에서 멀지 않은 ‘건달산.‘ 화성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데, 높이가 고작 328m 다. 하고 많은 이름 중 건달산이라니, 잊어먹진 않겠다며 산을 오르니 정상에 화성건달 산악회가 바윗돌을
떡하니 세워놓았다.

구름과 가스와 미세먼지에 가려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돋이는 관람할 수 없었지만, 산을 오르는 동안 함께 한 새벽 어둠, 그 어둠을 가르던 달빛, 어둠과 달빛을 껴안은 벌거벗은 나무들은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해돋이 하면 생각나는 시가 박두진의 ‘해‘밖에 없다는 사실에, 나의 좁디좁은 시 세계에 약간 좌절했지만, 그 덕에 이 시를 다시 소환해 읽으면서 조하문이 부른 노래도 흥얼거려 보았다. 박두진의 ‘해‘는 대한민국이 광복을 이루고 난 이듬해 1946년 ‘상아탑‘ 6호에 발표된
시이다. 달빛 그득한 ˝눈물 같은 골짜기˝에서 해가 솟기만을 기다리는 내용으로 보아, 광복 이전에 쓴 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일제 치하는 어둠의 시대. 찬란한 빛을 쏘는 해가 솟아 저 칠흑의 ˝어둠을 살라˝ 먹으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 불러 모아 ˝고운 날을 누려˝ 보겠다는 시인의 염원이 간절하다.

1982년 작고한 조연현 문학평론가는 ‘해동 공론‘에서 박두진의 ‘해‘를 두고 더할 나위 없는 찬사를 표했다. ˝한국 서정시가 이룰 수 있는 한 절정을 노래했고, 박두진은 이 한 편의 시로써 유언 없이 죽을 수 있는 시인이 되었다.˝

˝유언 없이 죽을 수 있는 시인˝이라니. 박두진 시인은 191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1998년 83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2018년 안성맞춤랜드 북쪽 자락에 ‘박두진 문학관‘이 건립되었다. 박두진 시집은 여러 출판본이 있는데, 홍성사에서 출간한 <<박두진 시 전집>>(총 네 권)이 가장 눈에 띈다.​

박두진의 ‘해˝를 개사한 노래 ˝해야˝는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조하문이 밴드 ‘마그마‘의 베이스 겸 보컬로 참가하여 은상을 수상했다. 1981년 발매된 마그마 1집과 1987년 발매된 조하문 솔로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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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03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박! 건달산의 화성건달 산악회!ㅋ 거기에 바위돌을 빡!ㅎ 건달이면 어떻고 산적이면 어떤가요 저렇게 좋은 일출보며 좋은 기분 많이 받으시면 될듯요!ㅎ

행복한책읽기 2021-01-03 20:18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님 위해 건달산 바위돌도 투척^^ 막스무스님께도 저 기운 뻗칠 겁니다~~~~^^

초딩 2021-01-03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우아 나무와 잘 사진 정말 멋집니다!!!
:-)
건달산과 마지막 사진도 넘 좋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1-04 10:43   좋아요 1 | URL
그죠. 자연이 준 선물 같은 새벽과 아침이었어요^^
 

1월에 읽고 싶은 과학서와 인문서 

​앤 드루얀 #코스모스_가능한_세계들 
ㅡ 2021년 매일 인증 첫 책. 1월 4일부터 28일간의 항해에 들어간다. 준비 작업으로 프롤로그 읽기 완료.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를 관람한 다섯 살 칼 세이건의 반짝이는 꿈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아인슈타인은 우리에게 과학을 둘러싸서 보통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겁주는 높은 벽을 무너뜨리라고 촉구했다. 과학의 통찰을 내부자들만이 아는 전문 용어에서 모두가 아는 평범한 언어로 번역하라고 촉구했다. 그럼으로써 모두가 그 통찰을 마음에 새기고 그 통찰이 보여주는 세상의 경이를 직접 경험함으로써 변할 수 있도록 해주라고 촉구했다.˝(26) ​

​아인슈타인은 저 시대(1939년)에 이미 과학의 보편화와 대중화를 추구했고, 집단 지성의 힘을 강조했다. 


로얼드 호프만 #같기도_하고_아니같기도_하고 
ㅡ ˝화학의 시인˝이라고 불린다는 호프만. 수사적 표현인 줄 알았더니, 이 분 진짜로 다수의 시집에다 시화집과 희곡까지 출간했다. 세상에. 화학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은 과학자라고. 목차와 머리말 앞부분을 보고 구매하고 싶어졌다. ˝이 책을 통해 화학이 과연 얼마나 재미있는 분야인가를 보여주고 싶다.˝(9) 

​헨리 조지 #진보와빈곤 
ㅡ 알릴레오 듣다 급 궁금해져 일단 대출했다. 두께보다 내용 때문에(과학보다 경제가 더 어려운 거였어? ㅠㅠ) 완독은 불가하겠다고 예상되지만, 알릴레오 패널들의 권고에 따라 10권만은 정독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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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02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릴레오 따라가고 싶은데 진보와 빈곤은 넘사벽으로 보이는듯 합니다! 지난주에 구입은 했는데 장식용으로 전락하지 않을지 걱정이네요!ㅠ

행복한책읽기 2021-01-03 00:31   좋아요 0 | URL
제게는 더 넘사벽이네요. 그럼에도 구매하시다니. 사실 진정한 책사랑은 구독이 아닌 구매라고 시민님이 말씀하셨더랬어요. 그걸 실천한 막시무스님 짱!!^^
 
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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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1 매일 시읽기 95일 

천 개의 아침 
- 메리 올리버 

밤새 내 마음 불확실의 거친 땅 
아무리 돌아다녀도, 밤이 아침을 
만나 무릎 꿇으면, 빛은 깊어지고 
바람은 누그러져 기다림의 자세가 
되고, 나 또한 홍관조의 노래 
기다리지(기다림 끝에 실망한 적이 있
었나?) 

All night my heart makes its way 
however it can over the rough ground 
of uncertainties, but only until night 
meets and then is overwhelmed by 
morning, the light deepening, the
wind easing and just waiting, as I 
too wait(and when have I ever been
disappointed?) for redbird to sing. 

2021년 신축년 해가 떴다. 흐린다 해서 일출 산행을 접었더니 지금, 아침 아홉 시 삼십 분. 구름을 비집고 해가 모습을 드러내려 안간힘이다. 구름을 뚫고 기어코 햇살을 쏘아댄다. 구름에 가렸어도 빛은 빛이구나. 태양이 2021년 첫날 세상을 여린 빛으로 감싼다. 포근하게.

오늘 늦은 아침의 풍경. 이 날을 위해 메리 올리버의 <천 개의 아침>을 아껴두었다. 메리 언니의 시를 다시 읽으니 역시나 맘이 편해진다. 평이한 소재와 어휘들로 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줄 아는 시인.

어제 밤은 어수선 속 설렘. 뒤척임 속 선잠. 불확실 속 기다림. 오늘 아침은 구름 속 해. 흐림 속 빛. 불확실 속 희망. 

삶은 늘 흐릿한데, 올해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적어도 책은 더 읽을 거라는 것. 비록 한 권 더에 그칠지라도. 새해 첫 날 아침은 시 읽기로 열었다. 계속 가즈아~~~~

일출 사진은 2014년 북한산 정상에서 찍은 것이다. 태양 위 구름 새를 가슴에 품고 사는 걸로.^^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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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01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흐리고 간혹 눈만 나부끼는 아침인데 에너지 넘치는 일출사진 감사합니다!ㅎ 따뜻한 하루되십시요!

행복한책읽기 2021-01-02 14:57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님 2021년이 기대되는 1인이요. 책읽기 글쓰기 맛깔나게 하심요. 북맥의 빅뱅 효과^^

초딩 2021-01-01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아 사진 정말 넘 넘 멋져요~~ 파이팅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1-02 14:58   좋아요 0 | URL
초딩딩도 화이팅이요. 손글씨 독서목록에 반해버린 1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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