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

우리가 가진 것 없으므로
무릎쯤 올라오는 가을풀이 있는 데로 들어가
그 풀들의 향기와 더불어 엎드려 사랑을 나눈다고 해도
별로 서러울 것도 없다.
별 서러울 것도 없는 것이
이 가을볕으로다.
그저 아득히만 가는 길의
노자로 삼을 만큼 간절히
사랑은 저절로 마른 가슴에
밀물 드는 것이니
그 밀물의 바닥에도
숨죽여 가라앉아 있는
자갈돌들의 그 앉음새를
유심히 유심히 생각해볼 뿐이다.
그 반가사유를 담담히 익혀서
여러 천년의 즐거운 긴장으로
전신에 골고루 안배해둘 뿐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 없으므로
가을 마른 풀들을
우리 등짝 하나만큼씩만
눕혀서 별로
서러울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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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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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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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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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영혜를수 없었다. 누군가 입원비를 대야 했고, 누군가 보호자가되어야 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갔다. 등뒤에 끈질긴 추문을 매단 채가게를 꾸려나갔다. 시간은 가혹할 만큼 공정한 물결이어서,
인내로만 단단히 뭉쳐진 그녀의 삶도 함께 떠밀고 하류로 나아갔다. 그 가을 다섯살이던 지우는 이제 여섯살이 되었고, 환경이 좋고 입원비가 합리적인 이 병원으로 옮길 때쯤 영혜의상태는 매우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어린시절부터, 그녀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스스로 감당할 줄 알았으며, 성실은 천성과 같았다. 딸로서,
언니나 누나로서, 아내와 엄마로서, 가게를 꾸리는 생활인으로서, 하다못해 지하철에서 스치는 행인으로시까지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그 성실의 관성으로 그녀는 시간과 함께 보는 것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신원 영해가 갑자기 사리지지 않았다면, 비내리는 밤의 숲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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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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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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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올 때까지 아내는 변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풀만 먹게 되긴 했지만 나는 더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출두철미하게 변하면 다른 한 사람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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