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3 매일 시읽기 97일 

해 
-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맑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빛이 싫어, 달빛이 싫어,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빛이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ㆍㆍㆍ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뉘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휠훨휠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ㆍㆍㆍ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애뙤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2021년 1월 3일. 구름이 낀다 하여 미뤄둔 신년 해돋이 가족 산행에 나섰다. 집에서 멀지 않은 ‘건달산.‘ 화성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데, 높이가 고작 328m 다. 하고 많은 이름 중 건달산이라니, 잊어먹진 않겠다며 산을 오르니 정상에 화성건달 산악회가 바윗돌을
떡하니 세워놓았다.

구름과 가스와 미세먼지에 가려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돋이는 관람할 수 없었지만, 산을 오르는 동안 함께 한 새벽 어둠, 그 어둠을 가르던 달빛, 어둠과 달빛을 껴안은 벌거벗은 나무들은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해돋이 하면 생각나는 시가 박두진의 ‘해‘밖에 없다는 사실에, 나의 좁디좁은 시 세계에 약간 좌절했지만, 그 덕에 이 시를 다시 소환해 읽으면서 조하문이 부른 노래도 흥얼거려 보았다. 박두진의 ‘해‘는 대한민국이 광복을 이루고 난 이듬해 1946년 ‘상아탑‘ 6호에 발표된
시이다. 달빛 그득한 ˝눈물 같은 골짜기˝에서 해가 솟기만을 기다리는 내용으로 보아, 광복 이전에 쓴 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일제 치하는 어둠의 시대. 찬란한 빛을 쏘는 해가 솟아 저 칠흑의 ˝어둠을 살라˝ 먹으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 불러 모아 ˝고운 날을 누려˝ 보겠다는 시인의 염원이 간절하다.

1982년 작고한 조연현 문학평론가는 ‘해동 공론‘에서 박두진의 ‘해‘를 두고 더할 나위 없는 찬사를 표했다. ˝한국 서정시가 이룰 수 있는 한 절정을 노래했고, 박두진은 이 한 편의 시로써 유언 없이 죽을 수 있는 시인이 되었다.˝

˝유언 없이 죽을 수 있는 시인˝이라니. 박두진 시인은 191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1998년 83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2018년 안성맞춤랜드 북쪽 자락에 ‘박두진 문학관‘이 건립되었다. 박두진 시집은 여러 출판본이 있는데, 홍성사에서 출간한 <<박두진 시 전집>>(총 네 권)이 가장 눈에 띈다.​

박두진의 ‘해˝를 개사한 노래 ˝해야˝는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조하문이 밴드 ‘마그마‘의 베이스 겸 보컬로 참가하여 은상을 수상했다. 1981년 발매된 마그마 1집과 1987년 발매된 조하문 솔로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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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03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박! 건달산의 화성건달 산악회!ㅋ 거기에 바위돌을 빡!ㅎ 건달이면 어떻고 산적이면 어떤가요 저렇게 좋은 일출보며 좋은 기분 많이 받으시면 될듯요!ㅎ

행복한책읽기 2021-01-03 20:18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님 위해 건달산 바위돌도 투척^^ 막스무스님께도 저 기운 뻗칠 겁니다~~~~^^

초딩 2021-01-03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우아 나무와 잘 사진 정말 멋집니다!!!
:-)
건달산과 마지막 사진도 넘 좋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1-04 10:43   좋아요 1 | URL
그죠. 자연이 준 선물 같은 새벽과 아침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