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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났어 ㅣ 작가의 발견 2
배명훈.김보영.박애진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누군가를 만났어』를 만나고
1. 들어가며
최근 문단에서는 장편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창비에서 장편소설 공모전을 시작했고, 세계일보에서 주최하는 세계문학상은 이제 3회에 이르렀다. 세계적인 출판 시장의 흐름이 장편이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국내 문단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문예지에 단편을 발표해가며 소설집을 엮어 낼 뿐, 장편을 발표하는 일은 드문 편이었다. 그 사이 일본 소설들이 국내 베스트셀러 시장을 점령해 버렸다.
국내의 장르문학은 상황이 다른 편이다. 가장 먼저 자리를 잡고 지금도 꾸준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무협 소설은 애초부터 장편 위주의 장르다. 국내에 출간된 무협소설 단편집은 최근에 나온 진산의 『진산 무협 단편집 : 더 이상 칼은 날지 않는다』밖에 없다. 팬터지 소설도 98년 『드래곤 라자』가 출간된 이래 수십 종의 장편 소설들이 출간되었으나, 팬터지 장르 역시 장편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세 권의 단편집이 나왔지만, 고정 독자층이 있는 이영도의 개인 단편집을 빼고는 많은 판매고를 올리지 못하고 사라졌다.
SF는 어떨까? 외국 작가의 단편집이라면 꽤 많이 나왔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행복한 책읽기), 『바람의 열두 방향』(그리폰 북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열린책들) 등. 다양한 작가의 단편이 실린 앤솔러지 단편집은 그 전부터도 여럿 출간되었다. 그러나 국내 작가로는 그동안 듀나만이 유일하다시피 했다. 듀나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태평양 횡단 특급』을 출간했으며 최근에는 이가서에서 『대리전』을 출간했다. 아니, 사실 SF는 단편, 장편을 따지기 전에 애초에 국내에서 복거일과 듀나를 제외한 SF작가라는 타이틀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문단이 단편 위주였던 것은 그만큼 많은 문예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발표할 공간이 많기 때문에 작가들이 다량의 수준 높은 단편들을 창작할 수 있었다. 문학동네, 창작과 비평, 문학판, 문학과 사회, 작가세계, 세계의 문학, 문예중앙 등등.
그러나 장르 단편은 어떠할까? 환상소설은 초기에 통신연재에서 종종 단편이 올라오곤 했다. PC통신사마다 있었던 환타지 동호회에서는 단편 공모전을 열기도 하고, 그걸 모아 단편집을 인쇄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단편 문학이 꽃피울만한 마땅한 공간은 없었다. 장편과 단편은 각기 장단점이 있다. 한쪽에 쏠려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타까웠으나 최근에는 그 흐름이 바뀌었다.
먼저, 환상문학웹진 거울(http://mirror.pe.kr )이 꾸준히 수준 높은 작가들의 단편을 발표할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다른 대형 장르 연재 사이트들이 장편 위주로만 디자인 된 것에 비해, 거울은 외국의 단편 소설도 번역해서 싣기도 했고, 매년 웹진에 올라온 단편을 묶어 단편집을 꾸준히 출간했다. SF 전문 잡지도 출간되었다. 과학소설 전문 무크 『HAPPY SF』가 행복한 책읽기 출판사에서 2호까지 출간되었다. 이후 SF와 환상문학을 다룬 월간지 『판타스틱』도 출간 준비 중에 있다. 지금은 중단되어 안타까움을 주는 과학기술창작문예는 수준 있는 SF 작가들을 발굴하는데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이런 새로운 변화들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났어』
를, 만났다.
2. 장르 문학의 비상
『누군가를 만났어』는 행복한 책읽기에서 출간한 작가의 발견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첫 번째는 일본 단편문학의 거장 아토다 다카시의 소설집, 『시소게임』) 행복한 책읽기는 그동안 척박한 국내 SF 도서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외국의 SF 도서를 번역해 출간해왔다. 그리고 드디어 처음으로 국내 창작 SF 단편집을 출간한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활동하던 세 명의 필진들의 단편을 엮었다.
2005년 <스마트 D>로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부문을 수상한 '배명훈',
2004년 <촉각의 경험>으로 과학기술 창작문예 중편부문을 수상한 '김보영',
2001년 <왜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지?>로 제1회 이매진 단편 공모전 가작을 수상한 '박애진' 등이다.
튼실해진 한국 장르문학의 현주소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단편집이며, 국내 창작 SF에 목말라했던 독자들이나, 새로운 기발한 상상력을 찾고 싶은 독자들에게 더 없이 좋은 도서가 될 것이다. 각 작가마다 5편의 단편을 실었는데 이제 한 편씩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배명훈 - 처음 알게 된 것은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 부문을 수상했을 때이다. 지적 재산권에 대한 재미있는 상상을 다룬 「스마트 D」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 구성 형식과 지적재산권이라는 소재 그리고 능청스런 작가의 입담이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이후,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꾸준히 단편을 발표해왔고, 이번 단편집에는 환상문학웹진에 실린 단편들 중 5편만 추려서 실었다. 과학소설 전문 무크 『HAPPY SF』 제2호에 단편 「스윙 바이」가 실렸다.
이웃집 신화
평범한 일상을 묘사하면서 독자를 끌어들이는 솜씨가 탁월하다.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능력은 이야기꾼으로써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재능이 아닐까? 처음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천장의 신음소리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나중에 가서는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확장시키면서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1층 남자 → 2층 남자 → 2층 남자의 죽은 아내 → 옆집 남자로 이어지는 화자의 변화는 자연스럽고, 열반에 이르는 과정은 기발하기까지 하다. 읽을 때는 재미있게 읽었으나 읽고 나서는 SF소설의 클리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무튼 소설집의 도입부, 첫 번째로 수록된 작품이라 그런지 가벼운 소품 같은 느낌도 있으나 처음 장르 소설을 접하는 독자라면, 괜찮은 시작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만났어
이 단편집의 표제작이며 이전에 웹에서(환상문학웹진) 읽었을 때, 재미있게 읽어서 바로 리플까지 달았던 단편이다. 가장 잘 썼기 때문에 표제작일까?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정 이상의 재미를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보단 다른 단편들의 제목 중에 마땅히 표제로 할 만한 제목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종의 기원」이라 하면 무슨 진화학 서적 같을 테고, 「선물」하면 기존에 나온 선물용 도서로 오인 받을 테니)
앞에 실린 단편보다 양은 꽤 길지만 그보다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결말까지 찬찬히 읽어나가면 호수에 파문이 그려지듯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화성 탐사를 하러 우주로 떠나간 연인을 지구에 남겨진 남자가 바라보며 편지를 쓴다. 그 편지는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여기에도 우주가 있다고, 그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공룡을 발굴하는 중국팀, 불발탄을 찾아 회수하려는 일본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심령 현상을 체크하려는 심령고고학, 한국팀. 세 팀이 한 장소에서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 주인공인 화자는 차분한 어투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편지를 적는다.
두 번째 읽는 거지만 책으로 읽을 때 느낌은 또 색달랐다. 그래도 감동은 같았고, 다시 읽으면서 앞에서 놓쳤던 문장들이 새롭게 읽혀서 더욱 좋았다.
임대전투기
한 마을에 떨어진 정체불명의 전투기와 기억을 잃은 조종사. 마을 사람들의 행동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듯한, 풍자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나중에 가서는 우주 전체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맙소사! 우주에 있는 수십 개의 별들과 지성체들도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 있다니!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가 아닌가. 앞서 읽었던 「이웃집 신화」와 마찬가지인 돈을 지급하는 방법에 대한 코믹한 상황 전개가 웃음을 준다. 한편, 마지막은 씁쓸한 느낌까지 전해주는데, 이미 ‘임대’라는 단어 안에 그런 모든 게 포함되어 있던 건 아닐까.(아참, 임대전투기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나는 외쳤다. 오, 이건! 나이트워치! 멋지겠다.)
책 편집 상 작가의 단편에 들어가기 전에 소설 본문에서 인용한 글귀들이 적혀 있는데, 배명훈 작가는 바로 이 임대전투기의 한 부분이 인용되어 있었다. 단편들을 읽어나가면서 그 인용이 얼마나 적절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본문 속 여자가 조종사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지만, 이는 독자가 작가에 대해 평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웃으면서 그 말을 하는 동안 나도 어느새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말았어요. 야, 이 인간 뻥 한 번 제대로 치네 하고 말이에요.” 「임대전투기」중에서
철거인鐵巨人 6628
세기말적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비가 오는 날 차 속에 들어가 아늑함을 느끼는 게 실감이 났고, 얼마 전에도 북한에서 핵폭발 실험을 한 요즘, 전쟁 위험 또한 실감이 났다. 한국에서만, 한국인이기에만 더욱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소설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시체를 세는 것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간 주인공의 직업도 흥미로웠고, 6628이라는 번호판을 가진 자동차에게도 애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과의 이야기까지.
무엇보다도 마지막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숨 가쁘지 않게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왠지 빠르게 읽히는 소설로 마지막에는 그 하이라이트가 많은 사람들에게 근사하게 읽힐 것 같았다. 작가도 분명 이 마지막 부분을 적고 싶어서 소설을 시작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355 서가
대학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어찌 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토록 흥미롭게 끌어가는 것은 역시 작가의 힘에 있다. 중반부까지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약간 힘이 빠지는 느낌도 있었다. 아무래도 앞서 다룬 작품들이 좀 무겁고 SF를 다룬 이야기들이 많아 그런 쪽을 기대했다가 그게 아니라서 실망을 한 탓도 있는 것 같다. 귀신이라니. 마지막 때문에 꽁트 같은 느낌도 받는다.
김보영 - 2004년 과학기술창작문예 중편 부문을 수상한 「촉각의 경험」은 이제는 너무나 흔해진 복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흥미롭게 적었다. 중요한 건 무엇을 쓰는가, 가 아니라 어떻게 쓰는가, 이다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소설 전문 무크 『HAPPY SF』 제2호에 삼국사기 문헌을 SF와 결합하여 독특한 느낌을 주는 단편 「진화신화」가 실렸다.
종의 기원
입장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실이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 단순히 성 역할을 바꾼 역지사지 논리를 바탕으로 전개된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처럼. 소설은 다양한 사고를 실험할 수 있고 과거로도 미래로도 어디로든 어떤 모습으로도 갈 수 있는 것이다. SF소설에서 로봇만이 등장하는 세계는 흔했다. 이상 문학상에 실렸던 복거일의 SF 단편 「내 얼굴에 어린 꽃」역시 그랬다. 그러나 이 작품은 로봇만이 남은 세계이며 오직 무기질만이 남은 세계이다. 디스토피아라고도 할 수 없는, 인간, 아니 유기생명체가 없는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로봇들은 종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다. 독자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으로써 로봇들이 고민하는 내용을 보며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사건이 풀려나갈까 기대도 하게 되고 흥미를 갖는다. 그러면서 그들의 모습에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앞에 배명훈 작가의 글에서 따뜻한 느낌이나 일상을 적어나가도 흥미로운 입담으로 인한 흡인력, 반전을 통한 재미 등을 느꼈다면 김보영 작가의 글에서는 과학 소설이 갖고 있는 과학적 지식의 탄탄함과 단편보다 한층 무거운 중편의 무게감 그리고 SF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경이감(sense of wonder)을 준다.
미래로 가는 사람들 起
미래로 가는 사람들은 각기 독립적인 단편이 아니라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연작 소설이다. 그 첫 번째는 ‘우주의 끝을 찾아내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기(起) 편으로 미래로 가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에 대한 것을 설명해 주는 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매 편마다 등장하는 화자인 성하가 메인이라기보다는 셀레네가 주인공이라고 보이는 소설이다. 파우스트의 인용이나 우주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 등이 흥미롭게 읽히나 큰 갈등이나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전체 이야기를 생각할 때, 시작으로써는 훌륭하다고 보였다.
미래로 가는 사람들 承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해야 할 일’
듀나의 단편에서나 외국 SF단편에서도 봤던 지성인이 미개인들에게 가서 신으로 추앙 받는다는 클리셰를 활용한 단편이다. 단순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적절한 암시와 반전으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고 있으며 앞의 단편에서 부각될 수 없었던 성하라는 캐릭터를 주체적인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다.
미래로 가는 사람들 轉
세 번째 이야기는 ‘광속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부제가 붙은 단편이다. 여기서는 다시 광속 여행에 대한 과학적 지식들이 등장하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흡인력을 갖게 만들고 새로 등장하는 두 캐릭터도 개성이 살아있다. 앞의 두 단편 보다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느낌이 강하다. 공허한 우주의 무게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미래로 가는 사람들 合
‘네 번째의 축으로 가는 법’은 이 연작 소설의 종막이다. 죽음에 이른 주인공 성하. 그리고 우주도 모든 게 사라지고 죽음을 향하고 있는 암담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초반부터 느껴졌다. 클러스트라는 존재와의 만남. 그리고 네 번째 축으로 또다시 여행을 떠나려는 성하. 지금까지 성하의 여정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클러스트가 자신들의 존재 목적을 발견했듯이 성하도 마침내 우주의 끝에 다다라도 발견하지 못했던 목적지에 드디어 도착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는 전체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가 떨어지고 힘이 떨어진 면도 있었다. 너무 예정된 결말이었고 크나큰 갈등이나 새로운 흥미 요소, 기존의 소설들과의 차별성 등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앞의 세 편까지 묶어서 이야기를 끝내는 합(合)의 역할로는 충분했겠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줬다면 이 연작 전체가 더 힘을 받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대로는 무미건조한 결말이라는 느낌. 그래서 전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도 모호하게 되고, 앞의 이야기들에서 느낀 재미도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러 SF소설에서 다룬 새로운 창조의 시작인 클리셰가 진부하게 느껴진 탓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소프트맥스의 패키지 게임 창세기전3에서 느꼈던 어떤 허망감 비슷한 게 비슷한 엔딩에서 또다시 느껴진 탓도 있었다.)
박애진 - 환상문학웹진의 운영자. 이 책에 실린 박애진 작가의 단편들은 앞의 단편들과는 달리 SF 단편이 아니라 환상소설들이다. 이 책이 SF독자뿐만 아니라 팬터지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선물
뱀파이어가 나오는 소설이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 게임에서 다루어진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참신하게 소설 속으로 끌어왔다. 뱀파이어가 현실에 버젓이 존재하고 인식되는 세계에서 고독하고 외로운 남자 재민과 뱀파이어 혜연의 이야기다. 무겁고 갑갑한 현실은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에게도 똑같았고 비가 오는 날 둘은 모두 비에 젖어 있었다. 서로 다른 일상을 살던 그들이 만나게 된 순간, 그들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된 것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 또한 대부분 그렇다. 그러나 분명 변화는 있는 것이다.
신체의 조합
신체가 불완전한 존재들이 신체를 조합하고 먹어가며 사는 세계. 두 개의 통로 중 하나는 잘린 신체들이 쏟아져 나오고 다른 통로는 모든 것을 갈아버린다. 인구는 점차 줄고 있다. 주인공은 생각한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고. 그 순간, 읽고 있는 독자들은 거기에 몰입된다. 감정 이입이 되어서 같이 생각한다. 그래,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순 없어. 주인공을 따라 독자들도 긴 여정에 오른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서.
그러나 그 새로운 세계가 밝고 아름다운 세계일까? 마치 테드 창의 단편 「바빌론의 탑」처럼 새로운 세계 인식을 보여주며 피와 살점이 튀는 강렬한 이미지를 전해주는 단편이다. 주인공을 응원하며 그 뒤를 따라 소설 속에 몰입되지만 그 세계는 너무도 강렬하고 잔혹하며 처절해서 다시는 따라가 볼 엄두가 나지 않는 잔인한 세계이다. 어쩌면, 그 세계가 비단 글자 속에만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의 오리 벤쟈민 프랑크프루트를 죽였나
광기를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작가는 잔인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자유롭게 다루며 독자들을 글 속에 빠트린다. 그 강렬한 광기를 거부하지 않고 모조리 빨아들이게 만든다. 글을 읽을 수록 하던 독자의 의심이 마침내 반전 없이 밝혀지지만 그래도 기억에 오래 남아있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단편이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인형 네므
앞의 단편이 소품 격으로 읽혔다면 이 단편은 좀 더 나아간 작품으로 보였다. 누구나 어릴 적에 보석을 선택해서 인형을 하나씩 가진다는 비현실적인 환상적인 설정이었고, 이를 굉장히 능숙하게 적어나가 그런 현실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거기에 작가 특유의 잔인함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이야기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친구의 정체에 대해서는 짐작이 갔지만 마지막 결말 부분의 선명한 붉은 이미지는 생각하지 못 했던 것이어서 인상적으로 기억되었다.
완전한 결합
성을 반전하거나 중성, 양성 혹은 제 3의 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SF단편에서 많이 보인다. 이 소설 역시 그런 설정 하에 쓰인 단편이었다. 세 가지 성이 만나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설정이었고 이런 설정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처음에는 각각의 성 역할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집중이 되지 않았지만, 모든 설정이 자연스럽게 체득된 이후로는 흥미롭게 이야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설정이 기반이 되어야만 글에 몰입되고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글이었다. 씁쓸하고 아릿한 감정을 느꼈다.
3.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하루 만에 단편집을 읽었다. 그만큼 모든 이야기가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고 충분한 재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별히 어려운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유쾌한 느낌과 잔잔한 재미를 느꼈고 중반에는 과학소설의 경이감을 느끼고 과학소설만이 가지는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며 마지막에 가서는 환상소설이 갖고 있는 환상성에 매료되어서 푹 빠져버렸다.
특별히 장르독자만 읽을 책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읽힐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 동안 과학소설 단편집을 누군가에게 추천해준다면,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제격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만났어』가 처음 과학소설을 접하는 친구들에게 더 좋은 접근 방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계속 고민 중에 있다. 군대에 있는 친구 둘에게 이 책을 사서 보내버릴까. 다음 주에 졸업하는 과 동기에게 이 책을 선물해 볼까.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매년 단편집을 출간하고 있고, 과학소설 전문 무크도 있고, 앞으로 과학소설과 환상소설을 다룬 월간지도 출간될 예정이지만, 그래도 출판계 상황이 좋지도 않고 한정된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장르 독자를 대상으로 이런 책들이 많이 출간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지금 우리는 처음 만난 게 아닌가. 그 동안 기다렸던 국내 창작 장르 문학 단편집을 이제야 만난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이 더욱 정진하여 각자 개인 단편집을 출간한다면. 또 나아가서 더 많은 장르 작가들이 수준 높은 작품을 써낸다면. 외국에도 번역되고 상까지 수상하는 날도 언젠가 오지 않을까.
좋은 글이고, 재미있는 책이고, 사서 뿌듯한 책이다. 앞으로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이 세 명의 작가들은 너무나 기대가 된다. 지금껏 발표한 작품들보다 앞으로 발표할 작품들이 더 나은 글들로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 같다. 그리고 또 새로운 작가들의 출현을 기대한다.
이제 막 출간된 책이니 만큼,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전부 구입해서 많은 판매량을 올리기를 바란다. 즉, 이 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세요!’니까.:D