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나는 사십대에 갓 접어든 사람이다. 이 책은 20대, 폭넓게는 10대를 겨냥한 것이지만, 책을 읽어본 40대 주부인 나로서는 모든 세대가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건 우리의 20대를 왜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는지, 20대가 정말 그 정도밖에 돈을 못 버는지, 내 아이가 20대가 되었을 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정말 희망은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였다. 경제에 문외한인 나이지만 이 책은 그런 궁금증을 제법 쉽게 풀어주고 있었다. 또한 재미있고 유익했다. 
모든 책이 그렇듯 책의 겉표지를 넘기면 저자 소개가 나온다. 이 소개글이 사뭇 흥미로웠다. 흔한 약력 소개가 아니었다. 
우석훈 . . . 〈한겨레〉에 ‘여기는 명랑국토부’를 연재하던 시절을 행복했던 기억으로 가지고 있으며, 고액 연봉 대신 ‘가난한 자유’를 선택하고 비로소 인생의 행복을 찾았다. . . . 늘 자신을 C급 경제학자로 소개하고 있다.
박권일. . . . 야참 라면이 더 이상 꿀맛이 아니라는 걸 느낄 나이가 되었다. . . 그림을 전공하고 싶었던 섬세한 문학청년이며, 많은 50대들이 얼굴만 보아도 이유 없는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혈관에 비주류 정서(어떤 건지 몹시 궁금했다)를 채우고 살아간다. 미니멀리즘을 살아하고, 부산의 롯데 야구단 대신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하면서 선배들과 갈등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경제성보다는 예술성이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이다. 
저자 소개 밑에 88만원 세대에 대한 정의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지금의 20대는 상위 5% 정도만이 한전과 삼성전자 그리고 5급 사무관과 같은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된다. 세전 소득이다. 88만원에서 119만원 사이를 평생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88만원 세대’는 우리나라 여러 세대 중 처음으로 승자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세대들이다. 탈출구는 없다. 이 20대가 조승희처럼 권총을 들 것인가, 아니면 전 세대인 386이 그랬던 것처럼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것인가,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른바 386 세대에 속하는 나로선 우리의 20대가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것인지 의심스럽지만, 한두 번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20대가 이 책을 읽는다면 바리케이드와 짱돌은 아니더라도 더 나은 대안을 찾고자 애쓰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긴 했다. 물론 그 20대가 승자독식만을 추구하는 이기성을 버려야 하겠지만. 그러나 이 책은 20대보다 386이라 칭해지는 세대가 더 공감할 만하고 더 많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본다. 저자는 말한다. 1980년대 후반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다 쌍권총에 연발총에 기관총이 등장하는 학점을 받고 겨우겨우 졸업한 사람들도 좋은 대학만 나오면 취직을 ‘골라가며’ 했다고. ‘골라가며’까지는 아니겠지만, 실제로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일류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큰 기업에 들어간 한 선배는 영어도 좃나리(선배는 늘 그렇게 말했다) 못하는 자기가 이 기업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이른바 명문대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고, 행여 학교 명예를 더럽힐까봐 학교 다닐 때는 안 하던 영어 공부를 시도 때도 없이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좋던 시절이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많이도 변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명문대라는 딱지만으로는 대기업에 들어갈 수 없는 청년 실업 50만 시대가 되었다고.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일까? 저자는 지금의 20대가 ‘세대 간 경쟁’과 ‘세대 내 경쟁’ 속에 있다고 말한다. 관록으로 뭉친 40대와 50대가 버젓이 좋은 자리를 차지한 채 버티고 있는데, 그것을 뚫고 들어가려면 그들을 앞지를 수 있어야 하고 자신들끼리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승자독식 게임이 된다고. 지금의 20대가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저자는 IMF 이후 새롭게 형성된 한국 경제의 질서, ‘죽을 사람은 내버려두고 일단 살 사람이라도 살자’는 신자유주의라는 흐름 때문이라고. 이것은 다시 말해 ‘독과점화의 강화’이며 대기업은 살고 중소기업은 죽는 없는 질서인 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연봉 차액, 그로 인한 훗날의 삶이 빤해 보이는 것을 아는 20대라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고 얼마 되지 않는 대기업에 구직자가 몰리니 경쟁은 더욱 극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립이 점점 늦어지는 이유, 청소년 노동 착취, 공교육의 하락과 사교육의 열풍, 그에 따른 인질 경제, 지나친 엘리트주의, 대기업의 공룡화와 중소기업의 붕괴 등을 저자는 어렵지 않게 조목조목 따지고 든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불균형을 이렇게 표현한다.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한국 경제의 주도 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는 형국이다.” 20대, 10대, 그 후세대의 암울한 미래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외국의 사례들을 통해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한다. 그의 대안을 요약하고 있는 말은 다안성(diversatability)이다. 다양성과 안정성을 갖춘 사회야말로 건강한 사회라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오늘의 한국 자본주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끝으로 말한다. 
이 책에서 내가 저자의 제안에 가장 크게 공감한 것은 공교육의 확대였다. 68세대로 불리는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이룬 대학교육의 공립화를 예로 들며 현재의 사립대를 차츰 국립대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한 학기 등록금 1천만 원을 넘는(앞으로는 더 넘겠지만) 지금, 후세대의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추진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었다. 
-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알바의 세계에 이른바 ‘꺾기’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근무시간 중 손님이 거의 없는 시간(기껏해야 한두 시간)에 알바들에게 ‘나가 있으라’고 요구하고서 이 시간 동안의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기가 차서.
- 유럽 국가에는 ‘구청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지역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베푸는 일종의 후견인 제도로, 구청장이 주례를 해주고 이들에게는 임대주택과 주택보조금과 일자리에 대해 우선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 스웨덴에 유학 가는 사람들은 입학 허가서와 함께 입학 허가서를 받게 되는데, 스톡홀름에서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없으므로 만약 스타벅스를 좋아한다면 미리 충분히 마시고 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자상한 조언이 들어 있다고. 스웨덴은 자국의 자영업자들을 살리기 위해 프랜차이징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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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8-12-2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20대인 저도 이 책을 읽고 정말 많이 공감했습니다. ㅋㅋ 글 정말 쉽게 잘 쓰시는 듯 ㅋㅋ
사실 대학등록금을 모두 무료화 했던 유럽도 요새 들어서는 차츰 등록금을 걷기 시작한다는 말을 호주에 가서 독일애들한테 들은 기억이 나는 군요. 게다가 프랑스 같은 경우 그랑제꼴을 만들어서 아예 대학내의 서열화를 공고히 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역시 그래도 유럽인 게 복지 정책이 잘 되어 있으니깐, 어떤 일을 해도 왠만큼은 먹고 살 수 있고, 적어도 인간다운 생활은 가능한데, 한국에서는 빚을 지지 않는 이상 인간다운 생활이 불가능하니깐 그 정도 차이랄까요? 정말 엄청난 차이이지요;;
유럽의 제도를 벤치마킹 한다고 해서 우리나라도 저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유럽의 복지제도는 자국 내에서도 불만이 있는 게 사실이니깐요. 제가 원하는 것은 생각있는 어른들이나 젊은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길이 지금은 너무 요원해 보일지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