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학교의 슬픔
다니엘 페낙 지음, 윤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6월
평점 :
20210611
초반부엔 정말 키득키득 웃으면서 읽었는데, 뒤로 갈수록 내용이 점점 진지해졌다. 그러나 다니엘 페낙은 결코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끝까지 웃겼다.
교사가 된 열등생이 프랑스 교실에서 자신이 겪은 열등생의 경험과 교사가 되어 자신과 비슷하면서 다른 열등생들을 가르친 경험담을 기록한 책이다. 훌륭하다. 내 아이가 이런 샘을 만난다면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도 학교 가는 길이 적어도 지옥철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다는 저자가 어떻게 이런 유머 감각을 가졌을까 궁금했는데, 답은 역시 유전자였다. 알파벳 a를 외우는 데 꼬박 일 년이 걸린 저자에게 아버지가 말한다.
"걱정할 거 없어. 어쨌거나 이십육 년 뒤면 알파벳은 완벽하게 알게 되겠지."
아버지와 자식의 공모 방식. 심각한 일을 "웃어넘기는 쪽"으로 전환한 것이다. 어머니는 자식이 교사이자 작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했고 노인이 되어서도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래, 넌 뭘해 먹고 사니?"라고 물었다. 어쩔겨.
나는 저자의 아버지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느림을 느긋하게 바라볼 줄 아는 엄마가.
다니엘 페낙은 공부를 못하는, 그것도 지지리도 못하는(꼴찌 아니면 꼴지 바로 앞) 학생이어서 열등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
선생들 자신은 적어도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으므로 열등생들이 서서히 만들어가는 무지상태를 이해하는 일에서 절대적으로 무능하다. 선생들의 가장 커다란 장애는 자기들은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상태를 상상하지 못하는 그 무능에서 기인할 것이다.(360)
나는 저자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나는 알아도 아이가 모르는 상태를 상상할 줄 아는 엄마가.
"날개가 부러진 제비떼" 같은 아이들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는 방법으로 저자가 제시한 것은 황당하면서 엄청나다. 이건 밝히지 않겠다.^^
쓰고 싶은 말이 더더더 많지만, 우선은 밑줄로 대신한다.
두려움은 분명 학창 시절 내내 나의 가장 큰 문제였고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교사가 된 뒤, 나의 급선무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두려움을 치료하고 방해물을 치워버려 앎이 스며들 기회를 갖게 해주는 일이었다. - P30
"선생님은 아무것도 몰라요. 제 나이 열두 살하고도 반년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요." - P75
우리의 ‘공부 못하는 아이들‘(앞날이 없다고 여겨진 학생들)은 학교에 결코 홀로 오지 않는다. 교실에 들어서는 것은 한 개의 양파다. 수치스러운 과거와 위협적인 현재와 선고받은 미래라는 바탕 위에 축적된 슬픔, 두려움, 걱정, 원한, 분노, 채워지지 않는 부러움, 광포한 포기, 이 모든 게 켜를 이루고 있는 양파. 저기 다가오는 학생들을 보라. 성장해가는 그들의 몸과 책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거운 짐들을. 수업은 그 짐이 땅바닥에 내려지고 양파 껍질이 벗겨져야만 진정으로 시작될 수 잇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단 하나의 시선, 호의적인 말 한마디, 믿음직한 어른의 말 한마디, 분명하고 안정적인 그 한마디면 충분히 그들의 슬픔을 녹여내고 마음을 가볍게 하여, 그들을 직설법 현재에 빈틈없이 정착시킬 수 있다. - P81
"아이들과 함께 있거나 숙제를 검토할 때 나는 딴 데 가 있지 않아요. 내가 다른 곳에 있으면 절대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없죠." - P161
"아이들 각자는 자기 악기로 소리를 내고 있는 건데, 그걸 거스를 필요는 없어요. 까다로운 일은 우리의 음악가들은 잘 꿰뚫어 보고 조화를 찾아내는 거죠. 좋은 학급이란 발맞춰 행진하는 군대가 아니라 모두 함께 같은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예요. - P162
앎이란 무엇보다 육체적인 것입니다. 앎을 포착하는 것은 우리의 귀와 눈이고, 그것을 옮기는 것은 우리의 입입니다. - P190
내 직업의 일부는 스스로를 가장 많이 포기해버린 내 학생들을 설득해, 따귀보다는 정중한 대우가 더 영향력 있는 반성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었다. - P206
날개가 부러진 제비떼를 학교생활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는 일. 그때마다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길을 따라가는 데 실패하고, 몇몇은 다시 깨어나지 못해 카펫에 그대로 남아 있거나 다음번 유리창에 목이 부러지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은 제비들을 묻어준 정원의 깊숙한 구덩이처럼 우리 의식 속에 회한의 구멍을 남긴다. 하지만 매번 노력하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학생이니까. 이 아이 혹은 저 아이에 대한 호감이나 반감(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인 문제이긴 하지만!)의 문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 대한 우리 감정의 정도를 말하는 건 너무 쉽다. 지금 문제가 되는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 기절한 제비는 되살려야 하는 제비일 뿐이다. 그뿐이다. - P3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