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시인선 151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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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4 매일 시읽기 98일 

얼음 조각 
- 이규리 

축제는 축제를 견디며 종일 서 있었다

잠시 그들의 일부가 되어주기로 하였으므로 

음악이 흐르고 
불빛이 내리고 

나는 잘 죽어야 한다 

하루를 사는 일 
이건 녹지 않으려 안간힘 쓰던 저들 삶과 얼마나 다를까 

잠시를 영원으로 아는 사람 눈먼 사람 말이네 

모든 날들인 하루 
그래 하루라는 건 결코 허한 시간이 아닌 거야 

부재하고 싶었어 멸하고 싶었어 저 실상으로부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목이 가늘어지지만 
자는 서서히 사라져야 한다 

어떻게 죽는 방식이 사는 이유가 되었니 

카펫을 적시며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적막을 

투명하다는 건 힘이 될 수 없지만 
어떤 패도 지킬 수가 없지만 

버티어온 힘으로 
그러니 다시 고쳐서 말해보자 

죽음이 이미 거기 

있었으므로, 


이규리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를 구매 후 띄 엄 띄 엄 읽다 새해를 맞아 소 몰이하듯 몰아쳐 읽었다.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한다고, 숨이 차고 목이 메는 경우가 수시로 발생했다. 시를 이렇게 읽으면 안 되지 라는 목소리와 그렇게 읽다 어느 세월에 다 읽어 하는 목소리가
천사와 악마의 목소리로 내 속을 휘젓고 다녔다. 악마 1승 천사 1승. 고루 나눠 가졌다.

시는 왜 쉽게 읽히지 않나. 쉽게 읽히지도 않는데 나는 왜 자꾸 들여다보고 있나. 이런 문장,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런 사색 앞에서 바삐 내딛던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루를 사는 일 / 이건 녹지 않으려 안간힘 쓰던 저들 삶과 얼마나 다를까˝ 결국에는 녹고 말 운명을 진 얼음 조각으로부터 ˝녹지 않으려 안간힘˝ 쓰며 ˝하루를 사는,˝ 그러니까 버틸 때까지 버티려 애쓰는 우리 인간의 삶을 끌어내는 사유라니.

이 시집에는 이런 사유들과 꼭꼭 기억하고 싶지만 끝내 기억하지 못할 문장들로 넘쳐난다. 하여 토끼 걸음을 멈추고 거북이 걸음으로 태세 전환을 하려 한다.

‘생사‘를 같이 붙여 말하고 쓰는 데는, 무릇 모든 생명이 죽음을 제 속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모든 것은 성장과 동시에 죽음으로의 여행도 곁들여 한다. 얼음 조각은 ˝서서히 사라져야˝ 존재. ˝죽는 방식이 사는 이유˝가 되는 존재.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적막˝을 품은 존재. ˝버티어온 힘으로˝ 버티고 있는 존재. 얼음 조각은 곧 우리다. 우리는 지킬 힘이 모자란 투명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세상을 적실 때까지 적시다 갈, 그 정도 버틸 만한 힘으로 견디고 산다. 고생했지, 고생스럽지, 라고 말해주는 듯해 뭉클했다.

이 시는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끝난다. 삶이라는 여정의 지속성을 뜻하는 것도 같고, 내쳐 왔으니 좀 쉬라는 휴식의 의미 같기도 하고. 흠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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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1-04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읽기님 글을 보면 시를 참 잘 읽으시는 것 같아요. 전 맨날 느낌독해다보니까, 어 이거 사랑신데? 사랑이야! 하는 시에만 꽂히고 마는 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