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2 #시라는별 54 

작은 신이 되는 날 
- 김선우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내가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당신을 향해 
사랑한다
말할 수 있어 
말할 수 없이 찬란한 날 

먼지 한점인 내가 
먼지 한점인 당신을 위해 
기꺼이 텅 비는 순간 

한점 우주의 안쪽으로부터 
바람이 일어 
바깥이 탄생하는 순간의 기적 

한 티끌이 손잡아 일으킨 
한 티끌을 향해 
살아줘서 고맙다 
숨결 불어넣는 풍경을 보게 되어 
말할 수 없이 고마운 날 


9월의 첫 시집은 김선우의 최신작 『내 따스한 유령들』 을 집어들었다. 2012년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에서 

​지금 마주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라고 말했던 시인은 이 시집에서 그 생각을 더 넓고 더 깊게 파고 들어간다. 우리 모두는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티끌˝처럼 작은 존재지만, 한 티끌이 스러지려는 또 한 티끌을 일으켜 주려 손을 내미는 것, 그런 것이 혁명이고 아름다움이라고 시인은 읊조린다. 나는 김선우 시인의 이런 시선이 참 좋다. 이 시인에게선 언제나 사람 내음이 풀풀 난다. 우리가 우리 속의 비루함들을 조금이나마 털어낼 길, 그 길을 시인은 ‘연대‘로 본다.

인간이 만든 세상의 참혹함

그럼에도 존재하는
어떤 아름다움들

​고통에 연대하는 간곡한 마음들.

작고 여리고 홀연한 그 아름다움들에 기대어
오늘이 탄생하고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고맙습니다. 세상의 무수한 스승들이여. (<시인의 말> 중)

김선우 시인이 지난 1년간 많이 아팠던가 보다. 자신의 건강을 염려해준 독자들에게 응답을 하는 마음으로 이 시집을 엮었다고 한다. 그에게 시인의 책무란 ˝시로 눈물과 기쁨과 위로와 아름다움이 되는 자리를 돌보는 일˝이기에.

김선우 시인을 누나라고 부르는 박준 시인의 추천사는 부러운 정겨움을 담뿍 담고 있다.  

<『내 따스한 유령들』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사실 나는 시인의 시를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언제나 그랬듯 읽을 뿐이다. ‘너 무슨 일 있지‘ 하고 안부를 물어주는 시. ‘나도 무슨 일 있어 그런데 이제 괜찮아‘ 하고 말해 오는 마음. 그리고 이 끝에서 들려오는 깔깔.>

깔깔. 웃음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 김선우. 아침저녁 날은 스산해졌지만 이 시집으로 마음은 더욱 따스해질 듯하다.

더불어, 글로만 마주하는 당신들, 그대들도 나의 신이자 스승이자 내 따스한 유령들입니다.^^    ​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9-02 10: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등!💓ㅅ💓

행복한책읽기 2021-09-02 15:23   좋아요 4 | URL
감솨~~~^^

scott 2021-09-02 16:47   좋아요 3 | URL
행복한 책읽기님이 북플에서 시를 읽어주시는 날에는
그 시를 읽은 저는 하루 죙일 올려주신 시 구절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비록 전 북플에서 티끌 같은 존재 이지만
저에게 행복한 책읽기님의 시와 사진이 담긴 포스팅은
우주 만큼 깊고 생태계의 생물 처럼 모르는 시와 시어들을 배우며
티끌에서 솜뭉치로 조금씩, 배워갑니다 ^ㅅ^

행복한책읽기 2021-09-02 22:08   좋아요 2 | URL
무슨 말씀. scott님은 북플계 독보적 거목이에요. 저야말로 scott님에게서 넘 많은걸 배우는걸요. 그렇다면 플친들은 상부상조하는 사이로군요. 제겐 여기가 참 새로운 세계입니다. ^^

초딩 2021-09-03 00:30   좋아요 1 | URL
정녕 올 1등입니다 ㅎㅎ

청아 2021-09-02 10: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시집들을 찾아내는 책읽기님이야 말로 인간미 풀풀 글에서도 정겨움 줄줄~^^*♡

행복한책읽기 2021-09-02 15:25   좋아요 4 | URL
어. 제 인간미가 북플 바람 타고 미미님 계신 곳까지 날아간 겁니까. 아싸. 시 내음을 만방에 퍼뜨리겠습니다.^^

새파랑 2021-09-02 12: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행복한책읽기님은 큰 신 입니다 😆 작은 신이 되는 날 너무 좋네요. 시가 아름다워요~!!

행복한책읽기 2021-09-02 15:27   좋아요 4 | URL
와우. 새파랑님 덕에 이 작은 사람 졸지에 큰 신으로 승격했네요. 9월 경사입니다. 감사해요^^

라로 2021-09-02 12:4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우주의 먼지에서 시작한 제가 이제는 우주의 덩어리,,ㅎㅎㅎㅎㅎㅎㅎ
암튼 시 좋고요, 늘 시를 소개해 주시는 책님도 좋고요 제가 좋아하는 책이 두 권이나 보여서 좋아요.^^(코스모스와 티끌같은 나)

행복한책읽기 2021-09-02 15:29   좋아요 4 | URL
코스모스를 읽은 덕에 이 시가 더 와 닿았어요. <티끌 같은 나>는 아직 안 읽었으나, 라로님이 이 책 읽고 느무느무 좋았다고 올린 글이 생각 나, 이 시랑 넘 어울려 같이 올렸답니다. 북플의 파워!! 라로님은 우주의 덩어리!! ^^

초딩 2021-09-03 00: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그 티끌이 되어도 서로 느끼고 알기를 바랍니다 :-) 너무 좋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9-03 00:41   좋아요 3 | URL
그죠. 이곳은 티끌들이 북적대며 끌어주고 당겨주고 밀어주는 곳^^

희선 2021-09-03 01: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 나온 걸 보고 행복한책읽기 님이 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했는데, 구월에 보시는군요 저는 그냥 스치듯 봐서 내 따스한 유령들이 뭔가 했습니다 좋은 뜻이군요 사람은 우주 먼지 같죠 그걸 잊지 않아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네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9-06 18:15   좋아요 2 | URL
네. 김선우 시인 좋아요. 이번 시집은 오랜만이어서 더 반갑답니다^^

han22598 2021-09-05 13: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티끌같은 존재이지만,..티끌이기만 하지 않은 존재.
심져 때로는 위대한 티끌이 되게 만들어 주는 티끌들.
아. 김선우 작가님...시 너무 좋네요. 행복한님 덕분에 알게 되어서 장바구님에 담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9-06 18:17   좋아요 1 | URL
ㅎㅎㅎ 한님도 시의 마력에 빠지실듯^^

얄라알라 2021-09-05 2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따뜻한 유령이 기꺼이 되겠습니다^^ 따뜻한 글 기분 좋게 읽고 갑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9-06 18:17   좋아요 1 | URL
이미 유령이십니다. 신기하죠. 글에도 온기가 있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