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분 책읽어주기의 힘 - 아이의 두뇌를 깨우는
짐 트렐리즈 지음, 눈사람 옮김 / 북라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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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의 두뇌를 깨우는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
짐 트렐리즈 지음/ 눈사람 옮김/ 북라인(2007)

이 책은 부모가 되었거나 부모가 될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니, 책을 읽고 나니 내 주머니 사정만 허락한다면 아직도 책 읽기를 기피하고 있는 내 주위 부모들에게 손수 사주고 싶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멋진 밥상을 차려준 후배의 집에서 우연히 추천 받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책을 좋아하는 나는 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책을 읽어주는 것이 어디에 좋고, 언제까지 읽어주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목차(목차가 정말 훌륭하다)를 보고 자신에게 관심 있는 분야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내 경우엔 ‘TV와 인터넷은 독인가 약인가’라는 6장이 먼저 눈에 들어와 그 장부터 읽었다. 그것은 나란 인간이 책도 좋아하지만 드라마도 좋아하는 터라 가끔씩 아이와 함께 드라마를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돌을 갓 넘긴 내 딸이 돌을 전후하여 TV에서 광고만 보면 꼼짝도 않고 앉아 텔레비전 모니터를 멍하니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의 이런 증상을 내가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보고 싶을 때 나는 선전이 길게 이어질 채널을 골라 아이를 TV 앞에 앉혀 놓는다. 약간의 죄의식을 느끼면서 말이다. 저자의 지적대로라면 나는 지금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 두 돌 이전까지는 되도록 TV를 보여주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법, 나는 ‘되도록’이란 말에 안도를 하며 많이만 보여주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저자 또한 아이가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경계선을 두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규칙만 있다면, 아이들이 컴퓨터로 놀거나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제한된 시간 안에서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용이라고. 실제로 핀란드 아이들은 TV의 캡션기기를 통해 글을 읽힌다고 한다. 이 장을 읽고 나는 죄책감에서 조금 벗어나 돌을 넘긴 우리 딸에게 하루 30분 정도 광고 방송을 보여 주고 있다.  


나머지 장들도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읽었지만, 전혀 무리가 없었다. 글이 시원시원하고 사례들이 많아 아주 술술 읽힌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감동한 대목은 책읽기를 통한 치유였다. 많은 학습장애아들이 가족들의 책읽기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은 콧날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준다. 책읽기가 능사는 아니겠지만, 그들을 돕는 하나의 치유책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에게 책은 언제까지 읽어주는 것이 좋을까?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 동네 엄마도 내가 이 책을 추천하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라고 하자 글을 뗀 아이에게 뭐 하러 책을 읽어주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겨 주었다. “아이들이 혼자서 읽을 때에는 이해하지 못할 복잡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어서는 이해할 수 있다. . . 혼자 읽을 줄 아는 아이에게도 계속 책을 읽어주어야 한다 . . .(99). 책을 읽어주어야 할 시기를 저자는 중학교 2학년 정도로 보고 있다. 그 정도 나이쯤 되면 혼자 읽기에 벅찬 글도 한 번쯤 읽어볼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나로서는 여력만 된다면, 즐길 수만 있다면 아이와 함께 같은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가지기 전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내 아이도 좋아할지는 의문이지만. . . 
 

저자는 또 터울이 있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의 경우 어느 순간부터는 같은 책을 읽어주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관심과 이해력이 다른 두(혹은 세) 아이에게 같은 책을 읽어주는 것은 책읽기의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러자 한 아버지는 개별적으로 책을 읽어주라는 말에 발끈하여 시간이 너무 걸리지 않느냐며 투덜댄다. 그 아버지에게 저자는 일침을 놓는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부모 노릇은 시간을 절약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시간을 더 들이고 투자하는 것이지,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아닙니다.”(103) 이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단지 읽기에 그쳐서는 안 되는 책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을 읽고 부모가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좋겠지만, 늦었다 싶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처음에야 힘이 좀 들겠지만 큰 아이의 주파수를 맞춰 하루 15분만이라도 책을 꼭 읽어주는 정성을 쏟으라고 저자는 권한다. 가장 좋은 것은 부모가 먼저 책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고 책 읽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이 책의 문제는 부모가 책을 읽어 주기만 하면 마치 우리 아이가 영재가 될 것 같은 착각을 부모에게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는 점이다. 나는 아이들마다 역량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 역량을 일깨우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할 것이다. 결코 과소평가 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과대평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본다. 저자의 지적대로 책읽기는 단지 내 아이를 영재로 키우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 간의 유대를 키움으로써 발생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이 책을 나보다 먼저 읽은 남편이 어린 우리 딸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직은 책을 읽는다기보다 보는 수준이고, 어쩔 때는 거의 집어던지는 수준이지만, 꽂혀 있는 책들 중 유독 한 책만 죽으라고 집어 드는 아이를 보면 말 못하는 아기에게도 선호도가 있다는 걸 알겠고, 그래서 이런저런 책을 두루두루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흥분한 대목은 <보물창고>라는 작은 제목 아래 망라해놓은 ‘소리 내어 읽어주기에 좋은 책’(뉴욕알바니지구독서협의회)들이었다. 많은 책들이 우리나라에 거의 번역되어 나와 있었지만, 나는 원서를 사서 읽고 싶다는 욕망이 마구 들끓었다. 언젠가 내 딸에게 저 책들을 읽어줄 날들을 그려보노라니 그렇게 흥분될 수가 없었다. 물론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거기 수록된 거의 모든 책들을 사서 먼저 읽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당장 구입해서 읽고 싶은 책은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 The True Story of the Three Little Pigs》라는 그림책이다. 이 마지막 부록은 책을 좋아했지만 어린이 책을 거의 못 읽은 내게 진짜 <보물창고>가 되어 주었다. 저자에게 정말 고맙다. 이 책의 저자인 짐 트렐리즈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책을 읽어 주었던 느낌이 너무 좋아 자신의 두 아이에게도 매일 밤 책을 읽어 주었다고 한다. 책을 읽어주지 않는 부모와 교사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서 자비를 털어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 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사랑하고 소망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무엇을 배우도록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28)
- 글쓰기와 말하기는 ‘복제되는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단어는 귀와 눈을 통해 들어와 혀와 펜을 통해 나간다.’ 즉 우리는 들은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들은 것을 말하고, 가장 자주 본 것을 적는다.(107)
- 아이가 책을 알게 되면, 또 하나의 중요한 수업을 조심스럽게 시작하자. 책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읽어 줄 때마다 책제목을 가리키고, 글쓴이, 페이지, 그림, 겉표지, 속표지와 같은 단어를 말해주는 것이다.(125)
- 정말 좋은 책은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그 소리와 냄새와 이미지가 오랜 기간 우리 곁을 맴도는 책이다.(153)
“50세기 되기까지는 모든 책에 50페이지의 기회를 줘라. 50세가 넘으면 100에서 나이를 뺀 페이지만큼의 기회를 줘라.”(워싱턴북센터의 낸시 펄). 그녀는 이것을 ‘50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즉 독자가 작가로부터 받아야 하는 정신적 고문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책이 인내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면 올림픽 경기장에 있어야지 책꽂이에 있어서는 안 된다.(155)
- 즐거움은 가르치기보다 감염되는 것이라는 점을 되새기자. 그리고 다음을 명심하자.(188)
- 어른이 역할 모델로서 매일 책을 읽어야 한다. 아이와 같은 시간에 읽는다면 더 좋다.
- 아주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책의 그림을 보고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독서’라고 할 수 있다.
- 아이가 스스로 읽고 싶은 것을 선택하게 하자. 그것이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시간을 정하자. 처음에는 짧게, 아이가 자라 더 많이 읽을 수 있게 되면 길게 시간을 잡자.
- 신문과 잡지도 ‘독서’의 일종이다.
- 스스로의 선택, 스스로의 관심이 중요하다. 아이가 관심을 갖는 것을 읽게 하자.
- 아무도 책을 읽어주는 일이 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말 너무나도 중요합니다!(수잔 넬슨, 앨라배마 맥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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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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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나는 사십대에 갓 접어든 사람이다. 이 책은 20대, 폭넓게는 10대를 겨냥한 것이지만, 책을 읽어본 40대 주부인 나로서는 모든 세대가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건 우리의 20대를 왜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는지, 20대가 정말 그 정도밖에 돈을 못 버는지, 내 아이가 20대가 되었을 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정말 희망은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였다. 경제에 문외한인 나이지만 이 책은 그런 궁금증을 제법 쉽게 풀어주고 있었다. 또한 재미있고 유익했다. 
모든 책이 그렇듯 책의 겉표지를 넘기면 저자 소개가 나온다. 이 소개글이 사뭇 흥미로웠다. 흔한 약력 소개가 아니었다. 
우석훈 . . . 〈한겨레〉에 ‘여기는 명랑국토부’를 연재하던 시절을 행복했던 기억으로 가지고 있으며, 고액 연봉 대신 ‘가난한 자유’를 선택하고 비로소 인생의 행복을 찾았다. . . . 늘 자신을 C급 경제학자로 소개하고 있다.
박권일. . . . 야참 라면이 더 이상 꿀맛이 아니라는 걸 느낄 나이가 되었다. . . 그림을 전공하고 싶었던 섬세한 문학청년이며, 많은 50대들이 얼굴만 보아도 이유 없는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혈관에 비주류 정서(어떤 건지 몹시 궁금했다)를 채우고 살아간다. 미니멀리즘을 살아하고, 부산의 롯데 야구단 대신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하면서 선배들과 갈등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경제성보다는 예술성이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이다. 
저자 소개 밑에 88만원 세대에 대한 정의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지금의 20대는 상위 5% 정도만이 한전과 삼성전자 그리고 5급 사무관과 같은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된다. 세전 소득이다. 88만원에서 119만원 사이를 평생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88만원 세대’는 우리나라 여러 세대 중 처음으로 승자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세대들이다. 탈출구는 없다. 이 20대가 조승희처럼 권총을 들 것인가, 아니면 전 세대인 386이 그랬던 것처럼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것인가,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른바 386 세대에 속하는 나로선 우리의 20대가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것인지 의심스럽지만, 한두 번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20대가 이 책을 읽는다면 바리케이드와 짱돌은 아니더라도 더 나은 대안을 찾고자 애쓰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긴 했다. 물론 그 20대가 승자독식만을 추구하는 이기성을 버려야 하겠지만. 그러나 이 책은 20대보다 386이라 칭해지는 세대가 더 공감할 만하고 더 많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본다. 저자는 말한다. 1980년대 후반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다 쌍권총에 연발총에 기관총이 등장하는 학점을 받고 겨우겨우 졸업한 사람들도 좋은 대학만 나오면 취직을 ‘골라가며’ 했다고. ‘골라가며’까지는 아니겠지만, 실제로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일류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큰 기업에 들어간 한 선배는 영어도 좃나리(선배는 늘 그렇게 말했다) 못하는 자기가 이 기업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이른바 명문대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고, 행여 학교 명예를 더럽힐까봐 학교 다닐 때는 안 하던 영어 공부를 시도 때도 없이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좋던 시절이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많이도 변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명문대라는 딱지만으로는 대기업에 들어갈 수 없는 청년 실업 50만 시대가 되었다고.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일까? 저자는 지금의 20대가 ‘세대 간 경쟁’과 ‘세대 내 경쟁’ 속에 있다고 말한다. 관록으로 뭉친 40대와 50대가 버젓이 좋은 자리를 차지한 채 버티고 있는데, 그것을 뚫고 들어가려면 그들을 앞지를 수 있어야 하고 자신들끼리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승자독식 게임이 된다고. 지금의 20대가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저자는 IMF 이후 새롭게 형성된 한국 경제의 질서, ‘죽을 사람은 내버려두고 일단 살 사람이라도 살자’는 신자유주의라는 흐름 때문이라고. 이것은 다시 말해 ‘독과점화의 강화’이며 대기업은 살고 중소기업은 죽는 없는 질서인 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연봉 차액, 그로 인한 훗날의 삶이 빤해 보이는 것을 아는 20대라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고 얼마 되지 않는 대기업에 구직자가 몰리니 경쟁은 더욱 극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립이 점점 늦어지는 이유, 청소년 노동 착취, 공교육의 하락과 사교육의 열풍, 그에 따른 인질 경제, 지나친 엘리트주의, 대기업의 공룡화와 중소기업의 붕괴 등을 저자는 어렵지 않게 조목조목 따지고 든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불균형을 이렇게 표현한다.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한국 경제의 주도 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는 형국이다.” 20대, 10대, 그 후세대의 암울한 미래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외국의 사례들을 통해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한다. 그의 대안을 요약하고 있는 말은 다안성(diversatability)이다. 다양성과 안정성을 갖춘 사회야말로 건강한 사회라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오늘의 한국 자본주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끝으로 말한다. 
이 책에서 내가 저자의 제안에 가장 크게 공감한 것은 공교육의 확대였다. 68세대로 불리는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이룬 대학교육의 공립화를 예로 들며 현재의 사립대를 차츰 국립대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한 학기 등록금 1천만 원을 넘는(앞으로는 더 넘겠지만) 지금, 후세대의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추진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었다. 
-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알바의 세계에 이른바 ‘꺾기’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근무시간 중 손님이 거의 없는 시간(기껏해야 한두 시간)에 알바들에게 ‘나가 있으라’고 요구하고서 이 시간 동안의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기가 차서.
- 유럽 국가에는 ‘구청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지역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베푸는 일종의 후견인 제도로, 구청장이 주례를 해주고 이들에게는 임대주택과 주택보조금과 일자리에 대해 우선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 스웨덴에 유학 가는 사람들은 입학 허가서와 함께 입학 허가서를 받게 되는데, 스톡홀름에서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없으므로 만약 스타벅스를 좋아한다면 미리 충분히 마시고 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자상한 조언이 들어 있다고. 스웨덴은 자국의 자영업자들을 살리기 위해 프랜차이징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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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8-12-2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20대인 저도 이 책을 읽고 정말 많이 공감했습니다. ㅋㅋ 글 정말 쉽게 잘 쓰시는 듯 ㅋㅋ
사실 대학등록금을 모두 무료화 했던 유럽도 요새 들어서는 차츰 등록금을 걷기 시작한다는 말을 호주에 가서 독일애들한테 들은 기억이 나는 군요. 게다가 프랑스 같은 경우 그랑제꼴을 만들어서 아예 대학내의 서열화를 공고히 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역시 그래도 유럽인 게 복지 정책이 잘 되어 있으니깐, 어떤 일을 해도 왠만큼은 먹고 살 수 있고, 적어도 인간다운 생활은 가능한데, 한국에서는 빚을 지지 않는 이상 인간다운 생활이 불가능하니깐 그 정도 차이랄까요? 정말 엄청난 차이이지요;;
유럽의 제도를 벤치마킹 한다고 해서 우리나라도 저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유럽의 복지제도는 자국 내에서도 불만이 있는 게 사실이니깐요. 제가 원하는 것은 생각있는 어른들이나 젊은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길이 지금은 너무 요원해 보일지라도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렉 버렌트 외 지음, 공경희 옮김 / 해냄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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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작자의 말대로 이제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가 나를 진짜로 사랑하는지를, 그를 계속 마음에 담아 둔 채 애닳아 하는 것이 현명한 짓인지를 말이다.

그가 나에게 접근하지 않는다, 전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출장이 잦아 나와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 나와 섹스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판다, 술기운에만 나를 찾는다, 결혼 이야기를 피한다,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한다, 갑자기 연락을 끊는다, 그를 독차지할 수 없다, 나의 감정을 무시한다......

작가는 이런 남자를 두고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공동 집필자 중 한 사람인 그렉 버렌트는 여자 작가들이 득실거리는 <섹스 앤 시티> 작가실의 청일점이다. 회의 중에 여자 작가들이 간혹 털어 놓는 연애담을 들으면서, 그는 재능 있고 똑똑한 그들이 끝없는 환상 스토리를 이어가는 모습에 혀를 끌끌 찬다.

이 책은 우유부단한 남자들에게 목을 매는 헛똑똑이 여자들에게, 마음의 결정을 못 지은 채 헛된 희망만 품고 사는 여자들에게 일침을 놓는 책이다. 그렉 버렌트는 말한다. 엉뚱한 남자를 붙들고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남자가 여자한테 반하면 자신이 그렇다는 걸 꼭 알리고 싶어한다고. 전화하고, 불쑥 나타나고, 여자의 친구들을 보고 싶어하고, 자기 여자한테서 눈이나 손을 떼지 못하고, 섹스할 기회가 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고. 그런 마음을 조금은 과장해서, "다음날 새벽 4시에 대통령으로 취임하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라고까지 말한다. 과연???!!!

공동 집필자 중 또 한 명인 리즈 투칠로는 여자 작가들이 지배하는 <섹스 앤 시티> 작가실의 책임작가이다. 그녀는 마흔한 살의 독신녀다. 예쁘고, 늘씬하고, 똑똑하고, 돈 잘 벌고, 누구보다 멋진 여성이지만,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스스로를 "회색분자"라 일컫는다. 흑과 백을 오가며 때로는 상처 받고, 때로는 힘들어하고, 때로는 무지무지 외로워하며, 발렌타인데이를 평생 같이 보낼 수 있는 남자를 찾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민녀'다. 리즈는 결혼 5년 차인 그렉의 냉정한(실은 너무도 맞는) 조언들에 성질을 내지만, 결국에는 그의 말에 수긍한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여자들이 전전긍긍하는 연애 문제 51가지에 대한 그렉 버렌트의 답변, 각 장마다 그렉과 리즈가 내린 결론, 그렉의 조언에 따른 가상의 여자들의 성공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들이 털어 놓는 이야기들은 아주 현실감 넘치고, 그렉이 들려주는 답변들은 시원시원하고 통쾌하다. 가령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하지 않는 남자를 두고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바쁘다' 라는 말은 '개똥 같은' 단어이며, '나쁜 자식'들이 애용하는 말이다, '바쁘다'는 관계 맺기에 대형 참사를 유발시키는 말이다. . . . . . 남자란 존재는 아무리 바빠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얻고야 마는 종족이다." (49)

이 책은 한마디로 유쾌하고 통쾌하다. 일단 손에 들면 놓고 싶지 않아진다. 여자들의 숱한 고민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대에게 반할 남자는 꼭 있다,' '그대는 멋진 여자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해 주는 그렉의 답변은 자신감을 불쑥불쑥 솟게 만든다. 그 무엇보다, 뜨뜨미지근한, 혹은 진전 없는 관계 때문에 가슴 졸이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여자들에게 지지부진한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찾도록 돕는 지침서라고나 할까.  

그렉은 말한다. "여자들이여, 인생은 짧고 남자는 많다." "당신은 똑똑하고 귀하고 소중하고 멋있고, 원하는 걸 모두 누릴 사람"이다.

그래, 맞다.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인정하겠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마크가 한 말을 그대로 읊을 줄 아는 남자가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I like you just as you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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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 2005-04-0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너무 멋져요. ^-^;
남자들 참.. 문제 많죠.. 저 역시 ㅡ,.ㅡ;
이와 비슷한 한국책으로는 이시형 박사의
여자는 모른다가 있는데.. 제가 읽으면서도 참으로 뜨끔했다는.. ㅡㅡ^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멋지네요.

리안 2005-04-14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맘에 드는 책이네요. 읽어 봐야 겠어요~ 잘 보고 갑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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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을 하기를 꿈꾸고 실제로 사랑을 한다. 누구나 단 한 번의 절대불변의 사랑을 꿈꾸어 보지만, 실제로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이들이 첫 사랑에는 실패의 고배를 마시고, 그 쓰라린 경험으로부터 '내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으리라, 혹은 못하리라.' 같은 어줍잖은 다짐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길든 짧든), 누구나 언제 그(그녀)를 사랑했던가 싶게 또 한 번 또는 세 번 네 번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왜 인간은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는가. 첫 사랑의 시련을 통해 사랑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뼛 속 깊이 깨달았을 터인데도, 왜 다른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가. 사람에 따라 사랑의 양상이야 천태만상이겠지만, 만남과 이별을 통해 사랑하는 이들이 느끼는 감정에는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는 듯하다.  

 

3월의 따스한 봄볕에 봉오리를 막 열어젖히는 나무들처럼 사랑의 꽃이 이제 막 피려는 자, 사랑의 열매가 무르익어 행복감에 젖어 있는자, 부풀어 오른 열매가 터지면서 지리멸렬해 가는 감정에 어리둥절한 자, 꽃도 열매도 잎도 다 떨어져 사랑의 겨울을 맞이한 자, 실연의 아픔에 긴긴 날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울면서 혹은 멍하니 있는 자, 무엇보다 인간의 감정을 회의하며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겠노라 여기는 자. 그런 사람들은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아니면 인터넷 서점으로 들어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사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사랑에 관한, 정확하게는 연애에 관한 책이다. 제목과 촌스러운 표지만 보면 <하이틴 로맨스> 류의 유치한 이야기가 연상되지만, 책장을 열면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 구조는 지극히 단순하다. 1인칭 화자인 나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어쩌면 운명적으로) 클로이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을 느끼고, 우여곡절 끝에 본격적인 연애를 하고, 달콤쌉싸름한 연애의 절정을 맛본 뒤 결국에는 그녀에게 이별을 통고 받는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이런 평범하고 진부한 연애담이 드 보통의 손에서 독창적인 사랑 이야기로 돌변한다. 이 책은 사랑의 기승전결을 모두 담고 있다. 운명적인 만남에서부터 구애 과정, 연인의 이상화, 친밀성, 서로를 알아가는 기쁨, 행복 이면의 두려움, 거부 당하는 사랑, 돌연히 닥친 이별, 이별의 고통과 시련, 비참한 상황에 대처하기까지. 

 

이 책을 읽는 재미는, 흔하디 흔한 사랑의 우여곡절을 꼼꼼하게 따지고 드는 드 보통의 해석이다. 연애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과 그에 수반되는 감정과 생각을 저자는 수많은 문학가와 철학자들의 견해를 끌어들여 이야기한다. 몽테뉴, 스탕달, 롤랑 바르트,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비트게슈타인, 마르크스, 파스칼 등등. 그래서 이 책을 읽노라면 한 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무슨 철학서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은 저자가 풀어내는 생각들이 너무 현학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것은 저자가 스물 다섯이라는 패기만만한 나이에 이 책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로서는 그 젊은(어쩌면 어린) 나이에 그렇게 많은 책을 독파하고 사랑이라는 소재를 이 정도로 깊이 있게 다룬 것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학적인 냄새가 풍긴다고는 하나, 드 보통의 현학을 따라가는 것이 결코 싫지만은 않다. 그의 사변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그래, 맞아 맞아' 하며 무릎을 치게 하는 뛰어난 통찰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맥 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고, 누군가와의 만남에 <운명>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은 우연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고 싶어서이며, 사랑을 얻고자 할 때는 자아마저 내동댕이친 채 오로지 상대에게만 집중하지만, 상대로부터 사랑의 보답을 얻게 되는 순간 그/그녀에게 매력을 못 느끼며 달아나려 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면서 느끼게 되는 심경을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 늘 상식적인 생각처럼 유쾌한 과정은 아니다 . . . 기분 좋은 유사성과 마주칠 수 있는 가능성만큼이나 위협적인 차이와 만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는, 이런 차이와 마주치면 칠수록 더욱 잘 알게 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혼자 있을 때는,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있을 때는 잘 파악되지 않았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이 연인 앞에서만큼은 곧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 보통은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스탕달의 말을 끌어들여 연인을 나를 비추는 거울에 비유한다.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런 식의 철학적인 사유로 가득하지만, 이 책이 무겁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에피소드 중간중간 등장하는 드 보통의 재치스런 입담은 때때로 옅은 미소를, 때로는 박장대소를 일으키기도 한다. 가장 재미난 대목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버림을 받고 난 후 화자인 내가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었다. 나의 죽음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볼 수 없다는 깨달음에 화들짝 놀라 먹은 약을 다 토해 버리는 나, 심각한 자살을 이런 식으로 황당하게 처리하는 작가의 능청스러움에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자살 시도도 해보고, 자신의 슬픔에 취했다가 고통을 하나의 자질로 승화시키고, 사랑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급기야 금욕주의자에 이른 화자는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을까. 드 보통의 번뜩이는 기지와 비상한 통찰력을 잘 읽어내려 간 사람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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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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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경험했던 노동수용소 생활의 하루를 이반 데니스비치 슈호프라는 평범한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아침 다섯 시. 그 시간이면 늘 기상을 알리는 신호 소리가 울린다. 수용소의 삶은 지극히 비인간적이다. "수용소 생활에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침 식사 시간 십 분, 점심과 저녁 시간 오 분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다.


그러나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죄목은 참으로 모호하다. 어떤 특별한 정치적인 임무를 갖고 활동한 적도 없으면서, 스탈린 공포시대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억울한 죄목을 뒤집어쓴 채 수용소에 갇히고 만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지배 권력의 희생양이 돼 버렸다. 주인공 슈호프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수용소라는 억압적인 환경에서 매일매일을 어떻게든 살아내거나, 혹은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작가는 평범하고 약한 개인이 거대한 지배 권력의 폭압에 얼마나 비참한 운명으로 떨어질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그려보이고 있다.


무고한 개인이 정치권력에 희생양이 되는 것은 비단 스탈린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 전에도 늘 있었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으며, 어쩌면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그런 모든 폭압적인 권력에 대한 고발이자, 그러한 권력에 무참히 희생되는 약한 개인에 대한 인간적인 헌사이다. 츠바르도프스키는 이 작품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권력의 악용에 대한 사건들을 명확하고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이, 우리들이 할 일이다. 세월은 흐르고 우리들 모두는 사라질 것이며, 우리는 결국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숨쉬는 동안에 밝힐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마땅히 밝혀야 하며......이와 같은 비극이 앞으로는 절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슬프게도 인간의 비극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삶의 원리인가라는 의구심이, 때로는 확신마저 든다. 그래서 또 한 번 슬프게도 인간적인 삶을 향한 투쟁도 끝나지 않나 보다. 슈호프가 하루를 마감하며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고,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고, 저녁에는 순번을 대신 맡아 돈도 벌고, 잎담배도 산 것에 대해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며 감사하는 마지막 대목은 읽는 이의 가슴을 애잔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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